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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두부

두부는 희고 무르고
모가 나 있다
두부가 되기 위해서도
칼날을 배로 가르고 나와야 한다

아무것도 깰 줄 모르는
두부로 살기 위해서도
열두 모서리,
여덟 뿔이 필요하다

이기기 위해,
깨지지 않기 위해 사납게 모 나는 두부도 있고
이기지 않으려고,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모질게
모 나는 두부도 있다

두부같이 무른 나도
두부처럼 날카롭게 각 잡고
턱밑까지 넥타이를 졸라매고
어제 그놈을 또 만나러 간다

- 이영광 「나무는 간다」 중에서 -

불교포커스 자료사진.

부드럽고 고소한데다 비교적 값도 저렴해서 즐겨 먹는 두부. 된장찌개 김치찌개에도 넣고 뚝뚝 썰어 그냥 부쳐서 혹은 짭짤하게 조려먹어도 맛있는 두부. 말캉한 그대로 양념간장에 쿡 찍어 먹어도 좋은 두부. 이래저래 먹기 편한 두부, 어쨌든 만만한 두부.

그렇지만 얕보지 마시라. 이래봬도 각진 모서리 열두 개에 모난 뿔을 여덟 개나 가졌다. 제 딴에는 네모나고 날렵하게 각을 세우고 있는 거다.

조금만 힘을 줘도 금세 뭉그러질 하얗고 말랑말랑한 이것이, 그래도 한 번 이겨보겠다고, 이대로 깨져버릴 수는 없다고, 차마 눈물을 보일 수는 없는 거 아니냐고 꼿꼿한 듯 단단한 듯, 용을 쓴다.

물렁한 나도 꼿꼿하고 단단한 척 각을 잡고는 운동화 끈을 동여맨다. 종주먹을 흔들며 오늘 또 알바 찾아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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