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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스님은 오래전부터 우리가 잘 아는 어른유철주 <위대한 스승 청화 큰스님>
청화스님(1923-2003).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유학(메이지대학)하고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24세에 백양사 운문암을 찾아 송만암 스님의 상좌인 금타스님을 은사로 출가. 하루 한 끼의 공양과 40여년간의 장좌불와 그리고 청빈과 원통불교사상을 평생의 신조로 삼아 수행했다. “스스로의 마음을 부려 부처로 살 것”을 가르치다 2003년 11월 12일 곡성 성륜사에서 세수 80세, 법랍 56세로 입적하였다. <정통선의 향훈> <원통불법의 요체> 등의 법문집과 <육조단경> 주해서 등 30여 종의 문집을 남겼다. 사진=성륜사 제공

‘우리 시대의 도인’ 청화스님, 2003년 11월 12일 세수 80세, 법랍 56세로 원적에 들었다.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스승이란 존재는 지워지지 않는다. 다시 불리어지는 존재가 스승이다.

청화스님을 은사로 출가했거나, 가르침을 받은 이들은 가슴 속에 청화스님의 가르침을 고이 품고 있다. 그들은 고불총림 방장 지선스님, 조계종 원로의원 성우스님, 벽산문도회 문장 용타스님, 부천 대륜사 주지 대주스님, 정해숙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남지심 작가, 강행원 화백, 배광식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다.

유철주 <고경> 편집장이 그들을 만나 청화스님을 절 밖의 세상에 세웠다. <위대한 스승 청화 큰스님>. ‘스무 명의 제자가 전하는 청화 큰스님의 삶과 가르침’이라는 부제를 달아 펴냈다. 상상출판 펴냄.

조계종 원로의원 성우스님은 청화스님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면서 “처음 뵈었는데도 오래전부터 잘 아는 어른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마음속에 새겨왔던 수행자의 표상이 청화스님과 겹쳐진 때문이다. “말씀을 많이 나누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말씀 자체가 굉장히 부드러웠습니다. 말씀을 하시기 전에 이미 저한테 많은 말씀을 하신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유철주 지음, 상상출판 펴냄. 304쪽, 16000원.

후학들은 한결같이 청화스님의 맑고 자애로운 눈빛을 빼놓지 않았다. 도일스님(함평 용덕사 선덕)은 “‘수행자의 눈빛은 저렇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맑고 빛났습니다. 큰스님을 스승으로 모신 것은 저에게 다시없는 행운이었습니다”고 회고했다. 현장스님은 “큰스님의 눈빛을 한 번 보고는 까닭모를 감동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는 분이 그렇게 많았습니다”고 전했다. 왜 그랬을까. “큰스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부처님처럼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바로 자비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청화스님이 내뿜는 자비와 배려는 철저한 수행에 뿌리가 닿아있다. “토굴이든 암자든 어디에 계시든지 그 누구보다 혹독하게 수행을 하셨습니다. 외로움과 고통을 수행으로 극복하셔서 도를 이루셨습니다. 큰스님께서 저를 찾으셔서 가면 낮이든 밤이든 누워 계신 것을 한 번도 못 봤습니다. 흐트러짐이 없었던 것입니다.”(도일스님)

그래서 후학들은 큰스님을 닮고 싶다. “철저하게 수행하셨던 삶을 닮고 싶습니다. 수행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목숨을 내놓을 것 같았던 스승님의 위대함을 닮고 싶어요. 단순하게 열심히 수행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수행 끝에 깨달은 자의, 부처님의 말씀과 행동을 보여주신 분이 바로 청화 큰스님이십니다."(성륜사 주지 명원스님)

명원스님은 덧붙여 “큰스님께서는 그야말로 회통불교, 원통불교의 가르침을 남기셨습니다. 사람들은 단편적으로 큰스님을 염불선의 주창자로만 얘기하지만, 그것보다는 방대한 불교의 모든 것을 회통해서 한국불교에 내놓았습니다. 이런 점을 사람들이 좀 더 많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고 당부했다.

청화스님은 지선스님에 대해서는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80년대 민주화운동에 매진하던 지선스님을 종종 오라해서 건강을 염려했고, 언제나 두둑하게 여비를 챙겨주었다. 옥고를 치를 때는 교도소를 찾았다. “저는 깜짝 놀랐죠. ‘어떻게 이렇게 멀리 오셨습니까? 하고 여쭈면 ’잠깐 틈이 나서 들렸네. 건강하게 잘 있는가?‘라고 위로를 해주십니다. 너무 감사한 말씀이죠. 영치금도 넉넉하게 넣어주셨습니다.”

청화스님의 맏상좌인 용타스님은 ‘무주당 청화(無住堂 淸華) 대종사 행장’에서 청화스님의 도량신조(道場信條)의 유전을 다짐했다. “가장 청정한 도량, 가장 엄정한 계율, 초인적인 용맹정진의 휘호를 손수 쓰셔서 도량에 내거셨습니다. 큰스님 수행도량의 사부대중은 이 3대 기조를 기준으로 정진하였기에 세상의 귀감이 되는 수행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용타스님은 다시 태어나 청화스님을 만나면 다시 스승으로 모시고 미국 포교에 나서겠다고 했다.

한편 청화스님은 <정통선의 향훈> <원통불법의 요체> 등의 법문집과 <육조단경> 주해서 등 30여 종의 문집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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