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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abhiyoga): 광장정치와 프로불편러
  • 옥복연_종교와젠더연구소장
  • 승인 2016.12.3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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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대였던 6차 촛불집회에서, 사람들에 밀려 나는 졸지에 혼참러(혼자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가 되었다. 옆을 보니 나와 비슷한 연배의 아줌마도 혼자였다. 그녀는 어머니와 통화를 하면서, “아이참, 엄마, 요즘은 옛날과 달라서 위험허지도 안혀~.” 라고 사투리로 외쳤고, 눈길이 마주친 우리는 함께 웃었다. 그렇다. 오늘날 광장은 이전의 광장과는 다르다. 폭도나 시위대가 아니라 촛불 시민이고, 최루탄과 물대포로 무장한 경찰은 보이지 않고, 닭장으로 불리던 경찰 버스는 꽃스티커로 단장되었다. ‘박근혜 하야’는 물론 독재· 친일 잔재의 청산으로 상징되는 전근대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한 광장의 구호가 정치권을 선도했으니, 그야말로 광장정치는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혁명적 공간이었다. 광장은 어린이부터 노부부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 나왔지만 그 중 여성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눈에 띄었다. 10대 촛불 소녀부터 20~30대 유모차엄마부대, 하야커피를 나누어주는 82쿡 아줌마 등. 특히 페미당당, 강남역 십번출구, 불꽃페미액션, 우리는 서로의 용기당, 박하여행(박근혜 하야를 만드는 여성주의자 행동) 등 페미니스트 단체들은 ‘페미존’이라는 연대를 조직해 운영했다. 이들은 촛불정국 속에서 자칫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여성혐오의 심각성을 제기하며 남성중심적 권력의 카르텔을 비판했다. 광장정치는 인터넷이나 매스컴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졌는데, 그 속에는 여성혐오가 서슴없이 드러나거나 여과 없이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여성혐오 가운데는 박대통령의 과오를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며 ‘여성정치의 실패’로 환원시키기도 했고, ‘여자로서의 사생활’ 운운한 대통령 변호인의 주장이 나오자 불통과 무능을 여성성으로 치환시켜버리기도 했다. 최순실, 이대 총장과 교수들, 정유라 등 이번 사태의 핵심 인물들이 여성이라서 그랬는지 이들을 싸잡아 ‘병신 X들’로 욕했고, 여성은 무조건 예뻐야 용서된다던 이들은 ‘성형중독 X’라며 비꼬기도 했다. 청문회 출석을 거부하던 우 전수석에게 현상금을 내걸며 제시했던 포스터의 원본은, 남성 100명이 한 여성을 쫓아가서 그 여성을 붙잡으면 질내 사정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의 일본 성인 포르노물의 한 장면이다. 많은 이들에게 열렬한 호응을 얻은 이 ‘화제의 패러디’를 불편하다며 문제 제기한 여성들에게, 우 전수석 구속이라는 대의에 엉뚱한 시비를 건다며 ‘프로불편러’(좋게 넘어갈 일에 수시로 불평을 호소하는 사람)로 낙인찍기도 했다.

“저 닭대가리 같은 X” “순시리 같은 X” 등의 구호들은 여성성과 뒤섞여 그 강도가 세어졌고, 이러한 풍자들에 대해 기발하다거나 재치있다는 말을 덧붙여서 매스컴에서 유통시키면서 여성 혐오를 확대 재생산했다.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의 사유화와 비선실세의 정치 개입을 ‘여성’들의 문제로만 본다면, 광장에서 소리 높여 요구했던 독재와 친일 잔재 청산, 정경유착 단절, 민주주의의 부활 등은 실현될 수 없다. 오만한 권력에 대한 촛불 민심을 여성혐오와 뒤섞게 되면, 공평성과 정의로움 대신 남녀차별만 정당화 된다.

   
▲ 사진='페미당당' 페이스북
비록 탄핵정국에서 그 의도가 선하다고 할지라도, 목적 달성에 용이하다 할지라도, 여성을 비하하고 차별하는 것은 다수 남성에 의한 또 다른 형태의 여성 폭력이다. 못 배우고 나이 많은 여성들을 ‘박근혜빠’와 동일시하며 몰아세우는 것은 성차별은 물론, 연령차별이자 학력차별이다. 여성혐오를 동반한 방식은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투쟁에서 결코 무기가 될 수 없다. 2016년은 여성 인권향상과 양성평등을 의한 유엔의 ‘2030 지속가능개발목표’ 가 시행되는 첫 해였고, 세계적으로도 여성인권에 대해 여성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광장정치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고 탄핵 이후의 새로운 정치 질서를 꿈꾸는 시점에서, 여성들은 여성혐오가 얼마나 보편적이고 심각한 문제인지를 말하고 있다. 이들은 프로불편러가 아니라 성평등주의자이다. 

『맛지마 니까야』의 ‘버리고 없애는 삶의 경’에서 붓다는, 스스로 진흙에 빠진 사람이 다른 진흙에 빠진 사람을 건져 올린다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스스로 진흙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즉, 자아관이나 세계관과 관련된 수많은 견해 가운데 고정 불변의 자아관이나 세계관을 극복해야 하는데, 이는 “.... 다른 사람은 잔인하더라도 우리는 잔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충고하기 어려워도 우리에게는 충고하기 쉬울 것이라고,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견해에 집착하고 완고하여 그것을 쉽게 버리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자신의 견해에 집착하지 않고 완고하지 않음으로서 그것을 쉽게 버릴 것이라고...” 지금 여기서 버리고 없애는 삶을 실천해야 함을 붓다는 강조한다.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교신자라면, 여성혐오의 극복 문제도 이와 유사하게 따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여기서 여성혐오를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그것을 피함으로써 그것을 버리게 되고, 그것을 벗어나 지혜로운 불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광장정치, 촛불민심 속에 숨겨진 여성혐오를 혐오하고 이를 버리고 없애는 삶을 지금 당장 실천해야 한다.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은 실패했지만, 한국의 여성대통령 박근혜의 정치는 ‘여성정치의 실패’가 아닌 ‘구정치질서의 실패’이다. 여성을 위해 정치행위를 한 것이 없는데, 여성정치의 실패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여성들은 신체적으로 여성인 대통령이 아니라, 여성의 인권과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여성주의’ 대통령을 원한다. 촛불정국 이후 여성이 바라는 미래는 가부장적 남성중심이 아닌 남녀 평등한 민주주의의 정착이다.

다가오는 2017년에는 이 견고한 유리천장을 깨고 나타나 성평등한 민주국가를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옥/복/연/의/소/통/의/미/학
불교포커스 여시아사(如是我思)

경전에는 유난히도 대화가 많이 나온다. 붓다는 제자들이나 신도들과 질문하고 응답하는 과정에서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이교도와는 토론을 통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붓다의 대화는 상대와 마음을 열고 진솔하게 '소통'하며, 그 결과 공감으로 나아가게 한다. 남과 여, 갑과 을, 출가자와 재가자 등 오늘날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소통의 방법을 초기경전 니까야로 모색해보고자 한다.

여성의 관점으로 경전을 읽고 교리를 재해석하며, 불교사에서 잊혀진 여성이나 뛰어난 여성불자를 발굴하는데 관심이 많다.여성학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 여성연구소 선임연구원과 대학 강사를 지내다가 현재 종교와 젠더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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