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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 얽힌 역사 그리고 상상력
  • 하정현_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17.05.1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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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어느 사회학자의 첫 소설 《강화도-심행일기》가 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 책은 조선의 운명이 위태롭기 짝이 없던 1876년에 신헌(申櫶)이 일본대표 구로다 기요타카(黑田淸陸)와 한 달간 담판을 통해 조일수호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을 저자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것이었다. 이 책의 내용이 시사하는 바는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살길을 찾아 몸부림쳤던 조선의 모습이 2017년 한국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필자는 강화도에 관해 생각하게 되었다. 강화도는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역사를 망라하는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고대에 하늘에 제사를 올린 곳, 고려 궁지 및 대몽 항쟁지, 천주교인들의 처형지, 근대의 격전지 및 근대조약 체결지 등이 강화도에 있다. 강화도를 통해 강대국에 둘러싸인 오늘날의 한반도 자화상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문득 필자에게 든 생각은 만약 이러한 강화도를 제목으로 고려시대를 서술한다면 어떨까하는 것이다. 짐작컨대 굴욕과 항거의 장소였던 고려의 강화도에 대해 서술한다면 현 한반도 상황을 이해하는데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고려시대에 무신정권의 기틀을 세운 최충헌은 17년간 집권하면서 4명의 왕을 폐위시켰다. 당시 최충헌의 권세가 왕을 능가하여 그의 뜻을 거스르기만 하면 곧 주륙(誅戮)을 당하였다. 희종은 최충헌을 죽이려다 실패하여 폐위 당했다. 최충헌에 의해 강화도로 쫓겨 갔던 명종의 맏아들이 희종에 이어 왕위에 올랐는데, 재위 2년 만에 병이 심하여 훙(薨)하였다. 강종의 태자 진(瞋)이 유조(遺詔)를 받아 왕위에 올랐으니, 그가 고종이다. 고종 18년(1231)에는 거란의 침략을 막는데 도움을 주었던 몽골이 고려를 침략하기 시작하였고, 이로부터 38년간 고려왕은 강화로 천도하여 항전하였다.

   원종11년(1270) 고려는 강화도시대를 마감하고 개경환도를 하였다. 대몽항쟁은 끝났지만 이때부터 고려는 100여년 가까이 원나라의 부마국으로 전락하여 원의 간섭을 받아야 했다. 고려왕이자 쿠빌라이 칸의 사위, 충렬왕이 재위할 때 승려 일연은 《삼국유사》를 편찬하였다. 이때 그는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다. 노구의 승려가 고대사(古代史)를 다시 쓰려고 마음먹은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일연은 평생 내우외환이 일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최씨 집안이 왕권을 능멸한 이래 몽골의 침략과 간섭에 이르기까지 고려의 왕권은 땅에 떨어진지 오래된 터였다. 일연은 고조선을 비롯한 고대 국가의 시조 왕들이 모두 ‘하늘’이 점지해준 신성한 분들이라는 전승을 여과 없이 기록했다. 그가 ‘술이부작(述而不作)’ ‘불어괴력난신(不語怪力亂神)’이라는 역사기술의 대원칙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연대기에 따라 신이(神異)한 일을 서술하고 주석까지 다는 파격을 감행하였다. 일연은 그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분절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메시지가 담긴 이야기 형식의 역사를 서술하였다. 

  고승 일연에게는 《삼국유사》 편찬이 선열(禪悅)의 여가를 활용해 이룩한 비중이 작은 사업이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처했던 당대의 위기를 생각해보면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일연이 자신의 상상력과 밀회하며 신화-역사 의식을 새롭게 했던 이유는 당시의 절박한 역사적 상황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도 일연의 상상력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이 글은 한국종교문화연구소 뉴스레터 470호에 실린 글입니다. 글쓴이 하정현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의 논문으로는 <1920년대-30년대 한국사회의 '신화'개념의 형성과 전개>, <근대 단군 담론에서 신화 개념의 형성과 파생문제>, 〈신화와 신이, 그리고 역사〉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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