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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헛된 이름과 스님의 학력위조
  • 임지연 바른불교재가모임 상임대표
  • 승인 2017.10.09 14:26
  • 댓글 5

지난 여름 우리는 부탄으로 갔다. 특별한 동기는 없었다. 한국-부탄 수교 30주년 기념 프로모션 덕에 한국인의 경우 올 여름 체류비가 특히 적게 든다는 정보가 있긴 했지만, 그것 역시 선택의 한 계기일 뿐이었다. 그저 ‘가 볼까요?’, ‘좋아요’ 정도의 느슨하지만 꽤 흔쾌한 대화가 저녁 식사 자리에서 있었고, 그 뒤로 약 일주일이 지나 곧장 네 명의 행장이 꾸려졌다.

일견 급작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일행의 내면에는 매우 긴 시간동안 부탄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계획은 치밀하지 않았을지라도 그 내면의 목소리에 응답하려는 일행의 마음 그물은 한 코도 성글지 않았다. 그렇게 널널하면서도 또한 촘촘하게, 한참 잊고 있던 오랜 약속을 이제야 지키게 되었다는 듯이 일행은 지체 없이 부탄으로 떠났다. 그러고 보면 특별한 동기가 없었던 게 아니었다. 여행의 중심엔 일행을 부탄으로 잡아끄는 강력한 원심력이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었으리라. 모든 일엔 원인이 있기 마련이고, 매사 특별하지 않은 것이 없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이 부탄은 소위 ‘행복의 나라’로 불린다. 물론 이와 같은 유명세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1970년대 부탄의 4대 왕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가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보다는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 GNH)이 더 중요하다”는 말과 함께 ‘행복’을 국정 운영의 기본 철학으로 삼아 나라의 틀을 잡았고, 이를 2000년대 초반 OECD 국가들이 받아쓰면서 국제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또한 국가 운영의 중심 가치를 국민의 행복에 두고자 하는 정부의 정책 비전과 과연 부탄 국민들의 삶이 실제로 행복한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나라의 정체성을 국부나 군사력이 아니라 독자적인 전통 문화 속에서 세우고자 하는 노력, 강력한 환경 보호 정책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후세에 물려주고자 하는 노력, 또한 민중이 아니라 왕이 직접 민주주의를 주창하고 지방 분권화를 추진하려는 노력 등에서는, 국가의 외형적 성장보다 내적 가치를 수호하고 향상시키고자 하는 부탄 정부의 의지를 충분히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극심한 빈부격차(일례로 수도 팀푸의 월세는 일반 노동자의 월급보다 높다), 의료 인프라의 절대 부족(부탄 전체에 의사는 약 180명 정도이고 그나마도 팀푸에 집중되어 있다. 동물병원은 현재 건설 중인 한 곳이 유일하다), 타종교에 대한 차별(종교의 자유가 있긴 하지만 티베트 불교가 거의 국교로 인식된다. 약 10만 명에 가까운 힌두교도들을 대거 추방한 이력도 있다), 타민족에 대한 배척(한 외국인은 약 40년 만에 시민권을 받기도 했다), 청년들의 실업과 마약중독, 각종 범죄률의 증가, 높은 문맹률과 영아사망률(2012년 유니세프 통계에 따르면 각각 47.2%, 32.1%), 그리고 세계 22위에 오른 자살률 등, 부탄 사회의 내부 문제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특유의 은둔적 태도로 세계인들에게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행복의 나라’ 부탄이라도 사람 사는 모습은 여느 나라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일까? 어쩌면 한 철학자의 말마따나 역사는 “행복이 자라나는 토양”이 아닐 지도 모르겠다. “인류 역사의 텍스트에서 행복은 완전히 빈 페이지이다.”(G.W.F. Hegel, <역사철학 강의>)

부탄. 사진=임지연.

