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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그 오해와 이해사이에서
최근 어느 성당에서 제가 한 강연의 일부를 나누고자 옮겨 보았습니다. <법현스님>

사랑과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반갑습니다. 화두선(話頭禪)이라고 아시나요? 불교의 명상법 가운데 하나이지요. 중국 당나라시대에 계발하고 현재 한국에서도 성행하는 명상법입니다. 화두(話頭)의 두(頭)는 뜻이 없는 허사입니다. 따라서 화두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옛날에는, 아니 지금까지도 ‘말머리’라고 이해하거나 ‘실마리’라고 이해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만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말씀을 주제로 명상합니다. 말씀에 들어있는 제 뜻, 본 뜻, 행간에 숨은 뜻을 이해하는 명상입니다.

사실 여러분이 읽고 새기는 성경의 머리 쪽에 바빌로니아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잘 아시겠지만 하느님의 모습이 궁금해서 높이 올라가면 보일까 하여 성을 높이 쌓아 올라가지요? 끝까지 올라가 하느님을 보았습니까? 그런데 왜 성 쌓기를 그치고 쌓았던 성은 무너뜨렸습니까? 그렇지요. 하느님께서 그들의 말(言語)을 흩어버리시지요? 말이 흩어지므로 해서 소통이 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마음이 모아지지 않아서 쌓아올리기를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중국은 땅덩어리가 크다보니까 사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민족이 많아서 그런지 100년 이상 지속된 왕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불안한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지도자는 부하나 국민들의,국민들은 중간지도자나 최고지도자의 말을 통해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 아주 중요했습니다. 잘하면 출세와 영화가 보장되지만 잘못하면 멸문지화를 면치 못하기 일쑤였지요. 그래서 말씀을 주제로 한 명상인 화두참선도 발전했다고 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출가승려 뿐만 아니라 정관계에 있는 이들도 화두참선을 한 이가 많았습니다.

부처님 또한 말씀을 이해하고 이해시키기 위한 설명에 아주 특별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설법이라고 하는 좋은 말을 써야겠지만 소통을 위한 적절한 언어를 사용하는 데 부처님만한 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작은 나라의 왕자라는 것이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나라를 지키고 번영시키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무술(武術)과 화술(話術)이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의 뜻을 이해하고 이해시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지혜로운 이는 사랑하고 사랑하는 이는 지혜롭습니다.”

이 말씀의 뜻을 살펴보십시오. 여기서는 사랑명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처님 당시부터 해 온 자비관(metta bhāvanā)입니다. 눈을 감으시고 숨은 편안하게 쉬십시오.
이마 위에 자기 얼굴을 떠 올려보십시오. 떠오른 자기에게 마음을 보내봅니다. 몸이 건강하기를..(3~5)마음이 쪼개지지 않고 온 마음이기를..(3~5)하는 일이 잘 되기를..(3~5)몸과 마음이 행복하기를...(3~5)

이번에는 가족 한 사람을 떠올려 봅니다.역시 그에게 마음을 보냅니다. 몸이 건강하기를..(3~5)마음이 쪼개지지 않고 온 마음이기를..(3~5)하는 일이 잘 되기를..(3~5)몸과 마음이 행복하기를...(3~5)

다른 가족을 떠올려봅니다.역시 그에게 마음을 보냅니다. 몸이 건강하기를..(3~5)마음이 쪼개지지 않고 온 마음이기를..(3~5)하는 일이 잘 되기를..(3~5)몸과 마음이 행복하기를...(3~5)

여러분의 형제자매님 떠올려볼까요? 역시 그에게 마음을 보냅니다. 몸이 건강하기를..(3~5)마음이 쪼개지지 않고 온 마음이기를..(3~5)하는 일이 잘 되기를..(3~5)몸과 마음이 행복하기를...(3~5)

여기 형제,자매님을 지도해주시는 신부(목사)님을 떠올려봅니다.
역시 그에게 마음을 보냅니다. 몸이 건강하기를..(3~5)마음이 쪼개지지 않고 온 마음이기를..(3~5)하는 일이 잘 되기를..(3~5)몸과 마음이 행복하기를...(3~5)

(책상을 막대기 등으로 꽝 내리치며) 얍!!!

