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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우림ㆍ 타밀내전 지역으로 떠난 스터디투어2016 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INEB)컨퍼런스 참가기_2
  • 민정희_종교기후생태네트워크 ICE 코디네이터
  • 승인 2016.03.03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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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International Network of Engaged Buddhists)는 인권, 분쟁과 평화, 지역사회 개발, 소비주의로 인한 지구적 기후와 생태위기에 대응해온 전 세계 25개국 불교운동가들의 네트워크 조직으로, 거의 격년마다 회원들의 활동을 공유하고, 아시아지역의 현안을 다룬다.

올해 INEB회의에서는 30여 년간, 힌두교를 믿는 타밀족과의 내전을 겪었으며 기후변화로부터 피해를 입고 있는 개최지 스리랑카의 특성을 반영하여 ‘통합적 발전: 평화와 지속가능성을 위한 종교간대화'가 회의주제가 되었다. 이 주제를 정하는데 있어서 지난해 9월 UN총회에서 2015년 이후 빈곤과 기아퇴치를 위해 결의한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이하 SDGs)'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INEB 설립을 주도한, 아시아 기후변화 대응 기구 ‘기후생태네워크(Inter-religious Climate and Ecology Network, 이하 ICE Network)의 코디네이터로서 1월말 약 10일간 진행된 INEB 회의와 더불어 회의 직후 열린 ICE네트워크 산하의 생태사원 워킹그룹 회의에 참가하였다.

개회식 다음날, 2개 지역에 대한 스터디투어가 진행되었다. ‘평화와 지속가능성’이라는 회의 주제에 따라 1개 팀은 타밀과의 내전이 치열했던 북부지역의 자프나(Jaffna)로, 나머지 팀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열대우림 ‘싱하라자(Singharaja)’로 향했다.

나는 60여명이 넘는 사람들과 함께 싱하라자 팀에 합류했다. 콜롬보에서 버스로 4시간을 달려 어스름한 저녁 시간 도착한 곳에는 숲에 둘러싸인 허름하고 낡은 산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20평 남짓한 방 한칸에 16명이 머물도록 되어 있었지만 화장실 겸 샤워실은 2칸 밖에 없었고, 방 1칸마다 8개의 2층 침대가 놓여 있었으나 사다리는 2개밖에 없어서 모두가 잠드는 밤에 화장실은 어떻게 갈수 있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무선 인터넷은 물론 사용할 수 없었다.

   
 
몇몇 사람들이 모여,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거나 “화장실이 부족하다”거나 “인터넷은 왜 안되나”하고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일본 참여불교네트워크(JNEB)의 코디네이터는 “원하는 것이 다 있고, 편안한 곳이라면 이렇게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겠느냐”고 되물었다. 인터넷 되고, 공간이 여유롭고,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다면 아마도 각자 자리 하나씩 차지한 후, 인터넷 하느라 이렇게 모여서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 동의가 되었지만, 마치 우리의 60-70년대 시절로 돌아간 듯한 상황에 쉽게 적응할 수는 없었다.

저녁 식사 후, 다음날 산에 오를 준비를 미리 했다. 준비라고 해봤자 숲에 사는 거머리로부터 흡혈당하지 않도록 산장의 매니저로부터 버선 모양의 양말을 한 켤레씩 구입하는 게 전부였지만 한국과 달리 숲에 사는 거머리가 어떻게 사람에게 달라붙는지 상상이 되지 않아서, 사실은 조금 걱정도 됐다.

다음날 아침 6시, 우리를 태운 차량이 산장을 출발해서 숲의 입구까지 도착하는데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가이드 6명이 우리를 안내했다. 한 가이드가 나무를 가리키며 이름과 함께 당뇨병에 좋다고 이야기해주었지만 라틴어로 된 학명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산은 그렇게 가파르지 않았다. 열대우림이라고 해서 정글과 같은 모습을 상상했으나 우리가 올라간 곳까지는 꽤 넓은 등산로가 이어져 있었고, 한국의 산과 비교하면 경사도 그리 가파르지 않아서 동네 뒷산에 오르는 기분으로 올랐다. 산에 오르기 전, 진행 팀으로부터 숲속에서는 침묵을 지켜야만 갖가지 조류들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누차 들었지만, 숲에서 독특한 동식물을 볼 때마다 참가자들이 환호하느라 침묵을 지키지 못했고, 그만큼 다양한 조류들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가운데 아쉬워하는 사람도 없었다.

