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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 더 솔직해지자불교신문 방담을 보고
조계종 기관지 <불교신문>이 일부 스님과 불교계 활동가를 초청해 진행한 방담이 논란에 휩싸였다. 켜켜이 쌓인 종단의 적폐를 지적하는 불자들의 목소리를 ‘이율배반’, ‘종단매도’, ‘권력 지향적 해결’ 등으로 치부하며 ‘新적폐’로 몰아세웠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총무원장 직선실현 대중공사 대변인을 맡고 있는 허정스님이 해당 방담을 비판하는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주>

지난 7월 27일 조계종 적폐청산을 촉구하는 1차 촛불법회가 끝난 뒤, <불교신문>의 A기자는 자신의 기사에 ‘적폐청산? 당신들이 바로 적폐’라는 제목을 달았다. 소제목은 ‘외부세력 끌어들여 종단분열 조장’이었다. 1주일 뒤 진행된 2차 촛불법회는 A기자가 아닌 B기자가 취재했다. B기자가 쓴 기사의 제목은 ‘종단개혁연석회의, 제2차 적폐청산 촛불법회 봉행’, 소제목은  ‘적폐청산 자승구속 외치며 거리행진도’였다. B기자는 참여인원을 200명으로 축소한 것만 빼고 사실을 보도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제3차 촛불법회를 이틀 남겨둔 7월 8일, 불교신문 A기자는 자체 진행한 좌담회를 기사화하면서 ‘외부세력 동원, 무조건 종단 탓 이러면 공동체 문제 해결되나?’라고 제목을 달았다. 그것도 처음에는 ‘외부세력 동원, 무조건 종단 탓 외치는 그들이 新적폐’였던 것을 수정한 것이다.

불교신문은 지난 1차 촛불법회부터 ‘외부세력 끌어들인 무리들’이라는 프레임으로 우리를 가두려 하고 있다. 이는 이병두 전 문화체육관광부 종무관이 <법보신문>에 쓴 칼럼에서 명진스님과 황사용을 비교하면서 사용한 논리와도 같다. 명진스님을 지지하는 원로모임에 신부와 목사가 있었다는 것을 이유로 그들은 외부세력을 끌어들인다는 전략을 쓰고 있다. 3차 촛불법회를 앞두고 진행된 불교신문의 방담 역시 같은 프레임으로 촛불집회를 폄하하고 있다. 방담을 진행한 시기, 불러 모은 사람들, 비판하는 논리 등이 그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외부의 지지와 응원을 ‘세력동원’으로 깎아내리는 이 같은 논리가 과연 얼마나 대중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방담에 참여한 이들이 촛불법회를 무마시키는 또 다른 논리는 ‘공업과 화쟁의 논리’이다. ‘개별업’과 ‘공업’을 같이 말하면서도 방점은 개별업에 두어야 하건만, 그들은 개별업은 단순히 언급하는 것으로 끝나고 공업에만 방점을 찍는다. 하지만 이는 조금만 생각해봐도 설득력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되레 솔직하지 못한 자의 변명으로 느껴진다.

“어느 조직에나 적폐가 존재하게 마련이다. 집행부만을 표적으로 삼아 적폐라고 낙인을 찍는 것은 논리비약이다. 모든 적폐는 종도들 공동의 책임 아닌가?”(가섭스님)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에 따르면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모든 결과는 누구 하나의 과오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든 공업(共業)이다”(이향민)

“건강한 상식의 흐름이 다수가 되도록 하는 것. 이것이 해답이고 우리의 의무다. 화쟁의 궁극적 지향은 함께 살자는 것이지 이겨먹자는 게 아니다.”(정웅기)

이들이 말하는 공업(共業)의 논리를 적용한다면 촛불법회 참가자는 ‘자승 구속’을 외칠 것이 아니라 자승스님과 같이 참회해야한다. “총무원장스님은 종헌종법을 지키기 위하여 마곡사주지를 즉각 직무정지 시켜야하는데 마곡사주지가 재임하기까지 직무유기하는 죄를 지었고, 우리종도들은 총무원장이 직무유기 하는 것을 방관하였으니 함께 참회합니다”, “용주사 주지스님은 아내와 쌍둥이를 두어 승풍실추시키는 죄를 지었고 우리 용주사신도님들도 주지스님이 쌍둥이 아빠가 되는 걸 막지 못해서 참회합니다” 좌담회에서 공업과 화쟁을 말하는 이들은 이러한 참회를 원하는 걸까? 개별적으로 죄를 지은 자들이 죄에 합당한 처벌을 받고난 뒤라면, 화합의 차원에서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죄를 단죄하지도 않았는데 함께 책임지자는 공업의 논리를 펴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화쟁의 논리를 펴는 것은 앉을 자리와 설자리를 파악하지 못하는 미숙한 언행이다.

