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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찾아온 붓다의 전생친구 가티카라이미령의 사람이 經이다⑭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저는 가티카라입니다.

당신을 만나려고 이 깊은 밤 천상에서 내려왔습니다.

당신에게 가르침을 들으려고 모인 사람들이 기쁨에 젖어 돌아간 지금. 당신은 어두운 숲에 고즈넉하게 머물러 계십니다. 당신의 길을 따르는 출가수행자들도 각자의 거처로 돌아가 고단한 몸을 눕히고 하루의 수행을 마감하는 이 시간, 당신은 향실로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 어둔 숲에 남아 있습니다.

그 이유를 저는 압니다. 이 시간이면 하늘의 신들이 당신을 만나러 오기 때문입니다. 한낮은 인간의 시간입니다. 그때는 세존 당신은 오롯하게 인간의 스승입니다. 하지만 저들이 물러간 이 늦은 밤, 이제 당신 곁에는 저희 신들이 모여듭니다. 깊은 밤, 당신은 신들의 스승으로 계실 시간입니다.

저를 아십니까.

저는 가티카라입니다.

가티카라라는 그 이름, 아, 기억이 나시나 봅니다. 세존께서 은은하게 미소를 짓고 계시는군요. 그렇다면 조티팔라라는 이름은 기억나십니까?

그래요, 그래요. 그렇습니다.

아주 오래 전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가섭부처님께서 가르침을 펼치던 그 옛날, 가티카라인 제 친구 조티팔라가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그때 천한 신분에 너무나 가난했던 제게 유일한 벗이 당신이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당신은 그때 높은 신분의 바라문 청년이었습니다. 가난한 살림에, 늙은 부모님을 모시느라 언제나 전전긍긍하던 그 시절. 당신은 신분의 차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저를 찾아왔지요. 그 당시 베하링가 마을에서 우리 두 사람은 우정을 쌓았습니다. 서늘한 나무 그늘을 찾아 나누었던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우리는 바른 삶이란 어떤 것인지를 토론했었지요. 세속이 아무리 온갖 유혹거리로 우리를 불러대도 우리 두 사람은 조금 더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지를 모색했습니다.

당신은 가문도 좋고 집안도 부유해서 수많은 스승들을 찾아다녔고, 밥벌이로 시간을 보내지 않고 온종일 깊은 사색에 잠겨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당신을 볼 때면 부럽기도 했지만 그건 당신의 삶! 제게는 제 삶이 있었습니다.

제 삶이란, 앞을 보지 못하는 연로한 부모님을 봉양하는 일입니다. 내가 스승을 찾아 집을 떠난다면 두 분은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집 대대로 이어온 직업을 묵묵히 이어가며 밥벌이를 했습니다. 진흙으로 그릇을 구워 파는 것이 제 일이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습니다. 간신히 부모님께 올릴 음식을 장만할 정도였지요. 그때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그릇을 좀 더 많이 만드시오. 그러면 돈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벌 수 있을 텐데….”

사람들의 권유도 맞기는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 정도로 만족했습니다. 내 인생을 돈 버는 데에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저는 가섭부처님을 틈날 때마다 찾아가 법을 여쭈었습니다. 부모님 진지 드실 시간에 맞추느라 늘 종종걸음이었지만 부처님을 뵙는 일을 거르지 않았습니다.

나는 부처님 가르침을 듣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가섭부처님은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를 자세하게 일러주십니다. 잠시도 머물러 있지 못하고 변하고 달라지는 요소들로 이루어진 이 몸뚱이, 그것을 ‘나’라고 집착하고서 내 맘대로 하려고 애를 쓰는 내 모습, 하지만 그런 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무너지고 마는 이 몸. 거기에 얽매여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고 애석해하고 눈물 흘리며 더 강하게 움켜쥐는 내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힘들고 덧없는지를 부처님은 늘 일러주셨습니다. 덧없는 것을 움켜쥐고 전전긍긍하느라 괴로움에 시달리는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와 세상이 진정 덧없고 괴로우며 그 가운데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음을 절감합니다.

늙은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가티카라 앞에는 도자기 물레가 놓여 있다. 밥벌이를 해야 하는 재가자의 무게감이라 해야 할까. 하지만 기꺼이 받아들이는 그의 표정은 맑다. 한쪽 옆에는 강가의 가섭부처님에게 나아간 두 청년의 모습이 아름답다. 삽화 마옥경

하지만 부처님은 덧없고 힘들다는 것만을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런 세상에서 진정한 가치를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언제까지 몸부림만 치며 살다 갈 것인가.

언제까지 힘들어, 힘들어 하소연하며 짜증내며 살 것인가.

괴로움을 극복하는 길은 없을까.

