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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종교 만나기 ②
  • 법현스님|열린선원장
  • 승인 2016.06.2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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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부터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사무국장 소임을 살면서 불교의 여러 종단을 더욱 친밀하게 알게 됐다. 템플스테이라는 프로그램도 만들고 국제포교사와 외국인 승려의 한국문화체험프로그램도 진행하고 한국과 중국 수행교류체험 등을 진행했다.

그러면서 불교계 다종단의 출현과 그 역할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름에 걸 맞는 전법과 수행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내용을 보충해야 한국불교가 사회발전과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말했다. 세계종교연합선도기구(URI)라는 단체에 들어가 이웃종교인들과 함께 집행위원을 맡아서 의견을 모으고 이해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URI는 한스큉 등 저명한 신학자들과 조계종의 진월스님 등이 만나서 그동안의 종교대화활동을 더욱 진전시킨 모임을 구성하고자 진지한 토론 끝에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불교계의 세계불교도우의회나 세계승가회 등의 단체처럼 기독교나 가톨릭 또는 정교회나 이슬람단체 등이 함께하는 세계종교인평화회의(WCRP)의 각 주의 종교연대기구들과 세계종교의회(Parliament of the World's Religions)등이 있었고 우리나라에는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가 1986년도에 구성되어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WCRP는 그 이름을 ‘삶을 위한 평화(Peace for Life)’로 바꾸었다는 말도 있는데 분명하지 않은 듯하다. ACRP와 KCRP가 변화 없이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종교들의 연합기구나 대표기구가 있어서 전체의 의견을 대변하기는 하지만 아주 공식적인 대화만 하는 단점이 있다. 외국의 단체들은 자유로운 의견을 나눌 수 있지만 대표성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표들만 모이는 단체가 있는데 그것이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라는 단체이다. 대표와 개인이 섞여있는 단체가 KCRP이다. 개인들이 엮은 단체가 URI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단체거나 문화관광부의 지원여부가 그 단체의 활성화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 관전 포인트이다.

URI모임의 회칙을 만드는데 아주 많은 시간이 들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가톨릭이나 기독교나 유대교 이슬람교 등 유일신을 믿는 종교에서는 신이나 창조 등을 강조하는 반면에 절대자를 긍정하지 않는 종교인 불교 등에서는 창조(創造)주나 주재(主宰)주에 해당하는 신(神)의 개념은 없기 때문이었다. 유일신 전통에서는 꼭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아닌 쪽에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만나고 또 만나고 회의하고 또 회의하면서 머리와 마음을 모으니 다른 쪽에 거슬리는 표현을 넣지 않고도 유일신교와 비유일신교를 모두 만족하는 문장을 찾아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때 함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던 이웃종교인들은 URI활동을 접고 친목활동만 ‘유짤모’라는 이름으로 하고 있다. 이들도 각 종교기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거나 하고 있다. 그 모임에 처음 나간 것은 불교계 기자가 회장이 스님이니 좀 도와주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해서 나가게 된 것이었다. KCRP에서는 회의나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각 종교의 전통에 따라 각자 평화의 기도’를 하고 시작한다. 불교는 법회활동 이외에는 불교적인 의식을 잘 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나만 아는 자는 하나도 제대로 모른다는 괴테의 표현에서부터 비롯된 자기의 종교만 아는 사람은 자기 종교도 제대로 모른다는 것을 참고삼아 자기 종교를 제대로 알기 위해 다른 종교도 알아보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2005년 6월 5일에 열린선원이라는 포교원을 열었다. 본디 ‘열린절’이라는 온라인 소통기구인 까페였는데 오프라인으로 전환하면서 열린선원이라 한 것이다. 처음에는 우리절이라는 이름도 생각했는데 전부터 인연이 있었던 조계종의 동봉스님이 경기도 광주 곤지암에 사찰을 개원하면서 ‘우리절’이라고 하여 나는 마음을 바꿨다. 50년 된 재래시장건물 한켠에 이미 자리 잡은 법당을 이어받아 선원으로 개편해서 연 것이었는데 인연사람들이 넘쳐 옥상에까지 자리를 깔고 손님을 맞이하는 대성황을 이뤘다. 자칭 ‘선비형 스님’인 나는 그저 딱 도배, 장판만 새로 해놓고 선풍기도 한 대 마련하지 않고 손님들을 불렀으니 은사스님, 성운스님, 이재오 의원, 이영호 의원 등 귀빈과 불자들이 찜통더위에 손부채를 흔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물론 나는 기쁨에 젖어 아무것도 몰랐다. 그날 밤 나는 행복한 마음으로 모스크바를 향해 날아갔었다.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탈레반이 일으킨 9.11테러. 사람들은 그것을 이슬람 사람들이 일으킨 아주 못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마치 요즘의 아이에스처럼. 그런데 실제 이슬람 사람 무슬림들은 평화를 숭상하는 종교인들이고 그들이 그런 일을 저지를 수는 없는 일이다. 아주 근본주의적으로 잘못된 이슬람 사람들이 그런 일을 일으킨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사람들에게 믿음을 받고 싶은 마음을 가진 터키의 사회 운동가인 Mr. 귤렌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아주 훌륭한 일을 하고 있고 그의 이념을 따르는 여러 재단들 중 터키기자작가 재단이라는 단체가 주최하여 모스크바에서 세계종교평화회의를 열었다. 크리스마스카드에 나오는 그 아름다운 모스크바 크렘린궁 옆에 새로 지은 현대식 건물인 컨퍼런스 홀에서 약 200여명의 세계종교지도자들이 모였다. 그곳에 한국에서는 나 혼자 웨이스 니오 플라크라는 터키인 통역을 대동하고 동참하였다.

