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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정치를 꿈꿀 수 있을까‘촛불혁명’의 눈으로 다산의 『목민심서』 읽기
  • 박병기|한국교원대학교 교수
  • 승인 2017.11.1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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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무엇일까? ‘정치’라는 말을 들으면 먼저 지금 활동하고 있는 정치가들의 모습이 떠오르고, 우리는 대체로 그들을 향해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지 못한다. 철새처럼 이해관계에 따라 정당을 떠돌거나, 같은 사안을 놓고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정반대의 주장을 펼치는 정치인들을 많이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직업별 신뢰도 조사를 통해서 정치인들에 대한 낮은 신뢰를 쉽게 확인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정치에 대한 무관심 또는 냉소를 가진 사람들이 많고 그것이 낮은 투표율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자세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내가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해서 그 정치 또는 정치인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들은 더 마음대로 할 것이고 그 결과는 우리에게 부정적인 영향으로 다가와 미래를 기약하기가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치(政治)를 정의하는 방식이 여럿 있지만, 권력에 따른 신분관계가 존재했던 시기에는 지배와 복종이라는 두 개념이 핵심을 이루었다. 다양한 방식으로 힘을 갖게 된 소수의 사람들이 다수의 사람들을 지배하고, 다수의 사람들은 그 지배에 복종하며 자신의 생계를 이어가는 방식이 정치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때 지배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자기절제와 배려였고 복종하는 자들에게는 순종과 섬김의 덕이 요구되었다. 이 덕들이 서로 원활하게 교환될 수 있을 때 그 정치체제는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 비해, 그 중 어느 한 쪽의 덕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할 때 혼란과 변혁의 시기로 접어들곤 했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오랜 정치의 흐름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유럽의 시민혁명과 우리의 동학혁명을 통해 정착한 새로운 형태의 정치체제가 그 계기를 마련했고, 21세기 초반 세계는 이 새로운 질서를 근간으로 삼아 움직이고 있다. 지배와 순종 대신이 모든 사람들이 비지배적 자유, 즉 누구에게도 지배받지 않을 자유를 누리면서 정치에 참여하고 바쁜 우리를 대신에 정치에 전념해줄 사람을 뽑을 수 있는 권리와 함께 정기적으로 평가하여 바꿀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북한 같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그곳 또한 역사의 흐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다산이 꿈꾸었던 사회

1762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28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형조참의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하던 다산 정약용이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귀양살이를 시작한 것은 40세 되던 해였다. 그때는 이미 18세기에서 19세기로 넘어서던 시기였고, 쉽게 끝날 줄 알았던 귀양이 18년이나 이어지다가 결국 정계로 복귀하지 못한 채 그는 숨을 거두어야 했다. 세계사적으로는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서 식민지를 전제로 하는 식민지 자본주의 체제가 자리잡아 가던 시기였고, 그 흐름이 일본을 시작으로 조선과 청나라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하던 때이기도 했다.

이러한 세계사적 흐름을 주도한 것은 주로 유럽사회에서 장사를 통해 돈을 번 부르주아들이었고, 그들은 내부적으로는 지배층인 귀족과 맞서거나 때로 타협하면서 자신이 모은 돈에 대한 소유권 보장과 정치적 자유를 주장하는 새로운 사회, 즉 시민사회(부르주아 사회)를 정착시키고자 했다. 바로 그 사회가 우리에게도 19세기 말 고종의 입헌민주주의 국가인 대한제국을 통해 도입되는 근대 시민사회이다. 다산은 이러한 격동기가 시작되기 직전의 폭풍 전야 같던 시기를 주로 한반도 남쪽 강진 같은 유배지에서 보내며 염려와 우려의 눈으로 지켜보아야만 했던 불운의 선각자였다.

다산은 조선 후기를 상징하는 선비 중 하나이다. 그 중에서도 집안 배경을 통해 자주적으로 도입한 서학, 즉 그리스도교 중심의 서구학문에 비교적 능통한 선비였고 그 공부를 통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선사회의 치명적인 문제들을 열린 시각으로 볼 수 있었던 위치에 있기도 했다.

