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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은 두루패셔니스트
  • 법현스님_열린선원장
  • 승인 2017.04.0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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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두루패션’이라는 말을 들어보았는지 모르겠다. 두루두루 모든 경우에 걸맞는 옷들을 가진 경우라고 느끼는가? 아니다. 한 벌로 곳곳에 두루두루 다닌다는 말이다.

몇 벌의 옷을 가지고 있는가? 옛날 어느 나라 대통령 부인이 밀려난 뒤, 그녀의 옷이나 구두가 수천켤레에 달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먼 남의 나라만이 아닐 것이다. 재미없는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방금 그 결말을 보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멋지게 치장하느라 정작 중요한 일을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좋지 않은 일은 직접 하다가 그야말로 패셔니스트가 되었는데도 몇 빼놓고는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비극적인 여인의 종말을.

아무래도 여성들은 최소한 하루에 한 벌씩 갈아입을 숫자만큼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것도 유행에 따라, 기호에 따라,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사두었던 옷들이 많을 것이다. 이사할 때 책과 옷을 버리기 어렵다는 말을 한다. 결혼식장에 갈 때는 밝은 계통의 옷을 입고 가야 어울리고 장례식장에 갈 때는 어두운 계통의 옷을 입고 가야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출가수행자들은 결혼식장에도 회색옷, 장례식장에도 회색옷, 일할 때도 회색옷, 쉴 때에도 회색옷, 돌아다닐 때에도 회색옷만 입고 다닌다. 물론 남방이나 티베트, 몽골의 승려들은 붉은 계통의 옷을 다닐 때나 예불 의식할 때나 참선할 때 가리지 않고 입는다. 그래서 두루패션이라고 한다. 중국은 주황색 계통을 입는다. 주황은 불교, 검정은 도교, 신도는 회색을 주로 입는 듯하다. 일본은 다양한 색의 승복을 입는다. 두루패션이라는 말은 옛날에 보았던 영화 '오세암'에 나왔던 대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직지사 학인스님들의 두루(?)패션. 불교포커스 자료사진.

가끔 신도들 특히 여성 신도들이 승복이나 가사를 시주하려고 한다. 그런데 대강 입을 것이 있는 나로서는 사찰에 필요한 다른 것을 시주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말한다.

“승려들은 사계절 한평생 한 색깔, 한 모양의 옷 몇 벌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불교의 수행자, 스님, 비구(니)의 삶입니다. 비구, 비구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나요? 아, 빌어먹는 이, 얻어먹는 이라고요? 많이 알고 계시는군요. 그렇습니다. 비구라는 말은 얻어먹는 이, 빌어먹는 이라는 즉 걸사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랍니다.”

그러면 조금 복잡하지만 꽤 본질적인 이야기를 해주므로 귀를 쫑긋하고 듣는다.

“비구란 말은 인도어 빅쿠(bhikku)를 중국 한자로 옮길 때 비슷하게 소리 나는 대로 비구( 比丘)라 한 것을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니(尼)는 여성을 뜻합니다. 따라서 비구니는 여자스님입니다. 비구는 또 필추(苾芻)라고도 합니다. 역시 발음이 빅쿠(bhikku)와 비슷한데다가 향내가 좋고 얇고 길게 자라는 질긴 풀의 이름이기도 하답니다. 그런데 비구라는 말 속에 숨어있는 아주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윤회를 두려워 하는, 윤회를 싫어하는, 윤회를 멀리 떠나는 이라는 뜻입니다. 출가해서 비구, 비구니가 되었으면 열심히 수행정진해서 윤회를 벗어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어온 업력에 의해서 다시 되풀이 되는 삶인 윤회 말고 자신의 의지에 의해 다시 태어나는 삶이 있기는 합니다. 그것은 다시 태어난다기보다는 몸을 나타낸다고 하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입니다. 이른바 보살의 원력에 의한 삶입니다. 지혜의 문수보살, 자비의 관음보살, 실천의 보현보살, 원력의 지장보살, 파워 즉 힘의 대세지보살… 등의 삶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 도량에 필요한 것이나 내가 수행하고 전법하는데 필요한 다른 것을 시주해달라고 한다. 그러면 어떤 반응을 할까? 대개는 아주 싫은 표정을 한다. 자기들이 해주고 싶은 것을  받아줘야 좋아하는 것이다. 또, 스님들이 시주하도록 하기 위해 스님의 몸이 법, 진리를 키우는 것이기 때문에 그 법체(法體)를 소중히 하는 것이 큰 공덕이라고 말해왔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나를 아끼고 더 따르는 불자들도 눈을 찡긋하면서 여성의 마음을 살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가사, 장삼 시주는 받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남으면 상좌들에게 나눠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한 번 두 번 받다보니 부끄럽게도 꽤 많아졌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종단의 젊은 교육자시절에 강의를 하다가 물을 것이 있다는 후배 비구니스님이 일어나서 ‘스님은 옷 입은 것이 꼭 행자 같아요’라는 말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울에 득도하여 겨울 장삼과 두꺼운 가사를 수했는데 아무래도 날씨로 보나 분위기로 보나 어울리지 않게 보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삼의일발의 정신으로 속옷까지 얻어 입으려던 생각을 조금 바꿔서 품위를 위해서는 기성복이나 맞춤옷을 한두 벌이라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제철 옷도 갈아입을 것을 생각해서 바지 적삼과 조끼까지 두 벌은 가지고 있다. 철을 겹치게 본다면 두세 벌이나 된다.

