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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자성과 쇄신 결사의 본질과 방법을 논한다종단 내부에서 제기한 위로부터 결사 아닌가

지난 18일 서비스를 시작한 불교포커스 팟캐스트가 다시 새로운 시도를 선보입니다.
이슈대론_당대당(當對當)입니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이슈의 중심인물이 대론하는 코너입니다.
도법스님과 우희종 교수가 21일 금요일 오후 7시30분부터 90분 동안 뜨겁게 대론을 벌였습니다. 두 분의 대론은 현재 팟캐스트 포털 ‘팟빵’을 접속하면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아울러 도법-우희종 대론 전문을 텍스트로 올립니다. 분량이 2백자 원고지 180매여서 1, 2부로 나눴습니다.

이슈대론_당대당은 법인관리법으로 촉발된 조계종-선학원 갈등, 비구니 종회의원 추천을 둘러싼 전국비구니회의 운영 등의 사안에 대해서도 대론의 장을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편집자

 

   
▲ 이슈대론_<당대당> 진행장면

[대론 요지]
먼저 우희종 교수는 2011월 12월 경 도법스님이 종정스님에게 종단의 비민주적 풍토와 비인격적 언행, 불투명한 재정 등을 지적하며 ‘죽비로 내려쳐 달라’고 청한 공개편지를 거론하며, 그 문제의식을 여전히 갖고 구체적인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이에 대해 도법스님은 불교의 장점은 광장으로 나와서 문제를 다루는 것이라며, 결사를 통해 광장으로 나오게 만들고, 대중적 논의를 통해 정리하게 만드는 풍토와 문화는 향상되었다고 본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우희종 교수는 시종 ‘자성과 쇄신’이름의 결사본부라고 한다면 집단 내부의 변화에 집중해야 하는데, 사회부나 포교원, 노동위 등 종단의 사업단위에서 해야 할 사안까지 결사본부가 모두 맡아 하면서 마치 결사본부가 총무원 2중대처럼 되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도법스님은 종단권력을 감시하고 바꾸고 하는 것이 결사본부 사업의 전부는 아니라면서, 모순과 혼란의 원인이 되는 한국불교의 불교관과 실천론의 문제에 대해 천착하는 것, 한국불교가 (중생들의) 구체적 삶의 현장에 직면해서 문제를 다루도록 변화시키는 것까지 3개 영역으로 보고 있다는 입장을 설명했다.
이에 대해 우희종 교수는 다시 그 3가지 영역 중에서 종단 내면의 체제 이외의 문제들은 총무원에서 다루어도 될 문제이며, 결사본부가 폭을 좁혀서 총무원에서 자성과 쇄신이 이루어지지 않는 부분에 대해 집중해야 하고, 사업을 포괄적으로 잡다보니 결사본부가 오히려 총무원 2중대로 비춰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자성과 쇄신 결사는 종단 내부에서 만들어 진 것이고, 종단 자체가 결사를 하겠다고 나섰을 때의 상황을 보면 종정스님께 공개편지로 던진 문제의식의 투철함에 대해 살펴볼 지점이 있다고 주정했다.

도법스님은 제도권 안에서 대중공사라는 이름으로 논의의 장을 만들고 지혜를 모아 풀어가자는 생각으로 그런 장을 만들고자 했는데 활발하게 내용있게 나가지 못했다며, 원장 보호를 위해 방패막이로 만든 자리라고 하는 시각들로 인해 제대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더불어 총무원이 엄정한 법집행을 하지 않은데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결사본부 입장에서 그런 사안 사안 마다 (소리 한번은 지를 수 있지만) 모두 다 할 수 있는 입장은 안 된다며, 그런 점에서 체질변화가 중요하다고 본다는 논지를 폈다.

이에 대해 우희종 교수는 그런 것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결사본부나 결사본부장은 내려놔야 하고, 계속 안에서 곪는 것을 밖에서 뭘 했다는 식으로 내부 문제를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며, 결사본부가 총무원 내부의 자성과 쇄신의 기구로서 포커스를 맞추려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도법스님이 밑으로부터의 결사와, 종단에서 먼저 제기한 지금의 결사본부를 동일하게 보는 것은 잘못이라는 견해도 밝혔다.

도법스님은 그간 결사본부에서 해온 대승불교 실천론을 정리해 보자는 것, 그것의 생활화를 위한 청규를 만든 것, 종단 쇄신위에서의 4대의제와 10대 과제의 도출 등이 성찰을 통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며, 문제는 종단이 이런 것을 집행해야 할 사항이기 때문에 결사본부는 권한과 힘이 없다는 현실을 들어 설명했다. 

[대론-전문]
진행자(윤남진 에디터) : 불교포커스 팟캐스트, 이슈대론 <당대당>. 윤남진입니다. <윤남진 불법사찰> 이름으로 첫 팟캐스트 서비스를 내보냈는데요. 교계 안팎의 이슈의 중심인물을 모시고 대론을 하는 시간입니다. <밀린다왕문경>에 나오는 현자의 대론인데요. <당대당>이라는 이름으로 ‘당당하게, 대면해서’ 토론한다는 취지에서 붙여보았습니다.
도법스님과 우희종 교수님 모셨는데요. 두분 모두 실력자시고, 굉장히 유명한 분들이라서, 정말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래도 간단히 소개를 드리자면, 도법스님은 생평평화운동의 선봉장이시고, 조계종의 자성과 쇄신 결사추진본부장이시자, 화쟁위원회 좌장 역할을 맡아 사회 여러 가지 갈등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고 계십니다. 인사 해주시죠.

도법스님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진행자 : 우희종 교수님은 서울대 수의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시고 있고,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의장도 하셨죠? 2008년 광우병 쇠고기 파동 때 국회청문회 나가셨죠. 그때 평가를 보니, 명쾌한 과학이론으로 경고를 보내셨다, 이렇게 위키백과에 나와 있습니다.

우희종 교수 : 안녕하세요. 서울대 우희종입니다.

진행자 : 목소리가 너무 좋으셔서, 사회자를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분께 출연을 승낙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다시 한 번 드립니다. 오늘 자리는 우희종 교수께서 도법스님께 먼저 말씀을 거셨어요. 도법스님 이제 그만 두시고, 총무원에서 나오시라 하셨고, 거기에 대해 도법스님께서 언론에, 그럼 나를 설득해봐라 하셨죠. (거기에 대한 응답인가요 그게?) 멀리서 보면 그렇죠.

