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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남진의 불법사찰_청규
1_불교공동체윤리, 건전한 사회적 상식으로 묻다
불교포커스 팟캐스트

 

<이슈토크>는 깊은 지식을 요구하거나 교계사정에 밝은, 종단 정책이나 돌아가는 사정에 밝은 분들이나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중심은 아닙니다. 사회적 상식을 불교계에 대입해보고, 또 사회적 상식을 뛰어넘어야 할 불교적 가치나 역할, 실천규범들을 점검해 보자는 것입니다.
이번 주제 <청규>도 그런 차원에서 다루어 보았습니다. 시대별로 계율이나 청규의 제정 취지와 사회적 맥락을 짚어보고, 오늘을 사는 우리 사회의‘건전한 상식의 눈’으로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지난 8일 오후7시~9시, 불교포커스 팟스튜디오에서 진행했습니다.

이번에 던진 핵심적인 질문은 요약하면 두 가지입니다.
▶계율, 청규, 종법차원의 행위규제, 그 필요 최소한의 경계(기준)는 무엇일까?
그것은 해당 사회의 건전한 상식, 건전한 시민의 보편적 상식의 요청에 응하는 것 아닐까?
▶공인, 공조직, 공동생활, 불교공동체이기 때문에 가져야 할 특별한 규범은 무엇일까?
  

   
 

 ❚1부 - 불교공동체의 행동윤리, 건전한 사회적 상식의 요청으로 논한다

[좌담 요지]
일반사회에는 법으로 제재하지는 않지만 미풍양속 혹은 보편적 시민의 윤리가 있고, 직업이나 특정한 조직체에 따라 <윤리강령>, <행동강령> 등이 있습니다.
종교에는 각 종교마다 변경되지 않고 내려온 계율이나 계명이 있습니다.
불교 또한 부처님 당시 제정된 계율(계와 율)이 있고, 이 정신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역사적 시대적 상황에 따라 현실적인 불교공동체의 생활규범이 새롭게 제정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청규(淸規_청정한 규범)입니다.
조계종단도 제도화된 종단의 법규인 종헌/종법으로 규범이 정해진 경우가 있고, 그 외에 집단구성원들의 약속으로 정한 생활규범인 <청규>가 여러 형태로 존재해 왔습니다.

1부에서는 불교교단의 구성원으로서의 불교인과 사회적으로 성직자로 분류되는 출가스님들에 대한 행동윤리를 건전한 시민들의 보편적 상식과 감정, 사회적으로 공인(지도자)으로서의 책임이라는 시각에서 논의해 보았습니다.

서비스 예고

▶다음 주(12월 3주)에는 <이슈토크> 5회차(특별판), ‘2014 종교계 결산, 2015 이슈/트렌드를 점검한다’를 방송할 예정입니다. 불교포커스 ‘여시아사’ 칼럼리스트인 박문수 한국가톨릭문화원 부원장), 백찬홍 씨알재단 운영위원, 유승무 중앙승가대 교수가 출연합니다.
올해의 종교관련 이슈와 의미, 각 종교별 이슈와 흐름들을 진단하고, 10년 만에 종교인구가 포함된 인구주택총조사가 예정되어 있는 2015년의 이슈와 주목해야 할 트렌드를 살펴봅니다.

▶12월 마지막 주에는 책 이야기와 관련된 새로운 컨텐츠를 준비합니다.

▶새해 1월 첫째 주에는 <이슈토크> 6회차, ‘승가교육-전통, 섞임 그리고 새로움’을 주제로 진행합니다. 지난 5년간의 승가교육 혁신, 긍정적인 평가가 많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현장을 연결하여 그 목소리를 토론에 반영하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자 합니다.