아무튼 수행자는 뭘 잘 맛있게 먹지 않고 겨우 배고픔만을 면하도록 먹어야 한다. 그리고 공부하는 데에만 온 힘을 다해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몸이 가볍고 마음 또한 부드러워 누구에게나 좋은 인상 푸근한 얼굴로 대해야 한다. 또한  저 필추(苾芻)가 얇고도 길게 자라나는 것처럼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참아내야만 비구(니)라고 할 수 있다.

남방불교에는 탁발이 전통으로 자리잡고 있다. 불교포커스 자료사진.

필추(苾芻)처럼 살려면 향내나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가며 철따라 건강검진 받고 자그마한 아픔이라도 몸에 생길라치면 약 먹고 수술하고 해서 건강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 하고 요즘 사람들은 생각함직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비구가 되지 못한다.

배부르고 등 따시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수면실 앞에 ‘흑암지옥(黑暗地獄)’이라고 이름 걸어놓고 마음 닦는 공부에 열중하는 어떤 수행자가 그렇게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잠이나....재물, 음식, 명예, 수명, 이성에 대한 그리움이나....일 것이다. 그래서 비구는 얻어먹어야 한다. 얻어먹어야 맛있는 것만을 배불리 먹지 못하고 그러면서도 먹거리의 중요성을 제대로 알게 되는 것이다.

또, 많으면 오히려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이면서도 없어도 죽을 수밖에 없어서 깨달음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먹거리이다. 그것을 제공하는 이의 고마움을  알도록 하기 위해 얻어먹어야 한다. 그렇게 얻어먹는 것을 탁발(托鉢)이라 한다. 탁발은 승려의 중요한 일상생활이다. 지금도 남방불교의 나라 미안마, 태국, 라오스, 스리랑카 등에서는 매일 탁발하고 있다. 선종에서는 승려의 옷인 가사(袈裟)와 밥을 빌고 먹을 때 쓰는 그릇인 발우(鉢盂)를 법을 전하는 신표(信標)로 써서 발우 자체가 승려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한 때 부처님의 제자들이 둘로 나뉘어 토론을 한 적이 있다. 하나는 가난한 사람이 어려우니 가난한 사람에게 밥을 빌어먹고 승려는 법을 설해주어 복을 나누어 주자고 하였다. 또 다른 이는 부자에게는 그런 기회가 적어지면 도로 가난해지니 부자에게 가서 밥을 빌자고 하였다. 어느 것이 옳은 자세일까? 그 때 부처님이 말하기를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복은 때가 되면 적어지고 작아지므로 누구나 할 것 없이 가리지 말고 그들에게 가서 평등하게 밥을 빌고 평등하게 법(法)과 복(福)을 나눠주라고 하였다. 그래서 가리지 말고 평등하게 일곱 집을 다녀서 얻은 음식이 한 그릇이 되면 그냥 그대로 먹으면 되고, 한 그릇이 못되어도 더 이상 다니지 말고 얻은 만큼만 먹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것이 칠가식(七家食)이라고 하는 초기불교의 전통이다, 지금은 지켜지지 않지만.

그런데 여러 종교가 함께하고 있는데다가 인도, 스리랑카, 미얀마 등 남방불교 지역과는 달리 수행자를 우대하는 풍토가 자리 잡지 못한 중국, 한국, 일본 등에서는 탁발이 쉽지 않다. 그런데다가 우리나라는 1948년 미국에서 오래 생활한 기독교인인 이승만 씨가 미 군정의 도움을 얻어 정권을 잡고 자신의 반대쪽인 김 구 등의 후원세력을 무력화 하는 방편으로 불교계를 분열시켰다. 그러면서 불교의 오랜 전통인 탁발을 금지시킨 것이 아직까지 뇌리에 남아 탁발을 불법이라고 못하게 하고 있다. 물론 사이비 탁발승의 행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 때의 빗물이 장강(長江)의 물을 사철 흐리게 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탁발이야말로 가장 불교적이며, 가장 승려다운 생활이라 할 수 있다.

초기불교에서는 굼벵이, 지렁이 등을 죽게 할까봐서도 그렇지만 얻어먹느라 농사 등 생산활동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중국의 선종승려들이 초창기에 율종사찰에 깃들어 살면서 자급자족을 위해 농사를 장려하면서 요즘에 와서는 생산활동을 하지 않으면 놀고먹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향까지 생겨났다. 백장선사의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굶겠다(一日不作一日不食)’는 청규도 그 배경은 슬픈 것이다.

나는 그런 만큼은 아니고 아직 저잣거리 월세포교원을 면치 못하여 땅은 없어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주말농원 스무평 정도의 땅을 빌려서 상추나 쑥갓, 시금치나 고추, 가지, 오이, 호박 등을 심어서 불자들과 함께 먹는다. 초기불교도의 눈으로 보면 파계행위지만 대승불교도의 눈에는 올바른 수행자로 보일 것이다. 스님이 지어서 오염이 적을 것으로 믿고 맛나게 먹는다. 주로 아침에 예불하고 아침 먹고 스토리, 밴드, 단체방, 페이스북 등 SNS로 소통하고 나서 밭으로 나가 농사일을 돌본다. 그 때도 같은 옷을 입으니 불자들은 법복을 더럽힐까 걱정한다. 두루패셔니스트의 시대고(時代苦)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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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으로 2017-04-04 10:29:49

    수행자의 삶과 자세에 대하여 쉽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특히 스님의 경험에 비추어 진솔하게 말씀해주셔서 더욱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고맙습니다.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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