도법 : 그 얘긴 우희종 교수에게만 한 이야기 아니에요. 결사팀하고도 여러 차례 이야기 했죠.

진행자 : 그런데 지금까지 막강하게 버티고 계신 겁니다. 먼저 우희종 교수님께서 도법스님께 묻고 싶은 것 있으시면, 먼저 질문을 던지시고 그런 다음 도법스님께서도 숙제를 해 오신 것 같아요. 우교수님 뿐만아니라 재가불자 리더 일반에게 하시는 말씀도 해당되고요. 그리고 사회자 저도 보충 질문을 하겠습니다.

   
▲ 토론하는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우희종 교수

우희종 : 사실 오늘 토론자리는 제가 생각하기에는, 현 총무원의 조금은 부패하고 비민주적인 모습이 왜 개선되지 않고 더 악화 되고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얘기를 나누고 싶은 건데요. 이 자리가 그런 의미에서는 총무원장 스님이 오시면 더 좋은데, 도법스님이 계신 것이 더 상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현재 종단의 총체적 문제점에 대한 책임자를 대신해 도법스님이 오셨다는 측면이 있고, 한편으로는 그동안 총무원의 문제제기에 대해서 항상 총무원은 무대응으로 일관하셨는데, 도법스님이 와주신 게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것이라고도 생각하고요. 어쨌든 지금 굳이 이자리가 된 건 현 상황에 대한 인식과, 그것에 대한 대응방식이 많이 의견차이가 있어서 시작된 거라고 보기 때문에, 일단 제 문제의식을 먼저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평소 도법스님을 존경하는 것은, 어찌 보면 문제의식에 날이 설이 있다는 면, 그것을 실제 실천하시는 분이기 때문인데요. 제 문제의식도 도법스님과 다르지 않습니다. 제 문제의식은 지난 2011년 12월 결사추진본부 도법스님께서 종정예경실장님에게 보낸 형태로, 종정스님에게 드린 공개질의가 있습니다. 전 그것이 도법스님다운 문제의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잠깐 요약을 해보겠습니다. 전 이 상황이 여전히 종단의 절실한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간단히 보면, ‘전법의 깃발을 남루하게 만들고 불교 종단의 위상을 초라하게 만드는 선거풍토, 계파정치, 종회의원 폭력 문제, 출가수행자를 불신과 냉소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만드는 비민주적인 종단과 사찰의 영, 비인격적인 언행, 불투명한 재정, 무절제한 고급승용차, 비수행자적인 물질적 풍요와 편리추구의 문제, 불교종단과 수행자를 국가권력의 종속화, 세속화의 늪으로 빠뜨리는 물질적 풍요와 편리의 대형불사를 위해 온당치 못한 방법으로 재정을 만드는 등의 문제, 근본은 법이기 때문에 마땅히 종헌종법 정신으로 종단과 사찰을 운영해야 합니다. 그런데 높고 힘 있는 직위의 스님들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무조건 허용되고 인정받는 문제를 지적하시면서 파사현정의 죽비로 내려쳐 달라’고 청하신 일이 있습니다.

아마 이점은 불교를 사랑하는 모든 이의 문제의식이 여기에 집약되어 있다고 보고요. 과연 그 이후 만3년이 지났는데, 이런 점이 자정과 쇄신을 통해 개선되었는가를 묻고 싶습니다. 어찌 보면 현재 총무원의 여러 스님들의 모습, 계파를 만들어서 중앙종회마저 이권다툼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 재가불자마자 계파에 따른 분열형태가 보이고 있거든요. 첫 번째 질문은 그 문제의식을 여전히 갖고 종단의 구체적인 실천이 이뤄지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도법 : 그것은 상황이 종교평화선언 문제 때문에 촉발되었어요. 종교평화선언은 어쩌면 결과로써 종교평화선언이 되다보니, 종교평화선언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필요성, 종교가 우리 사회 속에서 역사적으로 무수한 전쟁을 일으켜왔고, 한국사회에서도 앞으로 대단히 우려되는 상황들로 나타나는데, 이런 가운데서 불교가 불교다운 방식으로 종교평화문화를 가꿔내는 것이 바람직하겠다는 어쩌면 우리가 해왔어야 할 일들을 충분하게 못한데 대한 성찰의 토대에서 이것이 이뤄진 거잖아요.

그리고 그것을 선언했을 때, 이것이 즉흥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많은 논의와 모색과정을 거쳐서 초안을 만들었고 이것을 좀 더 대중적 지혜를 모아서 완성시켜서 내놓은 것인데.. 사회적으로는 엄청난 반향이 크게 있었어요. 그만큼 사회에서 갈망이 있었던 거죠. 종단 안에서 상당수가 많은 공감을 가졌지만, 이견을 가진 분도 있었죠. 이런 부분들도 공론의 장을 통해 끊임없이 걸러서, 그렇다고 전부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정도면 조계종에서 어떤 사안을 가지고 공개적이고 대중적으로, 대중의 의견을 이만큼 거른 일이 아마 없었을 거라고 봐요.

이정도 했으니 최종적으로 공식화 하자 해서 한 건데, 이 문제가 종정스님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일은 아니었죠. 다만 종교평화선언의 권위라고 할까, 무게를 싣기 위해서는 종정스님께 말씀도 드리고, 한마디 덕담도 듣고 하면 좋지 않겠냐, 우리가 할 수 있는 수준은 다 하고, 마지막에 총무원장 스님이 직접 하시는 게 좋겠다 하셔서 했는데, 거기서 제동이 걸렸죠.

처음에 나로써는 당혹스러웠죠. 이건 당연히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덕담하고 격려하고 진행될 거로 생각한 건데, 제동이 걸리니까 당황스러운 거잖아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중요하게 문제가 된 것이 종지에요. 종지에 어긋날까 걱정이 되니까 대중의 뜻을 더 모았으면 좋겠다. 대중의 뜻과 지혜를 더 모아서 했으면 좋겠다. 이런 의견이셨어요. 결국, 이것은 종정스님이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그런 말씀하셨는지 구체적으로 파악을 해야 반영할 수 있잖아요.