[좌담전문_A4용지 9쪽]
[진행자] 불교포커스 팟캐스트 <윤남진의 불법사찰>입니다. 지금까지 좌담형식으로 진행되는 <이슈토크>, 그리고 1:1 대론을 통해 차이를 드러내고 소통하는 <당대당>, 이 두 가지 콘텐츠를 실험적으로 제작하여 내보낸 바 있습니다.
도법스님과 우희종 교수의 대론을 다룬 <당대당> 첫 편은 팟캐스트 포털사이트 <팟빵>을 통한 두 번째 서비스였는데요. 한 때, 총6천7백 여 개 방송분 중에서 하루 집계로 종교카테고리 17위까지 올라가는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이슈토크>, 네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주제는 <청규>입니다. 한자풀이를 하면 ‘청정한 규약 혹은 규범’인데요.
넓게는 계율이지만, 일반적으로 풀자면 특정한 조직 혹은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의 생활규범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로 치자면) 윤리강령, 행동강령 같은 것으로 이해해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오늘도 고정패널 세 분 나와 주셨습니다. 중앙종회의원이셨던 일문스님 나오셨습니다. 현장에서 포교활동을 열심히 하고 계십니다. 다음은 전 조계종화쟁위원회 사무국장을 지내신 바 있는 백승권 선생님, 끝으로 지지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계신 동화작가이시기도 하고요, 김경호 선생님, 나오셨습니다.
여담으로 말씀드리면 김경호 선생님 동화가 아주 좋다고 환경운동가로 유명한 유정길 선생님이 찬사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진행자] <청규>는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계율의 정신에 기반해서, 시대상황의 변화에 맞게 새로운 행동규범을 정해서 공통으로 실천한다는 측면이 있는 것 같고요. 다른 측면은 특정한 공동생활단위 혹은 조직체의 구성원에게 특별히 필요한 것들이라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먼저 부처님께서 계율을 제정한 배경 맥락이랄까요? 제정 경위나 상황 같은 것을 먼저 간단히 살펴보고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김경호] 일문스님이 사실 전문가이신데, 제가 감히 얘기를 하자니…. 사분율 맨 앞장은‘재가자들은 보지마시오’라고 되어있습니다. 재가자가 율에 대해서 논한다는 게 내부적으로 금기시 되어 있긴 한데, 율장에 있는 스토리들이 재미있어서 몰래몰래 다 봤습니다.
계라는 것은 어떤 면에서 개인의 윤리적인 자기내면의 다짐과 약속이라고 볼 수 있겠구요. 율이라는 것은 공동체 질서를 얘기하고, 관계 속에서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에 대해 얘기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관계는 나와 남, 승가공동체 내부의 어떤 질서, 승가사회와 일반사회에서 빚어지는 갈등양상들을 어떻게 지혜롭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 율은 계와 달리 완성형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고, 하나하나 순차적으로 만들고, 변화되었다 이해하고 있습니다.

율장에서 재밌는 것 하나가 초기출가자들은 특히, 바라문 계급에서 출가한 사람들은 아침에 몸을 씻고 향유를 바르고, 이마에 빨간 점을 찍고, 출가 후에도 특별한 인식이 없이 출가 전 생활방식을 되풀이 했던 모양이에요. 불자들이 보니 이상하다. 부처님 제자로 출가하신 분들이 왜 그렇게 몸에다 뭘 바르고 그럴까, 그래서 부처님께 그 문제를 지적했다 합니다. 그랬더니‘세속인들처럼 몸을 가꾸지 말라’고 부처님이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 시대 제자들은 부처님이 한 말씀 하시면 무조건 지켰어요. 전 그건 참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몸에다 뭘 바르지 않는 대신에, 이 양반들이 또 씻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또 불자들이 스님을 초청해서 가르침을 들으려고 하는데 너무 냄새가 나서 도저히 한방에 같이 있을 수가 없더라, 해서 다시 부처님께 가서‘수행자들이 청결하게 씻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요청을 드리니, 부처님이 정기적으로 씻어라, 목욕하는 날을 제정하셨죠. 그런 얘기도 있고요.
입 냄새가 나면 옛날에는 칫솔이 없으니 버드나무 가지 끝을 잘근잘근 씹으면 섬유질이 나오는데, 이걸로 이하고 혓바닥을 긁어내게 했습니다. 수행자 중 몇 분이 이 닦는 막대기를 길게 끊어서 회초리처럼 휘두르고 다녔던 모양이에요. 부처님이 그것도 금지하신 것도 있고. 이렇게 상황 상황에 아주 세세한 행위들에 대해서도 규정을 하고 그렇게 되어 나갑니다.

