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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화된 여성대통령에서 페미니스트 남성대통령으로

놀랍고도 감동적이었다. 피우진이라는 이름을 매스컴에서 듣는 것도 반가운데, 그녀가 국가보훈처장이 된다니... 교사에서 육군 소위, 특전사 중대장, 그리고 헬기 조종사였던 피우진. 유방암에 절망하기는커녕, 한쪽 가슴을 절제한 후 군 업무에 방해가 된다며 다른 한쪽 가슴도 절제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수술로 인해 2급 장애 판정이 내려지자 전역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나는 영원한 군인”이라며 전역 취소 소송을 제기해서 어렵게 복직했다. 남성 상관들이 술자리에 부하 여군들을 부르자, 전투복에 완전 군장차림으로 보내서 남성들을 경악시켰던 “기쎈 여자”였다. 이 여성이 수구 꼴보수의 상징적인 자리로만 여겨지던 국가보훈처장이 된다니, 이불킥을 하며 혼자 웃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문재인후보가 페미니스트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을 때는 솔직히 ‘페미니스트는 아무나 하나’며 울화가 치밀었다. 가득이나 여성혐오로 시끄러운데 기득권을 가진 남성 정치 지도자가 페미니스트라니... 아마도 구색 맞추기용으로 여성 한 두 명을 내각에 끼워 넣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줄줄이 발표되는 여성 내각후보들의 면면을 보니 환호할 만하다. 그가 불러낸 여자들은 남편 덕이 돈이 많거나,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거나, 외모가 출중하거나, 학벌이 대단한 여자들이 아니었다. 자타가 인정하는 전문성을 가지고 조직에서 살아남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잘난 여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전대통령은 후보 시절 자신이 여성임을 드러내놓고 강조했다. 사실 그녀는 직장맘의 비애나 시집식구들과의 시월드, 명절증후군도 알지 못했고, 여성을 위한 법· 제도를 제안한 적도 없었기에 여성들은 ‘명예남성’이라 불렀다. 하지만 ‘선거의 여왕’, ‘준비된 여성대통령’ 등 생물학적 성을 강조하는 섹스(sex)화된 여성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무능과 불통은 물론, 미용 시술 등으로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 날 때조차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을 고려해달라고 했다. 그녀 덕분에 ‘여자는 어쩔 수 없다’거나 ‘여자에게 정치는 맞지 않다’는 일부 남성들의 비아냥거림을 견뎌야만 했다. 비선 실세 최순실은 “일개 저잣거리 아녀자가 국정을 농단했다”며 여성혐오를 증폭시켰고, 장시호나 정유라, 조윤선 등 등장하는 조연들마다 문제적이었다. 그동안 유리천장을 뚫기 위한 여성들의 피와 땀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억울하기조차 했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18일 오후 세종정부청사에 국가보훈처에서 열린 '제29대 국가보훈처장 취임식'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 사진=국가보훈처.

문 대통령은 후보시절 여성장관 비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30%에서 시작해 단계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다. 전체 17개 부처 가운데 박근혜정권에서 1명에 불과하던 여성 장관을 5~6명으로 만들겠다는 것인데, 야당의 인사 검증을 통과해서 이대로 간다면 그의 공약처럼 내각에 여성 30%도 가능할 것 같다. 이 뿐이 아니다. 그는 그동안 일부 남성들이 폐지하라고 요구해오던 여성가족부의 위상을 오히려 강화하고,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를 만들겠다고 한다. 바야흐로 여성이 국가 정책의 입안 책임자가 되어 실천에 옮기는 명실상부한 여성주의 관료(femocrat)가 출발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뿌리 깊은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주의 관료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아마도 자타가 인정하는 검증된 능력이 최우선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내각에 이름올린 이 여성들은 전문성뿐만 아니라 유리벽에 온 몸으로 부딪히며 성차별에 저항한 깨어있는 여성들이다. 하지만 의식있는 몇몇 여성들이 장관으로 입각한다고 해서 성평등한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님을 우리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경험했다. 2003년 노무현 정부는 강금실 법무부장관과 한명숙 환경부장관, 지은희 여성부장관 등이 여성장관으로 출발했다. 이 여성들은 여성운동가출신이었기에 노무현정부에 환호했고,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 한명숙이 등장하면서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들은 직장과 육아라는 두 가지 굴레에서 벗어나질 못했고, 저임금과 비정규직에 내몰렸고,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못했다.

이제, 문재인정부에서 여성주의 관료가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성들이 두 눈 부릅뜨고 깨어있어야 한다. 그의 주장처럼 여성들에게도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지” 감시해야 한다. 성차별적 법·제도를 개선하고, 여성의 관점에서 정책을 입안하고 실천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남성 임금의 63.3%에 불과한 여성임금 격차를 해소하고, 국공립보육시설을 확대해서 아이들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어야 한다. 낙태죄를 폐지하고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여성 장관 몇 명이 늘어난다고 해서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하나  하나를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감시하고, 또 관철시킬 수 있는 “센 여자”가 되어야  한다.

초기경전인『앙굿따라니까야』의 ‘뿐니야의 경’에 의하면 붓다가 가르침을 설하는 조건이 나온다. 즉,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붓다를 찾아오지 않으면, 가까이 앉지 않으면, 질문하지 않으면, 귀를 기울여 가르침을 듣지 않으면, 가르침을 기억하지 않으면, 기억한 가르침의 의미를 탐구하지 않으면 설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스로 뭔가를 배우고자 노력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훌륭한 붓다의 가르침도 소용없기 때문이다. 

붓다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서 이처럼 8가지 조건들이 전제되어야 하듯이, 여성이 행복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성차별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가까이 가서 여성의 목소리를 듣고, 질문하고, 귀 기울여 차별 문제를 인식하고, 문제를 기억해서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굳이 여성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민주적 절차와 소통을 중시한 여성대통령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굳이 페미니스트라 부르지 않아도 평등과 공정, 정의를 중시한다면, 남성대통령이라도 여성들은 기꺼이 스포터즈가 되어줄 것이다.

옥/복/연/의/소/통/의/미/학
불교포커스 여시아사(如是我思)

경전에는 유난히도 대화가 많이 나온다. 붓다는 제자들이나 신도들과 질문하고 응답하는 과정에서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이교도와는 토론을 통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붓다의 대화는 상대와 마음을 열고 진솔하게 '소통'하며, 그 결과 공감으로 나아가게 한다. 남과 여, 갑과 을, 출가자와 재가자 등 오늘날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소통의 방법을 초기경전 니까야로 모색해보고자 한다.

여성의 관점으로 경전을 읽고 교리를 재해석하며, 불교사에서 잊혀진 여성이나 뛰어난 여성불자를 발굴하는데 관심이 많다.여성학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 여성연구소 선임연구원과 대학 강사를 지내다가 현재 종교와 젠더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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