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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 수해와 남북한의 침묵

‘북변’을 휩쓸어간 최대의 재앙

“지난 8월 29일부터 9월 2일 사이에 함경북도 지구를 휩쓴 태풍으로 인한 큰물피해는 해방 후 처음으로 되는 대재앙이었다.” 북한 매체가 전한 함경북도 지역의 수해 피해 내용이다. 범람으로 인해 피해 지역도 광범위하여 연사군, 무산군, 회령시, 온성군, 경원군, 경흥군, 그리고 나선시 일부 등 사실상 두만강 인근 전역에 달한다.

국제적신월사 평양사무소에 따르면 사망 138명, 실종 400명에 2만여 채의 가옥이 붕괴되고, 도로와 학교, 보건소, 관공서 등 기반시설도 파손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 매체도 완파 가옥 1만1천 600세대에 6만8천 900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보도했다. 공식적인 기록만으로도 피해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우려되는 부분은 실제 피해가 이보다 더 클 가능성이 많다는 점이다. 피해가 집중된 연사군과 무산군 인근에는 서두수발전소 언제(댐), 삼유발전소 언제, 마양발전소 언제 등 수력생산을 위한 대형 댐 3기가 위치해 있다. 당시 이들 댐은 지난해까지 지속된 가뭄피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만수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기간에 집중된 폭우에 수위조절기능을 잃고 일시에 수문을 개방함으로써 큰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수문 개방이 새벽 3시에서 5시 사이에 이루어졌고, 비상대피체제도 미비하여 상당수의 주민들이 잠자다가 영문도 모르고 희생되었다고 한다. 천재보다 인재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다. 더구나 서두수발전소는 댐 자체가 손상됨으로써 수개 마을 전체가 사라지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에서는 피해규모가 공식발표보다 최대 10배가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애민 지도자’ 김정은 위원장의 침묵

북한의 매체도 9월 중순 이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함경북도 수해를 ‘북변의 평지풍파’로 표현하며 보도하고 있다. 10월 13일자 노동신문은 “기상관측 이래 처음 보는 큰 돌풍과 폭우”라는 표현과 함께 연사군의 “서두수 발전소의 수력 구조물이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서두수 발전소는 수해가 발생한 지역 최대 규모의 댐이다. 수해 피해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북한이 전례 없이 수력발전소의 붕괴사실을 공개한 것은 수해를 김정은 정권이 아닌 천재지변 탓으로 돌리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지적이다. 
 
북한은 7차 당대회 이후 역점적으로 추진해온 200일 전투의 주력방향을 함경북도로 전환하고 전력을 기울여 수해 피해의 복구에 나서고 있다. 김정은의 야심찬 기획인 평양의 려명거리 건설에 투입되었던 노동자들까지 함경북도 수해복구 현장에 파견했으며, 군과 각지의 인력을 동원해 신속한 피해복구를 시도하고 있다. 10월 16일자 노동신문은 수해 피해 한 달 여 만에 11,000세대의 살림집 골조공사를 끝냈다고 보도했다. 수일 만에 5층짜리 아파트의 골조공사가 끝난 경우도 자랑하고 있다. 부실공사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 같은 신속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북한 최고 수뇌부의 움직임은 다소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수해 한 달이 지난 10월초 최룡해가 수해지역을 방문했으나 주민들은 만나지도 않고 일부 간부만 면담하고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으며, 북한 내각의 책임자인 박봉주 총리는 10월 19일에야 현지를 방문했다. 특히 선대인 김정일과 달리 인민대중과 거침없이 접촉하고, 애민을 강조하고 있는 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정은은 함경북도를 방문하지 않은 것은 물론 수해 피해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있다. 북한의 매체가 김정은이 함경북도 피해지역에 ‘은정어린 선물’을 보냈다거나 ‘크나큰 사랑을 부어주고 계신다’는 등 간접적인 보도를 전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해 라선시 수해현장을 방문했던 것과는 대조되는 행보다.

김정은의 침묵은 피해지역의 민심이반이 심각하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수해로 북한의 국경경비망이 마비되었으며, 군부대에서 유실된 무기류 때문에 김정은의 신변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는 분석도 있다. 북한의 매체가 함경북도 수해를 공식적으로 전한 것은 수해발생 보름이 지난 9월 중순으로, 김정은 정권이 초기에는 수해 피해를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도 있다. 7차 당대회로 명실상부한 권력의 최고수반에 오른 김정은 정권에게 수해 피해를 공개하는 것이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이와 함께 함경북도의 천문학적인 수해 피해에도 불구하고 5차 핵실험을 감행한 김정은의 국정운영의 미숙함에 대한 지적도 나오고 있다.

