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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蓮)의 귀

연(蓮)의 귀

연들이 여린 귀를 내놓는다

그 푸른 귀들을 보고

고요한 수면에

송사리 떼처럼 소리가 몰려온다

물속에 가부좌를 틀고

연들은 부처님같이 귀를 넓히며

한 사발 맛있는 설법을

준비중이다

수면처럼 평평한 귀를 달아야

나도 그 밥 한 사발

얻어먹을 수 있을 것이다

- 길상호 <눈의 심장을 받았네> 중에서 -

‘부처님오신날’(불기2561년)이다. 때맞춰 나무며 풀이며 눈부신 연둣빛에다 꽃들도 화사하게 피어나 좋기만 한데, 요즈음은 이 계절을 잘 누릴 수가 없다.

추운겨울 내내 촛불 밝혀 일궈낸 대선이건만, 일정이 촉박해 후보들의 정책을 꼼꼼히 살펴볼 시간이 부족하다. 어쨌든 대선이라고 요란한 말들은 무성하다. 좌우로 편을 가르고 종북 운운하며 표를 구걸하는 인사까지 대통령하겠다고 목청을 높인다. 세월호가 삼년 만에 뭍에 올라왔지만 아직 돌아오지 않은 가족을 기다리느라 유가족들은 하루하루 애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와중에 미국은 사드를 야밤에 기습적으로 들여놓고는 사드값을 내놓으란다. 어처구니없으면서도 무슨 이면합의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이렇게 복잡하고 어수선한 우리네와 상관없이, 아니 오히려 무언가 깨닫기를 바라는 것처럼 연(蓮)들이 귀처럼 생긴 연잎을 내어놓는다. 연못 위에 펼쳐진 푸른 귀들을 보려는 이들이 몰려와 조용했던 수면이 왁자지껄해진다. 그러자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잎을 커다랗게 넓히던 연이 부처님의 설법을 펼치듯 고운 연꽃을 피워 올리려 한다.

시인의 말마따나 이 설법을 제대로 잘 들으려면 수면을 닮은 평평한 귀를 먼저 달아야 할 게다. 그리고 오래도록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어야겠지. 그러면 갈피 잡기 힘든 이 삶에도 어떤 깨우침이 찾아오지 싶은데, 두서없이 설렁대느라 오늘도 괜히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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