결국 종정스님 뜻을 받들어서 하는 걸로 정리하고, 종정스님을 뵙고 구체적 말씀을 듣고 싶다고 했는데 다 차단이 되는 거에요, 일체. 그래서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드는 거죠. 말이 안 되지 않냐, 이것이 정치적 사안도 아닌데,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요, 대중적 공감과 호응이 없는 일도 아니고. 어쩌면 가장 불교가 불교답게 할 수 있는 일인데, 그런데 그것을 종지와 연결시켜서 걱정된다고 하니, 구체적으로 어떤 말씀인지..., 그런데 그걸 차단한단 말이죠.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결국 공개질문 형식으로, 차라리 이런 기회에 그러면 우리 종단 문제를 공론의 장에서 다뤄보는 게 좋겠다 해서 예경실장에게 그런 편지를 쓴 거죠.

중요한 것은, 종단에 이런 문제가 계속 되풀이 되고 있는데 이것은 종지 정신에 맞아서 침묵하고 계신가, 종지정신에 문제가 되지 않으니 괜찮게 두시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왜 침묵하시는가 하는 거예요. 예경실장께 종정스님이 종지 문제를 말씀하시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종정스님께 우리가 당연히 여쭙고 싶으니, 정확하게 여쭈어서 종정스님의 뜻을 전해달라고 한 거죠.

거기서 짚었던 문제는 종단의 비민주성이나 이런 부분들은 나는 끊임없이 그런 문제들이 속시원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지만, 이것이 사건, 사안하나 처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풍토와 문화로 흘러간다고, 향상되어가고 있다고 보고 있어요, 종단의 현실을 보면. 그것이 이번 결사를 통해 주로 불교의 장점은 광장으로 나와서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대중들이 주체적으로 같이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문제를 짚어가는 것이 불교의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대중공사라는 이름으로 야단법석으로 매사를 해가요, 잘 되든 안 되든, 그런 부분들이 가급적이면 광장으로 나오게 만들고, 대중적 논의를 통해서 정리하게 만들고, 이런 풍토는 조금씩 향상되어 간다고 봐요. 꾸준하게.

우희종 : 그 점에서 달리 보는 것인데요. 그 부분이 향상되고 있었다면, 최근의 일련의 사태. 전국수좌회에서 의견까지 두 번 말하는 상황, 비구니스님 내부의 문제, 이런 상황이 과연 향상된다는 것을 반영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 실제로 오히려 최근 종회선거만 봐도, 당시 스님께서 던졌던 그 문제의식이 악화되었지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상황인식을 달리 하는 것 같고요.

기본적으로 그런 것들은 외부에서 논의되건, 내부에서 논의되건 다 좋습니다만, 최소한 문제점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논의해야 하는데, 현재까지 진행되는 외부의 논의를 보면, 근본적인 가치에 대한 재검토, 전 그것도 의미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최소한 ‘자정과 쇄신’이란 이름의 결사본부라면, 지금까지 해왔던 논의나 내부적 행동을 보면 총무원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 사회부, 포교원, 노동위라든지 이쪽에서 다룰 일마저 다 결사본부에서 하면서 마치, 결사본부가 총무원의 2중대처럼 되지 않았나.

정작 자정과 쇄신을 위한 결사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오히려 논점이 흐려진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밖에서 논의되건 안에서 논의되건 당시 스님께서 생명평화선언을 통해서 거론되고 논의되어야 하는데 역시 너무 원론적인 논의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있고요. 특히, 이 과정에서 모든 집단이나 사회의 변화는 기본적으로 변화되어야 하는 집단내부의 변화, 자정과 쇄신 없이는 근본적 변화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 대해서 다 얘기할 수 없지만, 총무원장 연임과정이나 종회의원들의 선거과정에서 총무원장 스님의 개입, 금권선거, 논공행상 과정마저 총무원장 스님이 개입되는 걸 봤을 때, 과연 그런 상황에 대해 스님이 우려만 표명 하시면서, 재가단체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활동을 촉구하셨는데..., 그렇다면 내부의 자정을 이끌어낼 주체이신 스님이나 결사본부가 외부 재가단체에 책임을 넘기는 것이 아닌가. 아니라면 결사본부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사부대중의 주체로 일어나야 한다고 하지만, 사부대중이란 말은 종종 정치인들이 ‘국민정서에 따라, 국민 뜻에 따라’라는 식의 막연한 표현일 수 있거든요. 사부대중이란 말을 보면 거기 이미 열린 비구니회처럼, 비구니 집단, 재가자들의 움직임, 정작 자정과 쇄신 당사자의 주체가 돼야 할 비구스님들의 움직임이, 그리고 그 핵이 되어야 할 결사본부의 행동은 없이 계속 우려와 안타까움을 표명한다는 것은 전 조금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 점에 대해 의견을 묻고 싶습니다.

   
▲ 토론하는 <자성과 쇄신 결사본부> 본부장 도법스님

도법 : 얘기가 포괄적인 얘기가 되어서, 내 얘기 할 줄 알았는데, 종단 전반적인 이야기를 하니 마치 내가 종단 대변자로 얘기해야 되잖아요. 그건 아닌데, 전혀...

진행자 : 폭을 줄여서, 결사본부와 관련된 것으로 한정하시더라도 같은 질문인 것 같아요.

도법 : 그럼 반대로 내가 질문해 볼게요. 나는 사실 바깥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것은 아니고, 우교수에 대한 이야기도 더러 그런 얘기를 했다는 소문을 들은 정도인데, 오늘 얘기하러 간다고 하니, 불교닷컴에 쓴 글을 보여 주더라고요. 질문을 만들어와야 한다는 숙제를 줘서 그것 보고 질문을 만들었어요.
그걸 보면서 기본적 느낌은, 다른 건 몰라도 나와 관계된 내용을 너무 모르고 있다 우교수님이, 대표적인 것을 보면 새만금 문제로 인해서 생명평화순례 한 것으로 돼있어요. 전혀 아니거든요. 새만금 문제는 수경스님이 애를 썼던 것이고, 나는 그때 기도한다고 지리산에서 대안을 찾는다고 해서 마지막으로 도출된 것이 생명평화운동이었는데, 새만금하고는 직접 관계는 없어요.
이런 부분들이 내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얘기하면 내용이 달라질 텐데 단편적으로 파악하고 얘기를 진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포괄적인 얘기가 되면 구체적으로 명료하기가 쉽지 않겠다 싶어서 역으로 이런 얘기를 하는 거에요.