놀라셨지요? 화두선에서는 이런 방법을 쓰기도 합니다. 앞에서 말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가 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은 사실은 제 맘대로 못합니다. 경험에서 오는 편견과 남이 준 지식에 의해 꾸며진 것을 스스로 제 맘대로 하는 것이라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놀라게 하여 꾸며진 것을 걷어내고 본디 모습을 찾아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순수한 모습, 진리의 모습은 그런 언어를 떠난 것이라 생각해서 그런 방법을 쓰는 것이지요.

불교포커스 자료사진.

눈을 뜨십시오. 어떻습니까? 사랑명상을 하니까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평안하기도 하고 그렇지요? 슬픔은 해소해야 할 일이 있는 상대를 떠올렸을 때 일어나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슬프면 슬픈 대로 하면 됩니다. 아,슬프구나,눈물이 나오는 구나..하고 매일 여러 시간 틈나는 대로 하면 좋겠지만 복잡다기한 현대사회생활을 하는 여러분이 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과 밤에 잠자리에 들어서 명상하기를 권합니다. 명상은 지혜를 계발하기 위해 합니다. 지혜는 자비(사랑)과 한 짝입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사랑은 평화의 다른 이름입니다. 제레미 리프킨은 『엔트로피』라는 책에서 말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갈수록 혼돈의 와중으로 빠져들고 있다. 어떤 일도 제대로 되어가는 게 없어서 여기저기서 끝없는 수선과 짜깁기의 연속이다.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사건이 터진다. 거기에 관련된 사람들 모두를 몰아붙여 탓해 보아도 사태는 갈수록 악화되기만 한다. 정치권의 리더나 누구 대단한 사상가라 할지라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된 문제를 풀 수 있으리라는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붕괴로 몰고 가는 냉혹한 기운이 세계를 잠식하는 오늘의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현존하는 세계관에 대해 냉철하게 따져 보아야 한다. 세상을 병들게 하고 그 속의 모든 것을 오염시키는 주범은 바로 우리들의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엔트로피는 열역학의 개념인데 리프킨이 사회학의 개념으로 확산하였습니다. 모든 것은 쓸모없는 것으로 변해간다는 뜻입니다. 그대로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無常)과 통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다툼과 싸움과 전쟁의 원인을 살펴보면 한 아가씨 때문이라는 것이 최근에 밝혀졌다고 합니다. 그 아가씨가 누구일까요? 그 아가씨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그녀의 이름은 ‘미스언더스텐드(misunderstand)’라고 합니다. 아! 조크인 것 아시지요? 불교에서는 그녀를 ‘어리석음’이라고 부르지요. 그래서 부처님은 바른 길을 제시하면서 제일 앞에 바르게 보기를 두었습니다. 바르게 보기가 다른 일곱을 이끈다고 하셨지요.

예전에는 서로 다른 민족(異民族)들이 한 자리에서 회의를 하는 모습을 보면 흔히 틀린(誤) 사람들이 모였다는 잘못된 표현을 하였습니다. 살갗의 색깔이 다르고, 눈동자의 빛깔이 다르며, 코의 높이가 다르게 생긴 것을 틀리게 생겼다고 보았습니다. 보는 자인 나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하는 사고에서 형성된 의식이며 그 의식의 표현이었습니다.

틀린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다 보니 생각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틀린(誤) 사람이 아니라 다른(異)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같은 씨족 가운데 가장 가까운 친척도 다르게 생겼고, 한 집안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다르게 생겼다는 것을 생각해보니 그랬습니다. 더더욱 한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형제자매들도 제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은가요?

그런데 그 깨달음도 조금 시간이 지나니 다른 사람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류라는 뜻에서 같은(同) 사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연과학적으로는 105종 원소의 유기적 결합을 나름대로 한 모습이 각각의 존재이므로 구성요소가 거시적으로는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적 관점에서는 지,수,화,풍의 4대로 이루어졌으므로 역시 거시적으로는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어느 하나 빼 놓지 않고 어느 부처님의 전생이며 나의 부모형제가 아닌 이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99명이나 죽인 살인마를 교화해서 스님이 되게 하고 도를 깨쳐서 아라한이 되게 한 이야기를 담은 『앙굴리말라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같은 사람임을 알게 되니 그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조금씩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틀린 것이 아니라 맞는(正)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각자의 처지와 시각에서 다르게 보였던 것이 틀리게 느껴졌었으나 이제는 맞게 느껴지게 된 것입니다.