이 청규가 지금 얘기되고 있는 것은 세상이 맑지 못해서가 아니겠느냐, 그리고 맑고 살아야 할 사람들이 맑게 살지 못하기 때문에 아쉬워서 그 부분을 다시 강조하고 있는 것 아니냐 생각합니다. 처음 주신 질문이 너무 광범위해서 횡설수설 했는데, 다음에 다시 이야기를 하지요.

[진행자] 취지나 제정 배경이나 이런 것들이 더 중요하다, 이런 의견을 한번 나눠 봤습니다. 혹시 일문스님께서 추가적으로 말씀하실 부분 있으신가요?

[일문스님] 부처님 당시에 계율이라는 것은 불교만의 특별한 것 같진 않고요. 그 당시 수행자에게 사회 일반에서 요구하는 그런 기준 아닐까 싶어요. 거기에 스님이 저런 걸 하면 안 되는데, 하는 것에 대해서 교단에서 수용되고 제정되어서 결국 250개까지 늘어나지 않겠느냐, 조목조목 자체를 절대시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백승권] 계와 율이 부처님 당시에, 시대조건이나 생활문화 이런 것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어서, 그런 것들을 반영되어서 계와 율의 구체적인 내용이 나왔다고 생각되는데요. 계율을 텍스트적으로 바라 볼 것이 아니라 맥락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계율이 당시 조건 속에서 어떤 취지, 어떤 맥락 속에서 제정되었는가 그걸 알아야지 그 이후에 시대상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의 당시 정신이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계율을 문자주의적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문스님] 부처님 당시 이후로 교단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게 비구 250계인데. 이것은 어찌 보면 스님들로 포함되는 교단이 지켜야할 것들이거든요. 스님들에 제한된 부분이 있어요. 재가자들에게는 그렇게까지 계율이 요구되지는 않고요. 그런데 나중에 대승불교에서는 스님들에게만 국한하지 않고 일반 재가자 중에서도 출가보살, 재가보살, 재가자 중에서도 불제자로써 깨달음을 지향한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까지 확대되는 거예요.
단순히 스님들이 사원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스님들끼리 지키는 계율이라는 게 아니고, 일반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재가자들까지 지키고 사회일반에 영향을 주어서 사회까지 영향을 미치는, 사회전반에 까지 불교의 가르침이 흐르는 생활실천윤리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적극적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대승불교의 계율관이 대단히 현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청규>이야기로 좁혀서 이야기를 풀어갈까요. 혹시 대승계율 인식변화에 대해서 김경호 선생님 더 추가로 말씀하실 부분 있으실까요?

[김경호] 범망경이 대승보살계의 핵심적인 텍스트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경전의 진위논란이 있긴 합니다. 소승, 개인적인 완성만을 추구하던 소승불교를 극복해서, 사회공동체와 같이 향상하자는 대승의 정신에는 가장 부합되는 것 같고요. 특히 범망경 보살계가 가지고 있는 가장 특별한 점은, 출재가의 구분을 없앴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우리 종단에서는 보살계는 사미/사미니와 재가자가 같이 받을 수 있는 계율이거든요. 본래적 의미에서 포살은 범망경 보살계를 받은 사람이면 다 같이 참여할 수 있는 것인데, 지금은 승단중심으로 포살만 이뤄지고 있고요. 장기적으로 볼 때는 어떤 계율을 실천을 다짐하는 서원하는 불자라면 사부대중 같이 받을 수 있는 포살이어야 하지 않나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진행자] 청규라고 하면 대표적인 것이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 일일부작 일일불식. 백장회해 선사의 백장청규가 제일 유명하고요, 조계종에서는 봉암사 결사에서 성철스님, 자운스님 등이 제정한 <공주규약>이 있지요. 18개 조목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은 화쟁위원회에서 종단의 승가청규를 제정하는 데에 참여했던 백승권 선생님이 말씀해주시면…

