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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복 많이 받으셨다지요?
  • 법현스님_열린선원장
  • 승인 2017.01.29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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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이하는 설날이면 온 겨레가 차례를 지내고 웃어른께 세배를 드린다. 절을 하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하고 덕담을 건넨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덕 받으라고 명령이나 지시를 하는 것이 되어서 예절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생각을 해보라. 회사에서 월급을 주는 이가 사장이지 직원이 아닌 것처럼 가정에서 설에 덕담을 하는 이는 덕이 적은 아랫사람이 아니라 덕을 많이 가진 윗사람이다.

아랫사람은 그저 어른이 앉으시는 동안 조용히 기다렸다가 좌정하시면 공손히 절만 하고 덕담을 기다리는 것이 바른 세배법이다. 세배를 받은 웃어른께서 덕담으로 축원하거나 덕이 배어있는 물질인 돈으로 덕담을 대신하는 것이다. 덕담을 좌우명이나 교훈 삼아 한 해를 잘 살아가듯이 덕이 배어있는 돈을 가지고 먹고 싶은 것도 사 먹고 입고 싶은 것도 사 입는 등 생활을 하게 도와주는 것이 세뱃돈의 의미이다.

그런데 아랫사람도 한마디 축원의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 때에는 과거확인형으로 ‘새해에는 복 많이 받으셨다지요?’하면 강력한 청유의 뜻을 가지면서도 예절에 맞는 것이다. 사실 오랜 동안 그리 쓰지 않았기에 조금 어색하지만 예절에 맞고 자주 쓰다보면 익숙해질 것이다. 나는 대학시절 어느 강연장에서 한글학자 한갑수 선생으로부터 이런 강의를 들은 뒤 지금까지 실천해왔다. 차례특강 등의 이벤트나 사찰에서의 차례 뒤 세배 또는 방송강의나 신문기고에 이렇게 하면 대개는 처음 듣는 말이라며 이상하게 생각하며 놀라워했다. 나의 덕담을 들은 이들은 ‘소식이 언제 거기까지 갔어요? 아니요 아직 못 받았는데 스님이 주셔요’ 등의 대답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이 글을 읽는 분들부터 그렇게 해 주시면 고맙겠다.

   
▲ 열린선원은 설날 합동차례와 세알세배를 함께 모신다. 사진=법현스님.
이상하게 느껴지는 이 인사법은 10여면 전 숙종임금의 한글 편지가 발견되면서 바른 것이고 오래 전부터 있었던 인사법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숙종은 그의 고모인 숙휘옹주에게 ‘새해에는 쾌차하셨다니 기쁘옵니다’라는 편지를 보냈다. 병환중인 고모에게 이미 나았으니 기쁘다는 덕담을 한 것이다. 웃어른도 과거확인형으로 하면 더 재미있다. ‘새해에는 입학하였다지? 취직하였다지? 혼인하였다지? 득남(녀)하였다지?’라고 하면 얼마나 정겹겠는가? 희망도 강하게 불어넣으면서 말이다.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고 했는데 명절을 맞이하는 산사도 적막할 것이다. 애석하게도 나는 산사에서 설을 쇤 추억이 별로 없는 승려라서 ‘산사는 적막할 것이다’라고 추측하는 말을 썼다. 출가본사도 그동안 산 절도, 지금 있는 열린선원도 저잣거리에 있는 사찰이다. 나의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스님들은 숲 속에 살아서 공기도 맑고 이리저리 걸어만 다녀도 건강할 것이라는 말을 할 때면 속으로 웃는다. 하루 종일 있어도 밖에 눈이 오는지 비가 오는지 해가 떴는지 잘 분간이 되지 않는 막힌 공간에 살고 있음을 몰라서 하는 이야기이기에 그렇다. 산 속에 살았던 적도 물론 있었다. 은사스님 밑에서 종무행정을 하고 수행전법지도를 하면서 이태 정도 보냈던 정릉의 천중사라는 절은 자그마한 산에 있는 꽤 넓은 도량이다. 그런데 저잣거리 수행전법도량인 열린선원은 설 같은 명절에 차례와 세배하는 시간이지나면 산 속 절보다 더 조용하다. 아주 조용하다. 하루에도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시장의 상인과 고객들, 선원에 오는 불자들, 이웃교회에 오는 신자들로 조금 북적거리지만 저녁부터 밤까지는 고요 그대로이다. 교회의 기도회가 열리는 저녁이나 특별법회와 아카데미 등 강좌가 열리는 시간에는 밤에도 시끌거리기는 하지만 대개의 경우 아주 조용하다. 아니, 산 속에 있는 절보다도 오히려 더 조용하다. 요즘은 근처에 근무하는 직장인들이 시끄러운 곳을 피해 마음의 갈피를 잡으려고 찾아오는 명상처이기도 하다.

