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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가 말 길들이는 법을 묻다말 조련사 케시 이야기①

말 조련사인 나, 케시(kesi)-사나운 야생마를 길들여 귀족에게 파는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말을 길들이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단 한 번도 누군가의 통제를 받아본 적이 없는 야생마를 세상에서 최고로 잘 길들여 왕공귀족의 가문에 어울리는 명마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일은 보람차기도 하지만 자칫 내 목숨을 내놓아야 할 정도로 위험하기도 합니다.

한 눈에 봐도 기개가 넘치고 용감하고 잘 달리는 말은 누구나 탐냅니다. 히히힝~ 하며 허공을 가르는 말울음소리와 바람보다 더 빨리 달리고 사나운 짐승들과도 맞서는 녀석을 볼 때면 짜릿해집니다.

나는 그런 야생마를 붙잡아다 길들입니다. 녀석이 억세고 빠를수록 나는 그 매력에 빠져듭니다. 그저 순하기만 해서 자신에게 재갈을 물리건 박차를 가하건 살갑게 구는 녀석은 사양합니다. 자기 생각이 또렷하고 자기 생각을 관철시키려는 의지가 넘쳐나는 녀석. 그런 녀석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 야생마를 만나면 목숨을 걸고 길들입니다.

녀석이 내게 맞서면 맞설수록 그를 길들이려는 내 의지도 세집니다. 녀석의 야생본능이 죽든지, 아니면 그 본능에 밀려 내가 도망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내가 이깁니다. 내가 이긴다는 것을 자랑하려는 건 아닙니다. 나의 조련으로 녀석은 명마로 다시 태어납니다. 다시 태어난 녀석은 왕가로 가거나 높은 귀족가문으로 팔려갑니다. 그곳에서 나라나 도시를 상징하는 명물로 추앙을 받습니다. 그런 녀석은 제 등에 아무나 앉히지 않습니다. 명마를 탈 자격이 있는 이들만 태웁니다.

이렇게 말길들이기를 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일이 힘에 부칩니다. 이따금은 힘과 힘이 맞서고 맞부딪쳐 상대를 꺾는 대결의 구도가 진력이 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이상하게도 부처님이 떠올랐습니다. 지금 그분은 이런 세력대결에서 훌쩍 벗어나 평화로운 마음으로 머물고 계시겠지….

이제나 저제나 꼭 한 번 찾아뵙고 싶었는데 오늘 때가 왔습니다. 부처님을 뵙고 뭘 여쭈려는 건 아닙니다. 평생 말 길들이는 것 말고는 달리 한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 야생마를 길들일 수 있을까만 생각해온 내 머리에 다른 걸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부처님 앞에 나아가 한번 마주 앉아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 분과 마주하면 말을 마주할 때와 아주 다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입니다. 상대를 꺾고 길들이겠다는 대결의지에 불타오르지 않아도 될 테니까 말입니다.

부처님 계신 곳을 찾아가서 인사를 올리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습니다. 부처님은 내게 따뜻하게 인사를 건네시더니 가만히 나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먼저 말씀을 꺼내셨습니다.

“케시여, 그대는 말 조련사이지요?”

아침마다 탁발을 다니시는 부처님은 당신이 머무시는 마을의 사람들을 얼추 알고 계시는 듯 했습니다.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는 그 목소리가 참 좋았습니다. 나는 얼른 대답했습니다.

“예, 세존이시여. 저는 어려서부터 말 조련사로 살아왔습니다.”

“그렇다면 말 길들이는 법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겠군요.”

“예, 알다마다요.”

“케시여, 이야기를 좀 들려주십시오. 어떤 말은 길들이지 않아도 될 테고, 반면 대부분의 말들은 열심히 길들여야 할 텐데, 길들여야 할 말들을 어떻게 대합니까?”

“세존이시여, 저는 길들여야 할 말을 잘 살펴서 그 기질에 따라 대처합니다. 부드럽게 길들여야 하는 말이 있고, 거칠게 길들여야 할 말이 있고, 부드럽고 거친 조련을 때때로 섞어서 길들여야 할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길들이는데도 전혀 길들여지지 않는 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는 말조련사로서 어떻게 대처합니까?”

“부드러운 방식으로도 길들여지지 않고, 거친 방식으로도 길들여지지 않고, 이 두 가지 방식을 섞어 써도 길들여지지 않는다면 저는 그 말은 죽여 버립니다. 제게 말조련 방법을 전해주신 스승의 가문에 누가 되기 때문입니다. 제게 있어 길들여지지 않는 말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뜻밖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내게 말 길들이는 법을 물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곳까지 찾아오면서 조금 긴장을 하긴 했습니다. 그저 뵙고 싶다는 마음으로 찾아가지만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앉아 있기만 하면 어떻게 하나 해서입니다. 행여 부처님께서 내 살아온 거친 삶을 힐난하기라도 하면 부끄러울 텐데 하는 지레짐작도 일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마치 부처님은 오래 전부터 말 길들이는 법을 배우고 싶었던 사람처럼 내게 진지하게 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내가 가장 잘 하는 일이 주제가 됐는데 내 말문이 막힐 리가 없습니다. 나는 술술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부처님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내 말에 귀를 기울였고 간간이 질문도 하셨습니다.

