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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도 어려운 적폐청산…운동에 ‘적당히’는 없다”[릴레이 인터뷰 ④] 일진 김명희 거사
한국불교 개혁의 마중물이 되고자 일상을 바친 이들이 있다. 오늘도 조계사 앞에서 피켓을 든다. 일군 성과가 자못 대단하다. 무관심과 냉소로 일관하던 조계사 신도, 불자, 일반 시민들이 지지와 응원을 보내기 시작했다. 9주째 이어온 촛불법회, 범불교도대회 또한 이들이 없었다면 요원했을 일이다. 하루하루 봉사로 개혁을 일구고 있는 불자들을 차례로 만나보았다. <편집자 주>

‘조용한 운동’이라는 말 만큼 모순된 표현도 없다. 고착화된 관습과 폐단을 바꾸겠다고 나선 운동이 조용하게 성공할 수 있다면 애초에 ‘운동’이라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부조리에 눈 감지 않는 정직, 외압에 굴하지 않는 결기는 운동을 이끄는 활동가의 필수 조건. 기득권을 타파하고 개혁을 일구려는 활동가는 어쩔 수 없는 ‘모난 돌’의 숙명을 지녔다.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거요? 아니면 적폐청산 하는 시늉을 하겠다는 거요. 개혁은 적당히 해서 되는 거 아니야.”

한쪽에서는 노숙 단식을 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매일 같이 피켓시위를 하는 이들에게도 거침없이 쓴 소리 하는 일진 김명희 거사는 타고난 ‘모난 돌’이다. 때때로 “열심히 해보려는 사람들에게 왜 그리 아픈 말을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대다수 김 거사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장기간 노동운동을 펼쳐온 김 거사의 전력, 누구보다 부지런히 현장을 누비는 김 거사의 실천을 잘 아는 탓이다. 지난 9월 26일 오후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김명희 거사를 만났다.

일진 김명희 거사

94년 조계사…종단개혁과 전지협 파업

김 거사와 불교의 첫 인연은 2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4년 잊을 수 없는 봄, 한국불교계에 ‘종단개혁’이라는 영광과 상처가 공존했다면, 그해 여름에는 세상을 뒤흔든 파업이 있었다. 서울ㆍ부산 지하철노조와 철도노조 전기협이 전국지하철노조협의회(이하 전지협)를 구성, 노조원 2만여 명이 참여하는 사상 초유의 파업을 실시한다. 그 격동의 중심에 ‘김명희’가 있었다.

“그때 전지협 사무처장을 맡았어. 인원이 상당하잖아. 그 당시만 해도 민주화운동이니 노동운동이니 하는 사람들이 대게 명동성당을 찾았지. 근데 인원이 많기도 하고, 내 마음속에 뭐랄까 ‘자비의 종교 불교에 한번 기대보자’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해서 ‘조계사로 한 번 가보자’ 이랬지. 그래서 대중들은 현장에 복귀한 뒤 지도부는 양쪽으로 나눠서 절반은 명동성당, 그리고 내가 속한 절반은 조계사로 간 거여. 일종의 수배 생활 겸 농성이었다고 봐야지.”

고마웠던 대불련, 씁쓸했던 조계종

6월 27일부터 9월 1일까지 총 66일. 조계사 피신의 기억에는 고마움과 씁쓸함이 함께한다.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 조계사였지만 당시 종단은 김 거사를 비롯한 노동자들에게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다. 내쫓지 않았을 뿐 공양을 제공하지 않은 것은 물론 화장실도 쓰지 못하게 했다. 김 거사는 당시 경내 총무원 청사 별관 지하에 위치한 대불련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66일 동안 화장실 한 번을 못 갔어. 들어오지를 못하게 하니까. 대소변을 건물 구석에서 거의 다 해결 했어요. 당시 6월이니까 개혁종단이잖아. 그런데 개혁종단 스님들조차 파업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과 거리를 두려는 입장이 역력했지. 그때는 그랬어. 우리를 찾아와 함께 대화를 나눈 스님은 명진스님이 유일했어. (중략) 지금 와서 이야기지만 우리가 들어갈 때부터 대불련 지도위원단을 비롯한 재가불자들과 협의를 한 것이지 승가와 협의를 한건 아니었거든. 지금도 대불련을 생각하면 참 고마워. 그 사람들의 헌신적인 뒷바라지와 봉사가 감동적이었지.”