그러나 부탄 정부가 내세우는 국민행복지수와 그에 이율배반처럼 보이는 각종 통계 수치들이 부탄의 모든 것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니다. 사실 ‘부탄 = 행복’이란 등식도 부탄 스스로 근대국가의 틀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대내외적으로 얻게 된 국가 이미지의 하나일 뿐이다. 그렇다면 부탄 사람들은 불행한가? 역시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나에게 부탄은 ‘행복’ 또는 ‘불행’이라는 서구적 개념 쌍으로는 미처 다 담아낼 수 없는 나라로 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부탄은 행복의 나라가 아니다. 부탄을 담아내기에 행복이란 말의 폭은 너무도 비좁다.

하루는 일행 모두 파로에 있는 탁상 사원을 방문하였다. 8세기 경 처음으로 부탄에 불교를 전한 파드마삼바바가 3년 3개월 3주 3일 3시간 동안 명상을 했던 장소로 유명한 이곳은, 그가 호랑이를 타고 왔다는 전설로 인해 ‘호랑이 둥지(Tiger Nest)’라고도 불린다. 해발 3100m가 넘는 곳에 위치해 있기에, 오르는 내내 나는 낮은 기압 탓에 계속 하품을 해야만 했다. 참배와 길지 않은 그러나 깊은 명상을 한 뒤에도 사원은 우리 일행의 발을 쉽게 놓아 주지 않았다. 우리는 사원의 아주 작은 부분에서도 수행자들의 숨결을 느끼고 싶었고, 시공을 초월하여 그들과 하나가 되고자 했다. 결국 폐원 시간을 넘긴 탓에 경찰의 요구에 의해 하산할 수밖에 없었지만, 일행의 마음은 여전히 사원의 처마 끝에 걸려 있었다. 

산 중턱 쯤 내려왔을까,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는데, 한 노인이 네댓 살 정도 되는 어린 소녀의 손을 잡고 산을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산을 오를라 치면 보통 앞이나 위를 보기 마련인데 바위를 더듬거리며 발을 옮기는 소녀의 모양새가 낯설어 유심히 살펴보았더니, 역시 소녀의 눈은 멀어 있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로 산을 오르세요?” “아이가 앞을 못 봐요. 사원의 성수로 눈이라도 씻겨 주면 좀 나을까 해서요.” 아이가 재촉하듯 말한다. “할아버지, 우리 가요.” 이제 노인은 아이를 등에 업고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시간이 늦어 사원에 도착하려면 한 밤이 될지도 모르겠다. 노인의 얼굴에는 가난과 노쇠함 외에 익숙한 것이 없어 보였지만, 그와 함께 피곤이나 억울함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잔잔한 미소가 대화 내내 사라지지 않았다. 어서 가자는 아이의 당차고 씩씩한 외침이 졸음 겨운 산을 화들짝 깨운다.

아이를 치료할 마땅한 방법도 또 완전히 나을 가능성도 없으니 나는 이들을 불행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래도 자신만의 믿음에 의지해 한 걸음씩 내딛고 있으니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해야 할까? 이와 같은 물음은 비단 이들만이 아니라 여행 동안 보았던 부탄의 삶 구석구석에서 떠올랐다. 사람의 삶을 생각하면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말들은 차라리 귀엽게 들린다. 나는 눈 먼 소녀이다. 그리고 나는 또한 가난한 노인이다. 나는 그저 내 삶을 살 뿐이라,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말들을 잘 알지 못한다.

이번 부탄 여행을 이끌었던 내 내면의 목소리는 행불행의 헛된 이름을 쫓지 말고 생의 한 가운데를 들여다보라는 오랜 가르침이었다. 그런데 이 소리를 확인하고 나니 다른 누구보다도,  얼마 후에 있을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에 후보로 나온 한 스님에게 마음이 간다. 그는 선승으로 손꼽히기도 하고 서울대를 다녔다는 이력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얼마 전 그의 학력이 순전히 위조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무려 수십 년 동안의 학력 사칭만으로도 법적, 도덕적 책임을 피할 수 없는 마당에,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일말의 부끄러움이나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아 많은 불자들의 실망과 원성을 사고 있다.

그로서는 서울대라는 이름이 그렇게 좋았던 걸까?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총무원장이라는 자리에 꼭 앉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이름이 아니라면 그저 돈 때문일까? 학력을 위조하고 사칭한 범죄자가 한국 불교 대표 종단인 조계종의 수장이 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괴롭고 부끄러운 일이다. 그는 우리 불자들이 느낄 수치심과 자괴감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일까?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이라 하셨는데, 스님의 ‘作’은 거짓말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나?

