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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 연등축제의 추억
  • 법현스님_열린선원장
  • 승인 2017.04.2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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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부처님 또는 부처님오신날을 떠올리면 무엇이 제일 먼저 생각날까? 먼저 연등이 떠오르고 아기부처님 목욕과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말이 생각날 것이다. 조금 더 배운 사람이라면 ‘삼계개고 아당안지’라는 말도 생각하겠지.

일찍이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부터 내가 ‘불교를 믿는다’고 할 때 곁에서 묻는 이들이 많았다. 어린이, 학생, 청년, 어른들을 지도하면서는 더 많은 질문들을 했다. 저잣거리에서 수행, 전법하니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보다는 기본적인 이야기들을 물어왔다. 그래서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열린선원장 법현스님의 설법담화. 사진=법현스님.

연등은 무슨 뜻일까? 연꽃등(蓮燈)인가, 등을 밝히려 켜는 것(燃燈)인가? 부처님들이 태어날 때 발자국마다 연꽃이 피어나서 걸음을 받든다는 이야기에서 연꽃등을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등을 밝힌다, 사른다, 켠다는 뜻의 연등(燃燈)이다. 옛 부처님 이름이 연등(燃燈, Dipankara)이기도 하다. 가난한 여인의 정성으로 켠 등불이 비록 적은 기름으로 밝혔으나 왕과 신하들과 부자들이 밝힌 많은 기름의 등보다 늦게까지 꺼지지 않았다. 그이는 나중에 성불하리라는 수기(授記)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연등(燃燈)이다.

연꽃등(蓮燈)은 밝히는 여러 가지 등 가운데 하나의 종류이다. 수박등, 잉어등, 팔모등, 주름등, 만월등, 용등은 예전부터 우리나라나 일본에서 만들어왔고 요사이는 로봇등, 비행기등,우주인등 같이 매우 다양한 등을 만든다. 현대의 과학기술과 재료들을 활용해 새로운 등과 전통등을 만들어 축제분위기를 한껏 돋우고 있다.

아기부처님 목욕은 율장이나 경전, 전기기록에 의하면 아기부처님이 태어났을 때 하늘에서 아홉 마리 용들이 나타나 목욕시켜주었다는 이야기를 따르는 의식이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코미디프로에도 나올 만큼 여러 가지로 해석하면서 이해도 하고 오해도 하는 말이다. 이해든 오해든 나름대로 의미 있는 것이다. ‘나는 누리에서 가장 앞섰다. 가장 높다. 마지막 몸이다’라는 말을 중국어로 옮기면서 ‘하늘 위아래 가장 높다’고 한 것이다. 본디는 ‘악고 아함 아스미 로깟서, 젯토 아함 아스미 로깟서, 셋토 아함 아스미 로깟서’라고 발음하는 인도 고어 파알리어라고 한다. 이에 관한 해석은 여러 가지로 하지만 ‘난 훌륭하다’는 뜻이다.

삼계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我當安之)라는 말은 욕심, 물질, 정신세계의 모든 존재들이 괴로워 하니 즉 온누리 뭇삶들[衆生]이 괴로워들 하니 내가 꼭 편안케 하리라는 뜻이다. 파알리어 ‘아야만띠마 자띠 나티다니 뿌납바오’라는 말을 옮긴 것이다. 초기불교 경전에 의하면 고타마 싯다르타의 깨달음은 괴로움의 시작인 태어남이 없어서 태어나지 않음을 알고 태어나지 않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 제 괴로움을 없앴고 다른 이들도 따라서 하면 그들의 괴로움을 없앨 것이니 편안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마하빠다나숫따>, <앗차리야 아부다 담마 숫따> 등 파알리어 경전과 <대본경> 등의 산스크리트어 경전을 중국어로 옮긴 아함경전에 나오는 말씀이다. <수행본기경> <태자서응본기경> <불본행집경> 등의 전기형 경전과 계율성전인 <비나야잡사>에 비슷하게 나온다. 부처님 전기서인 <불소행찬, 붓다차리타 Buddha Charita>에서 지금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한국불교에 큰 영향을 끼친 선종의 법어집인 <전등록>에도 나온다.

