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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깨닫는가22. 카파티카 이야기 ②

“카파티카여, 처음에는 믿음을 말하더니 이번에는 구전을 말하는군요. 보통의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것에 대한 근거를 이렇게 각자 편리하게 제시합니다. 그 근거는 다섯 가지쯤 되지요.”

부처님은 나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첫 번째 근거는 ‘믿음(suddhā)’이니 ‘잘 믿어지니까 진리다’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믿어지더라도 그것이 틀린 것일 수도 있고, 믿기지 않더라도 그것이 오히려 맞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 근거는 ‘선호(ruci)’이니, ‘내 성향에 잘 맞으니까 진리다’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내 성향에 잘 맞아 만족스러워서 그것이 맞다고 주장하더라도 내 성향에 맞지 않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오히려 맞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세 번째 근거는 ‘전승(anussava)’이니, ‘예로부터 그렇게 전해져 내려왔으니 진리다’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로부터 그렇게 전해져 내려왔다고 해도 그것이 틀린 것일 수도 있고, 전해져 내려온 것은 아니더라도 오히려 그것이 맞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네 번째 근거는 ‘이론적으로 추론함(ākāra-parivitakka)’이니, ‘이론상 잘 따져 보니 그것이 진리다’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이론을 잘 따져서 생각해봤다고 해도 그것이 틀린 것일 수도 있고, 틀렸다고 생각한 것이 오히려 맞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섯 번째 근거는 ‘깊이 통찰해서 얻은 견해(diṭṭhi-nijjhāna-khanti)’이니, ‘내가 깊이 사색해서 얻은 견해에 따르면 그것이 진리다’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깊이 사색해서 얻은 견해에 근거하여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이 틀린 것일 수도 있고, 틀렸다고 생각한 것이 오히려 맞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카파티카여, 진리를 지키는 현명한 사람은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틀렸다’라고 결정을 지어 말해서는 안 됩니다."

바라문 계급인 나는 내 스승이 옛 스승에게서 이어 받았다고 하는 계시를 진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것은 진리가 아니요,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지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과연 스승에게서 스승에게로 전해져 내려왔다고 해서 그것이 진리라고 확신할 근거가 되겠느냐고요.

뿐만 아니라 내 이성으로 깊이 생각했을 때, 이치에 맞는 것 같고 믿음직하게 느껴지더라도 어쩌면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음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지요. 진리를 지키는 현명한 사람이라면 단정지어서 맞다, 틀리다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부처님 말씀입니다. 나는 여쭐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존자 고타마여, 진리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처님은 내게 말합니다.

“앞서 다섯 가지 근거 가운데 한 가지만 충족되어도 사람들은 ‘이것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틀렸다’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결론을 내리듯 규정 짓지 않는 것이 바로 진리를 지키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자세를 취한다고 해서 진리를 깨닫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를 지키는 일에서 부처님은 한 걸음 슬그머니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확실하게 깨닫는 것이라는 말씀이겠지요. 나는 궁금해졌습니다.

“존자 고타마시여, 아무리 자신이 저 위의 다섯 가지 근거 중에 하나에 의해서 진리라고 확신한다 하더라도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틀렸다’라고 결론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런 자세가 진리를 지키는 자세임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진리를 깨닫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잘 들어보십시오. 만약 어떤 수행자 한 사람이 한 마을에 와서 머문다고 합시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에게 몰려가서 가르침을 청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 세 가지를 살펴야 합니다."

"첫째, ‘이 수행자는 탐욕을 품고 있는가? 탐욕을 버리지 못한 모습이나 행동을 보이고 있는가? 탐욕에 사로잡힌 채 자기가 진리를 알고 보았다고 말하며 다른 사람들을 오히려 그릇된 길로 이끌고 있지는 않은가?’ 둘째, ‘이 수행자는 분노를 품고 있는가? 분노를 버리지 못한 모습이나 행동을 보이고 있는가? 분노에 사로잡힌 채 자기가 진리를 알고 보았다고 말하며 다른 사람들을 오히려 그릇된 길로 이끌고 있지는 않은가?’ 셋째, ‘이 수행자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혹시 어리석은 모습이나 행동을 보이고 있지는 않은가? 어리석음에 사로잡힌 채 자기가 진리를 알고 보았다고 말하며 다른 사람들을 오히려 그릇된 길로 이끌고 있지는 않은가?’”