이 괴로움을 극복해서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부처님 가르침을 듣고 오면 저는 언제나 이런 생각들에 깊이 잠겼습니다. 그늘에 앉아 깊이 사색에 잠기다보면 어느 사이 저는 커다란 기쁨에 사로잡혔습니다. 덧없는 것들을 향한 애착이 줄어들고, 그 애착에 따라오는 번민이나 분노도 힘을 잃었습니다. 졸음에 시달리는 일도 별로 없고, 무기력증에 빠지지도 않습니다. 즐거운 일이 생겨도 그 기쁨에 들뜨지 않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부모님을 보살피고 음식을 준비해서 올린 뒤에 그날 해야 할 그릇을 빚고 나면 나는 나무 아래로 가서 선정에 듭니다. 나의 하루 일과는 이렇게 단조롭지만 그 속에서 얻는 기쁨과 평화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가섭부처님의 가르침을 차분하게 이해하고 제 온몸과 마음으로 그 가르침을 체현해가는 중에 저는 성자의 세 번째 단계에 들었습니다. 아직은 세속에 살면서 부모님을 모시고 돈벌이를 하면서 지내는 신분이었지만, 저는 그 시절 속가인으로서 가섭부처님의 시자이기도 했습니다. 제게 있어 부모님과 부처님은 너무나 소중한 인연이었고, 어느 쪽에 더 소홀히 할 수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제게 삶을 주셨고, 가섭부처님은 그 삶에 투명한 기쁨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존이시여! 기억나십니까?

저는 늘 당신을 졸라댔었지요. 명석하기 이를 데 없던 당신께서 가섭부처님을 뵙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워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라문 가문 출신인 당신이 부처님을 뵙고 가르침을 듣는다면 저보다 더 깊은 경지로 나아갈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참으로 컸습니다. 저는 틈만 나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보게, 조티팔라여. 우리 함께 어디 좀 가세.”

“어디 말인가? 자네가 내게 권하는 곳이라면 분명 좋은 곳일 테지?”

“그럼. 좋다마다. 자네 혹시 가섭부처님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나? 그 분은 세상의 존경을 받는 분이고, 깨달은 분이라네. 이런 분을 찾아뵙는 것은 아주 커다란 행운이지. 함께 가보지 않겠나?”

그런데 당신의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뭐라고? 가섭부처님? 이봐, 가티카라. 관둬. 아니 만날 사람이 없어 머리를 빡빡 깎은 수행자를 만나나?”

당신의 대답이 너무나 놀라웠지만 저는 그래도 거듭 권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코웃음을 치던 당신, 어떻게 하면 좋을까 깊은 고민에 저는 빠지고 말았습니다. 비록 당신은 가섭부처님에 대해서 곱지 않은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내 친구 조티팔라는 누구보다 진실한 스승과 참다운 수행에 대한 열정이 넘치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어느 날, 나는 당신을 강으로 데려가기로 꾀를 냈습니다. 강 근처에 가섭부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친구를 부처님과 가까운 곳까지 데려가면 뒷일은 저절로 해결되겠다는 생각에서였지요.

“조티팔라여, 그럼 우리 목욕이나 하러 갈까?”

당신은 흔쾌하게 따라나섰습니다. 그런데 강가에서 저는 다시 한 번 당신에게 권했습니다.

“이보게, 조티팔라, 이 강 근처에 바로 그 부처님께서 머물고 계신다네. 이왕 이곳까지 왔으니 한번 찾아뵙고 좋은 말씀을 들어보지 않겠나?”

당신이 순순히 따르지 않을 것은 예상했고, 과연, ‘그런 빡빡머리 수행자를 만나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당신은 대답했었지요. 하지만 이번이 아니면 두 번 다시 기회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허리춤을 움켜잡았습니다.

“제발 딱 한 번만 가보세. 자네에게 결코 시간낭비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거야.”

세존이시여.

그때 당신의 표정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하긴, 사실 친구라고는 하지만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신분의 차이가 존재했지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계급이라고 하는 바라문 출신인 당신이 저처럼 낮은 신분을 친구로 받아들이는 것은 세속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지체 높은 분의 허리춤을 움켜잡고 끌고 가려 하니 당신이 당황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분명 당신은 생각했겠지요.

‘이런 적이 없었는데, 도공 출신인 내 친구가 지금까지는 그래도 점잖게 굴지 않았던가. 그런 친구가 지금 이 정도로까지 나오는구나. 분명 지금 가섭부처님과의 만남에는 뭔가 깊은 뜻이 담겨 있을 것 같다.’

그러셨지요? 세존이시여, 그러셨기에 그때 이렇게 제게 말씀하셨던 것이겠지요?

“가티카라여, 그렇게도 나와 함께 그 분에게로 나아가고 싶은가? 그렇다면 가보세. 이 허리춤은 이제 그만 놓고 함께 가보세나.”

이렇게 해서 저희 두 사람은 가섭 부처님에게 나아갈 수 있게 됐습니다. 나는 자주 찾아뵙는 부처님인지라 반갑게 인사를 드리고 한쪽에 물러나 섰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청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은 제 친구입니다. 아주 친한 사이이지요. 이 친구에게 가르침을 들려주시기 바랍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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