[백승권] 계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규가 정해지는 것은 변화된 사회현실 또 종교적 조건들을 유연하게 수용하려고 하는 고민 속에서 청규가 제정되었다고 보여집니다. 계율은 부처님 당시에 기본적으로 승가의 생활방식이 유랑과 걸식으로 이뤄지는 시대의 산물입니다.
백장청규가 제정되는 시대로 넘어오면 정주를 하고, 자급자족을 하게 됩니다. 아마 계율을 보면 노동을 하거나, 생산을 하지 말라는 대목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어찌 보면 백장청규는 계율의 지침을 완전히 뒤엎은 내용들이죠. 그렇지만, 당시 시대 변화상, 사찰이나 승가들의 수행문화의 변화를 파격적으로 수용한 것이 백장청규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점에서 백장청규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지금 우리 공주규약이 봉암사 결사 때 마련되었는데 내용을 보면 백장청규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실제로 스님들이 보시나 이런 것 보다도, 자급자족을 강조하고 노동을 강조하는 측면이 백장청규를 많이 닮았습니다. 과연 봉암사 당시 공주규약이 백장청규가 만들어졌을 당시만큼 - 백장청규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당시에 시대변화나 종교역할의 변화들을 수용했는가 하는 측면에서는 부족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공주규약은 너무 복고주의적인 측면이 있다고 보여져요.
다만, 당시 우리불교의 입장이 당시 거의 종교적 권위가 없던 때 아닙니까, 땅에 떨어졌던 시절이었는데. 그런 종교적 권위를 어떻게든 끌어올리려고 했던 고심, 고민의 산물 아닌가, 그것을 복고주의로부터 얻어내려고 했던 그런 점에서 실제로 어떤 성과도 있고 그 당시의 불가피한 사회적 의미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내용들은 아쉽지만, 종교적 역할이란 측면에서는 나름의 큰 의미가 있는 게 공주규약 아닌가 합니다.

[진행자] 이를테면 해방이후, 자기 정화 차원에서 내부적인 질서를 세우는 데에 기여했던 것으로 생각되고요. 또, 백양사에 계셨던 만암스님 사례를 보면, 스님들이 지켜야 할 것들을 적시한 유인물을 종무소에 비치하고 신도들이 올 때 마다 그걸 나눠주어서 지역주민들이 그것을 잘 하고 있는지 감시할 수 있도록 공표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청규를 다룰 때에 어떤 기준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일반 사회의 보편적인 시각이 있겠고요. 그리고 우리 불교공동체 전체, 세밀하게는 각종 단위조직체 이를테면 선원, 종무원/종무기관, 재가단체, 불교시민사회단체와 같이 청규적 의미를 담는 우리 내부적인 시각에서 접근할 부분이 있고요.
우선 사회보편적 시각이 반영되어야 할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보편적 시민의 삶/건전한 시민의 상식이라는 측면과 공인에 대한 요구(공인의식)라는 두 가지 측면이 검토되어야 할 부분 같아요.

[김경호] 저는 보편적 시민의 삶, 건전한 시민의 상식이라는 지적 하신 것, 지금 그 문제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거든요. 사실 일반 사람들은 스님 250계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습니다. 그런데 보여 지는 외관부터 머리삭발 하시고, 승복을 입으시고 다니시는 분들은 어디서나 눈에 띄게 됩니다. 그분들의 행동이 뭔가 일반사람들하고는 달라야 할 것 아닌가 하는 막연한 기대치가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들어왔던, 책을 통해서 알아왔던 기준이 있거든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지금 자신들의 상식과 기준에서 많이 어긋나는, 도심에서 얼굴이 벌개서 다니시는 분을 본다든가, 언론보도를 통해서 폭력사건이라던가 지탄받는 사건에 연루되는 사건이 벌어진다든가 그런 일이 있을 때 충격을 받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사회가 바라보고 있는, 요구하고 있는 지점을 우리 불교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굉장히 높은 수준의 도덕윤리를 요구하는 건 아니거든요. 내지는 지킬 수 없는 뭔가를 요구하는 건 아닙니다. 이 사소한 부분에서의 충돌이 공동체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리게 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낮은 수준의 합의라도 이뤄내야 하지 않는가.

또 하나는 청규라는 것은 율장 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율장 안에서 율장의 정신을, 다만 시대와 상황에 맞춰 재해석해서 구성해 내는 것이기 때문에 율의 정신은 성성하게 살아 있어야 하거든요. 율의 정신을 살리면서도 현대사회에서 갈등과 마찰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인지를 공동체가 고민해야 하지 않는가. 국회로 치면, 국회는 법제사법위원회가 있죠. 입법기구인 국회에서 법을 만들 때, 기존법률과 충돌하지 않는지, 법정신에 비추어 어긋나지는 않는지 심의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 종단의 종회가 입법기구인데, 거기서 법률을 제정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법제사법위원회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실 율사들의 율장에 근거해서 어긋나짐이 없는 지를 판단해주는 그런 위원회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진행자] 중앙종회에서 법을 제정할 때 그런 과정이 있습니까?