결사본부 얘기가 나왔으니, 결사본부가 과연 뭘 하는 곳인지 이 부분에 대해서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고 봐요. 꼭 우교수님 생각대로 모든 사람이 생각 하냐, 그거 아닐 수도 있어요. 내가 생각하는 대로 그러냐, 아닐 수 있죠. 대부분 결사본부가 종단권력을 감시하고, 권력을 바꾸는 제도를 바꾸는 걸 결사본부 일처럼 얘기해요. 나는 그런 측면이 전혀 없지 않다고 봐요.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죠. 그렇다면 역으로 결사본부에서 뭘 했는지 잘 파악하고 얘기하는 것인가 이런 질문이 되요.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다룰 것이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봐요.

나는 공격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다루는 것을 별로 안 해요. 사람들은 왜 나를 (그렇게) 기억하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잘 그렇게 안했어요, 거의... 사람들은 마치 나를 싸움꾼처럼 생각하는 데, 이해할 수 없어요. 아마 94년 98년 일 때문에 그런 거 같아요. 나는 거의 그런 거 잘 안 해요. 대표적으로 황우석교수 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황우석 교수 잘 몰라요, 줄기세포 문제도 잘 모르고, 왜 자꾸 그 문제에 대해 반대한 것처럼 각인이 될까 하는 문제죠.
기자들이 들어와서 질문하면, 주로 내가 한 얘기는 생명공학 문제가 현대사회에서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진행되잖아요. 이걸 불교적으로 어떻게 보고,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입장이 정리가 되고 그 토대가 위에서 황우석 문제가 다뤄졌으면 좋겠다, 이것 없이 불자 과학자라고 해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옳지도 않고, 이런 문제제기 한 거예요. 그런데 마치 황우석 반대한 것처럼 받아들여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결사문제도 실제 내용적으로 보면 3가지 그림이에요. 나는 사실 이쪽에도 관심있어요. 바람직한 한국불교가 뭔가, 한국불교 문제를 개개인의 문제라던가, 종단 법집행하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충분하게 잘 못하는 문제, 물론 그런 문제가 없다는 얘긴 아니고, 그런저런 모든 모순과 혼란이 되풀이 되는 근원적 원인이 뭔가 했을 때 한국불교가 불교과과 실천론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거예요.
삶과 수행이 통일 될 수 있는, 불교적 세계관과 일상적 삶이 통일 될 수 있는 불교관과 실천론이 제대로 안되면 이 악순환이 계속 될 수밖에 없다, 이 부분에 관심이 더 많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바람직한 한국불교라는 측면을 한 축으로 놓고 나름대로 천착을 하는 것이고요.

또 하나 한국불교 문제가 뭐겠어요, 현장에 직면하지 않기 때문에요. 절 안에 있거나, 심산유곡에 들어가 있거나 그렇죠. 구체적 삶의 현장에 직면해서 불교문제를 다뤄야 현실에 살아있는 불교가 될 텐데 우리는 그러지 못하고 있죠. 어떻게 하면 현장에 직면해서 바람직하게 실천하고 역할 하는 불교가 될 것인가.
그 다음 하나가 바람직한 종단, 제도적인 문제죠. 말씀하신 그런 문제들. 이 3개인데, 우교스님 글을 보면서 기왕 이야기 하려면 내용을 충분하게 파악하신 후 얘기를 하면, 훨씬 더 서로에게 좋았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데, 너무 단편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문제제기를 하는 거예요. 

우희종 : 그럼 그 점에 대해서, 저는 새만금 운동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생명평화의 불교 사회참여 부분을 얘기하면서 한 거구요. 세세하게 쓰지 않은 건 인정하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또 하나 결사본부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그것이 굉장히 소중한 가치라는 것은 인정하고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럼 스님께서 거론하신 그 3가지 문제, 그 중 종단 내면의 체제나 문제점을 제외한 것들은 그것은 과연 총무원이 해야 할 일일까요? 결사본부가 해야 할 일일까요? 저는 그런 면에서 오히려 결사본부를 큰 폭으로 포괄적으로 잡으시다 보니 결사본부가 마치 조계종을 대표하는 총무원 산하의 일을 다 짊어지는, 한국불교의 정체성과 현장성과 더불어 종단 내부의 개혁까지, 그러다 보니 그것이 오히려 총무원의 2중대라고 비춰지는 겁니다.

결사본부라고 하는 것은 종단 그 자체도 아니고, 총무원 그 자체도 아닌데, 지금 생각하는 그 범위는 그야말로 조계종단이 해야만 하는 일이고, 누구나 공감되는 일이고, 당연히 그 총무원 여러 분과에서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왜 그것을 결사본부라는 것을 굳이 둬야만 하는가.
어찌 보면 한국불교의 정체성, 현장에 임해야 된다는 것은 너무나 공감되고 당연한 일이지만, 굳이 자정과 쇄신이라는 표방 하에 그런 결사본부가 있다는 것은 좀 더 폭을 좁혀서 정말 지적한 부분들이 제대로 안 이루어지는 이유가 어디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것들, 왜 총무원에서 이뤄지지 않았는가를 구체적인 사안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실제 종정스님에게 드린 스님 문제의식에 다 담겨 있는 것이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 얘기 돼야 하고, 그것들을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지 않는 한 그것은 계속, 많은 재가불자들이, 왜 이 결사본부가 현 총무원 집행체제의 대변인, 2중대처럼 하는가 라고, 쉴드 역할이라고 나올 수 있는 겁니다. 결사본부가 종단이 하는 일을 다 하는 게 되어버리니까요.

도법 : 결사에 대한 생각이 다른 거잖아요. 그런 문제의식에 대해 부정하지 않아요, 그것도 필요 하다고 봐요.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는 건데. 문제제기 자체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봐요. 할 수만 있으면 하면 좋고, 현실적으로 저도 결사본부를 하면서 봤을 때는 사실, 총무원이 다 할 수 있는 거예요. 종단이 스스로 알아서 했으면 결사본부는 필요 없어요. 다만 종단이 못하니까 결사본부라는 기구를 만들어 해보자 하는 거잖아요.