설에는 합동차례와 세알세배를 함께 모신다. 차례를 지내되 여느 사찰에서처럼 스님이 제사를 지내주는 것이 아니다. 직접 구성한 불교차례의식에 따라 불자들이 자기 가정에서 조상들에게 차례를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나는 그저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름이 차례이므로 다른 법회를 볼 때나 재(齋)를 올릴 때에도 차를 올리지만 명절차례(茶禮)에는 반드시 차를 올린다. 그리고 나와 함께 불자들이 부처님께 삼배를 올린다. 이어서 스님께 불자들이 합동 세배를 올린다. 그리고 나서 70대 이상 앞으로 와서 나와 함께 하고 나머지가 세배를 올린다. 어른 가운데 한 분이 덕담을 한다. 이어서 60대 앞으로 나오고…10대가 세배를 올린다. 10대는 10번의 절을 하게 되어있다. 요즘은 한복 입고 오는 이들이 드문데 아이들은 색동옷을 입고 오면 아주 사랑 받는다. 세배가 끝나면 스님이 덕담과 함께 새 돈을 바꿔서 예쁜 봉투에 넣어서 세뱃돈으로 나누어 준다. 나이든 신도들은 주기만 하다가 받아보니 아주 좋다고 웃는다. 스님이 준 것이라고 지갑에 신표처럼 가지고 1년 내 다닌다고 한다.

   
▲ 불자들이 나이순서대로 세배를 하는 모습. 사진=법현스님.
어렸을 적 설이 다가오면 설빔이며 맛있는 먹을거리 그리고 인사를 드리며 받는 세뱃돈 생각에 마음이 달떴다. 청년시절까지는 아버지 어머니께 세배 드리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동네 어르신들께도 세배를 드렸다 .마을 단위로 함께 모여 단배(旦拜)를 올리기도 하였다. 절에서는 부처님들과 보살님들 그리고 나한님들과 신중님들께 차례로 세배 드리고 어른스님들께 차례로 세배 올렸다.

일제 때 일본의 풍습에 따라 양력설을 쇠라고 했다. 앞에서는 양력으로 쇠고 몰래 음력설을 쇠면서 이중과세의 풍습이 생겨났다. 일제의 영향을 받은 이승만과 박정희도 마찬가지. 전두환은 독재의 흔적을 지우려 국풍을 일으킨다며 민속의 날로 이름을 바꿔 음력설을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인인 김영삼정부에 와서 음력설을 정식으로 설 공휴일로 삼아서 정착시켰다. 그것은 민주와 함께하는 3민(민족, 민중, 민주)의 영향이었다.

문제는 김대중정부. 가장 민주적이라는 평가를 받을만한 김대중 씨가 들어서자마자 첫 번째 기자회견을 하면서 회견 끝 무렵에 이중과세의 어려움이 있으니 국민들의 뜻을 모아 하나로 결정했으면 한다는 말을 하였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양력이 좋다”고.

나는 회견을 보자마자 글을 써서 언론사에 보내서 불교언론을 중심으로 보도되었다. 음력 설은 민족의 설이고 양력설은 일제의 설이며 과학적 근거가 별로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1998년 2월 4일 공청회가 열렸다. 서울대 손봉호교수가 좌장이 되어 열린 세미나에 “신정(新正)은 쉬고 설은 쇠어야 한다”는 등의 글로 음력설이 정당하다는 주장을 해 온 나에게 기자들이 연락을 해서 꼭 가봐야 한다고 하였다. “독수리 오형제도 아니고 왜 내가 가야하나?”하였다. “그동안 이 문제에 관해서는 스님밖에 관심을 가진 이가 없으니 스님이 가셔야 합니다”하고 간곡히 말했다. 그래서 청중으로 참여했다. 그날은 입춘이어서 제주도에 있는 정방사에서 오전에 법문을 하고 점심을 먹자마자 바로 비행기로 날아와서 공청회장에 참여했다. 손봉호교수 등 양력 옹호론자들이 주로 발표를 하였다.

대강의 주제는 “음력설의 영어 표기가 chiness new year이므로 우리 것도 아니고 논어에 보니 주(周)나라의 설은 한족(漢族)과 달리 음력 1월1일이라 했으니 중국도 음력이 아니며…”등이었다. 단상에서의 발표가 끝나고 객석에서도 한마디 하라고 하여 손을 들었더니 기회를 주었다. 아마도 일반인이 아니라 승려여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어나서 말했다. “위원장님! 영어에 표기된 것을 따르자고 하시니 영문지도에 Japan sea라고 되어 있으면 우리도 일본해라고 표기해야합니까? 중국 사람들이 주나라의 설이 이상하게도 음력1월1일이라고 되어 있으며 수서 등에는 신라의 설이 주나라의 그것과 같이 음력 1월1일이라 하였으니 음력설이야말로 우리 것 아니겠습니까? 일제와 독재시대에 총칼을 가지고도 바꾸지 못한 것을 더구나 이렇게 경제위기까지 온 상황에 국민들을 다시 분열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음력설은 그대로 지켜져서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설을 지키는데 조그마한 기여를 한 셈이다. 설은 그저 쉬는 날이기도 하지만 민족의 정신과 문화가 어려 있는 큰 축제인 것이다. 그래서 출가수행자이지만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그리고 재미있게 쇠도록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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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 쇠고 2017-02-08 11:04:30

    정신없이 지내다가, 이렇게 좋은 글을 이제야 읽었네요. 이 글이 설 1주일 전이라라도 게재되었으면 이번 설 연휴에 가르침대로 사용했을텐데... 아쉽네요.ㅠㅠ. 내년부터라도 그리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설 지킴이 활동도 고맙습니다. 모두가 손놓고 있을 때 스님처럼 나서주시는 분이 있어 세상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가리라고 생각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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