[일문스님] 특별히 율사스님께 자문하고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앞으로 참고해서 그렇게 하면 좋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청규라는 것은 계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특히 선종에서 만든 규칙이거든요. 이것은 백승권 선생님이 말씀하셨지만, 인도문화권과는 다른 중국문명권에서 기후나 풍토 여러 가지 문화적인 다름에서 - 중국은 걸식하진 않거든요. 이렇게 다른 문화권에서 적용하기 위해서 색다르게 한 것에 대해서 다른 외부에서나 내부에서 비판은 특별히 없거든요. 인도와는 다른 중국문명권에서 불교가 정착하기 위해 용인되었지 않겠느냐 생각되네요.

김경호 선생님 얘기대로 율장정신에 맞추면서 중세 때 세운 규칙들을 지금 적용하려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그 정신을 살리면서 지금 사회일반과 신도들이 요구하는 승려상,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것, 꼭 해야 할 것, 대승불교 가치에 따라 불교적 가치를 사회일반에 퍼뜨리면서 확산시켜야 할 것들, 이런 것들을 위한 내부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공감합니다.

[진행자] 사회적으로도 보면 국법에 의해서 잘못이 있으면 형법이든 처벌을 받지 않습니까? 그 이외에 자체적인 <윤리강령>, <행동강령> 이 있거든요. 우리 내부의 스님 나름대로의 위치에 맞는 청규가 있겠지만, 재가자도 그렇고 각 조직체에서도 그런 것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좀 확산을 해서 보자면 어떻습니까? 

[백승권] 보통 윤리강령은, 직업과 관련되어 쓰고요. 행동강령은 결사체의 경우로 나눠지는 것 같습니다. 언론계를 예를 들면, 신문윤리강령이 있고 언론인윤리강령이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촌지 받으면 안 된다, 향응을 받으면 안 된다, 이런 것들이 있는데 - 그런 것들이 제정될 당시에도 촌지나 향응이 일반화 되었던 시절이 1990년대까지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 것들이 늘 윤리강령이 실제로 사문화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윤리강령으로 그 문제를 지적했고요. 지금은 상당히 향응이나 촌지로부터 많이 언론계가 자정되는 현상들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기준을 세우면 그것들이 무언가 당장 지켜지지 않다하더라도, 그것을 기준으로 해 끝없이 사회적 압박을 하는 것이 중요하단 생각이 들고요. 행동강령은 정당이나 시민사회 쪽에서 가치관을 추구하기 위해 만드는 것인데, 어찌 보면 불교에서 윤리강령이 지지계(금지하는 성격의 계율)라고 하면, 행동강령은 작지계(적극적으로 실천하자는 성격의 계율)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행동강령도 사실 정당이나 결사체가 공고하지 않아서, 행동강령이 만들어졌다 엎어지고 만들어졌다 엎어지고, 지속적인 수명을 가지는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진행자] 김경호 이사장님은 협동조합 이사장이신데, 최근에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종단자정을 위한 재가불자모임 활동을 통해 얼굴을 자주 뵙게 되는데요. 제가 알기에는 재가단체나 불교단체들도 내부적으로 자발적으로 규칙이나 이런 것들이 필요할 것 같아요. 스님들이 잘해주십시오 요구하는 만큼, 재가조직체도 스스로 어떤 규칙을 세우고, 스스로 투명하게 운영한다던지, 이런 것이 필요하지 않겠나, 그런 요구도 높아지지 않겠나 생각하는데요.

[김경호] 예, 강하죠. 그리고 그걸 해야 한다는 압박을 무지하게 받고 있습니다. 너는 잘 살고 있냐는 질문이죠. 일반사회단체나 법인의 정관이나 규약을 보면 기본적인 사항은 다 정해져있습니다. 공통적인 양식이죠. 명칭과 소재지를 통해서 공동체의 범위, 불교식으로 현전승가(現前僧家)가 어디까지냐를 얘기하고, 목적과 사업을 통해서 단체가 지향하는 바를 드러내고, 구성하고 있는 각 단위의 책임과 권한, 의무를 드러내서 해야 할 바를 정합니다. 징계와 포상규정을 두어서 권장사항과 허용범위를 규정하게 되는데요.