모르긴 몰라도 결사란 이름이 아니었으면, 조계종단 50년 역사를 놓고 봤을 때 결사라는 명분이 아니었으면 근본적인 물음을 갖고 천착할 기회는 없었으리라고 봐요. 나는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도하나 몇 개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요. 불교의 존재이유, 존재가치가 뭔지 이런 것들을 물으면서 거기에 응답이 될 수 있는 불교관과 실천론, 현장에서의 실천과 역할, 이런 것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모색하는 것, 이건 결사라는 이름이 아니면 거의 있을 수 없다고 봐요. 기성종단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봐요. 그런데 사람들은 당장 피부로 와 닿는 걸 원하는 거잖아요?

우희종 : 단순히 원하는 것이 아니라, 아까 말씀드린 정체성과 제대로 된 모습에서 이론을 제기하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아주 공감합니다. 그것이 결사를 통해서 이뤄질 수 있다는 것도 공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 차이가 뭐냐면, 불교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바로잡자는 것은 밑으로의 결사입니다, 대부분요.
그런데 이번의 결사가 뭐가 특징이냐면 종단 내부에서 만들어진 결사본부거든요. 그럼 무엇이 다를까, 이 고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종단의 한 부속 기구로서의 결사본부라는 것은 밑으로의 결사로서 한국불교의 근간을 바로세우는 기존의 종단이건 그것이 못할 때 밑의 스님이건 사부대중이 일어서서 하는 것이거든요. 그때는 지금 스님께서 말씀하신 맥락이 정확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다른 재가자들이나 사람들이 지금의 결사본부에 대해 무엇을 요구하는가, 왜 다른가 하는 것을 들여다보실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종단 내부에서 만들어진 결사이고, 그것이 어쨌든 출발점이 당시 템프스테이 지원이나 정치현안화 되고 사회 논란의 바탕이 되는 시점에서 종단 자체가 결사를 하겠다고 나섰을 때에는, 한국불교를 제대로 알리는 개념 보다는 사실은 일반재가자들이 받아들일 때에는, 더욱이 그것을 도법스님이 맡는다 했을때에는, 그 후에 이어진 종정스님에게 던지는 문제의식의 투철함에 대해서는 당연히 재가자들이 바라본 것을 도법스님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살펴볼 지점이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진행자 : 추가적으로 제가 질문 드리면요. 도법스님께서 하시고 싶은 일, 진정으로 관심을 가지고 계신 일, 그런 일 보다는 재가불자들이 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건전한 상식의 요구 정도는 불교관과 실천론이 어찌 되었든 간에 지킬 수 있는 것 아니냐, 지켜줘야 하는 것 아니냐. 이를테면 성희롱 문제라던지 그런 것들이 빈번하게 있지 않습니까. 최근에도 음주운전으로 추태를 벌이는 일, 그것은 국법이 엄금하고 있는 것이란 말이죠. 그건 고귀하고 높은 수준의 어떤 규율이나 도덕성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요구가 있는 거죠. 적어도 그런 점에 있어서는 하자가 없어야 더 고상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하는 정도의 요구인 것 같아요.

도법 : 그야말로 그것은 총무원이 할 일 이에요. 갑갑하네. 호법부는 뭐하러 있는 거예요. 정상적으로 집행하면 될 일이에요.

우희종 : 그런데 그런 집행이 안 될 때...

도법 : 왜 자꾸 그것을 결사본부가 다 집행 할 일로 취급하는가 말이죠. (우희종 : 그럼 자정과 쇄신이 뭔가요?) 자정과 쇄신이라고 해서 그런 사안 다뤄야 자정과 쇄신이라고 하는 건 편향된 견해인거죠.

우희종 : 사안이 아니라 종단의 문화를 말한 겁니다.

도법 : 아까도 선학원 문제 잠깐 이야기 하면서 공업의 문제가 있다고 얘기했는데, 이게 하루아침에 칼로 무 자르듯이 이럴 수 없는 부분이잖아요.

우희종 : 그러자는 이유가 아니라, 그것을 최소한 공론화해서 얘기하자는 터전을 만드는 게 결사본부라고 생각합니다.

도법 : 그걸 이야기 할 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지하게 제안했어요. 대중공사라는 이름으로, 야단법석이라는 이름으로 제안하고 온갖 것 했어요. 그런데 안 해요.

우희종 : 그렇다면 그게 결사본부의 한계가 아닐까요?

도법 : 물론, 그게 결사본부의 한계일 수 있어요. 그러나 그 장을 안 만들어서 안 되었다는 것에 수긍할 수 없는 거죠. 가장 첨예하게 부딪치는 문제, 이것도 사실 처음부터 제도권 안에서 대중공사라는 이름으로 논의 장을 만들고 지혜를 모아 풀어가자 했던 것이고, 제도권 안이 한계가 있으니 열어서 할 수 있는 걸로 야단법석하는 마당, 이걸 준비했는데 마침 백양사 사건이 터지면서 이 일을 하다 보니, 백양사 사건 때문에 이걸 한 것으로 되었어요. 거기서 한바탕 숫자가 많던 적던 대중이 격앙된 상황이었으니까. 그렇지만 다했어요.

내부적으로는 엄청 압력을 받죠. 왜? 조계사 법당 안 마당에서 총무원장 끌어내려라 격앙되어 분출되는 것을 공식적으로 조계종단 기구에서 마련해서..., 이걸 누가 동의하겠어요. 그렇지만 다 했어요. 그 과정을 몇 달 동안. 이런 장이 뜻있는 사람이 모여 잘 살리면 좋겠다고 해서 마련한 장인데, 불행하게도 어떤 이유가 되었든 활발하게 내용있게 가지 못한 거죠. 그것은 오랫동안 형성되어진 공업의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 부분도 정치적으로 보는 거죠. 원장 앞잡이들이 원장 보호를 위해 만든 자리다.
방패막 얘기, 들어올 때 부터 들어온 얘기에요. 그렇게 보기 때문에 아무리 바람직하게 뭘 하고자 해도 사실, 제대로 안 돌아가는 거죠. 이것은 결사본부의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다던지,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다던지, 그건 어쩔 수 없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큼 한 거니까. 실력 없어 그런다 노력이 부족해 그런다 비판하면 수용해야지 어쩌겠어요. 그러나 최선을 다한 것이죠.

