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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이 종교계에 던지는 과제focus iN

지난해 1월 스위스의 조그만 휴양도시 다보스에서 열린 WEF(세계경제포럼)의 주제는 ‘제4차 산업혁명’이었다. 이 낯선 용어를 사회적 대화의 주제로 떠오르게 한 계기였고, 한국에서도 다보스포럼 창립자이자 회장인 클라우스 슈밥의 저서가 지난 한 해 화제의 책이었다.

제4차 산업혁명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정보통신, 물리학, 생물학, 나노 등 과학기술의 발전과 융합으로 인한 문명적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슈밥은 지금까지의 1~3차 산업혁명과 달리 4차 혁명은 속도에 있어서 급격하며, 범위가 광범위하고 그 깊이 또한 유례없다고 한다. 지금의 국가‧사회운영시스템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라고 예측하고 있다. 20년 안에 맞춤형 아기가 등장할 수 있다고 하니,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은 대체로 자본에 의해 주도됐고, 패권적 국가주의에 의해 가속이 붙었다. 그 결과 성장을 이끌었지만, 성장은 사회의 온갖 격차를 벌여온 역설을 만들어냈다. 지금 인류는 문명사에서 가장 풍요로운 시기를 누리고 있음에도 빈곤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과 종교와는 언뜻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모든 것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개신교계에서는 경계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손봉호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이사장은 지난 6월 ‘크리스찬 월드뷰’에 실은 𔃴차 산업혁명, 경계하며 지켜보자’라는 글에서 “발전이라 해서 마냥 축하하기만 해서는 안 될 것이고, 그 열매를 즐기는데 급급해서도 안 될 것”이라면서 “그런 발전이 꼭 필요한지, 누구에게 필요한지 따져봐야 하고 그것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라고 경계론을 폈다. 과학기술이 기독교의 창조질서와 기독교 윤리관을 뒤흔드는데 대한 불편함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차가 사차(死次)가 될 수도 있다”고 표현한 것을 보면,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은 분명하다.

불교는 모든 것은 변화한다[諸行無常]는 기본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고 4차 산업혁명을 긍정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큰 과제가 주어졌다. 인간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해야 할 정도이니 강 건너 불이 아니다.

AI(인공지능)는 제4차 산업혁명을 추동하는 핵심적인 부분인데, 이로 인한 파급효과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생활의 편리를 증대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도 있다. 반면 발전의 한계를 설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두려움의 근원이기도 하다.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AI의 미래와 관련해 “기계가 스스로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는, 인간을 능가하는(superhuman AI) 데까지 갈 수 있다고 본다”면서 “위험성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을 지닌 로봇과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다는 점에서 실업과 이에 따른 개인의 불안과 사회적 혼란, 부의 편중이 지금보다 더 가속화될 것은 뻔하다.

한국사회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단순‧반복 노동은 자동화기계로 더욱 빠르게 대체될 것이다. 과학기술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기도 하겠지만,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가 더 많아질 것은 뻔하다. 실리콘밸리의 매출액을 자동차산업의 고용율과 대비했을 때 10%에 머문다. 의사보다 로봇이 더 정확한 진단을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 이는 전문직 중산층의 기반도 흔들린다는 얘기이며, 모종의 변화에 압도당하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사회적 변화와 이에 따른 새로운 윤리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란 문제가 닥쳐왔다. 실업, 기술격차와 빈부격차, 사회 부적응 등도 만만찮은 문제들이다. 슈밥은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부정적 영향, 특히 불평등, 고용, 노동시장에 관련된 문제들을 제대로 인식하고 다를 필요가 있다”, “공공기관과 민간기관의 리더들이 국민의 삶이 향상되는 데 신뢰할만한 전략을 국민에게 약속해주지 않는다면 사회불안, 대규모 이주, 그리고 폭력적 극단주의가 심화되어 국가의 발전을 저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기본소득제는 걱정거리를 덜어줄 하나의 방안이다. 모든 시민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일정액을 지급하는 제도인데,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구조적 실업에 대비해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이다. 핀란드가 시범 시행에 들어갔고, 네덜란드와 영국은 논의 중이다. 브라질과 나미비아의 일부 지역, 알래스카에서는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기본소득제 실현을 위한 시민단체 등에서 논의를 제기하고 있어, 올해 대선의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것이다.

새로운 윤리의 정립과 관련해서는 세계관을 제공해온 종교계의 역할이 크다. 그러나 한국의 권력화된 기성종교는 기복에 치우쳐 있고 이해관계에 빠져있는 상태에 놓여 있다. 자기 정체성조차 지키지 못하는 혼란에 빠져있는 상황에서 새 윤리를 제시하기에는 역부족일뿐더러 혼란을 가중시키는 역효과를 내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이 기성종교계에 던지는 과제는 종교의 본래면목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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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좀더 읽을거리 2017-01-23 12:59:05

    한국은 왜 4차산업 안보일까 - 이정동 정재승교수 대담(너무 길어서 긴호흡 필요)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779819.html?_fr=mt3

    인공지능 시대 살아남을 직업군 소개 - 가장 학습하기 힘든 직업이 살아남는다
    기계가 따라할수 없는 암묵지, 직관, 독창성, 사회적민감성, 협상, 설득, 다른사람 돕고 돌보기
    http://agile.egloos.com/m/5873169

    현대 한국불교에는 없는 능력이고 도입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능력들뿐이군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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