부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에 와서 머무는 그 수행자를 오랫동안 잘 살펴서 ‘이 수행자는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 사로잡혀 있지 않구나. 다른 사람을 그릇된 길로 이끌고 있지 않구나’라고 판단이 서면, 그 수행자에게 믿음이 생길 것입니다. 믿음이 생기면 다가가게 됩니다. 믿음을 바탕으로 가까이 다가가서 보게 되겠지요. 다가가면 공경하게 됩니다. 공경하면 그 수행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귀를 기울여 잘 들어야 법을 배웁니다. 법을 배우면 법을 기억하게 됩니다. 법을 잘 기억하면 법의 뜻을 잘 생각하게 됩니다. 법의 뜻을 잘 생각하면 진지하게 사색하여 받아들이게 됩니다. 사색하여 받아들이게 되면 좀 더 열심히 공부하고자 하는 열의가 생겨납니다. 열의가 생겨나면 자신이 직접 그 법을 궁구해보고자 하는 시도가 생겨납니다. 시도가 생겨나면 그 법을 더욱 깊이 관찰하게 됩니다. 더욱 깊이 관찰하면 쉬지 않고 노력하게 되고, 그렇게 노력을 하여야만 몸으로 최상의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지혜로 그 법을 꿰뚫게 됩니다. 카파티카여, 이것이 바로 진리를 깨닫는 것이라고 합니다.”

진리를 지키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진리를 깨닫는 길이 이렇게 차례로 펼쳐진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저 누군가 훌륭한 분이 말씀하신다고 해서, 그 분이 수행자의 옷을 입었다고 해서 ‘저 분의 말씀이 옳다. 그러니 나는 저 분을 믿겠다’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무엇보다도 자신이 나아가 법을 청해들을 만한 사람인지를 차분히 지켜보라는 말씀이 와 닿았습니다.

누군가의 명성에 홀려, 혹은 전통의 권위에 눌려 그를 스승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상식적인 선에서 그의 행동거지를 잘 살펴본 뒤에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판단이 서면 그를 존중하고 법을 청하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믿을 만한 분의 말씀이니 믿겠다’가 아니라 곰곰 생각해보고 차분히 들여다보며 자신의 생각으로 사색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덧붙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진리를 완전히 체득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부처님 앞에 합장하고서 말했습니다.

“존자 고타마시여, 그렇게 차례대로 걸어 나가는 것이야말로 스스로 진리를 발견하고 깨닫는 일이라는 데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까? 진리를 완전히 체득하는 것이란 대체 무엇입니까?”

“그 스승이 들려주는 많은 법들을 다 받들어 행하고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진리를 완전히 체득합니다. 그래야 진리에 완전하게 도달합니다.”

“존자 고타마시여, 어떻게 하면 그 많은 법들을 다 받들어 행하고 배울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은 나를 가만히 응시하더니 대답하셨습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카파티카여, 진리에 도달하려면 노력해야 합니다. 노력하는 일이 진리에 도달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알겠습니다. 존자시여, 그렇다면 노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노력하려면 법을 깊이 관찰해야 합니다. 법을 깊이 관찰하는 일이 노력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알겠습니다. 존자시여, 그렇다면 법을 깊이 관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법을 깊이 관찰하려면 자신이 직접 그 법을 궁구해보고자 하는 시도가 생겨나야 합니다. 시도가 법을 깊이 관찰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알겠습니다. 존자시여, 그렇다면 내 자신이 직접 그 법을 궁구해보고자 하는 시도는 어떻게 하면 생겨납니까?”

“좀 더 열심히 공부하고자 하는 열의가 있어야 합니다. 열의가 없으면 시도할 마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열의가 시도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알겠습니다. 존자시여, 그렇다면 열의는 어떻게 하면 생겨납니까?”

“법의 뜻을 잘 생각해서 진지하게 사색하여 받아들이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열의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열의가 생겨나는 데에는 사색하여 받아들임이 필요합니다.”

