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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분단의 아픔
  • 김광철|서울햇빛발전협동조합 이사
  • 승인 2017.07.29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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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일 서울 광화문에서 출발하여 5월 28일 부산역까지 ‘생명, 탈핵 실크로드’ 순례를 이끌었던 이원영 교수가 일본으로 건너가 순례를 하는 중에 몇 차례 전화를 걸어왔다. “김 선생님, 뭐 하세요? 일본으로 좀 건너와서 같이 걸읍시다.” 한두 번도 아니고 네댓 차례 걸려오니 사실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간곡하게 부탁하는 이 교수의 정성을 생각해 며칠 시간을 쪼개게 되었다. 6월 14일부터 17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일본 키타큐슈로 건너가서 ‘생명, 탈핵 실크로드’ 순례단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6월 16일 후쿠오카의 고모리에역 앞에서 '생명, 탈핵 실크로드' 순례를 시작하는 순례단. 배동록 선생은 한반도 깃발을 들고 동참했다. 사진=김광철.

6월 16일은 일본 후쿠오카의 고모리에 역에서 출발하는 날이다. 이 교수의 일본 일정을 보면 기차역과 역을 잇는 코스로 순례를 하고 있었다. 이날 순례에 함께 하기 위해 여남은 명의 일본인들이 모여 들었다. 그런데 의외로 연한 분홍색 바지, 저고리를 입고 커다란 한반도기를 든 한 어르신이 계신 것 아닌가. 그 분은 나와 이원영 교수, 하라쓰네노리 씨를 만나더니 무척 반가워했다. “한국에서 왔어요?” “예, 그렇습니다.” “나는 배동록이라고 하는데, 이름이 뭐예요?” 가지고 있는 명함을 드리면서 내 소개를 간략하게 했다. 배 선생은 키가 160cm도 안 될 정도로 작았다. 몸도 많이 야위고 주름살도 많아서 무척 늙어 보였다.

“나는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우리 아버지는 경남 합천이 고향이에요.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1940년 이곳으로 징용되어 야하타제철소에서 강제 노동을 하면서 힘들게 살았어요. 내 어머니는 고향에서 자식들 셋을 데리고 농사를 지으면서 2년 정도 살다가 남편을 찾아 이곳 일본으로 건너와서 그 때부터 제절공장 기숙사에 살면서 일본 생활이 시작되었어요. 나는 1944년에 이곳 일본에서 태어난 사람이여. 우리 어머니가 42년에 건너와서 나를 낳은 거지. 나를 낳고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한 우리 어머니도 강제로 제철소로 끌려나와 하루 10~12시간씩 철광석을 나르는 중노동을 시켰어.”

배 선생은 겉으로 보아도 몸이 워낙 약해 보였다. 날씨는 더운데 한동안 감기까지 앓아서 몸이 더 안 좋다고 한다. 그래서 좀 걷다가 조카 차를 타고 좀 앞에 가서 기다리다가 내려 같이 걷곤 하였다. 친환경 도시 키타큐슈를 무색하게 하는 핵발전 문제를 이야기하며 한참을 걷다가 보니 익숙한 곳이 나타났다. 7년 전에 일본의 환경교육현장 탐방을 왔던 곳이다. 당시에 이곳 키타큐슈는 세계적인 친환경 도시로서 알려지면서 전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견학을 왔다. 그때 키타큐슈 시청을 방문해 담당자로부터 키타큐슈가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친환경적인 도시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들었던 기억이 오버랩 되었다.

54기나 되는 핵발전소를 가동하며 경제를 일으켰던 일본이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 이후에는 1기만 남기고 다 닫았다가, 요즘 여러 지자체에서 재가동을 하려고 하여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바로 이번 순례길에 나선 사람들도 ‘가미노 원발 반대’ ‘현해탄 원발 재가동 반대’ 등 줄기차게 싸우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배 선생의 부모님이 강제 징용이 되어 고생했던 야하타제철소는 일제 패망 이후 신일본제철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계속해서 철강 산업을 이끌어갔다. 60년 초만 해도 그 공장 폐수와 분진들이 키타큐슈 하늘과 강을 시커멓게 물들였다. 그 때 키타큐슈의 몇몇 여성들이 오염 실태들을 발로 뛰며 생생하게 채록해, 그 자료를 바탕으로 시청과 제철소는 물론 언론을 바꿔내려 노력한 끝에 많은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지자체는 물론이고 신일본제철도 대책을 마련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 강에서 사라졌던 물고기들이 돌아오고, 하늘은 맑아졌다. 지금은 지역의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친환경적 경영을 위해 노력하고, 자원재활용 산업이 크게 활성화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 현장을 실제로 방문하여 견학도 하기도 하고 키타큐슈 지역의 교사들을 만나서 환경교육 사례를 들었던 기억들도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함께 걸으며 배동록 선생이 말을 이었다. “여기에서 얼마 안 가면 우리 부모님이 끌려와서 고생했던 야하타제철소가 있다. 지금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이고 하니 가 봅시다.” 그 말을 듣고 나도 거들었다. 이 교수도 흔쾌히 동의를 하였다. 