다만, 원장의 방패막이 이런 이야기, 그 부분에 대해 이렇게 얘기해요. 그럴 수 있다. 해석은 얼마든지, 역으로 해석이 되요. 원장이 나를 필요로 해서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넌 매번 이용당한다고... 뭐, 그럴 것이다. 그 반대로 나도 원장 이용한다. 나도 원장 필요한 것 한 부분 이용하고, 원장도 나를 필요해서 이용한다고 할 경우, 내용적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는 알 수가 없다. 누가 더 잘 이용을 했는지, 누가 효과적으로 썼는지 누가 알거야.

우희종 : 이미 3-4년이 지난 시점에서 총무원장 스님이 잘 이용하신 거죠.

도법 : 난 꼭 그렇게만 보진 않아요. 크게 나눠서 진보-보수 이렇게 얘기하는데, 또는 원장 지지 반대, 이런 거잖아요. 주로 진보적인 분들, 또는 반대 입장에 있는 분들은 원장한테 내가 계속 많이 이용당하고 있고, 원장은 잘 이용해 먹는다고 얘기해요. 반대쪽도 그럴까요? 반대쪽은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아요. 원장이 도법이가 짜 논 구도에 의해 이야기 하고 있다고 해요.
종단 정치를 내가 (그런 길을) 걸어온 사람은 아니잖아요. 제도를 바꾼다든가 제도를 만든다든가 이런 걸로 접근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바람직한 종단이라는 측면에서는 어쨌든 쇄신위원회에서 4대 의제 10개 과제라고 해서 성안을 시켰어요. 다만, 이것을 입법화 시키고 행정적으로 진행도 해야 되는데 잘 안되는 거예요. 그건 또 촉구하면서 만들어 갈 수 밖에 없는 거죠.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니까.
또, 입법화 되더라도 현장까지 바로 효과가 나타나느냐 그렇지 않아요. 5년도 걸리고 10년도 걸리고. 그 작업은 이뤄지고 있는 거죠. 원장이 도법이 짜 논 구도에 따라 가고 있다는 얘기는, (일례로) 무차대회 이건 사실 약자를 돕기 위해서 하는 건 아니에요. 한국불교의 변신을 위해서 한 거에요. 현장에 고통받는 사람들, 현장의 사람들의 문제를 우린 너무 모른다, 또 그거와 관계없이 시혜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다, 이건 아니다, 약자들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불교인이 삶의 문제를 제대로 다뤄갈 수 있는 제대로 된 불교인으로 변화하기 위해서 하는 거죠.

그래서 한 예로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초청해서 그들의 얘기를 듣자, 그리고 그들이 요구하는 것에 한국불교가 응답할 수 있는 길을 한번 찾아보자, 이렇게 해서 이뤄진 거에요. 그중 제일 처음 시작된 게 노동자 초청 무차대회인데, 이것을 하려고 하니, 빨갱이를 조계사 마당으로 끌어들인다 해서 난리가 났어요. 처음에는 잘 모르고 진행하다가 막바지에 압력이 들어오는 거에요. 나한테는 직접 안와요. 결국 총무원이 해야 되는 거잖아요. 총무부장, 기획실장이 해야 하는 거에요. 결국 애초의 취지는 어디로 가버리고, 엉뚱한대로 가는 거에요. 결국 여러 가지 문제가 야기되어서, 일하면서 그때 처음으로 소리 질렀어요.

이거 본래 취지대로 안하려면 결사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정리해라, 정리하면 나도 이일 여기 와서 이 짓거리 할 필요 없고, 총무원도 고민할 거 없고, 그렇게 한바탕 해서 다시 했어요. 예를 들면 이런 거에요. 이쪽에서 바라보는 것만이 전부인 것이 아니라는 거죠. 저쪽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것도 있다는 걸 우리는 알아야 하는 거에요.
또 한 가지, 봉은사 문제도 마찬가지에요. 봉은사 문제가 명진스님하고 원장스님이 충돌 했을 때, 이쪽에서 뭐라고 하냐면 어떻게 총무원장하고 말사 주지가 마주 앉아서 합의하고 이게 뭐냐고, 행정적으로 그냥 진행하면 될 일이지. 이게 이쪽이에요. 그런데 어쨌든 이것을 대화로 풀자고 해서 중간에 끼어들어서 결국 정리를 하긴 했는데, 종단의 현실상황을 바라봤을 때 이쪽 시선도 있고, 저쪽 시선도 있다고 하는 것을 같이 봤으면 좋겠다.

우희종 : 그 지점에 대해 무의미하다,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결과적으로 어떻게 실제적으로 종단에 작동하는가 봐야 한다고 봅니다. 당연히 말씀하신 그런 사안들 바람직한 거에요. 당연한 거죠. 노동자들이나 현장의 소리를 들어야 하고. 그러나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이 종단의 장기적인 건강성 회복에는 방해가 된다는 거죠.
왜냐면 그것의 극단적인 사례가 나타난 것이 결국 이번의 연임과 종회 선거에서 그대로 드러났다고 보거든요. 그런 게 정말 마무리 되어 진행된다면 아마 다른 재가자들도 아 조금씩 변하는 구나, 내지는 하루아침에 변할 수 있나,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하니까요. 실제적으로 보면 스님께서 추진하신 일들이 바람직한 일들이잖아요. 그런 것 때문에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바탕 자체에 거론이 힘들어지고, 나아지는가 봤더니 오히려 전국수좌회가 두 번이나 와서 말을 해도 무시당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 그 점에 대해서는 거꾸로 도법스님께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도법 : 사안 사안에 대해 문제제기 하는 것은 동의해요. 엄정한 법집행 해야 하는데, 징계 문제 안 다뤘다, 다 동의해요. 그런 것들은 당연히 총무원이 제대로 못하고 있고, 비판 받아야 하고, 책임 있는 사과할거 있으면 해야 된다고 봐요. 그것 자체에 대해 이해가 있고 하지 않아요.
나는 사실은 종단이 그런 사안 하나하나를 잘 처리하는 것까지도 다 할 수 있으면 좋죠. 내가 결사라는 입장에서 한다고 봤을 때, 이것까지 다 할 수 있는 역량은 안 돼요. 말 한마디는 할 수 있겠죠, 소리 한번 지를 수도 있고, 말 한마디 소리 한 번 질러서 해결 될 일 같으면 뭐가 걱정이겠어요. 그래서 이런 부분보다 체질변화가 더 중요하다고 본 사람이에요. 사안 하나하나보다는.