여러 종교인들이 모여 지구본을 그린 커다란 아크릴 나무통에 각 나라에서 가져간 흙을 채우고 거기에 러브트리(사랑의 트리)라는 이름의 올리브나무를 함께 심었다. 나는 북한산 태고사의 흙을 가져갔다. 고려시대의 불교 종파를 통합하고, 세속과 종교를 통합하고, 자기 깨달음을 사회에 널리 펼치면서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던 분께서 밟았을 흙. 그리고 불교계의 여러 종파들을 불교계의 하나로 통합해서 한국불교의 중흥조 또는 종조로 추앙받고 있는 태고 보우국사께서 주지를 살던 중흥사 위 태고암의 흙을 가져갔다. 그 이야기를 설명하고 흙을 붓고, 종교간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7년 동안 가문 사막에도 하룻밤 비가 오면 기화요초가 피어나듯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는 대화해야 한다. 다만 7년 동안 가물었던 사막을 한 방울의 물로 다 적실 수는 없다. 하지만 그 한 방울을 빼고는 사막을 다 적실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비록 금방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런 대화의 필요성이 있다고 강력히 주장한 연설을 한 기억이 난다.

당시 기억나는 다른 분의 주장 중에는 인도에서 왔던 힌두교 지도자의 이야기가 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 모든 싸움을 조사했더니 놀랍게도 모두 원인이 같았다. 바로 아가씨 한사람이 그 원인이다. 다들 놀라 쳐다보는데, 그 아가씨의 이름은 ‘미스-언더스탠드(misunderstand)’라고 했다. 즉 오해가 싸움, 전쟁의 원인이라는 그의 발언에 즐겁게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 종교간 대화라는 것은 오해를 벗어나서 이해로 승화 시키는 것이다. 불교의 목표인 앎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모름은 불교에서는 가장 큰 죄악이라고 하지 않는가. ‘알고 지은 죄가 오히려 모르고 지은 죄보다 작다’고 하는 불교인으로서 종교간 대화를 하는 것은 대단히 즐겁고 좋은 일이었다.

