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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 젊은이가 붓다에게 묻다21. 카파티카 이야기-①

“그대는 잠시 기다려주시오. 내가 지금 연로한 바라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않소? 나와 말하고 싶다면 이분들과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시오.”
부처님이 내게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지금까지 내게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바라문 출신입니다. 그리고 사제계급이 배우고 외워야 할 모든 학문을 다 익혔습니다. 연로한 바라문 어르신들이나 할 법한 고행과 수행도 나는 해오고 있습니다. 내 나이는 열여섯 살. 계급과 연륜을 중시하는 바라문 사회에서 나는 갓난아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열여섯 살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든 학문과 수행에서 두각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바라문 마을에서는 연로한 어르신들이 모임을 열 때 내게도 중요한 자리를 내어주셨고, 나는 그 자리에 나아가서 자유롭게 생각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나를 제지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석가모니가 내게 ‘이따가 말하라’고 말합니다.

코살라국의 오파사다 바라문 마을에서 멀지 않은 숲, 하늘의 신들이 노닐다 간다고 해서 데바바나라 불리는 살라나무 숲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찾아왔습니다. 마을에 동요가 일었습니다. ‘그 유명하다는 석가모니가 우리 마을에 찾아왔으니 한번쯤 가서 만나보자’는 사람들도 있었고, 반대로 ‘유명해봤자 계급으로는 우리 바라문보다 아래인 크샤트리야다. 그런 계급 출신인 일개 수행자이니 그가 우리를 만나러 와야지 계급 높은 바라문인 우리가 만나러 갈 수는 없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만나러 가자, 그가 와야 한다…
이렇게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지만 사람들은 삼삼오오 부처님을 뵈러 숲으로 향했습니다. 나 역시 연륜으로나 사회적 지위와 가문으로나 가장 높은 바라문 어르신들과 함께 석가모니 부처님을 뵈러 왔습니다. 숲에 도착해서 정중하게 인사를 주고받은 뒤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부처님 한 분을 상대로 바라문 어르신들 수십 분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부처님은 차분하게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며 말을 했고, 바라문 어르신들은 그런 부처님과의 대담에서 어쩐지 밀리는 분위기였습니다. 처음에는 묵묵히 대화를 지켜봤습니다. 하지만 부처님과 바라문 어르신들의 대화 도중에 용감하게 끼어 들었습니다.
나는 평소 궁금하던 것이 있었습니다. 부처님을 만나면 꼭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때마침 우리 마을을 찾아온 부처님과의 이야기자리가 마련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이던지요. 하지만 내가 나서서 질문을 던질 자리는 아니었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틈을 보다가 마침 바라문 어르신들이 답변하기가 궁색하신지 뜸을 들이는 것 같았기에 내가 나섰습니다.
“저, 존자 고타마시여, 제가…”
느닷없는 내 말에 대화가 끊겼습니다. 내가 존경하는 바라문 계급의 어르신들은 약간 당황하신 듯 했지만 구원투수가 등장했다는 안도감도 내비쳤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대는 잠시 기다려주시오. 내가 지금 연로한 바라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않소? 이야기를 방해하지 마십시오. 나와 말하고 싶다면 이분들과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시오.”

