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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담스님 “서산 부석사 관음보살상, 일본에 일단 돌려줘야”운흥사 범종 반출경위 세미나서 주장…'불법 반출 문화재 반환' 유네스코 원칙 언급
고산문화재단 이사장 영담스님.

“서산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은 우리나라 절도범들이 일본에서 훔쳐온 장물입니다. 유네스코 협약에 따라 일단 일본 대마도 관음사에 이를 돌려주고 절차에 따라 반출 경위를 조사해서 협상을 통해 반환받도록 해야 합니다.”

고산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영담스님이 11월 30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운흥사 범종 반출경위에 대한 학술세미나에서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수백 년 전 일본에 반출된 뒤 절도법들에 의해 국내로 들어온 서산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이하 관음보살상)은, 부석사 측이 소유권을 주장한 뒤 ‘인도청구 소송’에 나서면서 “과거 일본에 반출된 경위를 어떻게 볼 것이냐”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서산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 불교포커스 자료사진.

14세기 초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50.5㎝, 무게 38.6㎏의 서산 부석사 관음보살상은 1973년 일본의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이에 앞서 1951년 당시 일본 관음사 주지가 발견한 복장유물에서 ‘천력3년(1330년) 고려국 서주(지금의 서산)에서 32명이 시주해 보살상을 만들어 부석사에 봉안했다’는 기록이 나와, 해당 불상의 원 소유주가 서산 부석사임이 확인 된 바 있다.

대전지방법원 올해 1월 부석사가 정부를 상대로 낸 관음보살상 인도청구 소송에서 “과거 증여나 매매 등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도난이나 약탈 등의 방법으로 일본에 운반돼 봉안되어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하며 부석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검찰이 “불상의 일본 반출 과정에서 도난 관련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 일본 대마도 관음사에 보관돼 있던 것을 훔쳐 국내로 들여온 만큼 일본 측에 돌려줘야 한다”며 항소에 나서 현재 관음보살상은 국가가 보관 중이다.

경남 고성에 위치한 제13교구본사 쌍계사 말사 운흥사의 범종이 일본 네즈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음을 확인한 뒤, 운흥사 범종 반출경위에 대한 학술 세미나를 주최한 영담스님은 앞서 논란이 된 부석사 관음보살상에 대해 “명백한 장물이다. 일단 일본에 돌려주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스님은 '자국 내 영역에 존재하는 문화재를 도난, 도굴 및 불법적인 반출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에 부과된 책임'이라고 명시한 유네스코 협약을 근거로 덧붙였다.

“일본이 이를 우리나라에서 훔쳐갔던, 혹은 팔려갔던 현재는 일본의 문화유산이 분명하다”고 선 그은 스님은 “일본에 있는 문화유산을 훔쳐 온 것을 우리 소유로 해야 한다고 판결하는 것은 국제사회에 국가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것”이라며 “일단 돌려주고 절차에 따라 반출 경위를 조사해서 협상을 통해 반환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담스님의 이 같은 주장은 전 세계에 퍼져있는 17만점 가량의 해외문화유산 가운데 상당수가 불법 반출된 것으로 추정돼 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야 하는데, 부석사 관음보살상 하나를 위해 원칙을 위배할 경우 문화재 환수 및 보전활동 전체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했다.

김창균 동국대 미술학부 교수가 ‘운흥사 범종’을 주제로 발제를 진행하는 모습.

실제로 이날 진행된 운흥사 범종 반출경위에 대한 학술 세미나 역시 “무엇보다 반출경위를 명백히 밝혀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개최된 것. 세미나에서는 김창균 동국대 미술학부 교수가 ‘운흥사 범종’을 주제로 발제를 진행했으며, 이후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가 토론을 이끌었다.

김 교수는 “1915년 일본 조선총독부가 조사를 핑계로 전국의 문화재를 파악한 뒤 간행한 <조선고적도보>, 1940년 동국대 도서관 측에서 조사해 수기로 기록해 놓은 <조선사찰귀중재산목록> 전 권을 살펴보았으나 운흥사 및 범종에 대한 내용은 발견할 수가 없었다”면서 “규모가 컸던 운흥사에 대한 기록 및 범종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두 서책의 간행 및 기록 이전에 반출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김 교수는 “네즈 미술관의 실질적 주인인 네즈 가이치로가 1926년 조선총독부에 순천을 기점으로 철도 부설 계획을 출원한 것으로 보아, 1910년 이후 1915년에 이르기까지 조사를 마친 뒤 철도 부설과 함께 반출하였을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운흥사는 676년 신라 문무왕 16년에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된 고찰로,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승병 6천명을 거느리고 왜군과 싸웠던 호국사찰이다. 이순신 장군도 왜군을 물리치기 위해 운흥사를 세 번 가량 방문, 사명대사를 친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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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시 고등학교는 나와야돼 2017-12-07 18:21:35

    출가자격에 고졸학력이 왜 있나 알게 해주는 화상!   삭제

    • 역시 영담스님입니다. 2017-12-02 21:08:29

      역시 영담스님다운 샤프한 논리가 눈에 뜁니다.
      사법부의 판단을 능가하는 당당한 견해,종교인의 체면을 살려주시네요.
      영담스님 화이팅!   삭제

      • 아랫분께 2017-12-02 10:26:55

        아랫분은 혹 스님이신지 모르겠으나,
        자승원장이 야당을 압살할 목적으로 불편부당하게 영담스님을 제적시킬때 거 종단적인저항이나 액션이 없었던 것이 삼권분립을 제도의 기저로 하는 종단에서 이해 할 수
        없었다.
        조계종에서는 물론 그간 국민의 일반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 안되는 일이 비일비재
        했지만 이 일도 역시 예외는 아니였다.
        중징계 된 스님이 무슨 일인들 할 수 있었겠습니까?   삭제

        • 영담큰스님~~ 2017-12-01 15:46:15

          영담큰스님 지난달 적폐청산 자승구속 촛불법회나 단식정진 설정원장 낙선운동때는 어디 가섰다가 이제야 수불스님 정계은퇴선언 하시니까 그제서야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나타나십니까?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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