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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서 ‘촌주’ 이름 새겨진 청동접시 출토

   
▲ 경주 황룡사 남쪽 우물에서 발굴된 청동접시. 사진=문화재청.
경주 황룡사 남쪽 우물에서 촌주(村主)의 이름이 새겨진 청동접시가 출토됐다. 촌주는 지방민을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지방의 유력자에게 부여한 신라의 말단 행정관직이다.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이 조사 중인 경주 황룡사 남쪽담장 외곽 정비사업 부지에서 ‘달온심촌주(達溫心村主)’라는 촌주 이름이 새겨진 청동접시가 출토됐다고 16일 밝혔다. 또 신라시대 도로, 배수로 등의 도시시설과 황룡사의 대지 축조방법을 알 수 있는 자료도 확인됐다.

황룡사는 553년(진흥왕 14) 창건된 신라 최대 규모의 사찰로, 신라왕경 핵심권역에 해당된다. 이번 조사에서는 통일신라 말기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되는 우물이 황룡사의 서남쪽 경계부에서 확인됐는데, 이 우물에서는 촌주의 이름이 새겨진 자료로는 처음으로 ‘달온심촌주(達溫心村主)’가 적힌 청동접시가 출토됐다. 이 청동접시는 제사 때 사용한 토기 등과 함께 묻혔던 것으로 보아 황룡사의 의례행위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청동접시 명문.
아울러 우물 내부에서는 편평하고 납작한 편병(扁甁) 등의 토기류, 중국백자편, 평기와, 청동제 손칼 등이 출토되고, 당시 사람들의 식생활을 짐작할 수 있는 밤, 복숭아, 잣 등의 씨앗껍질과 생선뼈 등도 함께 발견됐다.

그리고 조사지역에서는 황룡사와 동궁 간 연결되는 동서도로와 황룡사 동쪽에서 분황사로 연결되는 남북도로가 확인됐다. 도로면에는 20∼30cm 정도의 굵은 돌을 깔아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잔자갈을 깔아 노면으로 사용했다. 도로의 한쪽에는 너비 100cm, 깊이 40~100cm의 배수로를 설치하였으며, 그 이후에는 배수로를 메워 도로를 확장하여 사용하기도 했다.

이번 발굴조사는 일부 지역에 한해 이루어진 관계로 도로 전체와 도로에 맞닿아 있는 광장의 전모는 드러나지 않은 상태이나, 향후 단계별 조사를 통해 도로와 광장에 대한 윤곽이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황룡사의 대지는 습지를 매립해 조성된 것으로 조사 결과 밝혀졌다. 남쪽에서 북쪽, 동쪽에서 서쪽 방향으로 30도 정도 경사지도록 흙을 교대로 다지면서 쌓았다. 바닥에는 굵은 돌을 깔았고, 일정한 간격으로 자갈층을 반복해 다져 놓아 배수처리를 하는 등 신라 시대 토목기술의 진수를 잘 보여준다. 흙을 쌓은 성토층 아래의 습지에서는 6세기 무렵의 토기편이 출토되고 있어 진흥왕 시기의 황룡사 창건 기록과도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17일 오후 2시 발굴현장 설명회를 열고 조사 성과를 밝힐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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