일진 김명희 거사.

불자가 되어야겠다

경찰의 조계사 침탈로 잡혀나간 뒤 구치소 생활을 하던 그는 그 해 12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돌이켜보면 서운함 보다 고마움이 컸던 조계사 생활. 불교 운동하는 후배들의 헌신적 지원이 그의 마음을 움직인 덕에 그는 “불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노동운동을 하면서도 틈틈이 불교 모임도 만들고 절에도 다니고 그랬지. ‘일하는 불자들의 모임’이라고 ‘일불모’를 만들어서 스님들 모셔다 법회도 하고, 이후에 지인 인연으로 사찰 불교대학에 다니면서 공부도 하고, 시간이 없을 때는 인터넷하고 책을 틈틈이 보면서 그렇게 불자가 된 거여.”

오랜 직장생활과 반복된 노동운동에 지친 탓이었을까. 고요한 산중 사찰 속 수행자의 묵기가 동경으로 다가왔다. 정리해고 광풍이 불던 2005년, 그는 사표를 내고 훌훌 직장을 떠났다. ‘산중 사찰로 들어가 수행자 비슷한 냄새라도 나는 그런 삶을 살리라.’

연이은 불교와의 악연

아쉽게도 그런 그의 이상과 동경은 실현되지 못했다. 부목처사를 구한다기에 처음 찾아간 사찰은 ‘주지스님의 여자문제’로 말썽이었다. ‘그래도 내가 사회운동을 한 사람인데….’ 문제를 직접 해결하겠다고 뛰어들었다가 4개월 만에 절을 나왔다.

‘다른 절은 안 그렇겠지’ 지게꾼을 구한다는 산중 사찰에 들어가 열심히 지게를 졌다. 못 본 척, 못 들은 척 시키는 일만 했으면 지금도 지게를 지고 있었을까. 비용을 들여 처리해야 할 정화조의 오폐수를 근처 계곡으로 방류하는 사찰의 만행을 보고 ‘이건 아니다’ 싶어 총무스님을 찾아간 김 거사는 매몰차게 쫓겨났다. “(그런거 문제 삼으려면) 거사님 나가세요”

“(주지스님의 여자문제는) 그때 사중 분위기가 그거 때문에 둘로 갈라져 있었고, 나도 처음이라 해결을 좀 해보겠다고 개입했지. 문건도 만들고 경내에서 3천배도 하고 그랬어. 두 번째가 되니까 싸울 의욕도 생기지 않더라고. 나가라는 말에 ‘알았습니다’하고 보따리 싸서 그날로 나왔어.”

그러고도 미련이 남아 절을 찾았다. 부설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사찰과 인연이 닿아 낮에는 어린이집 운전기사를 하며 6개월가량 지냈다. 이번에는 제 발로 떠났다. 당시 사찰 주지스님은 지역 불교환경단체의 임원을 맡고 있었지만, 해당 사찰과 어린이집은 기본적인 분리수거 하나 지키지 않았다고 김 거사는 회고했다.

“최소한의 분리수거도 하지 않고 큰 비닐에 다 때려 넣은 다음 공터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더라고. 그걸 야매 업자가 한꺼번에 처리하는 방식이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내다가 내 마음이 불편해서 그냥 나왔어. '이제는 진짜 절간 근처에는 얼씬거리지 말자.' 짧은 경험이지만 진면목을 다 봤구나 싶었지.”

산사 수행자의 생활을 꿈꿨던 그는 절에 몸을 의탁하는 대신 스스로 수행터를 일궜다. 함께 사회활동을 한 동료로부터 ‘마음껏 사용해 달라’고 기증받은 청평 대성리 일대에 함께 먹고, 자고, 쉴 수 있는 ‘참터’라는 이름의 집을 지었다.

“2007년에 대성리로 들어가서 올해가 딱 10년이야. 맨땅에 집짓고 최소한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해서 농사도 짓고…. 참된 먹거리, 참된 배움, 참된 휴식이라는 의미를 담아 ‘참터’라고 내 맘대로 간판을 달았지.”