   
▲ 북한 매체 '내나라'가 외부에 공개한 함경북도 지역 홍수 피해 모습.
한국사회의 침묵

함경북도 수해 피해가 예상보다 크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 역시 이와 관련된 언급이나 행보는 침묵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은 정권의 내적인 불안정성에 대해서는 소상하게 설명해온 그 동안의 입장과 달리 어느 기관에서도 함경북도 수해 피해의 실상을 공식적으로 설명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10월 19일 국회정보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국정원장은 김정은의 사치행각과 신변안전에 대해 신경을 쓰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동생인 김여정이 실세인 선전선동부 부부장 직책을 맡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내용도 상세히 설명했다. 반면 함경북도 수해 피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함경북도 수해 피해에 대한 정부차원의 공식적인 인도지원 계획이 없다는 입장에도 변화를 보이고 있지 않다. 일부 언론에서 함경북도 수해 피해로 사망 및 실종이 최대 1만여 명이 될 수 있다고 보도하는 등 수해의 실상이 점차 알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부장관은 10월 14일 국정감사에서 대북인도지원 계획을 묻는 질문에 “수해 관련 사항은 현재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북핵문제의 심화로 대북지원에 대한 한국사회의 여론도 차가운 편이다. ‘민화협’ 등 일부에서 함경북도 수해 피해 지원을 위한 모금 등의 움직임이 있을 뿐 사회지도층의 언급이나 행보, 영향력이 있는 언론매체의 보도에서 이번 수해로 인한 대북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모두가 사실 자체를 숨기려는 집단 은폐에 담합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오라’고 하기 전에 먼저 따뜻한 손길을 ‘보내라’

“남으로 오세요.” 국군의날 기념사 이후 여러 자리에서 공식적 언급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 주민에게 전하고 있는 메시지의 핵심이다. 박대통령의 언급은 북한 당국이 아닌 북한 주민에게 직접적으로 전하는 메시지라는 점에 특징이 있다. 김정은 정권의 폭정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에 대한 따뜻한 인도주의적 애정이 박대통령의 언급의 배경일 것이라 믿고 싶다.

함경북도 수해 피해지구에는 10월 하순이 되면서 벌써 얼음이 얼기 시작하고 있다. 졸지에 한지에 나 앉아 추위와 기아에 시달리고 있는 수많은 북녘동포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남으로 오라고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남으로 오면 잘해줄 수 있는데, 북에서 겪는 고통은 어쩔 수 없다는 논리로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대북지원을 핵과 미사일 개발에 전용하고 있기 때문에 인도지원이 어렵다는 것이 당국의 설명이다. 그러나 전쟁 중에도 부상당한 적을 돕는 것이 인도주의일진대 수해 피해로 고통받고 있는 북한 형제들을 돕는 것은 그 차원을 뛰어넘는 기본적인 도리다. 수해로 발생하는 수인성 전염병 예방약, 설사약, 모포, 긴급구호식량, 유아식, 방한복 등등 전략물자로 전환이 어려운 인도 지원물자는 얼마든지 많다. 핵과 미사일이 긴급 인도지원 차단의 이유로 되기에는 너무 빈약하다.

서독은 분단기간 중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매년 23억 달러 상당의 인도지원물품을 동독에 전달했다. 3만4천여 명의 동독 정치범을 데려오는 대가로 지불한 돈도 20억 달러에 가깝다. 많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서독은 동독 주민과 연결되는 ‘내적인 끈’을 놓지 않았으며, 이는 결국 통일의 원동력이 되었다. 자신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서독을 동독 주민은 신뢰했으며, 결정적인 순간에 서독체제를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틈만 나면 북한체제의 불안정성과 김정은 정권의 폭정을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의 경색과 남북교류의 중단으로 북한 주민의 대남 부정적 인식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통일은 몇 마디 선심성 말이 아니라 진정한 애정과 행동의 결과로 온다는 것이 독일통일의 교훈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따뜻한 손길로 북한 주민의 아픔을 위로하고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야 말로 통일의 지름길이다. 한지에서 살을 에는 추위와 기아에 시달리는 북녘 동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는 자명하며, 당장 행동에 나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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