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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오아튠야 폭포를 찾아서
  • 김광철|서울햇빛발전협동조합 이사
  • 승인 2017.09.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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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비 개인 하늘에 쌍무지개가 떠서 화제가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비 개인 동쪽 하늘에 커다란 반원 모양을 한 무지개를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서울에 살면서 그런 무지개를 좀처럼 보질 못했다. 기껏해야 분수대에서 뿜어내는 가는 물보라에 햇빛이 비치면 무지개를 보는 정도였다. 요즘 대도시들은 대기오염이 심해 무지개를 잘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 짐바브웨와 잠비아의 국경을 이루는 곳에 있는 모시오아튠야 폭포(빅토리아 폭포) 탐방에서 폭포 물이 곤두박질치면서 솟아오르는 물보라에 의해 계곡 이곳, 저곳에 무지개가 뜬 것을 한없이 볼 수 있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쌍무지개가 여러 곳에서 피어나는 것을 보면서 절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쌍무지개는 좀처럼 볼 수 없다. 쌍무지개는 ‘행운, 희망, 평화’ 등을 상징한다고 하니 이 얼마나 길조이겠는가?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연 이틀 간 모시오아튠야 폭포 곳곳에서 보았으니 말이다.

쌍무지개가 떠 있는 모시오아튠야 폭포(빅토리아 폭포)의 웅장한 모습. 저 멀리 보이는 다리가 짐바브웨와 잠비아 국경을 이루는 다리다.

‘모시오아튠야(Mosi Oa Tunya)’라는 말은 이곳 잠비아와 짐바브웨 등지에서 ‘천둥치는 연기’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런데 영국인 탐험가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1898년 서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이 폭포를 발견하고 그 장대한 규모와 웅장한 모습에 감탄을 한 나머지 자기 나라 영국 국왕의 이름을 따서 ‘빅토리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이 폭포는 서양인들에게 ‘빅토리아 폴스’라는 이름으로 소개되면서 지금은 현지에서 부르는 ‘모시오아튠야’라는 지명보다는 ‘빅토리아’ 폭포라고 알려져 있다.

이것을 보면서 나는 ‘현지인들이 폭포의 모습을 잘 표현한 좋은 이름을 놔두고 왜 자기 나라 국왕 이름을 갖다 붙여?’라는 생각을 하면서, 가급적 현지인들이 불러주는 지명을 존중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래서 나는 ‘모시오아튠야’라는 이름을 고집하면 이 글을 쓰는 것이다.

모시오아튠야 폭포 탐방을 가게 된 것은 남부아프리카의 남아공, 짐바브웨, 잠비아, 보츠와나, 나미비아 등 5개국을 전ㆍ현직 교사들 중심으로 여행을 꾸려 나섰기 때문이다. 우리 여행팀은 7월 26일 인천공항을 출발해 홍콩에서 아프리카항공으로 바꿔 타고 요하네스버그 공항에 내려 다시 빅토리아 폭포를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면서 총 20시간 정도 비행을 했다.

이번 여행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책임을 맡은 분은 경남에서 중학교 교사를 하다가 퇴직한 최두열 선생이다. 주로 현직 교사들과 퇴직 교사들의 가족, 지인을 중심으로 여행팀을 꾸리는데, 이번에는 경남과 서울, 인천 등지에 거주하는 전ㆍ현직 교사와 그 가족을 중심으로 8명이 팀을 이루었다. 50~60대의 장년들이라 모험적인 여행을 하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따르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최두열 팀장은 이번 남부아프리카 여행팀의 별칭을 ‘청바지’로 지었다. ‘청춘은 바로 지금부터’라는 뜻이다. 이하에서는 이번 남부아프리카 5개국 여행팀의 명칭을 ‘청바지’라는 약칭으로 부르겠다.