   
 

지금에 있어서 불자들에게 가지고 있는 개인적 딜레마는 불자의 모범적인 상이 잘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불자란 이래야 한다, 이것을 불자스스로 모르고 스님들도 잘 안 가르쳐줘요. 절에 오는 사람들의 몇 가지 흐름이 있습니다. 가장 보편적으로 넓은 게 <공덕주의> 신앙이죠. 소승적으로 나 혼자, 내지는 우리 집안만 잘되면 된다하는 기도발 잘 서는 곳 찾는 것.
<자판기 불교>. 내가 이만큼 보시했으니 10배 100배로 돌아오게 해주십시오.
또 하나 주요한 갈래가 <스님모방주의>가 있습니다. 재가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워본 적이 없으니 스님을 따라하면 된다. 재가자가 출가자의 흉내를 내는 것이 가장 불교적이라고 착각하는 모습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또 하나는 <사교형>이죠. 불교가 가지는 정신세계는 외면한 채, 사회적인 교제의 장 내지는 사회적 성취를 자랑하는 장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고요.
또는 이제 <관념적 지식주의>도 있습니다. 그냥 계속 공부만 하고, 책만 보고 실천으로 전혀 결부되지 않는 사람도 있고요.
그리고 <선지식 쇼핑>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느 스님이 유명하다, 어디 절 기도발 선다 그래서 전국을 자기 나와바리로 돌아다니시는 분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아니면, 주5일제가 보편화 되면서 늘어나고 있는 <레저형> 불교가 있습니다. 종교는 껍데기고 산천경계 좋고 공기 맑으니까 다니면서 도시락 까먹고 그러는 분들, 문화재도 구경할 수 있고.

이처럼 다양한데, 어느 것이 특별하게 옳다 그르다 얘기하고 싶지는 않고요. 그러나 문제는 불자라면 자기 평소에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며, 가족과 공동체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한 비전을 못 만들어냈다는 거죠. 지금 말씀하신 청규라던가 규약이라는 것들이 이 부분과 연결돼야 한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이 부분은 재가만의 문제도 아니고, 출가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지금 현재 우리 불교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놓치고 있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되어지고요.

극단적으로 스님입장으로 돌아서 얘기하면, 신도들이 많이 배우고 이런 걸 불편해 하시는 분도 있어요. 그냥 시키는 대로 하고, 절에서 불사한다고 그러면 열심히 와서 돈 내고 - 이걸 원하시는 분들도 없다할 순 없거든요. 지역 속에 살고 있는데, 이 지역을 해서 어떻게 봉사하고 회향할 것인지, 대승보살로 살기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모델을 제시해야 하지 않냐, 그것은 제 개인적은 고민입니다. 만들어야 할 것인데 아직 못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제 한계입니다.

[진행자] 이를테면 부처님 당시 재가자들도 8재계를 지키는 문화가 있었잖아요. 그런 것들이 현실 속에서, 재가자들도 적극적으로 복원되는 계기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요즘 팟캐스트 진행을 하고 나서 - 여러 가지 항의도 가끔 받기도 하고 관심도 많이 있습니다 - 그래서 조심해야 하겠다 생각해서 850쪽이나 되는 <대중매체 법과 윤리>라는 강준만 교수의 책을 <불교포커스> 운영진에서 필독서라며 주어서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거기 보니, 우리하고 관련된 이야기가 하나 소재가 있더라고요. 보니 미국기준인데 명예훼손에 대해서 공인들은 자기 스스로 내 명예를 훼손했다 하는 것을 입증책임을 무겁게 주더라고요. 거기서 공인에 대한 기준이 있더군요. 미국의 사례인데요. 공인을 세 등급으로 나누는데요.

