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여시아사 이미령의 사람이 經이다
나를 버린 어머니께이름 없는 스님 이야기

어머니.
오늘 아침 저는 당신의 집을 찾았습니다.
어머니 당신께서는 여느 수행자의 아침탁발이라 생각하여 환한 미소로 문을 여셨지요. 그리고 정중하게 두 손 모으고 허리 굽혀 절을 한 뒤 그 수행자의 얼굴을 마주하셨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저를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환한 미소를 띠었고, 이어서 가만가만 제 얼굴을 살피면서 당신의 눈동자가 커졌습니다. 당신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제 얼굴을 뚫어져라 보셨습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당신의 표정에는 불안의 기색이 스며들었습니다.

경악하는 당신의 그 표정,
어머니, 저는 그때 당신의 그 표정을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어머니의 그때 그 심정을 이해합니다.
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당신이 버린 아이였던 것을요.

아주 오래 전, 당신은 저를 품에 안고 아무도 몰래 마을의 외진 곳 빈터로 가셨습니다. 사람이 오가지 않는 황량한 빈터에 어머니는 저를 내려놓으셨습니다. 아직 여린 소녀의 티를 벗지 않은 당신께서는 그때 두 팔이 달달 떨렸습니다. 안겨 있던 제게도 그 두려움이 생생하게 전해졌지요. 어린 당신은 저를 내려놓고 천천히 뒷걸음을 치셨습니다. 그러다 문득 발길을 멈추고 저를 바라보시더니 몸을 돌려 마을로 달려가셨습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저 오도카니 그곳에 놓여졌습니다. 버려졌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 어느 어머니가 제 자식을 길에 버리겠습니까? 열 달을 몸속에 품고 길러 세상에 내놓기까지 어머니와 자식이 맺는 끈끈하고 뜨거운 인연이 그리 쉽게 저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어머니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해가 저물고 추워졌습니다. 추워서 눈물이 났습니다. 눈물을 훔쳤는데 배가 고파졌습니다. 배가 고파 눈물이 났습니다.

“엄마…”

어머니 당신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무서워서 크게 부르지 못했습니다. 크게 불렀다가는 산짐승이 달려올 것만 같았습니다.

“엄마…엄마…”

무서웠습니다. 어느 사이 캄캄한 밤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싶었습니다. 어머니 당신께서 내달리신 그 길은 이제 캄캄해져서 보이지 않습니다. 달님이 떠서 환히 길만 비춰주신다면 저도 어머니를 따라 그 길로 내닫고 싶었습니다.

이제 간신히 걸음마를 할 정도의 어린 저, 밤새도록 걷다 보면 어머니 계신 마을에 이를 수 있을 테지요. 하지만 그 길마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묻혀버렸습니다.

내 머리 속에는 온통 어머니 당신 생각뿐이었습니다.
금방 오실 거야. 먹을 걸 가지고 오실 테지. 나를 여기에 내버려둔 것을 깜빡 잊고 있다가 이제야 생각이 나서 지금 무척 당황하고 계실 거야.

엄마, 엄마, 나 여기 있어요. 언제 올 거예요? 빨리 와요. 춥고 배고프고 무서워요. 난 엄마가 보고 싶어요.
엄마…
엄마…
   .
   .
   .
   .

삽화=마옥경

문득 내 몸이 높이 솟구치는 걸 느꼈습니다.
아! 그 사이 나는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눈을 떠보니 어느 새 주변은 환해졌습니다. 그런데 누굴까요? 엄마가 돌아오신 걸까요? 누가 나를 바닥에서 들어 올린 것일까요? 온몸이 따뜻해졌습니다. 이렇게 누군가 나를 보듬어주고 있으니 밤 동안의 모진 추위는 사라졌습니다.

나를 들어 올려 꼭 안고 있던 그 분이 팔의 힘을 조금 풀었습니다. 나는 그 분을 올려다봤습니다. 아침마다 마을로 탁발을 나오시던 그 분이었습니다. 엄마는 그 분을 이렇게 불렀지요.

“부처님…”

이른 아침 길바닥에 버려진 저를 품에 안으신 분은 바로 그 부처님이었습니다. 부처님은 꽁꽁 언 저를 다시 한 번 꼭 안으시더니 발길을 돌려 절로 향하셨습니다.

어머니, 저는 그렇게 하여 절집안의 아이로 살아가게 됐습니다.

하루하루 어머니가 그립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찾아서 온 세상을 헤맬 것만 같아서 걱정이 되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절 생활도 편치는 않았습니다. 이따금 어머니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과 스님들은 저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셨습니다. 부처님은 언제나 저를 불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 호사스럽게 일생을 시작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고생스럽게 살아가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제 부모에게 버림받고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기도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태어났느냐, 어떤 집안에 태어났느냐가 중요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설령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해도 그게 제 가치를 좌우하지 않는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제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가 제 인생의 가치를 결정 짓는다고 하셨습니다.