“알겠습니다. 존자시여, 그렇다면 법의 뜻을 잘 생각해서 진지하게 사색하여 받아들이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법을 기억해야 합니다. 늘 기억하고 있어야 법의 뜻을 잘 생각해서 진지하게 사색하여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존자시여, 그렇다면 법을 기억하는 데에 무엇이 도움이 됩니까?”

“법을 배워야 합니다. 배움이 기억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알겠습니다. 존자시여, 그렇다면 법을 배우는 데에는 무엇이 도움이 됩니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귀를 기울여 잘 듣는 것이 법을 배우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알겠습니다. 존자시여, 그렇다면 귀를 기울여 잘 듣는 데에는 무엇이 도움이 됩니까?”

“법을 설하는 자를 공경해야 합니다. 공경하면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알겠습니다. 존자시여, 그렇다면 법을 설하는 자를 공경하는 데에는 무엇이 도움이 됩니까?”

“그 수행자에게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다가가면 공경하게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수행자에게 다가가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 수행자에게 믿음이 생겨야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나는 쉬지 않고 부처님에게 물었고, 부처님은 나의 질문에 기꺼이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부처님의 대답을 음미해보자면, 앞서 진리를 깨닫는 과정이 역순으로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한 수행자에게 믿음을 일으키려면 그 수행자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얼마나 완벽하게 털어버렸는지를 잘 살펴야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진리라고 믿어 왔을까요?

아직 열여섯 살인 나는 스승의 권위와 바라문 전통의 위력에 기대어 예로부터 진리라고 주장해오던 것을 나도 같이 그렇게 외쳐댔습니다. 하지만 늘 마음 한켠에는 의심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건 내 말이 아니고, 내 사색이 아니며, 남들 하는 대로 그저 앵무새처럼 따라서 외쳐댔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카파티카, 그대는 정말 스승이 말하는 것에 한 점 의문도 없는가? 그대는 그대의 종교가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과 진지하게 마주 서서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처음부터 그대도 그 길을 그대의 두 발과 가슴과 머리로 걸어가고 있었던가?’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숱한 의문들. 떨칠 수 없는 일말의 의구심들을 나는 애써 외면해 왔습니다. 스승님이 옳고, 수천 년을 그렇게 믿어 왔으니, 열여섯 살의 내가 뭐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바른 길을 제시하고 있다는 스승이 있다면 그에게 나아가야겠지요. 하지만 ‘믿습니다’라고 외치고 무릎을 꿇기 보다는 나는 그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내 공부를 해야겠지요.

부처님은 내게 길을 보이셨습니다.
진리의 길,
진리에 이르는 길.
그 길을 어떻게 걸어가느냐가 나를 진리의 사람으로 완성케 할 것입니다.
나는 숱한 바라문 스승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저를 재가 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죽는 날까지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
카파티카 이야기는 초기경전인 맛지마 니까야 제95. 짱끼경(Caṅkī Sutta)에 실린 내용을 각색한 것입니다. 진리에 도달하는 13가지 단계에 대해서는 번역자들마다 해석이 조금 다릅니다. 일반인들을 고려해서 최대한 편안하게 풀이해 보았습니다. 제 풀이에 오류가 있다면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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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실 2017-11-12 23:05:06

    우주의 원리를 모르면 바른 가치도 알 수 없으므로 과학이 결여된 철학은 진정한 철학이 아니며 반대로 철학이 결여된 과학은 위험한 학문이다. 중력과 전자기력을 하나로 융합한 통일장이론으로 우주와 생명을 새롭게 설명하는 책(제목; 과학의 재발견)이 나왔는데 노벨 물리학상 후보에 오른 유명한 과학자들(김정욱, 김진의, 임지순, 김필립)도 반론을 못한다. 그 이유가 궁금하면 그들에게 물어보거나 이 책을 보라! 이 책은 과학으로 철학을 증명하고 철학으로 과학을 완성한 통일장이론서다. 이 책을 보면 독자의 관점 지식 철학 가치관이 변한다.   삭제

    • 사람이 경이다 2017-11-12 22:11:13

      휼륭한 경의말씀!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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