김명희 거사는 "문재인 대통령 보라.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적폐를 해결하겠다고 엄청난 고민을 가지고 힘든 정치를 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지금 종권이 바뀐 것도 아니지 않나. 어떤 어려움을 감수하더라도 적폐를 반드시 청산하겠다는 각오와 결의를 다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문재인도 못하는 적폐청산, 하려면 제대로 하자”

다시는 절간으로 돌아오지 않으려 했던 김 거사가 10년 만에 다시 절을 찾아 불교개혁운동에 나선 것은 표면적으로 명진스님 때문이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본인이 보고 겪었던 현실에 대한 아쉬움과 그럼에도 ‘나는 불자다’라는 자긍심이 한 데 뭉친 복잡 미묘한 감정이 있었다. ‘이왕 나선 김에 하려면 제대로 하자. 끝을 보자’는 마음으로 어렵게 내딛은 발걸음. 함께 활동하는 이들에게 쓴 소리를 아끼지 않는 이유다.

“폭력, 도박, 성문제, 금권선거, 학원자치, 언론….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적폐를 모두 청산하겠다고 나선 거잖아요. 말만 적폐청산, 적폐청산 해서 될 문제가 아니야. 지금 문재인 대통령 보세요. 정권이 바뀌었는데, 그런데도 적폐를 해결하겠다고 엄청난 고민을 가지고 힘든 정치를 하고 있다고 난 봐요. 대통령이라는 엄청난 권력을 잡아놓고도 적폐 청산이 잘 안되는데 우리는 지금 종권이 바뀐 것도 아니잖아요. 되레 적폐를 그대로 계승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는 상황인데, 그러면 어떤 어려움을 감수하더라도 적폐를 반드시 청산하겠다는 각오와 결의를 다져야지요.”

‘우리 스님한테 왜 이러냐’는 그들에게

태생이 ‘모난 돌’인 김 거사의 쓴 소리는 때론 과격해 보이기도 한다. 최근 종무원 70여 명이 단식장에 떼로 몰려와 “스님에게 XX라고 말한 거 누구야”라고 따질 때, 그 ‘누구’가 바로 김 거사다. (관련기사: 피켓 부수고 단식장에 집단행동…갈등 속 드러난 ‘조계종 민낯’

“욕설은 분명 잘못 아닌가”라는 기자의 표면적인 물음에 김 거사는 “중요한 것은 부처님 가르침 아니냐”며 ‘본질’을 이야기했다.

“욕설만 가지고 이야기 하자면 얼마든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김 기자도 봤잖아. 시위하는 불자들의 피켓을 때려 부수고 여성 불자들을 몸으로 밀치고…. 어떤 행동을 해도 스님이니까, 또 승복을 입었으니까 그저 고개 숙여야 하느냐는 거예요. 종무원들도 그래. 머리 깎으면 무조건 고개 숙이고, ‘우리 스님한테 왜이래’ 이러면서 굴종하는 게 불법(佛法)입니까? (종무원들 가운데) 학생운동했던 사람들도 많이 있다면서요. 그건 운동적으로나 신행적으로나 안 맞는다고 봐요. 스스로 자기를 속이는 거지.”

안팎으로 ‘모난 돌’을 자처하던 김 거사는 우정총국 릴레이 단식정진을 회향하던 29일 눈물을 보이며 “미안하다”고 했다. “보다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해놓고 참 많이 부끄럽다. 스스로를 살피지 못한 것을 참회한다”는 김 거사의 말에 모두가 고개 숙였다.

그리고 긴 추석연휴가 시작되던 30일, 그는 장기 단식을 마치고 병원에 입원한 허정ㆍ선광ㆍ석안스님의 병문안을 다녀온 뒤 다시 조계사 앞을 찾았다. 단식장은 회향 했지만 회향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임을 몸소 실천하는 김명희 거사. 한국불교 적폐청산을 위해 꼭 필요한 ‘모난 돌’이다.