“백성을 부양하는 일을 가리켜 목(牧)이라 한 것은 성현들이 남긴 뜻이다. 성현의 가르침에는 원래 두 가지 길이 있다. 사도(司徒)는 만백성을 가르쳐 수신(修身)하게 하고, 태학(太學)에서는 왕족 및 공경대부의 자제들을 가르쳐 각기 수신하고 백성을 다스리게 했으니, 바로 그 백성을 다스리는 일이 목민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학문은 수신이 반이고, 나머지 반은 목민이다.”(다산 정약용, 다산연구회 편역, 『정선 목민심서』, 창비, 2017, 15쪽 ‘자서(自序).)

다산의 대표적인 저서 중 하나로 꼽히는 『목민심서』의 이 서문에서 우리는 그가 꿈꾸던 세상과 정치의 미래를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다. 그는 군자와 백성을 구분하면서, 태학에서 큰 공부를 하여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된 사람인 군자(君子)가 다스리는 사회와 나라를 꿈꾸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상사회는 공자와 맹자로 상징되는 성현(聖賢)들로부터 시작해서, 주희와 퇴계, 남명, 율곡 등 성리학자들이 이어받고자 했던 수기안인(修己安人) 또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정치가 이상적으로 구현된 사회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다산의 실천적 위대함과 한계가 동시에 부각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시대는 왕족 및 공경대부로 상징되는 지배층이 따로 존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존재해서도 안 되는 시민의 시대다. 따라서 지배와 순종이라는 기존의 덕목 교환 또한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는 신민(臣民)의 유물일 뿐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는 그 유물을 박물관에 제대로 전시하지 못하고, 일제 강점기의 일왕(日王)과 조선 이씨왕족의 후예를 자처했던 이승만, 일제 강점기 교육의 충실한 계승자인 박정희로 상징되는 신민문화(臣民文化)를 부분적으로 간직한 채 21세기를 맞아야만 했다. 그것이 촛불혁명을 통해 끌어내린 박근혜를 ‘공주마마’라고 칭하며 울부짖는 일부 사람들의 시대착오적인 마음속에 아직까지도 살아있음을 우리는 황망한 마음으로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럼 우리는 어떤 정치를 꿈꾸어야 할까?

모든 고전들이 그렇지만 다산의 ‘목민심서’ 또한 그 시대적 한계와 역사적 의미를 동시에 갖추고 있어 끊임없는 현재적 해석이 이루어져야만 하는 텍스트(text)일 뿐이다. 그렇지 않고 단지 이 고전에 나와 있다고 해서 무조건적 권위를 부여할 경우, 자칫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이 시점에서 재현해야 한다는 어이없는 주장을 자신도 모르게 펼치게 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은 아껴 쓰는 데 있고, 아껴 쓰는 것의 근본은 검소함에 있다. 검소해야 청렴할 수 있고 청렴해야 자애로울 수 있으니, 검소함이야말로 목민(牧民)하는 데 있어서 가장 먼저 힘써야 할 일이다. 어리석은 자는 배우지 못하고 무식해서, 산뜻한 옷에 좋은 갓을 쓰고 좋은 안장에 날랜 말을 타는 것으로 위풍을 떨치려고 한다.”(다산, 앞의 책, 24쪽)

다산의 이 말은 오늘날 공무원을 비롯한 공적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꼭 지켜야만 하는 법적 윤리(legal ethics)가 된 청렴의 윤리를 축약해서 보여주고 있는 명구(名句)라고 할 만하다. 청렴하기 위해서는 먼저 검소해야 하고, 청렴해야만 자신이 본래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다산의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 공무원들도 마음에 둘만한 지침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단에 있는 그의 말이 모두 현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백성을 사랑한다는 말과 그 백성들에게 자애로워야 한다는 말, 그리고 이를 포괄하는 목민(牧民)의 개념이 모두 재해석의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

오늘의 공무원은 우리가 선거를 통해 선출한 정치인의 관할 속에서, 우리의 이익과 사회 전반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여받고 있는 심부름꾼들일 뿐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일차적으로 그 정치인들이 주관하는 법적 제재를 받아야 하고, 더 나아가 그 역할을 박탈당하고 감옥에 가기도 해야 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높은 곳에 서서 백성을 내려다보는 자애로운 목민의 윤리가 아닌,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고자 하는 역할 도덕성(role morality)일 뿐이다.

