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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라는 이유로" 삶의 터전 잃은 줌머인들계속되는 방글라데시 불교 탄압…줌머인연대, 불교시민사회에 도움 호소

250채 이상의 주택과 사원이 방화에 의해 잿더미로 변했다. 무려 7천여 명의 주민이 순식간에 삶의 터전을 잃었다. 이 과정에서 노인 1명이 숨지고, 무고한 주민 3명이 폭행을 당했다.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불자라는 이유로 방글라데시 줌머인들은 또 한 번 탄압에 시달려야만 했다.

재한줌머인연대는 5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1층에 위치한 카페 나무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 6월 2일 방글라데시 치타공 산악지대에서 발생한 방화ㆍ폭력을 비롯해 줌머인들에게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인권 유린 현실을 고발했다.

줌머인연대에 따르면 6월 1일 치타공 산악지대 인근에서 한 방글라데시 뱅갈인(방글라데시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족. 대부분이 이슬람 교도다.) 청년의 시신이 발견됐다. 사망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가운데 이를 줌머인의 소행으로 단정한 뱅갈인들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했다. ‘추모행진’이라는 이름으로 줌머인 주거지에 들어가 기물을 파손하고 약탈을 자행한 뒤, 급기야 집과 가게, 사원 등에 불을 지른 것. 줌머인들은 군, 경찰에 막아줄 것을 호소했지만 공권력은 이들 범죄를 사실상 방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넬 차크마 재한줌머인연대 고문이 지난 6월 방글라데시 치타공 산악지대에서 발생한 방화 관련 영상을 기자들에게 보여주며 설명하는 모습.

주택 및 사원 250채 전소, 순식간에 집 잃은 7천명

로넬 차크마 재한줌머인연대 고문은 “250채 이상의 주택과 사원 등이 전소돼 무려 7천여명의 줌머인들이 갈 곳을 잃어버렸다. 대피하지 못한 줌머인 노인 1명이 사망했고, 3명이 폭행을 당했다”면서 “줌머인들도 저항을 시도했지만 뱅갈인들의 선두에 서있던 군대가 발포로 위협함에 따라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고 현지 상황을 설명했다.

줌머인에 대한 방글라데시의 인종 차별 및 종교 탄압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1979년, 방글라데시 정부 주도하에 치타공 산악지역 선주민인 줌머족을 몰아내고, 뱅갈인들이 정착하려는 시도가 처음 시작됐다. 민족이 다르고 종교가 다른 기존 선주민을 강제로 이주시키려는 과정에서 살인, 납치, 고문 등 각종 학살 및 인권범죄가 반복됐다. 1989년에는 32명의 줌머인이 살해당하고, 주택 1000여곳이 방화로 전소되는 비극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후 1997년 방글라데시 정부와 줌머인들 간의 ‘CHT 평화협정’이 체결돼 평화가 정착되는 듯 했지만, 줌머인들을 향한 폭력은 지금도 계속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다.

9일, 조계사-광화문서 방글라데시 폭력 규탄 거리행진

줌머인연대는 거리행진을 통해 방글라데시 인권유린의 심각성을 알리고 도움을 호소할 계획이다. 오는 9일 오전 11시 서울 조계사에서 광화문 광장까지 전통의상을 입고 행진을 하며 방화 사태를 규탄하고 피해자 지원을 호소하는 캠페인에 나선다.

이들은 이날 불교계 시민사회가 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2009년 한국 시민사회가 현지 인권유린 실태 조사에 나서고 언론이 이를 특집 다큐멘터리로 조명하면서 문제가 널리 알려진 일이 있었다”고 밝힌 로넬 고문은 “종교탄압이 자행되는 현실 속에서 불교계 시민사회가 이번 사태에 대한 면밀한 조사, 방글라데시 정부에 대한 공식 항의, 피해를 입은 줌머인에 대한 재정착 지원 등을 위해 적극 나서 준다면 보다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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