우리 청바지팀이 처음으로 아프리카에 입성해 여장을 푼 곳은 빅토리아 폭포 인근에 있는 ‘빅토리아 폴스 타운’이었다. 빅토리아 폭포 여행객들을 위한 숙박과 식사, 기념품점, 몇몇 은행과 관공서 등이 있었지만 호텔을 제외하고는 고층 건물이라곤 없다. 대부분 단층 건물에 건기인 겨울에는 가고 오는 차들이 날리는 먼지를 뒤집어써서 건물의 지붕과 벽 등이 뽀얗게 변해 있는 마을이었다. 지붕 재료로 기와나 양철 등을 사용하여 지은 곳도 있었지만 풀로 덮은 지붕의 초가집도 절반 정도는 되는 동네였다. 우리나라의 60~70년대의 면소재지 정도가 연상 되는 동네였다. 그 동네에는 여행객들이 묵는 숙박시설로서 5성급의 호텔로 있고, 3~4성 급의 호텔, 우리나라의 펜션과 같은 초가지붕을 한 ‘로지’라고 불리는 숙박시설, 몇몇 식당, 그리고 아프리카의 각종 동물 조각들을 만들어 파는 기념품점 등이 들어서 있었다. 우리 청바지팀은 그 중 3성급 호텔인 ‘N1 HOTEL’에 투숙했다. 이 호텔의 사장은 백인이지만 종업원들은 전부 흑인이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우리는 곧바로 모시오아튠야 폭포로 향했다. 폭포는 빅토리아 폭포 마을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가면 되는 거리에 있다. 그렇지만 우리 일행 중에는 몸이 불편한 사람이 있어서 택시를 탔다.

이곳은 남반구에 속하기 때문에 11월~4월이 겨울이다. 겨울에는 비가 거의 오지 않고 날씨도 좀 춥다. 높은 산지는 밤에 영하로 내려가기도 하지만 폭포가 있는 동네는 우리나라의 9월 정도의 날씨로 보면 된다. 겨울이라서 주변의 나무들의 절반가량은 낙엽이 지거나 누렇게 단풍이 들어 있고, 나머지 절반 정도는 상록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서 폭포쪽을 보았더니 폭포의 상공에는 둥그런 무지개 떠 있고, 요란한 물소리가 사방에 가득했다. 사진 몇 컷을 찍고 다시 나무숲을 통과하여 7~8분 정도 갔더니 드디어 모시오아튠야 폭포가 확실하게 우리의 시야에 들어왔다. 좀 더 들어갔더니 서양인으로서 이곳을 처음 발견했다는 리빙스턴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그에 대하여 설명하는 안내판도 붙어 있었다.

남부 아프리카의 중앙에서부터 흐르기 시작한 잠베지 강의 물은 이곳 모시오아튠야 폭포가 있는 곳에 이르면 100m가 넘는 낭떠러지를 만나 곤두박질을 친다. 그 광경이 바로 우리 눈앞에 펼쳐진 모시오아튠야 폭포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천지연 폭포보다 4배 정도 높은 곳에서 물이 떨어지면서 날리는 물보라는 폭포 상공 몇 십 미터까지 올라갔다. 그 때 그 물보라가 햇빛을 받으면 굴절이 일어나 무지개가 생긴다. 그런 영롱한 무지개가 폭포 계곡의 중간, 중간의 지점과 폭포 상공에 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만이 아니었다. 폭포물이 떨어지는 곳에서 좀 위쪽 골짜기에는 쌍무지개가 피어나고 있지 않은가? 정말로 환상적이었다. 이런 광경은 폭포가 떨어지는 깊은 계곡의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었다. 비록 겨울이라 물줄기가 많이 잦아들어 수량이 좀 부족할 지라도 무지개가 피어나는 데는 별 지장이 없는 모양이다. 오히려 수량이 많은 하절기 때는 어떨지가 궁금해 졌다. 폭포 계곡 건너편, 탐방로 위로도 가랑비가 내리는 것과 같이 작은 물방울들이 날아오기 때문에 탐방객들은 우산을 쓰거나 우비를 입질 않으면 옷이 젖는다. 그러나 겨울철이기 때문에 그 물방울의 양이 그렇게 많지를 않아서 가랑비를 맞으며 걷는 기분으로 우산도 안 받치고 걸었다.

폭포의 폭은 약 2~3km 정도는 될 것이다. 우리 일행 중에는 남미 이과수 폭포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말에 의하면 이과수 폭포는 그 폭이 수 킬로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폭포의 규모를 비교하면서 이과수 폭포와 모시오아튠야 폭포는 비교가 되질 않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폭포의 높이에서는 이곳 모시오아튠야 폭포가 이과수 폭포보다는 훨씬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계 제1의 폭포를 이과수, 제2의 폭포를 이곳 모시오아튠야(빅토리아)라고 하고, 제3의 폭포를 나이아가라라고 한다고 한다. 몰론 나는 세 곳을 다 가 보질 않았기 때문에 그 크기를 비교해 볼 수는 없다. 

