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여시아사 이미령의 사람이 經이다
야소다라

“이것 받으세요. 천천히 드시면 속이 좀 가라앉을 겁니다.”

탁발에서 돌아온 라훌라가 암라 열매를 내 발우에 담아줍니다.
내가 밤새 복통에 시달리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라훌라가 스승인 사리불 스님께 부탁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발우에 넣어주는 음식은 가리지 말고 먹어야 하며 특별히 어떤 음식을 주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탁발의 원칙입니다. 하지만 사리불 스님은 라훌라의 어미인 나를 위해 이 원칙을 깨고 신자의 집에 가서 설탕을 듬뿍 뿌린 암라 열매를 특별히 청해서 가져다 준 것입니다. 나의 복통에는 이 열매가 특효임을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찬 바닥에 앉아서 낡은 발우에 담긴 암라 열매를 내려다보자니 지난날이 떠오릅니다.

꼴리야성(城)의 주인이었던 내 부모님에게는 왕가의 청년들이 쉬지 않고 혼인의 뜻을 비춰왔습니다. 부모가 정해주는 배필에게 두 말 하지 않고 시집을 가야하는 것이 우리들 인도 여인의 운명이지만 부모님은 언제나 꼴리야 성의 공주인 내 의사를 존중하셨습니다. 나는 아무리 근사한 집안에서 중매가 들어와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내가 세력은 그다지 강하지 않으면서도 자존심은 유달리 센 석가족의 왕자 싯다르타에게 마음이 이끌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야소다라와 결혼하기 위한 경쟁. 9세기경 작품으로 기메국립아시아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사진=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

싯다르타 태자의 성에서 태자비 간택을 위한 연회를 베푼다는 전갈을 받았을 때 몹시 설렜습니다. 그러다 어떤 옷을 입고 갈까, 어떤 보석으로 장식할까를 고민하느라 그만 연회에 늦고 말았습니다. 연회는 이미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아름답고 화려하게 치장한 인도 전역의 공주들이 줄지어 서있고 싯다르타 태자는 그녀들에게 작은 보석함을 하나씩 기념으로 주고 있었습니다. 나는 자연히 제일 끝에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 그런데 어쩌면 그럴 수가 있었는지요. 보석함은 바로 내 앞에서 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당연히 내게도 주리라 생각하여 내민 두 손이 부끄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싯다르타도 당황하였는지 화려하게 몸에 두르고 있던 보석들을 모두 떼어 내게 내밀었습니다.

“이 보석들을 모두 드리겠습니다. 이것으로 저의 실례를 용서받고 싶은데….”

자신의 무례함을 자책하면서 어떻게든 내 기분을 돌이키려 애쓰던 그 표정에 반해서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하고 말았습니다.

“어찌 왕자님의 보석을 탐내겠습니까? 오히려 제 보석으로 왕자님을 아름답게 꾸며드리고 싶습니다.”

뒤를 따르며 왕자가 누구와 가장 긴 대화를 나누는지 살피던 시종들은 즉각 슛도다나왕에게 이 일을 보고하였고 마침내 나는 싯다르타 태자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싯다르타에게는 나 말고도 몇 명의 아내가 더 있었지만 자식은 라훌라 하나뿐이었습니다.

라훌라를 막 낳고서 하인에게 명하였습니다.

“어서 싯다르타님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려라. 그 분이 이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하시는 말씀이 아기의 이름이 될 테니까 잘 듣고 오너라.”

한걸음에 달려갔다 온 하인은 뭔가 망설이는 눈치였습니다. 내가 채근 하자 하인은 주저하다 이렇게 고하였습니다.

“태자께서는 ‘아, 장애로구나(라훌라). 커다란 장애가 생겼구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틀림없이 이렇게 들었습니다.”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그는 항상 어딘가를 동경하는 표정이었습니다. 나를 안을 때도 젊은 남성의 욕정 보다는 도타운 믿음과 성실한 애정이 더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꽃보다 더 아름다운 무희들이 밤새도록 악기를 연주하며 어지럽게 춤을 추면서 남편의 주위를 빙빙 돌 때도 그는 지그시 웃음만 머금고 있을 뿐 도무지 즐기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부왕께서는 내게 어떻게든 남편을 사로잡아서 출가하려는 마음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라고 당부하였지만 그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남편이 나와 라훌라가 누워있는 방으로 와서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지만 나는 잠든 척 하였습니다. 그의 마음은 이미 성을 넘어 저 멀리 현자들이 유리처럼 맑은 지혜를 닦는 깊은 숲으로 향하고 있음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이후 남편은 자취를 감췄습니다. 부왕이 백방으로 사람을 놓아서 소식을 듣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사자(使者)들이 들려주는 소식은 가슴을 아리게 했습니다. 하루 한 끼조차도 먹지 않고 지독한 고행에 들어갔다는 소식, 단정한 몸을 감싸던 비단옷은 사냥꾼의 누더기와 바꾼 지 오래인데 그 마저도 넝마와 다름없어졌다는 소식, 지붕이 있는 곳에서 편안하게 몸을 눕히고 잠자지 않는다는 소식뿐이었습니다.