   
 

첫 번째로‘공인’인데요. 공직자나 공무원이 해당하겠죠? 이들은 내가 명예를 훼손당했다는 입증책임이 무겁습니다. 그 다음이 전면적 공인인데요, 사람들의 인식이나 미디어 노출 정도로 판단하고요. 끝으로 상황적 공인인데, 명예훼손을 낳게 된 특정한 이슈에 대해 그 사람이 참여한 정도로 판단한다고 합니다. 그 외는 사인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렇다고 봤을 때 스님들은, 출가수행자 일반으로서, 그리고 그 직분에 따라서 공인의식이 좀 더 차이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드는데요.

[일문스님] 강준만 교수 책의 근거에 의하면 스님들은 두 번째 공인에 해당될 것 같습니다. (모든 스님들은..) 사실 스님들은 꼭 교수님께서 말씀 안하셔도, 실제로 스님들 뿐 아니라 종교인 자체가 공인이라고 봐야죠. 스님이라고 하면 단순히 불교신도들만 하는 게 아니라, 일반인들도 신도로써 절에 가거나 하는 상관없이 - 스님에 대한 수행자라는 것, 그 가치,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 세속인들이 하지 못한 부분을 우리 사회에 일정하게 영향을 미치면서 사회를 맑게 하는 집단이라는 것, 이런 의식이 있기 때문에 스님들에 대한 기대치를 가지고 있다고 보거든요.

그것은 김경호 이사장님 말씀대로 계율과 상관없이 승려상, 거기에 부합되지 않을 때 너무 실망해서…. 조계종 스님들은 사실 공인의식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일반인이 아니고, 공인이다. 꼭 수행자라고까지는 아니더라도 - 일반인들이 그래도 스님들은 이런 분인데, 이렇게 자기들과는 다르게 생각하는 분이라는 이런 의식을 가지고 생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부분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도 스님들이기 때문에 언론에까지 막 나오면서 많은 비난을 받고, 일반인들로부터 비난 받게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공인이라는 생각을 깊이 가지고 언행, 행동들을 조심해야 하는데, 스님들을 바라보는 두 가지 상반된 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부분은 보통 스님이라고 하면 방송이나 매체나 신문 같은 데에 깊은 산골에서 점잖게 참선하고 계시는 스님의 이미지, 세속과는 동떨어진 출세간적인, 우리와는 다르게 사는 진리를 지향하는 이런 분들 - 세속과 떨어진 부분을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고요.
그와 다르게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요구하는 거예요. 아무것도 안하고 참선만 하고 있으면 불교는 도대체 뭐하고 이런 것도 안하냐는 요구. 그러다 보니 세속과 떨어진 수행도 해야 하고, 세속의 잘못된 부분에 불교적 가치를 확장하려는 구체적인 실천도 해야 하고, 문제가 포교도 해야 하고 사회적 복지도 해야 하는 -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 불교적 가치를 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한 노력들이 세속과 밀접하고 일반인들하고 같이 어울려서 해야 하잖아요. 전통적인 계율로 모두 적용하는 것이 문제가 있기 때문에, 오늘의 주제인 청규, 이 시대에 맞는 스님들의 윤리강령이랄까, 청규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참고로 스님상, 출가수행자에 대한 이미지를 묻는 국민여론조사를 보면, 일반인들은 세속을 떠난 자유인, 구도자이기를 원해요. 불자들은 적극적으로 자비를 실천하는 지도자이기를 원하는 게 비율이 높습니다. 일반인과 불교인들이 원하는 스님상에 대해 말씀하신 그대로, 두 가지가 갖추어져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우선 청규의 법제화 된 측면이 <승려법>이나 <종무원법>이나, 이런 것에 제도화된 부분이 있습니다. 이번에 토론을 준비하면서 <승려법>을 살펴보니까 제 생각에는 이게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첨가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받았고요. 전부개정 수준으로 손을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서너 가지 말씀드리면, 헌법적 차원에서 보장되는 기본권,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인격권, 사생활 보호 문제라든지, 그런 게 반영되어야겠다. 예전 일문스님도 민주화운동 할 때 불법단체 가입해서 활동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럼 그 사람들은 종법에 의해서 처벌해야 하는 것이죠. 사회상을 반영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리고 추상적인 규정이나 용어를 명확하게 적시하고,‘고의로’같은 것들, 이런 것은 양형에서 다뤄져야 할 부분이지, 고의성 부분을 다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거든요.
또, 사회법 제소하면 징계 받는다, 내부에서 해결하자는 조항이 있죠. 이것은 경과과정이나 중간과정이 없어요. 어디 호소할 곳이 없거든요. 개신교같은 경우, 교회 사이,교단 사이 분쟁이 많으니까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내에 <화해중재원>이라고 해서 법원의 판결의 효과를 갖는 - 중재를 하면 법률로써 판결 받은 것처럼 효력을 발생시키는 중재기구를 두고 있거든요? 우리도 중간과정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 봤습니다. 어떻습니까?

