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여시아사 최원형의 생태山房
동물권, 생명권
  • 최원형_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
  • 승인 2015.01.26 17:18
  • 댓글 2

잠잠하던 구제역 소식이 올 겨울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제 기억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구덩이에다가 트럭에 실려 온 돼지를 쏟아붓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다시 그 장면을 보게 될까봐 며칠을 전전긍긍했습니다.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그 기억. 구덩이 속에서 살아 기어 나오려는 돼지들 위로 쏟아지던 흙, 그리고 그 흙에 떠밀려 산 돼지들은 다시 구덩이로 떨어지던 그 장면은 분명한 ‘학살’이었습니다.

영국의 수의학 연구자인 아비가일 우즈가 쓴 <인간이 만든 질병 구제역> 책 제목처럼 사실 구제역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질병입니다. 다른 무엇보다 많은 수의 가축이 한 공간에서 지내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고기를 빠른 시간 동안 많이 생산할 수 있도록 육종을 통해 종 다양성을 상실한 가축들이 전염병에 약해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이치니까요.

2010년 11월에 발생해서 2011년 4월 일단락 될 때까지 126일 동안 살처분 등으로 죽어나간 가축의 수는 347만 마리였습니다. 그 가운데 돼지는 국내 사육의 34%가 사라졌습니다. 구제역의 피해액은 3조원 이상이었고요. 세계동물기구(OIE)는 2010년 겨울 한국의 구제역을 지난 50년 이래 최악의 구제역으로 거론했을 정도입니다.

왜 이토록 많은 수의 가축들을 죽여야만 했을까요? 그건 전염병이 퍼지지 않도록 구제역이 발생한 지역을 중심으로 반경 3km이내의 모든 가축을 죽이는 방법 때문이었습니다. 병도 옮지 않은 멀쩡한 가축이어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두 다 죽이는 ‘살처분’ 방식으로 전염병을 차단한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었거든요. 생명 가진 모든 존재는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구제역이 발병된 지역의 축사에서 매립지로 트럭에 실려 가는 가축들은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동물의 존엄성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의 가운데는 육식이 있고, 경제 논리가 있습니다.

A4용지 한 장 정도의 좁은 닭장에서 알만 낳다 죽는 닭들, 길이 2m 폭 60cm의 공간에서 새끼만 낳다가 죽는 암퇘지들. 바깥 구경을 처음 하는 날이 바로 도축장으로 가는 마지막 날이라는 마블링 육질의 생산 공장인 한우들은 또 어떨까요? 죽으러가는 날까지는 태어난 그 자리에서 한 번도 바깥 구경을 할 수 없다는 거, 상상조차 불가합니다.
거기다 바닥은 켜켜이 쌓인 분뇨와 분뇨에서 태어나 가축의 피를 빠는 파리들이 있는 환경, 이런 환경에 전염병은 얼마나 쉽게 퍼질 수 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결국 인간이 고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공장식 가축의 환경이 나아질 거라는 기대는 참으로 요원한 일일 겁니다.

실험동물의 눈물, 눈물이 없어 눈물이 납니다
‘드레이즈 테스트’라고 혹시 들어보았나요? 눈에 이물질이 들어가면 눈물이 그것을 밀어냅니다. 그게 눈물의 역할입니다. 그런데 눈물이 분비되지 않는 동물이 있답니다. 바로 토끼입니다. 토끼눈은 그래서 화장품 회사에서 화학물질 테스트용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샴푸나 화장품이 눈의 점막을 자극하는 정도를 알아보려는 동물실험인데, 실험대상이 된 토끼는 먼저 목이 고정됩니다.
그리고 눈에 시간 간격을 두고 화학물질을 떨굽니다. 눈에서 눈물이 나오지 않으니 토끼는 눈이 타들어가는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목뼈가 부러져 죽기도 하고, 설령 살아남았대도 실험이 끝나면 안락사 당합니다. 폐기되는 거지요, 물건처럼. 우리는 날마다 토끼의 목숨과 맞바꾼 대가를 향기로움과 탱탱한 피부를 위해 덧칠하고 있는 셈입니다.

   
 
인간 질병의 치료제를 임상실험에 앞서 반드시 거치는 동물실험, 그 이면에도 희생되는 동물이 있습니다. 어느 날 제인 구달은 미국의 한 대학 연구소에서 동물실험용 침팬지를 만났습니다. 연구소 측은 비닐장갑을 끼고 침팬지를 만날 걸 권했다고 해요. 침팬지는 처음에 멀뚱멀뚱 허공만 응시하고 있었는데 제인이 비닐장갑을 벗고 철창살 안에 손을 넣어 침팬지를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리자 침팬지가 가만히 다가와 제인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합니다.

어두컴컴한 연구소 지하에 있는 그 침팬지는 어떤 경로로 그곳에 오게 되었을까요? 무리와 함께 있는 어린 개체 한 마리를 잡기 위해서는 그 가족을 모두 잡아야 합니다. 어린 침팬지 하나만 남겨두고 나머지 가족들을 모두 사살합니다. 그것을 지켜봐야했던 침팬지는 어떠했을까요? 공포에 질려 감당키 어려운 충격에 빠진 상태로 미국 대학 어느 연구소 지하에 갇힌 어린 침팬지. 그럼에도 눈시울을 적시던 제인을 본 순간 모성애가 발동해 침팬지는 제인의 눈물을 닦아준 것은 아니었을까요? 과연 동물은 감각할 수 없을까요? 동물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만 생각해온 인간들의 깊은 반성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동물보호운동가들은 동물실험이 동물들에게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대단히 비윤리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동물운동가들의 주장에 따르면 화장품, 세척제, 식품 첨가제 등 공산품 생산과정에서 거의 습관적으로 동물실험이 행해진다고 합니다. 상업적인 목적으로 벌어지는 동물실험이 전체의 2/3를 차지한다는 통계는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화장품 뒤에 이런 잔인함이 숨어있을 줄, 알고 계셨던가요? 국내 동물보호단체인 카라에서는 해마다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화장품회사 리스트를 공개합니다.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국제단체인 ‘크루얼티 프리 인터내셔널’의 니컬러스 팔머 박사에 따르면, 동물실험을 통해 얻은 결과는 사람과의 일치율이 20~40%에 그친다며 대체실험에서는 오히려 90% 이상의 효과를 얻고 있다고 합니다. 동물과 인간이 공유하는 질병이 1%에 불과하므로 동물실험은 단지 인간이 안심하기 위한 관행일 뿐이라는 거지요.