“저기가 내가 다녔던 민족학교가 있었던 곳이에요. 지금은 재정난 때문에 학교가 문을 닫았지만 한 때는 일본 전체에 150개 정도가 있었어요. 초중학교는 일본인들이 다니는 동네 학교를 다니고, 고등학교 과정만 민족학교를 다녔어요.” “그 학교는 북한에서 돈을 대어서 총련에서 운영했던 학교가 아닌가요? 그럼 선생님은 조총련 소속이세요?” “전에는 그랬지요. 그렇지만 지금은 국적을 한국으로 바꾸었어요.” “왜 바꾸셨나요?” “내가 한국을 방문하려고 했더니 국적이 북한으로 되어 있으면 갈 수가 없다고 하여 할 수 없이 한국으로 바꾸었지요. 그래서 그 후에는 한국에도 몇 차례 다녀올 수 있었어요.” 아직도 형님 두 분은 조선 국적이라 한국을 오갈 수 없다고 하였다. 분단은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형제들 사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참 씁쓸했다.

배 선생 말에 의하면 교포들 중 일부는 2세, 3세, 4세가 태어나면서 일본으로 귀화해 버리기도 했지만 3세, 4세가 되어도 꿋꿋하게 한국 또는 조선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교포들도 많다고 한다. 일제 때 징용으로 끌려온 사람들의 고단한 삶과 가족사를 들으며 야하타제철소에 도착했다. 배 선생은 조카더러 앨범을 가지고 오라고 해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 앨범에는 배 선생 어머니가 야하타제철소에서 일했다는 증명서와 가족사진, 신분증을 확대 복사한 것 외에 제철소와 관련된 많은 자료들이 있었다.

“우리 아버지는 용광로에서 녹은 쇳물을 떠서 옮기는 일을 하는데 어찌나 더운지 더위와 싸우기 위해 소금을 많이 먹었다고 들었어요. 우리 어머니는 철광석을 옮기는 중노동을 힘들게 하면서 그날그날 살다가 해방이 되었지만 한국으로 돌아갈 돈이 없어서 이곳에 그냥 눌러 앉아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어요. 야하타제철소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되는 과정에서 이곳에 일본인들뿐만 아니라 6000여 명의 조선인들이 강제로 끌려와서 중노동에 시달렸다는 내용을 설명서에 한 줄이라도 넣어 달라고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함께 싸웠지만 끝내 무산되었어요.”

배동록 선생이 자신의 부모님이 야하타제철소에서 어떤 고생을 했는지 설명하고 있다.

용광로 등이 있던 2층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내려와서 쉬고 있는데 배 선생이 말을 이어갔다. “야하타제철소에는 6000명 정도가 끌려와 일을 했는데, 이곳 근처에 있는 탄광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조선인들이 끌려와 강제노역에 시달렸다고 해요.” 순례를 함께 하는 일본인들은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저지른 잘못을 냉철하게 반성하고 사과해야 하며,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남북한 일본 모두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미군기지 확장 반대라든가 일본 자위대의 해외 파병 반대, 일본의 평화 헌법 개정 반대 등 아베정권의 우경화 정책에 강하게 반대하며 싸우고 있기에 국적을 넘어 끈끈한 동지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이분들은 후쿠시마 이후 정지된 핵발전소의 재가동 반대와 신규 핵발전소 건설 반대 등 탈핵 운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배 선생은 자신이 하고 있는 강연에 대해 얘기했다. “내가 이곳 일본에 살면서 우리 어머니와 함께 많은 학교들을 찾아다니면서 일제의 만행에 대하여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과거 조선을 침략하고 수탈하면서 많은 조선인들을 괴롭힌 점에 대하여 반성해야 하며, 이제는 일본과 남북한이 서로 원수가 되어 싸우지 말고 평화롭게 살아가야 한다. 만약에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다 전쟁터로 끌려간다. 그러니 전쟁을 막고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된다는 내용의 강연을 하고 있어요.” 