   
 
그 모임은 한국에 있는 이스탄불문화원을 통해서 URI활동을 함께한 김진 목사께서 추천하여 그리 된 것이었다. 동양에서 간 유일한 스님이었고 일본에서도 공부한 적 있는 티베트의 젊은 스님과도 교유하였지만 많은 무슬림들과 목사, 신부들과 대화를 나누었던 추억이 있다. 그 때 나는 이미테이션 호박 108염주를 100여개 가지고 가서 쉬는 시간마다 나누었더니 신앙의 차이를 막론하고 즐거워들 하였다. 아마도 나의 연설은 더듬거리는 영어 탓에 기억하지 못해도 108염주 선물한 사람으로는 기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때의 활동은 터키기자작가재단의 잡지 가운데 하나인 DA(아시아의 대화)에 실렸고 나의 연설문도 실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스탄불의 소피아성당과 술탄아흐멧모스크를 방문하였다. 웨이스 군의 설명에 따르면 소피아성당은 이슬람 성당으로 바뀌었다가 세속주의 이슬람을 표방하는 터키정부에서 박물관으로 성격을 규정하여 관광객에게 개방하고 있는데 몇 년 째 보수공사 중이었다. 예수님의 생애 관련 성화를 아름답게 새겨놓았는데 진리주의 입장에서 성화를 그리지 않는 시각으로 회덧칠한 것을 벗겨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성화를 감상하다가 갑자기 ‘법현스님, 어쩐 일인가요?’ 하는 소리를 들었다. 초등학교 동창인 김기수 군이 출장 왔다가 나를 알아본 것이었다.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고 세상 참 좁다는 말을 같이 나눴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성지순례의 일환으로 같은 곳을 방문했던 목사님의 이야기는 달랐다. 무슬림들이라 그리스도교 성화를 벗겨내고 있다는 선교사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목사님에게 설명하였다. 반대의 설명을 들었지만 자본주의 말기에 와 있는 이  때에 세계적으로 들어오는 돈이 얼마인데 성화를 벗겨내겠느냐고. 목사님은 다시 확인하고는 머리를 흔들었다. 나는 웃으며 하나 더 이야기해 주었다. 묘하게도 우리나라 스님들이 외출복인 두루마기를 입고 다니면 이웃 일본, 중국, 동남아 불교 나라까지도 출가수행자인 스님인줄을 잘 모른다. 불교나라가 아닌 곳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대개 “아유 사무라이?”하고 물어본다. 이스탄불의 전통시장인 그랜드바자르를 지나가는데 한 종업원이 그렇게 물어서 그게 아니고 한국의 불교 승려라고 했다. 그랬더니 왜 그렇게 한국 사람들은 선교사가 많으냐? 그리고 왜 그렇게 사람들을 귀찮게 개종시키려고 온갖 짓을 다 하느냐? 하더라. 그렇지 않아도 사랑스럽게 잘 설명해야겠지만 외국인에게는 더욱 그래야겠기에 하느님의 제일 덕목인 사랑을 적극적으로 나누다보니 그런 실수까지도 하는 모양이라고 얼버무린 변명을 하였다. 이 짧은 영어로 내가 그대들을 변호해야 하겠느냐고 목사님에게 웃으며 물었다. 목사님은 미안하다고 사과하였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 종업원이 아무튼 당신이 선교사가 아니라니 반가워서 선물 하나 드리겠다며 향꽂이를 주더라고 했다. 종교간 대화를 하는 우리가 생각할 것이 참 많다.

이어서 귤렌재단 산하의 대안학교를 방문해서 여러 가지를 알아보았다. 놀라운 것은 학생이 850명 정도인데 교사가 150여명이나 된다는 점이다. 그 가운데 교과 교사는 50여명이고 100여명은 생활지도교사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학생들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대화하여 특기와 적성에 맞는 교육과 진로를 정하게 하는 일을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부모들은 한 달에 두세 번 꼭 오게 하여 함께하는 교육을 일정시간 해야만 학생들의 학적이 유지된다고 하였다. 그것이 가정과 사회와 학교가 일치되는 교육이라며. 대안학교마저 입시학원처럼 변해가는 우리 현실을 생각하며 우리도 활용할 가치가 있는 일이라 생각되었다. 미스터 귤렌 선생은 몇 년 전 만해평화대상을 수상했다. 비록 건강상의 이유로 대리수상을 하였지만. 아마도 그 바람에 수상식에 참석한 그 분과 나는 한 시간 넘게 서울의 관련 사무실에서 따로 대화한 추억이 있다. 혹시 대리 참석자라 나에게 시간이 나도록 한 것은 아닐까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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