고려 중기에 도입된 당대의 선진적인 제도였던 과거제가 고등고시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그 고시를 통과한 고위관리들 중에서는 시대착오적인 목민관을 갖고 있는 자들이 있다. 얼마 전 우리를 개, 돼지에 비유해서 잘 먹이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발언으로 파면당한 어느 고위관료가 바로 그런 전형적인 예이다. 이들이 다산의 목민심서를 잘못 읽었다가는 자신은 일반 시민들과는 신분적으로 다른 사람이라는 선민의식(選民意識)을 강화하게 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촛불혁명’ 이후의 정치와 시민윤리

2016년 말부터 시작해서 다음 해 봄에 마무리된 우리의 ‘촛불혁명’은 시민의식과 윤리를 갖추지 못한 채 권력만을 누리고자 했던 한 정치세력을 몰아내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세력을 그 자리에 앉히는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그 많은 사람이 동참한 오랜 투쟁을 비폭력을 전제로 해낸 점과 지역감정과 일부 시민들의 무지에 기대어 시민을 무시하던 세력들에게 경종을 울린 점 등이 주목받을 만한 성과이다. 그럼에도 촛불집회가 혁명으로 온전하게 마무리될 수 있으려면 몇 가지 과제가 더 실현되어야만 한다.

우선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전제로 하는 신민문화를 온전히 극복하고 평등과 자유, 책임의 윤리에 기반을 두는 시민사회의 문화가 제대로 정착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우리 사회의 주인공이라는 시민의식이 보다 확고하게 자리잡을 수 있어야 하고, 그 시민의식 속에 타인의 자유에 대한 동등한 존중을 전제로 하는 자유의식과 권리와 함께 요구되는 책임을 제대로 인수할 수 있는 책임윤리가 포함되어야만 한다. 이렇게 시민이 제자리를 찾아 중심을 잡아줄 때라야 시민사회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공무원도 당연히 시민이다. 그들은 목민관이 아닌, 공적인 일을 업으로 삼는 시민일 뿐이다. 이런 생각이 전제된 바탕 위에서만 다음과 같은 다산의 윤리가 제대로 호출될 수 있다.

“천하에 가장 천해서 의지할 데가 없는 것도 백성이요, 천하에 가장 높아서 산과 같은 것도 백성이다. 요순시대 이래로 성현들이 모두 강조한 것이 백성을 보호하는 일이어서, 모든 책에 실려 있고 사람들 또한 익히 알고 있다. 그러므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무리 힘이 세더라도, 수령이 백성을 머리에 이고 싸우면 대부분 굴복할 것이다. ......  의주 출신인 안명학은 강진현감이 되어 백성을 머리에 이고 싸워서 감사를 굴복시키고, 그것 때문에 명성이 퍼져 벼슬이 높아졌다. 본래 백성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만 결국은 수령에게도 이로운 것이다.”(다산 앞의 책, 103쪽)

‘백성을 머리에 이고 싸운다.’는 다산의 말은 공무원인 시민들이 자신에게 부여한 역할과 임무를 중심에 두고, 정치인이나 자신보다 높은 관리의 부당한 명령에 따르지 않는 것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그런 공무원이 감당해야 하는 불이익이 없게 하는 것은 시민인 우리들의 역할이고, 제도적으로도 그런 장치들을 마련해 주면서 공무원 사회 내부의 부정의에 눈감지 않는 당당한 시민이자 공무원을 기대해야만 한다. 더 나아가 우리가 선출하는 정치인들이 그런 부당한 간섭을 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일상적인 감시와 부당한 청탁이 용납되지 않는 시민문화를 정착해가는 일 또한 촛불 이후의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목표이다. 그런 이상적인 정치는 바로 나 자신이 중심이 되어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포기하지도 않는 지속적인 실천에 기반을 두고서만 구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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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2017-11-13 13:28:18

    잘 읽었습니다. 백성이란 존재를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정말 중요하지요. 주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여전히 군주의 어린 양으로 받아들여진다면 답이 없지요. 어른이 되지 못하는 존재라...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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