틀림에서 다름으로, 다름에서 같음으로, 같음에서 맞음으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집니다. 결국 틀림에서 맞음으로 회통하는 것이 불화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사상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틀림에서 맞음으로의 회통은 곧 다양성을 인정하여 지속이 가능한 평화 이끌 수 있습니다. 다양성의 평화는 소통을 윤활유로 합니다.

소통의 출발점은 억지로 조정하기 위해 존재형태를 변화시키는데 있지 않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존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두고 보면서 편안하게 놓아두는 것 그것이 소통의 출발점입니다.

영어 ‘피스’(peace)의 어원은 히브리 사람들의 사상에서 말하는 샬롬(Shalom)과 로마 사람들의 사상에서 말하는 팍스(Pax)에서 왔다고 합니다. 샬롬은 하나님이 위로부터 내리는 은총을 의미하고, 팍스는 peace, 즉 힘으로 얻는 평화를 뜻합니다. 바이블에서 ‘평화’란 재산상으로 걱정할 것이 없고 건강한 상태, 또는 화목하고 전쟁이 없는 상태를 지칭합니다.

평화를 뜻하는 ‘이슬람’은 알라(하나님)의 속성 중의 하나인 알-쌀람에서 유래합니다. 이슬람 경전 코란에서 평화는 유일신 알라를 믿어야 얻을 수 있는 보호와 알-쌀람이라 일컫는 가르침과 질서를 지켜야 얻을 수 있는 평온함을 말합니다.

노자는 군사를 “상서롭지 못한 수단”으로 보며, 승리해도 찬양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승리를 찬양하는 것은 살인을 즐거워하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중국 고대 군사학인 󰡔손자병법󰡕조차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최선의 길이라 했다. 불교에서는 불살생(不殺生)을 첫째 계로 삼고, 수행자는 극단적 폭력과 전쟁 앞에서도 비폭력 평화사상을 실천하게 합니다.
이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평화를 옹호하고 있는데, 평화(Shalom)와 도시(Ir)를 합한 말인 예루살렘은 오늘날 중동전쟁의 진원지가 되고 있고, 한반도는 북핵ㆍ미사일 문제로 긴장이 높아지고 있으니 묘한 일입니다.

좁은 뜻에서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입니다. 왜 전쟁이 일어나며, 어떻게 전쟁을 없애느냐고 질문을 던지면, 평화 문제는 인간의 내적 욕망에서 사회ㆍ역사적 관계에 이르기까지 매우 복잡한 일이 됩니다. 불교에서 니르바나(Nirvana:열반)는 욕망을 제어하고 사회적 관계에서 갈등을 벗어나서 최고의 평온ㆍ평화에 도달했음을 말합니다. 그것은 인간내면만이 아니라, 존재의 안과 밖, 나와 남, 그 밖의 모든 경계를 나눔 없이 불화(不和)를 떠남을 뜻합니다. 사회적으로 이야기 하면 모름으로 인한 오해와 불통에서 앎으로 하여 이해와 소통이 되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통의 시대에서 소통의 시대로 넘어오니까 평화롭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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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래 지겹다님 2017-06-11 07:30:15

    아래분 절은 귀신장사 안하고
    오로지 부처님 가르침 수행만으로 절살림 운영하시죠?
    문화재관람료 수입 템플스테이 수입
    문화재유지관리 국가 지자체보조금
    연등축제 제등행렬 국가 지자체보조금
    천도재 예수재 방생법회 삼재기도 영가천도기도 무슨기도 무슨기도비
    이런거 하나도 안받고 오로지 자발적으로 신도들이 복전함에 넣는 돈과
    신도님들이 등록하는 신도회비로만 절 운영하시죠?   삭제

    • 법현, 지겹다 2017-06-10 19:51:44

      법현이 너도 귀신장사 그만하고 자랑도 그만해라.
      살아 있는 사람이 살아야지.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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