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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동력 잃은 박근혜 정부'해서는 안될 일'과 '해야 할 일’

국정농단과 성숙된 시민의식

최근 시중에 떠도는 말로 ‘국정농단’이라는 말이 있다. 농단(壟斷)은 중국고전인 『孟子』에 나오는 말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여 이익이나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정농단’은 말 그대로 국가권력의 가장 핵심에서 정책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해 온갖 특혜와 권한을 독점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지금 나라 전체가 박근혜 대통령과 ‘사설 정부’의 국정농단 때문에 시끄럽다. 국내에서만 시끄러우면 좋으련만, 국제사회에서도 대통령, 아니 대한민국이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고 국격을 떨어뜨린데 이어서, 현 정부는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헌정질서 자체를 위협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이와 같은 국정농단에 항의하는 촛불집회가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11월 5일에 열린 광화문 촛불집회에는 주최측 추산으로 20만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고, 서울대를 비롯한 대학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하고 항의성 행진도 하였다. 종교인들, 가정주부들에 이어 중고등학생들까지도 거리에 나섰다.

우리는 최근의 사태를 보면서 한편으로 분노와 좌절감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여전히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갖게 된다. 11월 5일 촛불집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경찰과 충돌 없이 평화시위로 마무리되었다. 오는 11월 12일 촛불집회에서는 수십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모일 것으로 예상되는데 여기서도 성숙된 시민의식이 발휘되기를 기대한다.

이번 국정농단 사건은 대한민국의 치부(恥部)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오히려 우리의 민주주의 자정능력을 확대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국정농단에 따른 현재의 위기에 매몰되지 말고, 잘못 결정된 정책들을 시정하고 제대로 된 정책을 만들 뿐 아니라, 그동안 왜곡되어온 정치의식과 관행의 프레임을 과감히 청산하고 새로운 정치질서를 세우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국정농단의 후유증과 위기관리

국정농단에 따른 심각한 후유증은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나마 개인 차원의 특혜나 치부(致富)라면 그 피해가 국내차원에 머물겠지만, 남북관계나 외교안보 분야의 경우 그 후유증이 훨씬 심각하고 오래 갈 수밖에 없다. 명분과 신뢰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기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외교안보 및 대북 분야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위기관리를 통해 더 이상의 폐해를 차단하면서 닥쳐올 미래상황에 대비한 견실한 기틀을 마련하는 일이다. 이러한 위기극복을 통해 북한과 국제사회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민주주의의 진정한 역량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에 의한 후유증이 가장 큰 분야는 남북관계이다. 남북관계는 이명박 정부 5년에 이어 연속적으로 비틀어지고 팽개쳐졌다. 그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금년 2월 10일에 발표됐던 개성공단 전면중단 조치이다. 이명박 정부의 ‘5.24조치’에 이어, 박근혜 정부는 남북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을 폐쇄함으로써 남북관계의 길목에 대못을 박아놓았다.

박근혜 정부의 드레스덴선언이나 ‘통일대박론’과도 모순되는 개성공단 폐쇄조치의 배경에 최순실씨의 ‘2년 내 북한정권 붕괴’라는 주술적 예언이 자리잡고 있다는 말이 시중에 떠돌고 있다. 중국 항일전쟁승리 기념열병식 참석이나 한일 종군위안부 문제의 불가역적 해결 합의, 사드 포대의 성주지역 배치 결정과 같은 외교안보정책의 결정들도 이러한 주술적 예언에 따른 것인가?

그 동안 외교안보 및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들이 앞뒤 맥락이 맞지 않는 점에 대해 의문을 품어왔다. 해당 분야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각 부처 장관도 모르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참석자도 모르는 중요 정책들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결정되어 왔던 것이다.

앞으로 한국의 정국이 어떻게 흘러갈지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형국이다. 대통령이 하야할지 2선 후퇴할지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벌어졌던 대북, 외교안보정책의 난맥상이 방치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차기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우리는 그동안 잘못 결정됐던 정책들에 대해 바로잡고, 추가로 잘못된 정책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위기관리 태세에 돌입해야 한다.

   
▲ 지난 11월 5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는 시민 20만명이 모여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했다.
해서는 안될 일: THAAD 배치, 한일군사정보협정 뒤로 미뤄야

위기관리의 국정, 특히 외교안보·대북정책 분야의 위기관리에서 남은 기간 동안 박근혜 정부가 해서는 안 될 일들이 있다. 어수선한 시기에 국론을 분열시킬 수 있고, 장차 차기정부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일들은 새롭게 결정하거나 섣불리 진행해서는 안 된다.