무안해진 나는 뭐라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물러났습니다. 아, 그런데 그 자리에 뒤늦게 오신 짱끼 바라문께서 나서셨습니다. 그 분은 훌륭한 인품으로 사람들의 칭송을 한 몸에 받는 분입니다. 그 분께서 부처님에게 말했습니다.
“존자 고타마시여, 이 바라문 청년 파카티카를 꾸짖지 마십시오. 이 청년은 훌륭한 가문의 아들입니다. 잘 교육받았고, 아는 것이 많고, 생각이 깊고, 선량한 청년입니다. 존자 고타마와 충분히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은 짱끼 바라문의 말을 듣더니 가만히 시선을 낮추었습니다. 뭔가 생각하는 눈치였습니다.
얼마나 다행이든지요. 짱끼 바라문께서 이렇게 나를 대신해서 나서주시자 나는 다시 용기가 났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고타마께서 나를 봐주셨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가 궁금했던 걸 여쭤볼 텐데…’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하자마자 부처님은 다시 눈길을 들어 나를 보셨습니다. 나는 부처님의 눈을 반듯하게 바라봤습니다. 그 눈동자는 검푸른 빛을 띠었고 속눈썹이 길었습니다. 어진 황소의 눈을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부드러운 가운데 단단한 지혜의 빛이 흘러 넘쳤습니다. 열여섯 살 바라문 청년인 내게 부처님의 눈길은 마치 ‘네 마음을 잘 안다. 그동안 궁금했던 것이 무엇인가? 그 궁금증을 한번 내보이거라’하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제 내가 부처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가 됐습니다. 나는 물었습니다.
“존자 고타마시여, 우리 바라문들은 아주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성전을 외워서 전해왔습니다. 전승된 그 경전구절을 긴 시간 대대로 외워 내려오면서 우리 바라문들은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틀렸다’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존자 고타마께서는 이것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나는 부처님이 어떻게 대답할지 궁금했습니다. 집안 대대로 이어 내려온 성전에 대한 믿음을, 그런 믿음을 진리라고 주장해도 되는 것일지가 궁금했습니다. 출생이 바라문 계급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줄 알았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믿으며 살아왔지만 어느 사이 의심과 회의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계급의 이런 당연한 믿음을, 깨달은 자 붓다는 어떻게 생각할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내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카파티카여, 내가 묻겠습니다. 당신들 바라문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나는 이것을 알고 본다. 내가 알고 본 바에 따르면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틀렸다’라고 말하는 이가 있습니까?”
믿는다, 믿지 않는다 라는 명쾌한 대답을 예상했던 내게 부처님의 반문은 뜻밖이었습니다. 내가 대답할 차례입니다. 나는 잠시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바라문 계급에서는 ‘나는 진리를 알고 보았다’라고 말하는 이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스승이 이렇게 말했으니 믿어야 한다’라고 제자들에게 말해왔던 것입니다. 나는 부처님에게 대답했습니다.
“자신이 알고 본 바에 따라서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틀렸다고 말하는 바라문은 없습니다.”

부처님이 다시 내게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바라문들의 스승은 자신들이 직접 알고 보아서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틀렸다고 말합니까? 그 스승들의 스승도, 그 스승들의 스승의 스승도 역시 자신들이 직접 알고 보아서 그렇게 주장합니까?”
“아닙니다. 예로부터 스승들이 제자들에게 진리라고 믿어져 온 것을 전해주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바라문의 가장 첫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이 진리라고 주장하고 전해주고 있는 경전구절들을 누군가 직접 알고 보아서 이것이 진리요 다른 것은 틀렸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 어떤 스승들도 자신들이 알고 보아서 진리라거나 틀렸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카파티카여, 이런 바라문들의 모습은 마치 앞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 줄을 선 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스승이 그렇다고 믿고 전해줬으니 우리도 진리라고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맨 앞사람도 보지 못하고, 중간 사람도 보지 못하고, 맨 끝 사람도 보지 못하는데, 무엇을 진리라고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저들의 진리 주장에 대한 믿음은 근거가 없는 것 아닙니까?”

순간 그곳에 모여 있던 바라문들이 크게 술렁거렸습니다. 스승의 말씀에 대한 바라문들의 굳건한 믿음을 이렇게 근거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는 부처님 대답은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나는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대답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존자 고타마시여, 우리 바라문들은 맹목적인 믿음만으로 진리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바라문들은 입에서 입으로 외워 가르침을 전승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스승에서 스승에게로 구전된 가르침이기에 진리라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부처님은 나의 대답을 듣더니 대답했습니다.
“카파티카여, 처음에는 믿음을 말하더니 이번에는 구전을 말하는군요. 보통의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것에 대한 근거를 이렇게 각자 편리하게 제시합니다. 다섯 가지쯤 되지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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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들의 질문 2017-11-04 11:37:37

    엄마!
    엄마가 좋아하는 설정스님이 장난아닌데!
    친구들이 "네엄마 절에 못가시게 해라" 카던데...
    조심해서 다니세요!라는 대학1년 아들의 당부 말.?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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