우희종 : 그런 사안으로 나타난 체질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법 : 종단이라는 견해는 포괄적이죠. 이런 사안도 있지만 이것만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우희종 : 종단이 아니라 계파를 이룬 스님들의 문제죠.

도법 : 그런 사안 하나하나를 다 해결하면 얼마나 좋겠냐, 그러나 결사본부장이 다 할 수 있냐, 그건 모르겠어요. 현실적으로 역량이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보지도 않아요.

우희종 : 최소한 공론화 하는 노력은 해야 한다고 봅니다.

도법 : 공론화는 우리가 안 해도 되요. 문제제기는 다 되고 있어요.

우희종 : 아니죠. 내부의 자정이라는 형태로 공론화가 되어야지. 밖에서 얘기를 하는 것은...

도법 : 내부적으로도 대중공사라던가, 끊임없이 하려고 노력하지만, 오랫동안 형성된 체질이나 풍토가 있기 때문에 쉽게 안돌아가는 거에요.

우희종 : 그걸 극복 못한다면 결사본부나 결사본부장이라는 형태를 내려놔야 한다고 봅니다. 다른 사람이 하던가, 사실 몇 년이 지난 것 아닙니까?

도법 : 풍토, 체질 변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건 또 하루아침에 되지 않고 꾸준히 해야 되는 일이라고 봐요. 몇 가지 예를 들면, 노동자 무차대회 하나 얘기 했는데, 최근에 아마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하나 얘기 했어요. 구속자 가족들하고 인연이 되어서 얘기를 하고, 협조요청도 오고, 우리사회에서 첨예한 문제잖아요. 나야 뭐 맘먹고 하는 거니까 하는데, 종단적으로 뭘 한다고 하면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어쨌든 필요하다고 해서 원장이름으로 탄원서를 냈어요. 이석기 문제를.

난 이런 부분이 종단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체질과 풍토변화에 작용하고 있다고 봐요. 다만 이것이 금방금방 가시적인 효과로 나타나지 않죠. 그런 측면이 오히려 더 종단 변화를 이끌어 가는데 필요하다고 보고 더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이고. 이런 사안을 바로잡고 제대로 하자고 하는 걸 부정하는 게 아닌 거라. 이 부분은 결사본부장이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이 현실적으로 아니더란 거에요. 다만, 그걸 못 할 거면 나가야 하지 않냐 하는데, 그렇게 보지는 않아요.

우희종 : 최소한 공론화의 형태로 올려놔야지, 거기에 침묵하는 형태로 하는 건 아니죠. 그리고 스님께서는 재가단체는 성명서만 아니라, 내용실천의 구체적인 작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는데, 그런데 지금 스님께서 든 예 자체도, 결사본부에서 탄원서 내게 하고, 결사본부에서 뭘 하게 했다고 하는 건 같은 맥락이거든요. 재가단체나 사부대중이 성명서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게 없지 않느냐고 계속 하십니다. 사실 그 관점을 그대로 대입해 보십시오. 종단이 그냥 탄원서 하나 내고, 뭐 하나 내고, 이건 아니거든요.

그게 이 문화를 바꿔가는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오히려 재가단체도 문제 촉구하는 것도 인정해주셔야 되는데, 그건 아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오히려 그런 면에서 결사본부가 총무원이나 종단에서 하는 일을 대행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내부가 본래 불교가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이 변화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인데, 계속 안에서 곪는 것을 그런 식으로 밖에서 뭘 했다고 하는 식으로 내부의 문제를 덮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탄원서를 내고, 노동자를 초빙하고 이런 것은 당연하고 아주 좋은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내부는 내려온 관습이라서 우리가 어쩔 수 없고 힘이 없다고 말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힘을 집중해야 할 것은 우리 자체의 풍토변화, 지금 총무원이 계파로 나뉘고 이권 다툼이 되면서 거기에 딸린 재가자조차 분열되고 스님 말씀처럼 니편 내편, 이편 얘기 저편 얘기 되는 이게 너무나 불행한 현실이거든요. 이것부터 가장 시급한 것부터 접근해야지...

물론 스님 말씀처럼 접근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적폐라는 용어로요. 그렇지만 끊임없이, 한번해서 안되었다 해도 끊임없이 했을 때 의미가 있지 이런 이런 좋은 일을 했으니까 이건 그냥...(도법 : 그건 아니지요.) 중요와 시급성의 인식이 다른 건데요. 그러나 말씀하신 바로, 제가 계속 드리는 말씀이지만 그건 종단차원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고, 그것도 스님이 밖에 나와서도 충분히 하실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 합니다. (도법 : 그건 아니고.)

어쨌든 상생과 생명, 화합 이런 것. 화쟁도 결사본부에서 하는 많은 부분이 의미는 있지만, 꼭 그게 스님이 안에서 결사본부라는 형태로 해야만 할 일이 아닌 것들도 있거든요. 밖에 나오셔서 하실 수 있는 일도 많이 있습니다. 그랬을 적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추고, 조금 더 총무원의 한 기구로써 결사본부와 결사본부장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금 같은 형태로 계속 종단의 일을 대변하는 형태는..., 그게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요.

도법 : 종단을 자꾸 대변한다 하는데, 뭐가 종단을 대변한다는 거에요?

우희종 : 지금껏 자정과 쇄신 운동 본부가 해온 것이요. 기도도 좋고 여러 가지, 이런 것들은 꼭 결사본부가 아니라 원래 종단에서 해야만 되는 일 같아요.

도법 : 글쎄...

우희종 : 그게 불교를 제대로 알리고, 그 정신을 우리 사회에 공유하는 것이니까요.

도법 : 종단이 언제 그런 걸 한적 있어요?

우희종 : 아니, 그걸 해야 하는 것이죠.

도법 : 종단이 뭘 그런 걸 해...  

우희종 : 그걸 하게 하도록, 그게 결사본부의 좋은 기능이니까 인정한다는 거고요.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라 정작 중요한 것이 뭔가 총무원 내부의 자정과 쇄신이라는 기구로써 그 고민이 필요하다고 보는 겁니다.