그 강연이 작년 2월에 1000회가 되었단다. 1986년부터 강연을 시작했으니 1년에 50회 정도 되고, 거의 1주일에 한 번 꼴로 이뤄지는 셈이다. 이런 강연으로 생계유지가 되는지 궁금하여 살짝 물어보았다. “한 번 강연을 가려면 사전에 가서 담당 교사와 교육 내용들에 대하여 상의를 해야 해요. 그런 다음 결정이 되면 강연을 하게 되는데, 두 번을 가야해서 강사비라고 받아봐야 왕복 교통비와 강연 준비에 들어가는 비용들을 쓰고 나면 남는 것들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 집사람이 식당도 하고,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살다보니 힘들다고 요즘은 둘째 아들이랑 나가서 살고 있어요. 그 아들이 하는 식당이 잘 되어 그 아들이 도와주어서 생활해요.” 배 선생은 일본 학교들만 찾아다니면서 강연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에서도 ‘우리겨레하나되기’ 등의 단체나 울산민주노총, 전교조 등에서 한국인 강제징용 현장들을 찾는 탐방이 계속 이어진다고 한다. 이곳 야하타제철소는 물론이고 치쿠오탄광 등을 안내하기도 하고, 한국에서 강연 부탁을 받고 찾기도 한다고 하였다.

쿠라역 앞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열리는 '금요행동' 집회가 '생명, 탈핵 실크로드' 순례단과 만났다.

17일 배 선생 아들네 식당 앞에 차를 세웠다. ‘애식당’이라는 이름의 한국요리를 하는 식당이었다. 역으로 나갔다더니 전날 고쿠라역 앞에서 매주 진행하고 있다는 ‘금요행동’ 집회에 참가했던 분들이 나와 있었다. 이분들은 8월 5~6일 한국의 경남 합천평화의집에서 열리는 평화대회에 참가할 것이라고 했다. 배 선생도 함께 한다고 했다. 일정이 끝나고 기념사진을 몇 컷 찍은 후 “나는 오늘로서 일본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더니 갑자기 좀 기다리라고 하면서 무언가를 가지고 왔다. 일본돈 2천 엔을 주며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간식이라도 사 먹으라”고 막무가내 들이 미신다. 나는 안 받겠다고 사양에 사양을 하다가 성의를 생각해서 그 중에 1천 엔만 받고 나머지 1천 엔은 이원영 교수한테 건넸다. 정 많은 한국인의 모습은 이곳 일본이라고 다르질 않았다.

배동록 선생의 이야기는 한국인 작가가 동화로 써서 ‘엄마 이야기’라는 책으로 이번 8월에 출판이 되는데, 그 출판기념회 때 배 선생이 한국으로 초청되었다는 것이다. 그 때 합천평화의집 행사에 참석했다 서울에서 출판기념회를 한다는데, 꼭 가보고 싶은 마음이지만 시간이 안 되어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무척 아쉽고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렸다. 재일교포 2세 배동록 선생, 아니 할아버지를 일본 땅에 두고 떠나는 내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문재인정부가 남북 화해, 상생의 차원에서 일본 등 재외교포들에게 조국의 문을 열어 한국을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물론 실무적인 제약들도 없지 않겠지만 대승적 차원에서 풀어나갔으면 좋겠다. 가능한 것 하나하나, 차근차근 풀어가면서 남북한은 물론 모든 동포들이 동포애로서 끌어안을 수 있는 넓은 품을 기대한다. 적폐 청산 차원에서라도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좋겠다.
 
다음날 있을 ‘고리1호기 영구 정지’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김해행 비행기를 타러 가는 기차 기차 안에서 배동록 선생 이야기를 짧은 시 한 편으로 적어보았다. 

분단의 아픔

일본 땅 한 동네에 살면서
형과 동생이 국적이 다르단다
형은 조선이요
동생은 한국이라
한 아버지, 한 어머니 자식이 나라가 다르다니
피도 푸른색, 붉은색으로 애초부터 나누어 받았던가
한 동네 살고 있는 형제끼리도 색깔을 나누어
 할아버지 성묘도 못하는 손자가 있다니
전향서를 강요하는 야박한 세월
인권 이전에 국권인가
내 적이 남이면 어떻고 북이면 어떤가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함께 살자면서
혈육의 천륜을 
제도와 법이라는 이름으로 갈라놓네
촛불이 타면서 외쳤던 적폐의 이름으로
이제는 벗어던질 때도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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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흐뭇 2017-07-29 23:32:49

    "일본은 전기세 폭등으로 후쿠시마 사고후 가동중단한 핵발전소 전부 재가동하는데 한국은 뭐하냐"고 흔들어대는 조중동 적폐언론에 시원한 한방을 날립니다.
    "여기 핵발전소 막으려고 적폐정부와 핵마피아와 싸우는 일본사람들이 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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