“설정스님, 지금이라도 사퇴하시지요. 지금은 총무원장이 되겠다고 할 때가 아니라 서울대라는 이름에 헛되이 빼앗긴 스님 자신의 마음 밭을 돌아볼 때입니다. 당신의 거짓으로 인해 상처받은 종도들의 마음을 두 번 헤하지 마십시오.” 종단의 현실 앞에서 부탄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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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자 2017-10-10 08:37:40

    아래 관련기사와 같이 보시면 더욱 좋습니다.
    김용민브리핑 고정출연 민중의소리 이완배기자 칼럼 : 가난해도 행복하다는 부탄식 행복주의는 답이 아니다
    http://www.vop.co.kr/A00001208277.html   삭제

    • 불자 2017-10-10 08:10:42

      마지막 마무리를 설정당 사퇴로 하신것도 시의적절한 지적이십니다.
      설정당뿐만 아니라 상당수 스님들이나 재가자들이
      설정당같이 학력 경력 속여서라도 개인재산 불리고 속가가족 은처자식 키워서
      좋은물질 높은자리 올라가려고 혈안이면서도
      신도 도반에게는 "자 이 가난해도 행복한 부탄사람들 보라!!
      우리 스님 불자들도 물질욕심 버리고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도 포기하고, 우리같은 권승들에게 바치면 더욱 좋고) 부탄처럼 행복하게 살아라"하는게 매우 불편했는데 이들에게 던지는 경책이요 대다수 스님 불자들에게는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삭제

      • 불자 2017-10-10 08:04:28

        최근 부탄 관광 할인행사 이후 일방적인 부탄 찬양 및 물질적 가난해도 행복한 불국토 부탄을 본받자 식의 도배된 순례기가 교계언론 sns에 넘쳐나는데 역시 재가불교 지도자답게 부탄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순례기 매우 신선하게 잘 보았습니다.
        그렇죠 최소 생존 수단도 없으면서 무조건 행복해라라고 강요한다고 행복은 아니지요.
        그리고 부탄 순례후 안팎의 유혹에 끄달리지 말고 내면의 소리를 따라가자 이것도 좋네요. (도반이나 신도들에게 가난하게 살으라고 윽박지르는 기존교계 순례기보다 훨씬 낫습니다)   삭제

        • 진실 2017-10-09 17:24:56

          인간의 장기가 이식되면 장기 제공자의 수명과 상관없이 독립적인 생명을 유지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하나의 주체에 의해서 통제되는 단일생명체인가 아니면 여러 생명체가 함께 사는 연합생명체인가? 중력과 전자기력을 하나로 융합한 통일장이론으로 우주와 생명을 새롭게 설명하는 책(제목; 과학의 재발견)이 나왔는데 노벨 물리학상 후보에 오른 과학자들(김정욱, 김진의, 임지순, 김필립)도 이 책에 반론을 못한다. 그 이유가 궁금하면 그들에게 물어보거나 이 책을 보라! 이 책은 과학으로 철학을 증명하고 철학으로 과학을 완성한 통일장이론서다   삭제

          • 총무원장 선거인단 스님분들께 2017-10-09 15:25:13

            최근 300만 불자가 감소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요즘 절에다니는 신도분들의
            90%이상은 나이드신 보살님입니다

            이렇게 10년만 지나도 신도수는
            노보살님들은 건강문제로
            그외 신도들은 절에대한 가치부족으로 절반
            이상 아니 그이상 줄게되어있습니다

            과연 그때가되면 줄어든 신도수로
            절의 재정은 심각하게 영향을받게됩니다
            그러면 스님들의 노후가 어떻게되겠습니까?

            이번 선거야말로 중차대한 기로에 서있는
            불교중흥의 시발점이 되어야합니다

            보다 젊은세대가 불교의 정신적가치에
            눈을 뜰수있도록

            포교의 선장들이 나설수있도록
            길을 열어 주셔야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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