29일 우정총국 릴레이 단식정진을 회향하며 허정스님과 포옹하고 있는 김명희 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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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으아 2017-10-08 13:17:57

    설정스님은 좋겠다
    자승스님이 선거인단 다 짜줘
    돈도 미리 다 뿌려줘
    매일 전화해서 확인받아줘
    가만히만있어도 당선인데
    차로 사람을 치지를 않나
    서울대라 구라를 치지를 않나
    부동산가등기를 100억이나
    하고 애까지 있다는 이야기까지
    하아 줘도 못먹나!!   삭제

    • 글쎄요 2017-10-05 09:22:48

      저도 전에 군법당 일년정도지만 참
      열심히 다녔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군대에서 불교 믿었던 젊은 이들이
      사회에 나와선 대부분 교회나 성당으로
      간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남자들이 다닐만한
      절이 다는 겁니다. 일요법회하는 절도 없고
      또 가도 기도위주의 운영에 적응도 안되구요.
      밖에있는 사찰들의 변화없이 군포교 아무리
      해봤자 효과는 글쎄요
      근본적인 불교의 개혁이 우선입니다.
      군포교 좋은 일이지만 일에는 선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삭제

      • 인땡땡 2017-10-02 19:58:18

        저는 일반포교사로써 경기도 파주시 소재 대대급군법당에 포교하러 다녀요. 일인시위하던 보살님들 거사님들께 부탁드립니다. 저와같이 군법당 다녀요. 젊은 군인들에게 부처님말씀 함께전해요. 우리 포교사단 서울지역단 동부군5팀에 후원해 주세요.   삭제

        • 인땡땡 2017-10-02 10:12:10

          23년전 이야기인데 구청사 3층은 총무원 2층은 불교신문사 대불청 개혁회의홍조실 포교원이 있었지 그당시 해탈문옆 장독대지하가 교화연합회가 사용타가 대불련이 사용했는데 그때 지금 신한은행있는 건물 처마밑에서 기다리고 있었지 조계사나 총무원이 마련해줄수 있는곳이란 대불련이 공간이 그당시 조건으로는 최대 였지 총무원의 허락을 받은 난 대불청임원과 개혁회의 직원을 덩시에 했는데 비오는날 내가가서 들어와도 타고 말해준것이 생각나네. 김처사님 너무 섭섭해 생각하지 마세요. 그당시 대불련 동지들이 지금은 대주분 차팀장들 입니다.   삭제

          • 진실 2017-10-02 06:39:26

            진실이 세상을 항상 평화롭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불편한 진실도 있고 위험한 과학도 있다. 종교가 진실이 아니더라도 종교를 믿어서 사회가 평화로워진다면 믿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런데 지금의 종교는 평화보다는 혼란을 야기한다. 내부적으로는 서로 좋은 직분을 차지하려고 싸우고 외부적으로는 타종교에 테러를 가하거나 전쟁도 불사한다. 중력과 전자기력을 하나로 융합한 통일장이론으로 우주와 생명을 새롭게 설명하는 책(제목; 과학의 재발견)이 나왔는데 교수들이 반론을 못한다. 그 이유가 궁금하면 교수들에게 물어보거나 이 책을 보라!   삭제

            • 설예인 2017-10-01 20:29:21

              늘 열심히 희생해주시는 모습미안함과죄송한마음뿐입니다!! 거사님의간절함이 꼭 빛을발할날이 있으니~모두가~화이팅입니다!!!
              잠시만이라도 풍요롭고ㆍ행복한추석연휴되시길~   삭제

              • 종도 2017-10-01 19:55:14

                조금만 부드러워도 좋을텐데..
                하면서도 그 진정성을 느끼기에
                나왔던 입이 쏙 들어갑니다

                감사합니다   삭제

                • 불자 2017-10-01 15:22:09

                  큰거사님 포함 범불교대회 단식정진단 활동
                  영화나 드라마 예능보다 더 감동적입니다.
                  아니 영화 드라마 예능으로 만들어서
                  전세계 정법을 구하는 사부대중 누구나에게 널리 알립시다   삭제

                  • 거룩한 큰거사님께 귀의합니다 2017-10-01 15:21:08

                    말로만 부처님법 자비 어쩌고 하면서
                    뒤로는 온갖 추악한 적폐를 저지르는 자칭 큰스님보다
                    큰스님의 치열한 삶이 진짜 참수행자십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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