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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승가의 여섯 기둥

이거 큰일났구나 싶었던 모양이다. 서둘러 아난다 존자를 찾아가는 사미 춘다의 발걸음이 재다.

“존자님, 존자님. 소식 들으셨어요?”

사리불 존자의 동생인 춘다가 이렇게까지 흥분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터. 아난다 존자가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시오?”

“니간타 교도들이 지금 싸우고 난리도 아니랍니다.”

“아니, 그들이 왜? 그들의 스승인 니간타 나타풋타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그새 패가 갈려서 저리들 싸운다고 합니다. 어찌나 험한 말로 싸워대는지 사람들은 저들 교단에 진저리를 친답니다.”

아난다는 부처님께 나아가자고 말했다. 비록 타종교집단이지만 수행자들이 저리도 다투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필시 부처님께서도 어떤 말씀을 하실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난다는 한 걸음에 부처님께 달려가 절을 올리고 이 일을 자세하게 말씀드리며 이렇게 여쭈었다.

“아, 세존이시여, 사미 춘다가 전해준 그 소식은 참으로 제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습니다. 송구하오나 세존께서 만일 돌아가시고 난 뒤 우리 승가에도 이런 일이 생기지 말란 법이 없을 텐데요. 이런 분쟁은 많은 사람에게 행복과 이익을 가져오지 못하고 오히려 손해와 괴로움만 불러올 텐데 어쩌면 좋겠습니까?”

부처님은 그때 어떤 표정으로 아난다를 바라보셨을까? 경전에는 자세하게 그리고 있지 않지만 평온하고 담담한 표정 그대로 아난다를 보셨으리라. 왜냐하면 부처님은 이렇게 대답하시기 때문이다.

“아난다여, 지금까지 진리에 이르는 길과 관련해서 수행자들이 다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아난다는 답한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관련해서 다른 주장을 하는 제자들을 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부처님, 부처님께서 떠나신 후 생계와 관련해서나 기타 계율조항과 관련해서는 분쟁이 생기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아난다여, 그런 분쟁은 참으로 사소하다. 정말 심각한 분쟁은 진리와 진리에 이르는 길에 관한 이견이다. 이와 관련해서 분쟁이 일어난다면 그야말로 사람들에게 이익과 행복이 되지 못하고 손해와 괴로움만 가져올 것이다.”

부처님은 어쩌면 이리도 담대하셨을까. 진리에 관한 이견이라면 정말 큰 문제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대체 뭐 그리 호들갑을 떨 일이냐고 답하지 않으시냔 말이다. 생각해보면, 불교란 사람이 나고 죽는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길이다.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일미화합의 모습만 보일 수는 없겠지만 수많은 갈등과 논란은 수행의 길에서 말끔하게 해결할 것이라는 게 부처님의 입장이다. 왜냐하면 세속적인 분란에 휩싸이거나 세속의 사람들도 당연히 지키는 윤리조항을 어긴다면 수행의 길에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그런 면에서 승가의 구도자들을 믿으셨던 게 틀림없다. 그러니 니간타 교도들의 분쟁 소식을 전해듣고도 이리 담담하게 대응하시는 것이리라.

이 이야기는 초기경전인 <맛지마 니까야> 중에 <사마가마경(Sāmagāma Sutta)>에 실려 있다. 그런데 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부처님도 장래 일이 걱정스럽기는 하셨나보다. 곧이어 갈등의 이유와 갈등을 해결하고 봉합하는 법에 대한 가르침이 베풀어지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걱정하고 있는 아난다를 향해 승가가 왜 싸우는지, 그 다툼의 원인 여섯 가지를 이렇게 정리해 보이신다.

첫째, 분노를 품고 상대방을 적으로 여긴다.
둘째, 오만하여 상대를 업신여긴다.
셋째, 질투하고 인색하다.
넷째, 교활하게 속인다.
다섯째, 그릇된 바람을 품고 있다.
여섯째, 자기 견해를 고수하고 놓아버리지 않는다.

이 여섯 가지를 지니고 있는 수행자는 불법승을 존중하지도 못하고 그런 까닭에 제대로 공부하지도 못하니, 결국 다툼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부처님의 진단이다.

이어서 부처님은 승가에 분쟁이 일어났을 때 풀어가는 일곱 가지 방법을 설명하신다. 칠멸쟁(七滅諍)이라 하여 아주 유명한 법문이다. 어떻게든 분쟁을 풀어서 앞으로 나아가자는 취지이다.

