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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종교인을 위한 임종법문다난자니 이야기 ③

“어서 가서 사리불 스님에게 청해라. 다난자니가 지금 병중에 있는데 꼭 한 번 뵙고 싶다고.”

오래 전 스님이 나를 찾아왔을 때 나무 그늘 아래에서 스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선업을 지어야 한다, 누구 때문에 혹은 무엇 때문에 선업 지을 여력이 없다는 핑계를 대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하셨지요. 스님에게 내놓은 우유 한 잔이 그대로 남아 있는 채, 그 흰 빛에 일렁이는 간곡한 당부의 말씀을 나는 마음 깊이 새겼습니다. 그렇게 스님은 떠나가셨고, 나는 이후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모은 재산을 베풀었습니다. 이웃을 위해 재물을 베푸는 것만 하지 않았습니다. 내 자신의 삶도 살폈습니다. 다른 생명을 존중하고, 내 것 아닌 것은 취하지 않았으며, 재물과 권력을 가졌다 해서 여인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사실이 아닌 말은 삼갔고, 설혹 술을 마실 일이 있더라도 취할 정도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살아왔는데, 역시 무상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은 없었습니다. 어느 사이 나이 들고, 병이 들었습니다. 온갖 좋은 약을 구해서 먹었지만 깊어진 병을 피할 길은 없었습니다. 이제 나는 세상을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식구들과 친지들을 불러서 작별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정말 이승에서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왔음을 느꼈고, 나는 사리불 스님을 청한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 이른 시간에 사리불 스님이 왔습니다. 스님은 병상 옆 작은 의자에 앉자 내 손을 가만히 쥐었습니다. 그리고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참 이상하더군요. 나는 가족이나 친척들이 병든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이 싫었습니다.

“힘내세요. 빨리 회복하세요.”

그들은 내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만, 병든 낯빛을 그들에게 그대로 보이려니 민망했고, 자존심도 상했습니다. 덧없음이라는 이치 앞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내가 싫었습니다.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사리불 스님이 가만히 내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찬찬히 살피는데 그 분의 눈빛을 받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스님은 물었습니다.

“내 벗 다난자니여, 어떻습니까? 많이 힘드시지요? 고통이 좀 잦아들어야 할 텐데….”

“아, 스님.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고통이 잦아드는 건 고사하고 머리가 아파서 견딜 수 없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두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럴 땐 힘센 장사가 날카로운 칼로 내 머리를 쪼개는 것 같고, 단단한 가죽끈으로 내 머리를 조이는 것 같습니다. 복통도 심합니다. 누군가가 내 배를 가르는 것처럼 아픕니다. 온몸에 열이 오를 때면 지옥 불에 내던져지는 고통이 이만할까 싶을 정도입니다. 이 괴로움은 점점 더 심해져 갑니다.”

스님은 내 손을 꼭 쥐더니 물었습니다.

“내 벗 다난자니여, 지옥의 고통이 그만큼 모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한번 생각해볼까요? 그대는 지옥과 축생 가운데 가야 할 곳을 정한다면 어느 곳을 가겠습니까?”

“스님, 축생이 낫습니다. 지옥은 너무나 괴롭습니다. 축생도 별반 다를 것 없다지만 지옥만 하겠습니까?”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축생과 아귀 가운데 어느 곳이 낫겠습니까?”

“아, 스님, 선택할 수만 있다면 아귀가 낫겠지요. 축생보다는 괴로움이 덜할 테니까요.”

“그렇다면 아귀와 인간세상 가운데는 어느 곳이 낫겠습니까?”

“인간세상이 낫습니다. 말할 필요 있겠습니까?”

“그렇겠군요. 그런데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인간세상과 하늘 가운데 어느 곳에 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뭐라 대답하겠습니까?”

“인간세상보다 하늘이 낫지요. 하늘은 얼마나 행복하고 평화롭고 안락합니까? 아, 전 그곳에 가고 싶습니다. 그곳은 이런 고통이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하늘 세계에도 착한 일을 하면 가는 하늘이 있고, 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하는 신이 머무는 하늘(범천)이 있습니다. 이 두 하늘 중에 어느 곳이 더 낫겠습니까?”

“스님, 전 세상을 창조했다는 신을 믿습니다. 그 믿음으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전 그 하늘에 가고 싶습니다.”

