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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월

1997년,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입니다. 광주에 있는 ‘참교육사’라는 곳에 봄맞이 생활한복을 사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버스가 고속도로로 진입하려다가 난데없이 멈춰 섰습니다. 경찰의 검문이 있다더군요. 왜 경찰이 버스를 세우고 검문을 한다는 건지 영문을 알 길 없었습니다.
 
버스 문이 열리고 정말로 경찰 몇몇이 버스 안으로 올라왔습니다. 승객들을 찬찬히 살피면서 오더니 버스 뒤편에 앉은 저를 유심히 바라보더군요. 그리고 잠깐 내리라고 합니다. 어찌하여 나를 내리라고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리지 않겠다고, 왜 내가 내려야 하냐고 항의를 했습니다.

그러자 주민등록증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주민등록증 없다고 했더니 확인할 것이 있다며 저를 다짜고짜 버스에서 끄집어 내립니다. 이런 황당하고 억울한 일이 있나 싶어 분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곤 둘러맨 제 바랑을 빼앗아 뒤지기까지 하더군요. 경찰 두 사람이 제 팔을 붙들고 있어서 저항은 미약했고 저는 한낱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일 뿐이었습니다.

계엄령 철폐를 외치는 시민들이 광주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원 및 경찰과 대치하는 모습. 사진=5.18기념재단 홈페이지.

이윽고 제 바랑을 뒤진 경찰은 그나마 제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나름의 신분증을 발견한 모양입니다. 그것은 생년월일이 찍힌 곡성공공도서관 회원카드였습니다. 멋쩍은 듯 피식 웃더니 “야! 니 고등학생이냐? 에린 놈이 삭발해가지고 옷도 이상하고, 가방도 이상한 거 매고 댕기고, 글고 고무신은 또 뭐다냐.”

저는 주섬주섬 바랑에 제 소지품들을 주워 담으며 말했습니다. “제 이름은 한명철입니다. 머리카락은 무명초라 짧게 깎은 것이고 이 옷은 생활한복입니다. 바랑을 메고 고무신을 신는 게 뭐가 문젭니까? 대체 뭣을 잘못했간디 버스에서 강제로 내리게 하고 넘에 가방을 함부로 뒤집니까? 이게 경찰이 고등학생한테 할 짓입니까?” 분노에 찬 항변에 경찰은 대수롭지 않은 듯 ‘아이고, 귀찮응께 언넝 버스로 가야!’ 하는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습니다.

저를 태운 버스는 다시 광주를 향했고, 가는 내내 분하고 억울했고 이런 일을 왜 겪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광주에 들어서자 시내 곳곳에 무장한 전투경찰들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기분도 언짢은데다가 분위기도 그렇고 뭔가 이상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겠으나 오월, 광주에서는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동시에 광주의 오월이 무엇인지, 왜 어린 제가 그런 일들을 겪어야 하는지 아는 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습니다. 바로 그 날부터 광주의 오월은 그냥 달력상의 5월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활한복을 사러간 참교육사는 어떤 곳이고, 왜 경찰은 버스를 세워 수상한(?) 옷을 입은 저를 검문하는지. 시내 곳곳에 배치되었던 전투경찰과 거리에 걸린 수많은 만장과 현수막들, 도청 앞 금남로 거리를 가득 메운 많은 대학생들과 시민들…. 눈부시게 푸르른 5월임에도 무겁고 어두운 잿빛 톤의 광주 5.18은 그렇게 저를 관통하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스물다섯이었던 2005년에 농민회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처음 망월동 묘지에 갔었습니다. 당시 전국농민회총연맹(이하 전농)은 전용철, 홍덕표 두 농민 열사를 보내고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반대 투쟁을 선포하면서 여느 때보다 비장한 각오로 망월동을 찾았습니다. 정부가 조성한 5.18묘지가 아닌 구 망월동 묘지 앞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고 저 또한 원 없이 울었습니다. 왜 눈물이 나는지를 생각할 것 없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면 그냥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 투쟁이 뜨겁고 처절하고 격해질수록 눈물이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5월 18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5.18민주화운동기념식'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해 유가족을 위로했다. 사진=청와대.

2017년 오늘, 광주에선 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국민대통합’ 행사로 치러졌습니다. 새로 선출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노무현 정부 이후 보수정권에 의해 금지됐던 ‘임을 위한 행진곡’이 9년 만에 5.18묘역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잊지 못할 이름들이 울려 퍼졌습니다. 1982년 광주교도소에서 광주 진상규명을 위해 40일간의 단식으로 옥사한 스물아홉 살 전남대생 박관현, 1987년 ‘광주사태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노동자 표정두, 1988년 ‘광주학살 진상 규명’을 외치며 명동성당 교육관 4층에서 투신 사망한 스물네 살 서울대생 조성만, 1988년 ‘광주는 살아 있다’를 외치며 숭실대 학생회관 옥상에서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숭실대생 박래전. 오월의 죽음과 광주의 아픔을 자신의 목숨으로 세상에 알리려했던 4명의 열사를 일일이 거명했습니다. 5.18유가족을 비롯한 그곳에 있던 많은 사람들과 소식을 접한 시민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늘의 눈물은 위로가 되었고 감동이 되었고 역사가 되었습니다.

한낮의 기온이 섭씨 30도에 달했던 오늘, 저는 건설노동조합원으로 이곳 안산에서 땀 흘려 일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도 가만히 눈물을 흘렸습니다. 1997년 그 때로부터 만 20년이 지난 2017년 5월 18일, 제게 오늘은 다시 오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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