조계사 앞에서 시위를 하는 불자들이 사찰을 찾은 시민, 외국인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모습.

벌 주는 사람과 벌 받는 사람이 각각 존재하는 율장의 징계법은 그럼 무엇인가? 지금은 구체적으로 잘못의 경중과 잘 못한 자를 지목해서 제적시켜야 하는지 사회법으로 구속시켜야 하는지를 면밀히 따져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우리가 요구하는 적폐청산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방담 참가자들은 차별업을 적용해야 할 때 공업을 적용하고 공업을 적용해야 할 때 차별업을 적용함으로서 결과적으로 죄지은 자를 처벌해야할 때 처벌하지 못하게 만든다. 알고서 이런 전략을 쓴다면 음흉한 것이고 모르고서 하는 이야기라면 어리석은 것이다. 이러한 실수는 불교교리에 밝지 않은 권위적인 스님들에게 빈번히 나타나는 모습이기도 하다. 파사현정의 칼을 써야할 때 공성(空性)과 자비(慈悲)를 말하여 정의(定義)의 칼을 무력하게 만들고, 자비로 감싸주어야 할 때 시비(是非)는 반드시 가려야 한다며 무자비(無慈悲)의 칼을 휘두르는 모습. 부처님의 가르침을 내 입맛에 맞는 부침개로 삼아버린다.
 
“용주사 마곡사 문제는 분명히 종단의 잘못이다. 서로가 한발씩 물러나는 것이 어렵지만 확실한 해법이겠다.”(정웅기)

“종단도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 마곡사 용주사 문제가 그들에게 빌미를 제공했다.”(가섭스님)

“화쟁위원회나 사부대중공사가 그래도 대안이 될 것이다. 밖에서만 불만을 쏟아내지 말고 제발 안에서 치열하게 싸웠으면 한다.“(이향민)

그들이 지적하듯 마곡사 문제나 용주사 문제가 제때에 해결만 되었어도, 적광스님을 폭행한자들이 종단에서 징계를 받고 자숙하고만 있었어도, 종회의원들이 직선제 법안을 3번이나 이월시키지 않았어도 우리가 이렇게 시위에 나설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 시위에 나선 이들은 종단 구성원이라는 책임감을 바탕으로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땡볕에서 온몸이 땀에 젖는 가운데 피켓을 들고 평화스럽게 침묵으로 외치고 있다. 이들은 왜 약자인 우리를 ‘신적폐’라고 맹비난하면서 정작 종단 집행부를 향해서는 아무런 요구도 못하는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그런가? 그러면 그렇다고 솔직히 시인이라도 하라. 그 정도는 우리도 이해해 줄 수 있다. ‘밖에서만 불만을 쏟아내지 말고 제발 안에서 치열하게 싸웠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우리도 그러고 싶다. 정작 불교 언론에 5금조치를 내려 만남자체를 거부하면서 어떻게 안에서 대화를 하라는 말인가? 2달 전 총무원장 면담요청을 했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고, 호법부 스님들은 1인 시위자들에게 공갈협박을 일삼고, 총무원 스님들은 우리를 빚쟁이 만나듯 피해 다니는데 어떻게 치열하게 대화를 하란 말인가?

나는 제적을 각오하고, 모든 것을 내걸고 나왔다. 도량에서 폭행을 가하고, 종법을 자기들 입맛대로 사용하는 그대들에게 ‘아닌건 아니다’라고 말하기 위해 나왔다. 좌담회하는 그대들은 무엇을 걸었는가? 무엇을 걸었기에 종단 내부로는 한마디도 못하는 그대들이 시원한 삼소식당에 앉아서 공업, 화쟁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내일이라도 시원한 물 한잔을 가지고 와서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그대들의 이야기를 해보라. 우리는 언제나 그대들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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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8-10 08:08:17

    요새 삼성 사장 핸드폰에 주요언론인들 청탁문자 공객된것 처럼
    자승당이나 도법당 핸드폰에 불교언론 간부나 기자들 청탁문자 보면 가관일듯   삭제

    • 불자 2017-08-09 16:21:05

      후후 불교신문이며 법보신문이며 기사며 칼럼이며 기고며 참으로 어리석고 어리석다. 명진스님이 적폐면 그대들이 적폐아닌게 되나? 그나 니나 다 적폐다. 다안다. 명진스님 문제있다. 인심도 잃고, 스스로 아무리 정의의 투사인양 해도 니들과 같은 무리라는 거 안다. 함께 퇴장하시라. 간단치 않은가. 당신들은 스스로의 혀를 감싸고 도는 요설의 댓가를 반드시 치를 것이다. 그것이 인과 아니겠는가.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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