사리불 스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참 묘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애초에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어찌나 심하게 괴롭던지 꼭 지옥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스님은 지옥보다는 조금 덜 힘든 세계, 그보다는 조금 덜 힘든 세계, 다시 그것보다는 조금 덜 힘든 세계…를 천천히 이야기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어느 사이 나는 편안해졌습니다. 여전히 간간히 복통과 두통이 엄습했지만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해졌습니다. 그리고 내가 믿어온 신의 세계를 상상하려니 내 마음은 오히려 행복해졌습니다. 고통보다 행복이 찾아왔습니다.

처음에 스님이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는데, 이제는 내 죽은 뒤의 세계를 상상하니 기뻤습니다. 스님은 이런 내게 말했습니다.

“다난자니여, 당신은 신의 세계가 낫다고 생각하시는군요. 그렇다면 그곳에 가야하겠지요. 다행스럽게도 그곳에 갈 수 있습니다. 좋은 방법이 있거든요.”

“스님, 그게 뭡니까? 신의 세계에만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서 일러주십시오.”

나는 몸이 달았습니다. 이 세상을 만드신 분, 나의 행복도 그 분이 주셨고, 나의 불행도 그 분이 계시하셨기에 나는 평생을 그분을 믿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사리불 스님이 뜻밖에도 그런 신의 세계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스님은 말했습니다.

“마음에 우정(慈)을 키우십시오. 그 우정 어린 마음을 천천히 주변으로 키워나가십시오. 가족, 친지, 이웃을 향해 우정 어린 마음을 보내십시오. 그러고 나서 조금 더 먼 곳으로 그 마음을 보내십시오. 이 세상을 당신의 그 우정 어린 마음으로 가득 채우십시오. 비록 지금 당신은 지독한 고통에 시달리지만 마음만큼은 세상을 향해 우정을 보내야 합니다.”

나는 눈을 감고 스님의 말대로 했습니다. 미웠던 사람, 미운 사람, 관심도 갖지 않았던 사람 그 모두를 향해 친근한 생각을 품었습니다. 그들이 지금보다 행복해지고 안락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자라났습니다. 그렇게 조금 지나고 나자 스님은 다시 말했습니다.

“자, 이제는 세상을 향해 연민(悲)을 품으십시오. 당신의 가장 가까운 사람에서 시작해서 먼 곳에 있는 사람, 더 멀리에 있는 작은 생명체에게 연민의 마음을 품으십시오.”

저마다 목숨을 부지하겠노라며 꾸물꾸물 움직이던 그 생명들, 그들을 떠올리자니 마음이 아파옵니다. 자기 것을 움켜쥐고 내놓지 않겠다고 버티는 생명들을 떠올리자니 안타까움이 엄습합니다.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어찌 이리 가련합니까? 나는 그들을 생각했고 그 목숨들이 내게 불러일으키는 연민을 가만히 품었습니다.

스님은 다시 말했습니다.

“이제는 세상을 향해 기쁨(喜)을 품으십시오. 힘든 자들에게는 조금이라도 즐거운 일이 생기기를 기원하고, 그들이 지금보다 조금 더 즐겁게 살아가기를 바라십시오. 그들이 편안하고 즐거워할 것을 떠올려보십시오. 어떻습니까? 다난자니여, 지금 당신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사느라 화석처럼 굳어버린 사람들이 편안한 표정으로 바뀌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들이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자 어느 사이 내 마음에 기쁨이 가득 차올랐습니다. 나는 그 기쁨은 다시 세상을 향해 내보냈습니다.

“스님, 내 마음에는 지금 기쁨이 가득 차 있습니다.”

“다난자니여, 세상을 향해 연민을 품고 기쁨을 품었지만 당신은 그 마음에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담담하게 평정심(捨)을 유지해야 합니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지만 당신의 감정과 마음에 당신이 휘말리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당신의 마음을 거리를 두고 지켜보십시오.”

내 몸을 엄습하는 고통, 세상을 둘러보자니 차오르는 기쁨과 연민…. 이 모든 것들이 엄연히 내게 존재하고 있지만 나는 어쩐지 그것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담담히 그런 상태를 바라보면서도 나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더 깊이 세상의 고통과 기쁨이 들여다보입니다. 그들이 울고 웃는 이유마저 또렷하게 보입니다. 나는 담담히 거리를 유지한 채 그것을 바라봅니다.