열대우림 싱하라자(Sinharaja)로의 스터디투어

조금씩 산 정상을 향해 나아가자, 한 두 사람 씩 바지나 신발에 거머리가 붙기 시작하였다. 어디에서 거머리가 나오는지 보려고 땅을 뚫어져라 보고 걸었지만, 어느 순간 옷에 붙어 있는 거머리를 발견하고는 했다. 내 바지에도 대 여섯 차례 거머리가 붙었는데, 그럴 때마다 다른 사람들이 퇴치에 도움을 주었다. 몇몇 사람들은 거머리에 강제 헌혈을 당해야만 했다. 그래서 더더욱 어디서 거머리가 나오는지 알고 싶었지만 끝내 알아내지 못했는데, 며칠 뒤 아일랜더 센터에서 열린 본 회의 때 만난 법륜스님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이라 하셨지만 정말 그런 것인지 확인해보지 못했다.

   
 
산 중턱쯤 올랐을 때 뭔가를 찍고 있는 서양인들을 만났다. 전문 가이드를 대동하고 사진을 찍으러 온 것 같았는데, 자세히 보니 야생 닭을 찍고 있었다. 벼슬과 깃털이 화려했다. 그들을 지나친 후 앵무새, 보호색을 한 뱀, 워터모니터라는 이름을 지닌 악어만한 도마뱀, 야생란과 그밖에도 이름을 들었지만 기억하기 어려운 다양한 나무와 새들을 만났다.

숲을 보고 난 후, 스리랑카 산림부 관계자로부터, 싱하라자의 생태, 정부의 보존 노력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산림부 관계자는 숲과 생태계의 중요성, 그리고 보존의 필요성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인식이 높아지고 있으나 여전히 생계를 위한 주민들의 벌목, 차 재배 때문에 숲을 보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나는 2012년 스리랑카에 왔을 당시, 가뭄 문제가 심각했고, 스리랑카 역시 기후변화로부터 피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그 관계자에게 “기후변화가 싱하라자의 생물다양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질문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기후변화가 숲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분명하지만, 이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서 정확한 데이터를 갖고 설명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기후변화의 영향을 조사하려면 장기간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데, 아쉽게도 스리랑카 정부는 이에 대한 필요성을 아직까지는 인식하지 못하는 듯 했다.

   
 
우리는 2박 3일의 스터디투어 일정을 마치고, 아누라다푸라에 위치한 아일랜더 센터(Islander Center)에 도착했다. 아일랜더 센터는 세와랑카 재단이 운영하는 곳으로 이 곳에서 5일간 INEB 컨퍼런스와 생태사원 워킹그룹 회의가 열리는 곳이다. 우리가 도착한 날 밤, 자프나로 스터디투어를 떠났던 팀은 우리보다 1시간 늦게 도착했다. 자프나 팀에 의하면, 이 스터디에는 무슬림도 함께 했고, 타밀과의 내전이 치열했던 자프나로 향하기 전에 불교도와 무슬림 각각 따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INEB회의 사전에 하는 스터디투어 지역을 자프나로 정하고, 또한 아시아의 다른 지역, 인도네시아의 무슬림 활동가들을 스터디투어에 초청한 이유는, 3년 전 말레이시아에서 INEB회의가 열렸을 때 미얀마의 불교도와 무슬림간의 갈등이 아시아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인 것 같았다. 스터디투어 직전 가진 별도의 불교도 모임과 무슬림 모임에서도 두 종교의 갈등이 아시아 전체로 확산될 것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했다고 한다. 특히 타밀족이 주로 거주하는 자프나 지역의 주민들을 만나, 내전 기간 동안 그들이 겪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접하면서 불교와 무슬림이 서로 만나야할 필요성에 대해서 깊이 공감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스리랑카의 타밀/싱할라의 내전과 미얀마의 로힝자 무슬림/불교도간의 갈등사이에 흥미로운 공통점 하나를 발견했다. 영국이 식민통치를 하기 전까지 원래 스리랑카에는 타밀족이 없었다. 영국 정부는 스리랑카의 고산지대가 차 재배지로 적합하다는 것을 알고 인도 남부에 사는 타밀족을 대거 이주시켜 차 플랜테이션의 노동자로 만들었다. 미얀마 서부 아라칸 주에 살고 있는 로힝자 무슬림 또한 미얀마에 거주하기 시작한 건 200여년 전의 일이다. 타밀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1826년 영국은 버마의 곤바웅(Kon Baung)왕조로부터 아라칸 주를 빼앗은 후 에야와디 삼각주를 개발하기 위해서 인도의 벵갈지역에 사는 무슬림을 농장노동자로, 아라칸에 이주시키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에는 연간 20여 만명의 벵갈 무슬림들이 이 지역으로 유입되었고 1930년대 말 불교도와 인도 무슬림 간 폭동의 한 요인이 되었다. 지금 아시아의 일부 나라들이 겪고 있는 종교 또는 민족 사이의 갈등과 분쟁은 이런 식민 유산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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