태국 수코타이에서 만난 부처님의 손가락. 손가락이 이렇게 가지런하고 긴 것은 전생에 모든 생명들을 돌보고 아껴주었다는 뜻이다. 사진=김용섭

부처님을 마주한다는 부담감이 사라졌나 봅니다. 나도 모르게 이번에는 내가 부처님에게 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도 심성 사나운 중생을 잘 길들이시는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사람들 중에서도 굳이 길들이지 않아도 마음공부가 잘 되어 있는 이가 있을 테고, 거친 야생마처럼 열심히 길들여야 할 사람도 있을 텐데요, 부처님은 그런 사람을 어떻게 길들이십니까?”

“케시여, 나도 세 가지 방법을 씁니다. 당신과 같습니다. 부드럽게 길들여야 할 사람에게는 부드럽게, 거칠게 길들여야 할 사람에게는 거칠게, 그 두 가지 방법을 고루 섞어서 길들여야 할 사람에게는 또 그렇게 말입니다.”

부처님은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부드럽게 길들인다는 것은 이렇습니다. ‘행동과 말과 생각으로 선업을 지으십시오. 선업이란 나도 좋고 남도 좋고 나와 남이 함께 좋은 방향으로 의지를 일으켜 행동하거나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즐거운 과보가 따라옵니다. 남은 생에 즐거운 과보가 찾아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행여 이번 생에 그 과보를 받지 않는다 해도 실망할 것은 없습니다. 분명 다음 생에 과보가 따릅니다. 선업을 짓는 이는 다음 생에 가장 행복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부드럽게 길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행복하고 즐겁게 살고 싶으면 선업을 지으라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부드러운 길들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행복을 불러오는 방법을 일러주면 우리는 저절로 마음이 열리고 평화로워집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전혀 귀에 들리지 않는 성정의 사람도 있습니다. 부처님의 다음 말씀은 그런 사람을 상대로 하는 교화방식입니다.

“거칠게 길들인다는 것은 이렇습니다. ‘지금 그대가 하고 있는 행동과 말과 생각을 살펴보십시오. 그것은 당신 자신에게 해롭고 남에게 해로울 뿐만 아니라 당신 자신과 남을 동시에 해롭게 합니다. 그런 업을 악업이라 합니다. 악업을 짓는 동안 순탄할 수가 없습니다. 악업을 짓고 난 뒤에 결과가 즐겁고 행복할 리도 없습니다. 틀림없이 악업에 따른 괴로운 과보가 따를 것입니다. 이번 생에 용케 괴로운 과보를 피했다고 해서 마음을 놓지는 마십시오. 다음 생에라도 그 과보는 반드시 찾아옵니다. 지옥이나 아귀 세계에 떨어져 괴로워할 텐데 어쩌자고 악업을 짓고 있습니까?’ 이것이 바로 사람을 거칠게 길들인다는 것입니다.”

쓰린 맛을 봐야만 정신을 차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혹은 자신처럼 함부로 행동하다가 먼저 쓰린 결과를 겪는 이를 보고서야 자신을 반성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드러운 말보다 매서운 경고가 더 와 닿는 이들을 위해서는 이런 말로 다가간다는 것입니다. 말을 길들일 때 채찍이 살갗을 파고들 정도로 아픔이 느껴져야 비로소 길들여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어서 부처님은 부드러운 방식과 거친 방식으로 길들이는 법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앞서 두 가지 방식을 차례로 나란히 들려주면서 어떤 방향으로 업을 지어야 자신에게 좋은지 잘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말을 길들이는 나의 방식과 다르지 않아서 이해하기가 쉬웠습니다. 사나운 성정을 지닌 말이 잘 훈련받으면 명예로운 가문의 명마가 되어 웬만한 사람들도 누릴 수 없는 호사를 누립니다. 선업을 짓고 악업을 멈추면 그에게 찾아오는 행복이란 과보가 바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귀에 쏙 들어오는 부처님 말씀이 끝나자 나는 궁금증이 또 일었습니다. 부처님도 내게 물으셨던 바로 그 질문입니다. 마치 오래 전부터 부처님과 함께 수행을 해온 도반인 양 나는 당당하게 궁금한 것을 여쭙고 있습니다. 나의 질문은 이렇게 이어졌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부처님. 그런데 말이지요. 그렇게 세 가지 방식으로도 길들여지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땐 어떻게 하십니까?”

말의 경우, 나는 죽여버린다고 대답했습니다. 쓸데가 없으니까요. 세상에 내게 길들여지지 않는 말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나와 내 스승의 명예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이라면 어떻게 대답하실까요? 부처님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하셨습니다.

“부드럽게 대해도 길들여지지 않고, 거칠게 대해도 길들여지지 않고, 그 두 가지 방식을 섞어서 써서도 길들여지지 않는다면, 나는 그 사람을 죽여 버립니다. 당신과 같지요.”(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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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이 경이다^^ 2018-01-03 11:52:31

    <새해에는^^>

    모든 사람들도
    모두 붓다불법에 잘 맛들이고 법등명으로 잘 조련 길들여져
    모두 경이 되는 날,,,^^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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