도법 : 자기성찰과 쇄신이라고 해서 자정과 쇄신이라고 얘기 하는 거잖아요. 자기 성찰이라고 하는 것이, 결사를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사안 하나하나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고. (우희종 : 전 사안에 대해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그렇지만 보면 사안들인 거잖아요.
뭘 성찰했는지 그럼 얘기를 해볼게요. 자꾸 성찰을 않고 바깥으로만 돈다, 종단을 대변하는 역할만 한다고 하는데. 굉장히 얘기가 많은데. 아까 3가지 얘기했어요. 바람직한 한국불교, 바람직한 현장실천과 역할, 바람직한 종단. 난 성찰이 없으면 그런 쇄신안은 나올 수 없다고 봐요. 그렇잖아요.
바람직한 한국불교라고 해서 불교관과 실천론을 한번 사부대중이 함께하는 대승불교 실천론을 정리해 보자는 것, 이것이 생활화 될 수 있도록 하는 청규를 만들자, 이런 걸 하고 있어요. 이것을 할 때는 왜 했겠어요. 성찰이 없이 나올 수 없어요.

그 중에 가장 큰 성찰은 뭔가, 그동안 우리가 주로 개인수행에 초점을 맞췄어요. 대승보살의 길은 그거와 다르잖아요. (우희종 : 그게 한국불교의 정체성과 모순에 대한 부분이죠) 맞아요. 성찰이 뼈아프게 있는 거에요. 다른 하나는 우리는 뭔 일만 벌어지면, 율장을 들고 나오고 계율 안 지켜서 그런다고 얘기해요. 과연 이게 현실성 있는 이야기인가. 율장으로 오늘 과연, 오늘에 맞는 모습인가. 거기에 맞는 성찰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면 율장을 바꿀 수 없으니, 조계종에 맞는 청규를 만들자. 거기에 중요한 성찰은, 그동안은 계율이라는 게 주로 뭘 하지 마라는 계율이에요. 삼가해야 한다, 못쓴다, 하면 안 된다, 이런 거죠. 이 내용은 사분율도 있고, 법망경도 있고, 전통적인 청규도 있고, 종계종의 승려법도 있어요.
금지조항이라는 이런 청규는 굳이 필요하지 않다. 요익중생을 실현할 수 있는 청규, 작지계의 청규가 필요하다 해서 만들어낸 거에요. 자꾸 성찰을 안했다고 하니까, 이런 부분에 성찰이 있었기 때문에 바람직한 한국불교와 현장실천 역할이란 얘기를 하는 것이죠.

그 다음에 종단 쇄신위에서 4대의제, 10대 과제, 제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에요. 진행해야 될 일이지만. 이런 일들이 바람직한 종단을 만들고자 하는 것도, 현재 종단이 갖고 있는 구조나 제도가 불합리한 지점이 있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합리적으로 바람직하게 만들어보자 하는 거잖아요. 다만, 계속 문제제기 하는 것은 분명하게 짚어서 처리해야 될 부분들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이건 당연히 비판 받아야 마땅하고, 그 비판에 대해 종단이 책임져야 해요. 다만 그걸 왜 결사본부가 안하냐에 대해서는 그건 좀 일하는 방식이나 이런 것들이 다르다.

우희종 : 성찰이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불교의 실현안, 이런 걸 하신 게 아니겠습니까? 제가 성찰이 없다고 말하는 지점은 그 성찰이 아니라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나가야 할 기본 정신이나 청규 이런 것들 다 포함해서, 그런 정신이 지금 조계종단 내부로 왜 향하지 않는가, 어찌 보면 그게 적폐로 내려왔기 때문에 안 된다라는 말로 집약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러한 부분이 밖으로만 적용이 되면, 안으로 접목이 안 돼서 결과적으로 총무원의 발전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고 하는 이유는, 처음부터 스님의 의도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하다 보니 여전히 계파나 종회선거나 연임으로 더 노골화 되고, 심지어 현응스님이 지적하신 부분에 공감되는 건데요.

가장 문제되는 것, 분담금 문제, 사찰의 재정문제, 금권문제들이, 국고지원이 개인 스님의 돈이 되고, 개인 사찰 운용금이 되는 이런 문제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도대체 근본적인 요익중생의 정신이 밖으로 펼쳐지는 그 성찰에 바탕을 두어서, 정말 주체세력의 모습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 것인가 대해 동시에 진행되거나, 저는 그것이 더 진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만, 여러가지 공업 때문에 어렵다면, 현응스님이 제기한 그런 문제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결사본부가 안을 가지고 있는가, 그런 행동을 하는가 하는 겁니다. 성명서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면, 안만 만드는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종단 내부에 5년 내로 어찌 된다는 위기의식이 있을 정도라면 그걸 과연 결사본부는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가 물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도법 : 결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견해차인 거잖아요. 우교수가 생각하는 결사하고, 내가 생각하는 결사는 다른 지점이 있는 거잖아요.

우희종 : 스님께서는 밑으로의 결사와 지금의 결사본부를 동일하게 보시는 것 같아요.

도법 : 내가 부정하는 게 아니고, 그 사안은 현재의 결사본부가 직접적으로 다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거에요, 나는. (우희종 : 왜 그러신지 말씀해 주신다면...) 결사본부가 그런 권한을 갖고 있지도 않고, 그런 힘이 있지도 않고. (우희종 : 모든 결사는 힘이 있어서 시작하는 건 아니거든요) 현실은 그렇지 않죠. 더군다나 이것은 구체적으로 집행되어야 가능한 거잖아요. 옛날 결사야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일생을 걸고 하지만, 여기는 종단이 하는 상황이잖아요. 결사본부가 집행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권한이 주어진 것도 아니고, 명분만 주어진 거에요.

우희종 : 그럼 결국 스님께서 인정하셨듯이, 결사본부는 아무 권한이 없기 때문에 밖에서... (도법 : 그런 권한은 없다는 거에요) 밖으로만...

진행자 : 어느 정도 두 분의 입장이나 관점,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바를 주로 의견 나누신 것 같은데, 물 한잔 드시구요. 제가 그 사이에 두 분 모두에게 해당하는 질문 한번 드리겠는데요.  <2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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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경소리 2014-11-30 01:08:56

    한국사람이 한국말 하는데 왜 서로 다른 말만 하는걸까?
    도법스님이 우리말 못알아들을 정도가 되었나요?
    동문서답도 너무 심하시네요
    당신까지 그러니 정말 우리불교 걱정이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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