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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고려 수월관음보살도’ 등 보물 지정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이 ‘고려 수월관음보살도’와 ‘김천 갈항사지 동ㆍ서 삼층석탑 출토 사리장엄구’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하고, 국보 제233호 ‘전 산청 석남암사지 납석사리호’의 지정명칭과 지정번호를 변경했다.

   
▲ 고려 수월관음도. 사진=문화재청.
보물 제1903호 ‘고려 수월관음보살도(高麗 水月觀音菩薩圖)’는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입법계품(入法戒品)의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보타락가산에 머물고 있는 관음보살을 찾아가 깨달음을 구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 선재동자는 53명의 선지식(善知識)을 두루 찾아다니며 진리를 터득했다는 인물로, 이 그림은 28번째 선지식인 관음보살과의 만남을 표현했다. 화면 가운데에는 이중의 둥근 광배를 갖추고 수정염주를 굴리며 보타락가산의 금강바위에 반가좌로 앉은 관음보살이 압도적인 크기로 묘사됐으며, 향 왼쪽 하단에는 무릎을 구부려 합장하며 보살도를 묻는 선재동자를 조그맣게 표현했다.

사선으로 배치된 두 주인공간의 무한한 공간감, 고려 시대 수월관음보살도에서 자주 보이는 청죽(靑竹)·바위·정병(淨甁) 등의 세련된 표현과 짜임새 있는 구성력, 유려한 선묘와 화려하고 섬세한 문양, 종교적 감수성을 고조시킨 우아한 색감 등에서 고려 후기 수월관음도의 전형적인 특징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보물 제1904호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 출토 사리장엄구(金泉 葛項寺址 東·西 三層石塔 出土 舍利莊嚴具)’는 1916년에 갈항사 터의 동·서 삼층석탑을 경복궁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동탑 기단부에 758년(경덕왕 17)에 언적법사(言寂法師)와 조문황태후(照文皇太后) 등 그의 두 누이가 함께 발원하여 건립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사리장엄구도 탑을 건립할 당시에 봉안한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 사리장엄구의 기준이 되는 자료다.

특히, 탑을 조성한 언적법사와 조문황태후는 신라 제38대 원성왕(元聖王, 재위 785~798년)의 외삼촌과 어머니로, 이 사리기가 왕실 외척세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말해준다. 동ㆍ서탑에서는 각각 금동사리병 1기와 금동사리병을 담은 청동사리호가 1기씩 발견됐다. 안쪽의 사리병은 금동으로, 바깥의 사리호는 청동으로 만드는 방식은 과거 통상적으로 사용된 방법이나, 바깥 항아리를 금속선으로 밀봉한 것은 이 사리장엄구가 지닌 특색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국보 제233호 ‘전 산청 석남암사지 납석사리호(傳 山淸 石南巖寺址 蠟石舍利壺)’는 사리호가 모셔져 있던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올해 1월 보물에서 국보 제233-1호로 승격 지정됨에 따라 불상과 사리호와의 관련성을 명확하게 하고자 지정명칭과 지정번호를 변경하기로 했다. 불상과 사리호의 조성목적과 존격을 고려하여 국보 제233-2호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山淸 石南巖寺址 石造毘盧遮那佛坐像 蠟石舍利壺)’ 로 지정명칭과 지정번호를 변경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가 체계적으로 보존․활용될 수 있도록 해당 지방자치단체 및 관리자 등과 적극 협조해 나갈 계획이다.

   
▲ 김천 갈항사지 동ㆍ서 삼층석탑 출토 사리장엄구. 사진=문화재청.
   
▲ 전 산청 석남암사지 납석사리호. 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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