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데 정말 ‘고타마 싯다르타가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걷고 이 말을 했을까? 그랬다고 위 경서들에 나왔을까?’하는 물음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옛날에는 여러 가지 이유와 비유를 들어, 그리고 검색이 잘되지 않던 시절이므로 그대로 믿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 정말 그대로 했다고 이해하고 설명해왔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이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보통 불자나 교수, 법사, 스님들이라고 할지라도 이 부분에 관한 확신을 가진 분들도 있겠지만 대개는 신심으로 믿어야 한다는 말로 얼버무린다. 과거에는 모든 경전을 부처님이 설했고 그것은 한 점의 오류도 없다는 것을 믿었다. 물론, 요즘에도 그것을 믿는 이들이 자료를 보지 못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붓다를 향한 굳은 믿음에서도 그런 경우들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 설명하면 그냥 넘어가기는 하겠지만 머릿속이 맑지는 않을 것이다. 자료를 제대로 보지 않은 탓임을 고백하지 않은 잘못도 있다.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걷고 무슨 말을 했다고 스스로 증언하면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누가 옆에서 보고 증언해준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래서 부처님은 깨달은 순간도 스스로 홀로 앉아서 깨달았기에 증언해줄 이가 필요함을 느끼고 땅의 신[大地神]이 보았다고 해서 성도(成道)의 수인(手印)이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다.

자료에는 그렇게 나온다. 부처님이 그렇게 설했다고 경전에 나온다. 과거부처님들 가운데 첫 부처님인 비바시불(Vipasyin Buddha)께서 태어나실 때 그렇게 하셨다고 하셨다. 누구라도 수행해서 성불하면 어디선가 뚝 떨어진 이상한 경험을 하고 이상한 자기만의 말과 행동과 계율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비슷하거나 같은 길을 가리라는 생각 속에서 말씀을 하신다. 그것은 붓다가 알아낸 길, 가는 길이 새로운 길이 아니라 찾아낸 길이라는 설명에서도 알 수 있다. 이른 바 옛길 즉 ‘새로운 옛길’ 또는 ‘오래된 새 길’이다. 제국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설명한다. 깨달음의 제국으로 들어가는 길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 뒤 시기불, 비사부불, 구류손불, 구나함모니불, 가섭불에 이어서 석가모니불까지 그렇게 했으리라는 예측을 하게 한다.

경전편집자들이 이런 것까지 생각했다는 것이 참 놀랍고 재미있다. 아! 경전편집자들이라고 해서 놀라는 이가 있을 수 있다. 옛날에는 경전의 설법을 한 분인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 또는 받아서 옮긴 것을 뒤에 아라한과위에 오른 제자들이 암송해 전해 내려왔고 오류가 없다는 믿음으로 경전을 대했다. 요즘에는 암송하는 경전의 그룹이 다르다는 것과 내용이나 용어, 단어가 다른 것 그리고 훨씬 뒤의 역사에서 나오는 내용들이 끼어들어간 것, 인도가 아닌 곳에서만 나는 식물이나 현상들이 들어간 것 등을 보고 혼자서 한 것이 아니라 전승과 편집과정에서 집단지성이 개입된 즉 여럿이 편집한 것이라는 견해가 설득을 얻어가고 있다.

 

부처님오신날 연등축제(연등회)는 역사적인 탐구 말고 대한민국시대에는 용태영 변호사가 힘겨운 법 싸움을 통해 얻어낸 결과의 발전물이다. 이승만ㆍ박정희시대에는 자신들을 방해하는 세력들의 배후가 불교교단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탄압하거나 순치시키는 일들만을 했다. 강하게 탄압하고 살짝 도움을 주면 탄압했던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이 중생들의 속성이다. 그 두 정권에 의해 거의 죽어버린 것이 태고종인데 아직도 태고종 승려들이 그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탄압과 순치의 느낌 훈련에 녹은 개구리 같은 것이다. 처음에는 여의도광장에서 ‘부처님오신날 봉축법회’를 열고 조계사까지 ‘제등행진’을 하였다. 나는 1979년부터 지금까지 제등행진과 연등축제, 연등회로 이어지는 행사에 참석해왔다.

