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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과 케이크

짜장면과 케이크

마을버스 정류장 모퉁이에 구둣방이 있다
한사람이 앉을 수는 있으나
누울 수는 없는 크기를 가진 구둣방이다

늦은 점심을 먹고 구둣방에 갔을 때였다
구둣방 할아버지는 수선용 망치로
검정 하이힐 굽을 두드리고 있었는데
웬일인지 구둣방 귀퉁이에
짜장면 빈 그릇 세 개가 포개져 놓여 있었다

어, 이거? 구둣방 할아버지는
위쪽 빵집 젊은 사장과
아래쪽 만두가게 아저씨가 와서
짜장면 송년회를 해주고 갔다고 했다
구둣방이 좁아 둘은 서서 먹고
구둣방 할아버지는 앉아서 먹었단다

구둣방 왼편에 놓인 서랍장 위에는
케이크 한조각이 얌전히 올려져 있었다
검정 구두약 통 두 개와
한뼘 반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하얀 생크림 케이크 한 조각,
누가 놓고 간 거냐고 묻지 않아도
누가 놓고 간 것인지 알 수 있는

아내의 구두를 구둣방에 맡긴 나는
빵집으로 가서 빵 몇 개를 골라 나왔다
아내의 구두를 찾아갈 때는
만두가게에 들러봐야겠다고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세밑이 따뜻해져왔다

- 박성우 「웃는 연습」 중에서 -

우리 마을에도 조그만 구둣방이 있었다. 버스정류장에서 좀 떨어진 길모퉁이지만 사람들이 제법 오가는 길목이었다. 주인장의 손길이 닿았다하면 금세 낡은 구두에서 반짝반짝 광이 났다. 쉬이 닳아 요란하게 또깍거리는 뒷굽은 밑창을 갈아 붙여서 또각또각 듣기 좋은 발자국 소리가 나도록 해주었다. 아주 오래 신은 구두라 발은 편한데 바닥이 얇아졌다고 하니 고무창을 덧대 푹신하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발목이 시원찮아져 구두보다 운동화를 더 많이 신고 다니게 되면서 구둣방에 들를 일이 뜸해질 무렵, 그 길목에 커다란 상가 건물이 들어선단다. 높다랗게 펜스를 치고 주변정리를 한다더니 구둣방에도 자물쇠가 채워졌다. 공사차량이 드나드는가 싶더니 얼마 후 구둣방이던 작은 가건물이 통째로 없어졌다.

유난스레 눈도 많고 추운 이 겨울을 그 구둣방 주인장은 어디서 어떻게 나고 계실까. 한해가 저물고 새해를 맞이하는 요즈음, 짜장면 빈 그릇들이 포개져 있고 새하얀 케이크가 놓여 있는 새 구둣방에서 굵은 눈웃음 선하게 짓고 있으면 좋겠는데. 생각만으로도 참 따뜻한 세밑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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