매년 세계적으로 대학, 제약회사, 상업적인 실험시설 등에서 사용된 뒤 죽어가고 있는 동물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요? 미국의 경우 해마다 7억 마리 이상의 동물을 희생시키고 있다합니다. 일본은 1,200만 마리, 프랑스는 360만 마리를 동물실험으로 해부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동안 실험동물로 166만 마리가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죽은 실험동물에게 해마다 각 연구소는 위령제를 지내준다고 하지만 죽은 뒤의 그런 의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오리털의 불편한 진실, 알고도 입을 수 있을까?
겨울 한철을 나기 위해 필요한 파카, 파카가 따뜻한 건 속을 채운 충전재 덕분입니다. 요즘엔 솜보다 거위털 혹은 오리털이 충전재로 쓰이고 있습니다. 멋진 디자인의 겉옷에서 거위와 오리에게서 털을 얻는 과정을 알기란 불가능합니다. 저는 어릴 적 할머니 댁에서 닭을 잡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끓는 물에 닭을 넣었다 건져서는 닭털을 훌훌 뽑는 광경을 목격한 후로 저는 닭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습니다.

파카를 만들기 위해 오리나 거위도 털을 뽑습니다. 다만 닭털 뽑기와 다른 것은 산채로 뽑는다는 거지요. 내 머리칼을 누군가 쥐어뜯는다고 생각하면 아마도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싶어요. 오리털, 거위털 채취는 오리나 거위가 생후 10주부터 시작되고 6주 간격으로 일생 동안 5-15회 털을 뽑습니다. 털을 뽑는 장면을 취재한 방송을 봤는데 거위와 오리들의 비명소리가 끔찍했어요. 털을 뽑다보면 살점이 같이 뜯겨나가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걸 대충 꿰매서 다시 또 깃털이 돋으면 같은 방식으로 또 털을 뽑습니다. 거위나 오리는 이로 인한 스트레스로 죽는다고 합니다.

토끼털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뽑고요. 너구리는 산채로 가죽이 벗겨진다 합니다. 차라리 죽이면 고통이 한 번으로 끝날 텐데 왜 사람들은 동물들을 이렇게 산채로 털을 뽑고 가죽을 벗기는 걸까요? 그건 경제성을 고려한 때문입니다. 너구리의 경우, 죽은 후에는 가죽이 경직되어 벗기기가 어렵고 털의 윤기가 사라져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 합니다. 오리나 거위의 경우 산 채로 뽑으면 털을 여러 번 얻을 수 있으니까 죽이고 한 번 뽑는 것보다 훨씬 이득일 테고요. 경제성과 생산성이 중시되는 오늘날의 시스템에서 동물이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은 애당초 계산에 포함될 수가 없습니다. 동물들도 감각할 수 있다는 건 언제쯤 고려의 대상이 될까요?

오랜 옛날부터 인류는 동물의 털가죽을 이용해왔습니다. 과거 털가죽 소비가 동물의 고기를 취하고 남은 것으로 옷을 지어 입는 "생존을 위한" 소비였다면, 오늘날의 소비는 "과도하고 불필요한" 소비라 할 수 있습니다. 육식의 폐해에 대해 알아보고 나면 채식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듯 이제는 입는 옷도 비건 쪽으로 옮겨가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채식주의자가 되라는 얘기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무슨 주의자’, 하는 것은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라 우려스러우니까요. 다만 나와 네가 함께 좋을 수 있는 세상으로 가기 위한 방향에 섰을 때 내가 취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한다는 입장을 말하는 겁니다. 채식만을 고집하면서 때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데도 육식을 거부하는 극단도 피했으면 좋겠고, 그저 지글거리는 고기가 먹고 싶어 습관적으로 먹는 육식도 한번쯤 다시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모피 옷도 이런 맥락에서 입장을 정리해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의 선택이 비좁고 더러운 철장에 갇혀 비루한 생을 살다 잔인하게 죽는 동물 한 마리를 구할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일 아닐까요?

   
 

반론ㆍ정정ㆍ추후 보도를 청구하실 분은 이메일(budgate@daum.net)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불교포커스'에서 생산한 저작물은 누구나 복사할 수 있으며, '정보공유라이센스 2.0: 영리금지 개작금지'에 따릅니다. 정보공유라이센스

최원형_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의 다른기사 보기
  • 동물권 2015-01-27 15:06:45

    그렇지요. 모피만이 문제는 아니지요. 동물실험에 쓰이는 토끼나 쥐를 구분하기 위해 발가락이나 귀를 자른다는 기사도 본 적이 있네요. 이름표 쓸 값이 아까워서 그렇다나요. 참. 사람이나 동물이나 살기 힘든 세상입니다.   삭제

    • 좋은 글 감사 2015-01-27 11:36:09

      나만이 아닌 우리를, 인간만이 아닌 모든 생명을 생각하게 하는 글 감사합니다.   삭제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