그리고 이 경의 마지막에는 저 유명한 육화경(六和敬) 법문도 등장한다. 전재성 박사는 이것을 가리켜서 ‘사랑과 존경을 낳고 협조, 평화, 조화, 일치로 이끄는 여섯 가지 새김의 원리’라 번역했고, 대림스님은 ‘여섯 가지 기억해야 할 법이 있으니, 동료 수행자들에게 호감을 주고 공경을 불러오고 도움을 주고 분쟁을 없애도 화합하고 단결하게 한다’라고 번역했다. 어느 분의 번역이든 다 좋다. 아니, 참 좋은 말이다. 우리들 재가자가 승가에게서 보고 싶은 모습이다. 한문으로는 간단하게 육화경이라고 한다. 승가가 화합하고 서로를 존경하는 여섯 가지 법이라는 말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문득 ‘이것이야말로 승가의 지붕을 떠받치는 여섯 가지 기둥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감히 ‘승가의 여섯 기둥’이라고 부르고 싶다.

기도바퀴. 불교포커스 자료사진.

승가가 화합하기 위해 기억해야 할 여섯 가지 원리는 이렇다.

첫째, 자애로운 몸의 업이다. 즉 동료 수행자에게는 자애롭게 행동한다.
둘째, 자애로운 입의 업이다. 즉 동료 수행자에게 자애롭게 말을 건넨다.
셋째, 자애로운 뜻의 업이다. 즉 동료 수행자를 향해 자애로운 생각을 품는다.
넷째, 시주받은 것은 무엇이든 도반과 똑같이 나눈다.
다섯째, 반듯한 계율을 동료 수행자들이 모두 함께 존중하고 지킨다.
여섯째, 해탈로 이끄는 견해를 동료 수행자들이 함께 지닌다.

앞의 세 가지를 보면, 자비 가운데 ‘자’를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metta)의 뜻은 여러 가지로 새겨지지만 우정이란 뜻이 강하다. 동료 수행자를 향해 우정 어린 마음을 품으라는 것, 말해 무엇 할까.

게다가 청빈과 무소유가 생명인 출가수행자로서는 필요한 것을 재가자에게서 시주받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소중한 시주물을 도반과 함께 나누라는 네 번째 조항은 새기고 또 새겨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 승가에는 지나치게 부유한 스님도 많고 너무 가난해서 병이 들어도 치료받지 못하는 스님은 더 많다. 수행공동체 안에서 이 무슨 빈부격차인지….

다섯째 항목은 또 어떤가. 너 나 없이 계율을 지켜야 한다는 거다. 행여 모르는 사이에라도 계율을 어겼을까 항상 돌아보고, 사소한 잘못에도 두려움을 품고, 스스로도 부끄러워하고 남을 향해서도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스님을 재가자는 존경한다. 이 사악하고 거친 세상에 지친 재가자가 스님에게서 무엇을 보고 싶어 한다고 생각들 하시는지….

그리고 여섯째는 부지런히 수행하라는 당부가 아닐까 한다. 함께 경을 읽고 좌선하고 탁마하는 가운데 부처님이 2600여 년 전에 하신 사자후를 그대로 토해내도록 정진하라는 말씀이리라.

기둥이 무너지면 끝이다. 이 여섯 가지가 지켜지지 않는 승가라면 세상에 존재할 이유는 없다. 아니, 존재할 수 없다. 게다가 승가의 분쟁을 두고서 강 건너 불 보듯 여기는 스님들도 많다. “아, 난 몰라”라고 말씀들 하신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게 남의 일인가?

삼세제불이 내려다보시고 재가불자들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걸 스님들은 잘 아시리라. 이 한 생 태어나지 않은 셈치고 수행하겠다던 그 첫 마음이 지금껏 성성한 스님들이시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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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실 2017-10-10 16:58:02

    우주의 원리를 모르면 바른 가치도 알 수 없으므로 과학이 결여된 철학은 진정한 철학이 아니며 반대로 철학이 결여된 과학은 위험한 학문이다. 중력과 전자기력을 하나로 융합한 통일장이론으로 우주와 생명을 새롭게 설명하는 책(제목; 과학의 재발견)이 나왔는데 노벨 물리학상 후보에 오른 유명한 과학자들(김정욱, 김진의, 임지순, 김필립)도 반론을 못한다. 그 이유가 궁금하면 그들에게 물어보거나 이 책을 보라! 이 책은 과학으로 철학을 증명하고 철학으로 과학을 완성한 통일장이론서다. 이 책을 보면 독자의 관점 지식 철학 가치관이 변한다.   삭제

    • 2017-10-10 16:37:48

      이런 멋진 글에
      흠님처럼 바라보심은....
      정찬주님은 정찬주님대로
      이미령님은 이미령님대로
      무엇이 문제일까요...

      ^^   삭제

      • 2017-10-10 08:42:13

        정찬주 작가님 칼럼처럼 실명비판까지 있었으면 더욱 좋았을텐데..
        그랬다간 바로 블랙리스트 올라서
        bbs dj 퇴출 각종 교계신문잡지 기고 퇴출
        각종 사찰 불교교양대학 불교단체 교수 강사 강연 퇴출 당하시겠죠.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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