남편의 소식이 들려오면 나는 궁중에서 할 수 있는 한 그와 똑같이 지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가 거친 음식을 연명할 정도로만 먹는다면 나 역시 기름진 밥을 거부하였고, 아름다운 장식은 모두 떼어내고 수행자에 버금가는 거친 옷을 입었습니다. 그렇게 지내기를 몇 년, 마침내 남편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성으로 들어선 그는 더 이상 예전의 아름답던 청년 싯다르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반듯한 모습의 제자들에게 둘러싸인 고귀한 존재가 되어 성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부왕을 비롯한 궁중의 모든 사람들이 반갑게 뛰어나가 그 분을 맞아들였습니다.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시녀들은 함성을 지르며 내게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 붓다를 맞이하러 나가라고 졸라댔습니다. 내 남편이 지금 나와 같은 궁궐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매정하게 나와 아들을 뿌리치고 떠난 사람인데, 하루라도 그리워하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그토록 원망스럽던 마음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지금은 그저 눈물만 자꾸 샘솟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냉정을 되찾았습니다. 지금 뛰어나가 봤자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눈물바람만 보일 뿐이요, 그 또한 옛 아내에게 예전처럼 다정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한달음에 달려 나가고픈 마음을 억누르고 나는 시녀에게 명했습니다.

“문을 닫아라. 나는 방에 그냥 있겠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릴 때마다 닫힌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뛰어나가고 싶었지만 입술을 꽉 깨물고 참고 또 참았습니다. 사람들이 ‘붓다’ ‘붓다’라고 외쳤습니다. 붓다라는 호칭은 절대로 쉽게 들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석가모니’라고, ‘붓다’라고 불리게 되면 이제 그는 더 이상 싯다르타 왕자도 아니고, 나의 남편도 아니며, 라훌라의 아버지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붓다가 옛 아내의 방에 들어온다면 그건 저 수많은 대중들에게 흠이 잡힐 일이고, 나를 외면하고 돌아선다면 천상과 인간의 괴로움을 다스려주는 붓다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습니다.

문이 열렸습니다. 고개를 든 내 앞에 그 분이 서계셨습니다. 양옆에 제자 두 사람이 함께 서있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달려 나가 그의 발을 감쌌습니다.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눈물은 거침없이 흘러나와 붓다의 발을 적셨습니다. 내가 그의 두 발을 어루만지며 한참을 흐느끼는 동안 붓다는 가만히 나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내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의 거친 옷과 장식품을 다 떼어버린 초라한 내 몸을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렇게 한참 나를 바라보신 뒤에 그는 제자들과 함께 돌아갔습니다.

붓다께서 떠나가신 후 더 이상 내 마음에는 남편을 향한 욕망이 일지 않았습니다. 다만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던, 그토록 담담하고 깨끗하고 고요하고 편안한 성자의 눈빛만이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붓다의 두 발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쏟아내던 날 내 마음속에는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정해졌습니다. 훗날 모후이신 마하파자파티께서 출가를 권하실 때 내가 주저하지 않고 따라나선 것도 그 길이 바로 내가 가야할 길, 약속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영예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지어주신 내 이름 야소다라, 나는 세속의 사람들에게서 영예로운 사람으로 경배받기 보다는 내 자신의 삶에서 가장 깨끗하고 영예로운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비록 남루하기 그지없는 가사를 둘렀고 이렇게 찬 바닥에 앉아서 스승과 함께 탁발 나갔던 아들 라훌라가 얻어온 암라 열매 하나로 복통을 달래며 지내게 되었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누구의 아내, 누구의 어머니가 아닌, 수행자 야소다라로 살게 되었습니다. 이따금 사람들은 나를 가리키며 수근거립니다.

“저 사람, 옛날 부처님의 부인이었지?”

그러면 나는 담담하게 그들을 향해 몸을 돌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수행자 야소다라입니다.”

* 야소다라 이야기는 몇 해 전 불교여성개발원의 <우바이예찬>에 실었던 원고로, 여러분들과 공감하고 싶어서 이 코너에 다시 올립니다. <쟈타카> <불본행집경> <방광대장엄경> 등에서 인용하였습니다.

 

반론ㆍ정정ㆍ추후 보도를 청구하실 분은 이메일(budgate@daum.net)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불교포커스'에서 생산한 저작물은 누구나 복사할 수 있으며, '정보공유라이센스 2.0: 영리금지 개작금지'에 따릅니다. 정보공유라이센스

이미령의 다른기사 보기
불교포커스 기사를 후원해주세요
  •            
후원하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