모시오아튠야 폭포 상공에서 내러다 본 모습. 굽이굽이 흐르는 잠베지강이 퍽 인상적이다.

모시오아튠야 폭포가 만들어 내는 깊은 계곡은 짐바브웨와 잠비아의 국경을 이루고 있다. 그 깊은 계곡 위에 다리가 놓여 있어 양국을 이어주고 있었다. 우리는 여행의 첫째 날 짐바브웨 지역에서 폭포를 탐방했지만 둘째 날에는 잠비아 쪽에서 폭포를 감상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야 했다. 국경을 넘기 위해서는 출입국 신고를 하고 잠베지 강이 만들어 내는 계곡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야 한다. 다리 높이는 150m쯤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리를 넘어가는데, 보아하니 그 다리 위에서는 계곡물을 향해서 번지점프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잠비아라고 특별히 다를 것은 없었다. 국경마을이다 보니 잠비아에 대한 안내판과 선전물 등이 일부 세워져 있고, 유명한 관광지라서 폭포 입구에는 몇몇 기념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길가에는 개코원숭이들 여러 마리가 아주 여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곳 역시 조각품들을 들고 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게 다가와서 사라고 조르는 모습은 마찬가지였다. 그런 동네를 지나서 폭포 입구에 이르렀더니 어제 짐바브웨에서 본 모시오아튠야 폭포와는 또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짐바브웨 쪽에서는 폭포의 정면을 본다면 이곳 잠비아 쪽에서는 긴 계곡의 옆면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이곳 잠비아 쪽에서 보는 폭포가 더욱 신비감을 불러왔다. 계속 피어나는 연무와 같은 물보라며 계곡 곳곳에 피어나는 쌍무지개는 이곳 잠비아 쪽에서 더욱 많이 볼 수 있었다. 정말로 비경이었다. 달빛 고요한 밤에 이 계곡을 찾는 다면 저 계곡 속에 피어나는 연무 속에 선녀와 신선들이 노닐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폭포와 계곡의 모습을 살피면서 탐방로를 따라가는데, 탐방로 주변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없지만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숫잔대와 노랑원추리와 같은 예쁜 꽃들이 폭포에서 날리는 물보라에 젖어 이슬방울 같은 물방울들을 달고 있었다. 국경에 서서 하염없이 폭포의 물줄기와 계곡에서 피어나는 물보라, 무지개를 한참 감상하다가 다시 일행들을 찾아 발길을 되돌렸다. 

폭포에서 나와서 이번에는 폭포로 떨어지는 물이 흐르는 잠베지 강 쪽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이르렀다. 드넓은 강에 물이 흘러와 폭포로 직강하기 직전의 강물의 흐름이 펼쳐지는 곳이다. 강가로 가서 살폈더니 수량도 굉장히 맑았다. 물에 손을 넣어 잠베지 강의 체온을 느껴 보면서 다시 오던 걸음을 되돌려 출입국 관리사무소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 왔다. 출입국 관리사무소가 있는 국경에는 통관을 기다리고 있는 차들이 줄지어 서 있고, 사무소 안에는 애기를 들쳐 업고 손에는 채소며 숯이며 빗자루 등 생활용품 보따리들을 들고 있는 원주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먹고 살기 위하여 이고지고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의 고단한 삶의 모습을 국경마을에서 마주하니 내 어릴 적 시골 장터 모습이 떠올랐다.

잠비아에서 짐바브웨로 넘어가 생필품을 팔려고 출입국 관리사무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잠비아 여인들.

숙소로 돌아오니 점심때가 되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오후에는 헬기관광에 나섰다. 헬기를 한 번 타는데 미화 120달러가 들었다. 헬기는 4명을 태우고 모시오아튠야 폭포 상공을 3~4회 돌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폭포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꼬불꼬불한 계곡의 몇 굽이가 휘감아 흐르는 것도 보이고, 저 멀리서 흘러오는 잠베지 강의 모습도 한 눈에 들어왔다.

그런가 하면 겨울 건기에 불타는 아프리카 초원의 모습,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가옥들도 눈에 들어왔다. 세계적인 관광지이지만 아직 개발이 덜 되어 있었다. 숙박시설이나 음식점, 각종 편이 시설 등 다양한 즐길 거리가 들어선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릴 텐데. 아직은 이 나라가 그런 여력이 없는 것 같다. 필요하다면 외국 자본을 끌어들일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탐방객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런 상태로 있는 것이 자연의 참 모습을 조금이나마 훼손하지 않고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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