슬그머니 내 손을 내려놓는 사리불 스님.

“다난자니여, 이제 나는 돌아갈 시간이 됐습니다. 이제부터 당신은 단 한 순간이라도 이 네 가지 마음을 잃지 마십시오. 그 마음을 품고 있으면 당신은 신의 세계에 갈 수 있습니다. 아니, 그 네 가지 마음을 품고 있는 때는 당신이 그토록 섬겼던 신과 함께 있는 시간입니다. 신의 방에 들어가고 싶지요? 그 네 가지 마음을 품으십시오. 절대로 한 순간이라도 그 마음을 놓아버리지 마십시오.”

스님은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그 당부하는 모습이 어찌나 간절하던지 나는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말했습니다.

“스님, 스님의 스승님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제 이름으로 인사를 올려 주십시오.”

그리고 스님은 떠나갔습니다.

아, 스님. 나는 합장한 채로 스님의 뒷모습을 바라봤습니다. 사리불 스님이 내 방으로 들어오셨을 때 나는 병고에 시달리는 가련한 짐승이었습니다. 늙음과 병이 내 뒤통수를 후려치자 그 일격에 쓰러져 고통을 벗어버리지도 못하고 고통에서 달아나지도 못한 채 신음을 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어서 죽음의 신이 나를 데려가기만을 기다리면서도 그 신이 내 앞에 나타날까 두려워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리불 스님께서 떠나가신 지금, 나는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평온함을 온몸과 마음으로 만끽하며 누워 있습니다. 내 마음에는 우정과 연민, 기쁨과 담담함이 가득 차올라 있습니다. 나는 신의 세계에 닿아 있고, 신의 방에 들어와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리불 존자시여. 당신으로 인해 나는 지금 아늑합니다.

<그 뒷이야기>

다난자니 바라문은 사리불 존자가 떠나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마지막 모습은 평온했습니다. 가족과 친지들은 그의 행복한 표정에 놀랐습니다. 그들은 떠나간 다난자니를 그리워하면서도 그의 행복했던 삶을 함께 이야기하며 그를 기렸습니다.

한편, 사리불 존자는 다난자니의 집을 떠난 뒤 석가모니 부처님을 뵈러 찾아왔습니다.

“세존이시여, 제 옛 벗인 다난자니 바라문이 부처님께 인사를 여쭙습니다. 그는 무거운 병에 걸려 있는데 제게 대신 부처님께 안부를 여쭤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부처님은 그의 최후를 알고 계셨습니다.

“사리불이여, 신의 세계보다 더 높고 깊은 경지가 있거늘 어째서 그대는 다난자니 바라문에게 그 길을 인도하지 않았는가. 해탈에 대한 법문, 해탈로 나아가는 길을 들려주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왜 그것까지 들려주지 않고 도중에 물러나왔는가?”

사리불은 대답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생각했습니다.‘나의 벗 다난자니는 평생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어왔다. 결코 그는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임종의 자리에서 그에게 절대자가 있어 세상을 창조했고, 그 절대자가 인간의 행불행을 좌우한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다는 말을 해야 할까? 차라리 그로 하여금 절대자의 세계로 향하게 하는 수행의 길을 일러줘서 다음 생을 준비하게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세존이시여,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신의 세계에 날 수 있는 사무량심(자비희사)의 수행을 권했습니다. 다난자니는 그 수행을 통해 해탈의 세계로 한 걸음 더 다가갈 것입니다.”

“그렇다. 사리불이여, 다난자니 바라문은 이곳에서 죽어 지금 신의 세계(범천)에 났다.”

*****
다난자니 이야기는 맛지마 니까야 97번째 경(Dhānanjāni Sutta)에 실려 있습니다. 중아함경 제6권 27. 범지타연경(梵志陀然經)에도 같은 내용을 만날 수 있습니다. 대림스님이 번역한 경에서는 훗날 사리불 존자가 다난자니가 태어난 범천의 세계에 가서 그를 교화하여 해탈의 경지로 이끌었다는 주석서 내용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 경들의 내용을 필자가 각색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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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이 경이다^^ 2017-10-30 04:00:42

    중아함경 제6권 27.
    범지타연경(梵志陀然經)에도
    같은 내용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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