[일문스님] 사회법 제소를 처벌하는 것은 종단의 스님들이 하도 사회법에 해가지고 일반인들의 지탄을 받는 일이 생기니까, 종단 문제는 웬만하면 종단내의 사법적 부서에서 해결하자는 취지에서 제정된 것 같고요.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사실 종회에 있는 스님들은 거의 이 부분에 동의합니다. 호법부도 있고, 호계원도 있고 절차도 있는데, 거기서 안 되서 정 억울하다 싶으면 제소해도 늦지 않다. 종단내의 기관에 해서 억울해서 하는 것까지는 처벌하지 않게 되어 있거든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종단 내에 기구가 있으니 거기서 억울하게 했다면, 소청심사에 올려도 되고요.

[백승권] <종단쇄신위원회> 논의를 할 때 나왔던 것 중 하나가 <멸쟁위원회> 같은 것, 기독교의 <화해중재원>과 비슷한 것인데. 호법부나 호계원은 기본적으로 종법을 통해서 양형을 결정하는 프로세스잖아요. 많은 문제는 양형이나 이런 것들이 아니라 갈등의 내용을 가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 부분들은 사회법으로 호소하기 전에 종단 내에서 멸쟁위원회를 통해서 여과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얘기가 되었는데….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으로 종회에서는 이 부분이 다뤄지고 있지 않은 것이죠. 만일 하게 된다면 종헌까지도 손을 데야 할 상황이 아닐까. 앞으로 종헌종법상의 기독교 <화해중재원>에 버금가는 부분들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습니다.

[김경호] 편집될 것이라는 생각하면서 얘기하겠습니다. 작년에 34대 총무원장 선거가 끝나고 봉은사 주지 임명을 할 때에, <불교광장>측에서조차 지홍스님을 비롯해서 문제제기를 했단 말이죠. 그걸 가지고 <교단자정센터>의 김종규 원장이 호법부에 제소를 했어요. 제소를 하고 접수한 사진까지 났습니다. 그리고 나서 처리결과가 어찌 되었는지 도저히 모르겠어서, 제가 여기 오기 전에 다른 일로 전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김종규 원장에게 어찌 되었습니까 했더니, 이후로 진전이 없지요 라고 하시면서, 당시에 호법부 스님이 김원장에게 얘기하길, 호법부가 종단의 사법기능도 담당하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 원장스님의 비서역할도 하고 있는데 우리가 이일을 어떻게 처리하겠습니까라고 양해를 구하는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종단 사법기구를 힘없는 쪽에선 누가 신뢰하고 거기에 의존하겠습니까.

[진행자] 그런 차원에서 백승권 국장님이 말씀하신 멸쟁기구라던지…

[백승권] 호법부가 기소독점을 하잖아요. 이 호법부가 원장스님을 외호하는 기능까지 같이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맞지 않습니다. 그 기능은 분리시켜야 하고, 더 나아가서 호법부가 고의로 기소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뭔가 기소를 할 수 있는 다른 장치들도 고민해봐야 합니다. (진행자 : 일반사회에서는 법원의 제정신청을 해서, 소를 제기할 수 있죠?) 호법부가 기소하지 않으면, 그 일은 전혀 다뤄지지 않는다는 것은 여러 가지 부분에서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진행자] 지금 청규문제로 나가다가 편집은 안 될 것 같고요. 잠깐 쉬었다가 승가청규를 제정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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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세대 교수 2014-12-16 16:03:59

    나 연세대 교수요.
    당신은 서울대 교수 한 사람만 패기로 작정했오?
    우희종 교수만 집중적으로 조져서 조용하면 모든 몬제가 풀립니까?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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