마을 외진 빈터에 저를 버린 어머니를 원망하지 말고,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 제 인생을 귀하고 아름답게 가꿀 만한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은 늘 저를 불러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다정하게 물으셨습니다. 부처님의 물음에 제가 대답을 하면, 부처님은 또 다른 말씀을 건네주셨고, 저는 부처님이 주신 말씀을 가만히 마음에 담고서 나무 밑으로 가거나 조촐한 제 방으로 갔습니다.

어머니가 제게 젖을 물려주시듯, 달콤한 간식을 제 입에 떠넣어 먹여주시듯 부처님은 버려진 자식의 주린 마음에 감로 법문을 먹여주셨습니다. 그 감로를 한 입 한 입 받아먹으면서 저는 자라났습니다. 그 감로법문이 제 육신을 길러주었고, 제 정신을 무르익게 했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저는 결심했습니다.

어머니를 찾아가자.
어머니를 찾아가서 그 분의 마음을 풀어드리자.
그리고 이렇게 저는 어머니, 당신의 집을 찾아온 것입니다.
당신은 부쩍 자란 저를 보고 놀라셨습니다. 행색이 초라한 부랑아가 아니라 반듯한 수행자의 모습으로 찾아온 저를 보고 어떤 마음이 드셨는지요.

어머니,
제가 어머니를 찾아온 것은 원망을 퍼붓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저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신 그 인연에 감사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어머니가 저를 낳아주셔서 제가 부처님 법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게 주어진 이 길을 기쁘게 걸어가고 있습니다. 어느 날, 저는 깊은 명상에 잠겨 제 전생을 들여다보고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세세생생 보살도의 길을 걷기로 다짐한 보살이었던 것입니다. 붓다가 되기까지 헤아릴 수 없는 세월동안 윤회를 거듭하며 공덕을 쌓는 보살이었던 것입니다.

어머니, 기뻐하십시오.
어머니가 낳은 자식은 장차 부처가 될 존재였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버리신 것을 지금까지 괴로워하며 지내왔습니다. 당신의 탓이라 여기며 자책하셨지요. 하지만 어머니, 당신의 허물이 아닙니다. 저 역시 예전에는 어머니를 수도 없이 원망했지만, 이왕 벌어진 일, 그것은 제가 전생에 지었던 악한 업이 무르익어 찾아온 과보라 생각합니다. 지금은 이렇게 어엿한 수행자로 살아가니 어머니의 태는 제게 복밭이었습니다. 제가 버려진 그 외진 빈터는 제 수행의 완성을 위한 진리의 문 앞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버리시지 않았습니다. 더 큰 부모인 진리의 어머니 부처님에게 건네주신 것입니다. 어머니가 저를 낳으셔서 이번 생에 부처님 제자가 되었습니다.

어머니, 오늘 아침 제가 이렇게 찾아온 것은 그런 어머니 은혜를 감사드리고 보답하기 위함입니다. 이제 더 이상 자책하지 마십시오.

제게 큰 은혜를 베푸신 어머님이시여!
이제 저 부처님에게 나아가십시오. 부처님께 꽃과 향과 조촐한 가사도 올리십시오. 부처님께 공양올리고 나면 분명 어머니는 발심하실 것입니다.
저는 어머니에게 두 마음이 없습니다. 저를 버리신 원망 따위는 없습니다. 그저 저를 낳아주신 은혜만을 품고 있습니다. 은혜를 입었으면 갚아야 합니다. 어머니의 크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어머니를 부처님에게 인도합니다.

어머니,
부디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셔서 꽃과 향으로 공양 올리신 뒤에 두 손으로 합장하고 이렇게 여쭈십시오.

“저 선한 아들, 귀하고 청정한 보살을 회임한 공덕이 어떻습니까?”

분명 부처님께서는 대답하실 것입니다.

“그대는 보살을 낳았으니 그 선업의 공덕으로 더 이상 악한 갈래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요, 이렇게 진리의 왕에게 진심으로 공양을 올리고 발심하였으니 장차 붓다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말이지요.

오늘 아침, 어머니는 저를 만나 놀라셨을 테지만 머지않아 기쁨에 가득 차게 되실 것입니다. 저는 공손히 합장하고 돌아섰지만 장차 어머니가 한 사람의 수행자가 되시면, 붓다 가문의 대를 잇고, 다르마의 정원에서 함께 거닐기로 하지요. 보살의 어머니시여, 당신도 장차 부처가 되실 것입니다.

*****
어려서 빈터에 버려진 아이를 부처님께서 거두고 수행의 길에 들어서게 했습니다. 아이는 사실 보살도를 맹세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수행을 하고 난 뒤 자신의 삶을 통찰하는 지혜가 생기자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찾아가서 법으로 인도하며, 보살도를 실천하기 위해 자신을 이생과 인연 맺어준 어머니 은혜에 감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부사의광보살소설경>에 실려 있는데 제가 어느 정도 각색했음을 밝힙니다.

반론ㆍ정정ㆍ추후 보도를 청구하실 분은 이메일(budgate@daum.net)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불교포커스'에서 생산한 저작물은 누구나 복사할 수 있으며, '정보공유라이센스 2.0: 영리금지 개작금지'에 따릅니다. 정보공유라이센스

이미령의 다른기사 보기
불교포커스 기사를 후원해주세요
  •            
후원하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