외교안보분야에서 해선 안 될 대표적인 일들이 바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포대의 조급한 배치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추진이다. 지금 미국과 일본은 박근혜 정부가 국정의 끈을 놓고 있는 틈을 타서 우리 국방부와 외교부를 들러리로 내세워 자국의 뜻을 관철시키고자 하고 있다.

먼저, 빈센트 브룩스 주한 미 사령관은 지난 11월 4일 조찬강연회 연설을 통해 “8~10개월 안으로 사드 포대의 한국 전개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미 국방부 피터 쿡 대변인도 11월 7일 “우리는 가능한 한 빨리 사드를 배치하길 원한다”면서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서두른다는 방침을 재확인하고 있다.

그런데 사드 포대의 배치 부지와 관련해 주목할 사실이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불구속 결정을 받은 다음 날인 9월 30일, 국방부는 사드 배치의 후보지를 롯데그룹이 소유한 성주 골프장으로 최종 결정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번 국정농단 사건과 맥락이 닿아 있지나 않은지 의문이 남는다. 여하튼 사드 포대의 배치를 박근혜 정부의 임기 내에 완료하겠다고 서두른 것은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것이며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만일 롯데그룹이 헐값에 성주골프장 부지를 팔 경우 국방부도 법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대토(代土) 방식이라고 해도 1,000억 원에 가까운 땅을 엄연히 팔고 사는 것이기 때문에 국회의 동의절차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박근혜 정부는 이 와중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의 체결도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한·일 GSOMIA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다가 여론의 저항에 부딪쳐 2012년 6월에 중단된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2014년 12월 한·미·일 군사정보보호약정(MOU)을 체결했다가 이번에 정식으로 한·일  GSOMIA를 밀어붙이려는 것이다.

그 동안 한·미 양국은 사드 포대의 한국배치가 미·일 주도의 미사일방어(MD) 체계와 무관하다고 설명해왔다. 하지만 한·미, 미·일에 이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한·미·일 MD동맹’의 법적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미 지난 11월 1일 도쿄에서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위한 1차 과장급 실무협의를 진행하였고, 11월 9일에 서울에서 2차 실무협의가 열렸다. 이번 2차 실무협의에서 협정문안 작성을 완성한 뒤 12월 초에 서명을 마친다는 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여론과 언론평가, 국회 국방위의 다수 의견과 배치되는데도 밀어붙이는 것은 ‘한일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여러 여건이 성숙돼야 체결할 수 있다’고 해온 국방부장관의 발언과도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만약 한·일 GSOMIA가 체결된다면 제2의 종군위안부 협정이 될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될 경우 국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쳐 과도기 혼란상황을 부채질할 것으로 예상된다.

해야 할 일: 과거에 묶인 사슬을 풀어야 미래의 길이 보인다

국정동력을 상실한 박근혜 정부 하에서 거국내각이 들어선다면, 거국내각은 기존의 잘못된 결정들을 바로잡는 노력과 함께 중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국익을 위한 외교안보·대북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국정 혼란기에 무엇보다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조건 없는 남북대화를 재개해야 한다. 남북대화를 통해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들의 조속한 석방문제와 국가재난급의 수해로 고통 받고 있는 북한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 협의를 시작하는 등 상호 신뢰회복의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내년 우리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국론분열적이고 소모적인 정쟁이 되지 않으며 정파적 이해에 치우치지 않도록 주무부서인 통일부가 주도적으로 대북정책에 관한 의견 수렴에 나서야 한다. 남북관계의 질곡으로 작용했던 ‘5.24조치’의 해제 여부와 개성공단의 재개 여부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작업을 진행함으로써 대북정책에 대한 재검토가 정당성을 갖도록 해야 한다.

지금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외교부는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따른 대북 추가제재 논의를 조속히 마무리 지어야 한다. 아울러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이 된 상황에서 미국 새 행정부의 대북정책 변화 가능성을 예의주시하면서 북한 핵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위한 대화와 협상의 준비에 착수해야 한다.

사드 포대의 배치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향후 동북아 안보정세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만큼, 국방부는 국익 차원에서 좀 더 신중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사드 포대의 성주지역 배치에 대해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확인하고 의견수렴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국회의 동의절차를 밟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일 GSOMIA도 이를 공론화하여 국민여론을 수렴하는 노력과 함께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해야 한다.

남북관계가 이렇게까지 악화되지 않고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대화가 이어졌더라면 애초부터 유엔 대북제재 결의나 사드 포대의 배치, 한·일 군사정보협력의 필요성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이 국정이 혼란한 위기상황일수록 장기적으로 우리 외교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섣부른 대책을 추진하기보다 굴곡진 부분을 바로 펴고 다듬으면서 미래상황을 내다보고 중장기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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