처음에는 중앙대 불교학생회원으로 참석했고 1981년에는 대학생불교연합회 서울지부장의 소임을 맡아 대불련 행진을 이끌었다. 당시 전두환정권에 아부하는 모습을 바람직하지 않게 생각한 대불련 본부에서는 봉축법회와 제등행진 불참을 결의하여 서울지부에 통보했다. 그런데 속사정과 과정을 설명하지 않고 조계종에서 대학생들이 데모할까봐 참석하지 말라 하였다고 했다. 그래서 지부 간부들과 의논해서 대불련은 별도로 행사를 진행하기로 하고 동국대학교 운동장과 중구경찰서에 집회신고를 하고 최후통첩을 하러 조계종에 가서 여러분들이 오지 말라고 하니 우리는 따로 하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런 적이 없으며 꼭 좀 참석해달라며 대불련이 참석하면 그동안 뒤쪽에서 행진하였는데 이번부터 맨 앞에서 이끌게 하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다시 서울 지부 38개 지회 회장들을 소집하고 본부 임원들을 초대해서 확대회의를 진행하였다. 조계종 등 불교집행부에 행사의 정부편향을 없애고 순수불교행사를 하도록 촉구하고 불자들의 최대축제이니 참여하는 것으로 결론짓고 즐겁게 참여하였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행사는 잘 진행하였다. 동국대운동장에 갈 때는 으레 생각난다.

지금은 순번제로 돌아가지만 당시에는 모든 사찰, 단체들이 행사 전날 결정에 따르는 고육지책을 쓰던 때였다. 태고종은 잘 참여하지 않다가 내가 교무국장을 하고 성주암 회주이신 종연스님이 교무부장을 할 때 적극적인 참여를 해서 3천여 명이 참석했던 때가 있었으니 격세지감을 느끼며 아쉬운 마음이 크다. 당시 성주암에서 비용을 대서 스카프를 4천여 장 마련해 인원을 동원한 추억이 있다. 대불련을 앞세운 것은 뒤에 좋게 쓰인 때가 있었으니 그것도 아프다. 교황이 방문했을 때인 1984년으로 기억한다. 교황은 국빈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우리가 보기에는 한 종교의 수장이 왔을 뿐인데 김포에서 청와대에 이르는 전체 차도를 내주었는데 전 불교도가 모이는 제등행진에는 반 차도만을 내주는 것이었다. 정부와 경찰의 횡포라고 생각한 우리는 대불련이 앞에 섰기에 연등을 도로에 내려놓고 누워버렸다. 할 수 없이 풀다 죄다를 하던 경찰이 손을 들고 전체 차도를 열어줬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괘씸하다.

뒤에 연등축제는 내가 회장으로 있던 불교레크리에이션포교회의 전임 회장인 지현스님과 지도자들이 참여하면서 부드럽고 재미있으며 역동적으로 바뀌었고 제목도 ‘부처님오신날 봉축법회와 제등행진’에서 ‘부처님오신날 봉축 연등축제’로 바뀌었다. 요즘은 조계종에서 ‘연등회’라고 서울시에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아서 진행하고 있다.

불기 2561년이니 부처님은 2561년 전에 태어나신 것이냐고 묻는 이들이 많다. 심지어 스님들마저 2561년 전에 태어나신 부처님이이라고 설법하고 기념사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올해가 불기 2561년인 것은 부처님이 태어나신 때부터 기리고 계산한 것이 아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즉 돌아가신 해부터 세어서 2561해가 된 것이라는 뜻이다. 왜 그러는 것일까?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을 그리워하고, 새기고, 따르며, 기리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태어날 때부터 부처님은 아니었다. 태어날 때는 우리들처럼 보통의 깨닫지 못한 중생으로 태어났다. 그런데 29살에 출가해서 6년간의 수행을 통해 깨달아서 아라한, 붓다가 되어서 존경스러운 분인 것이다. 35살부터 80살까지는 부처이지만 35살까지는 중생이라는 점을 생각해서 아예 80년을 빼고 기리는 것이다. 특이한 기산법이다.

부처라는 말은 우리말이지만 인도 고어 가운데 파알리어로 ‘Buddha’를 발음하면 그것이 ‘부처’다. ‘안 이, 깨달은 이’라는 일반 뜻이다. 더 제대로 살피자면 괴로움의 시작인 태어남, 밀려서 태어남, 어쩔 수 없이 태어남을 가진 존재들은 살다가 죽어가는 과정에 여러 가지 괴로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 괴로움을 겪지 않기 위해서 수행을 하는 것이고 그 결과 ‘다시는 몸을 받아, 생명을 받아, 존재로 태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실제로 태어나지 않는 분’을 붓다, 부처님이라고 부른다. 아라한도 마찬가지다. 연각불, 벽지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세상에서 높고 귀한 분[世尊]이라고 부른다. 그러니 오시는 줄 알았더니 가시는 것도 같고 잘 보니 오시지도 가시지도 머무시지도 않으시며, 가시는 듯[如去] 오시는 듯[如來] 머무시는 듯[如住]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랴? 우리는 오신다는 느낌이 더 좋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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