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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현정(破邪顯正)은 우리의 현재이자 미래다
  • 박병기|한국교원대학교 교수
  • 승인 2018.01.01 00:02
  • 댓글 2

또 새로운 해를 맞는다. 찰나의 순간만을 말할 수 있을 뿐 분리된 시간의 흐름은 인정하지 않는 불교의 시간관에 따르면 새해란 하나의 상(相)에 근거한 분별에 불과하지만, 휴대전화와 다이어리 속 달력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아주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커피전문점 상술에 자신을 내맡기며 받아든 다이어리는 그 빈 공간만큼의 새로움을 선사하고, 그곳에 이런저런 계획을 적으며 마음을 다잡기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사현정의 몸짓: 촛불법회와 종교개혁 선언

우리에게 2017년은 2016년의 촛불집회를 이은 불교계 촛불법회와 불교, 개신교, 천주교의 ‘종교개혁 선언’이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새겨져 있다. 조계종단 적폐청산을 외치며 조계사 앞에서 시작한 1인 시위는 피켓시위와 목요일 저녁 촛불법회, 두 번의 범불교도대회와 범불자결집대회로 이어졌다. 상식이 통하는 불교, 더 이상 부끄럽지는 않은 불교를 염원한 우리의 외침은 이웃종교인들과 시민사회에 강렬한 이미지로 전해졌고, 그 결과 중 하나로 지난 12월 28일 ‘불교, 개신교, 천주교 종교개혁 선언’이 나올 수 있었다. 2천명이 넘는 종교인들과 비종교인, 50곳이 넘는 종교단체들이 서명한 결과를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함께 나누며, 우리는 동지애와 함께 종교의 미래를 위한 변화의 열망을 충분할 만큼 확인할 수 있었다.

종교개혁 선언은 원효 탄신 1400주년과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인 2017년을 기리면서 이루어진 성과이다. 2018년은 이제 그 선언의 구체적인 실천이 이루어지는 첫해로 기록될 것이다. 각 종교별로 재가불자와 평신도가 중심이 되어 승가와 성직자를 이끌어가는 방식으로 하나하나 실천이 이루어질 것이고, 그 과정에는 우리가 주체가 되어 참여해야만 한다는 당위적 요청이 자리하고 있다. 이즈음에 2017년을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우리 불교용어인 파사현정(破邪顯正)이 선정되었고, 이는 이 땅의 일반교수들이 마음을 모은 결과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그 상징성에 주목할 만한 필요성을 느낀다.

불교ㆍ개신교ㆍ천주교 종교개혁선언 추진위원회는 2017년 12월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종교개혁 선언문’을 발표했다.

파사현정은 중관학파, 즉 용수(龍樹)를 중심으로 전개된 인도불교의 한 흐름을 동아시아적으로 재해석한 삼론종(三論宗)에서 강조한 개념 중 하나다. 구마라습에서 승조, 승랑으로 이어지는 삼론종은 용수의 『중론』과 『십이문론』, 제바의 『백론』 등 세 가지 논서(論書)를 소의경전으로 삼아 성립된 동아시아 불교의 한 학파다.(김성철, 『승랑』, 지식산업사, 2011 참조) 특히 우리 불교사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고구려의 승려 승랑이 ‘이제합 명중도(二諦合 明中道)’라는 명제를 통해 이 삼론종의 성립과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이다.

조금 어렵게 느껴지지만, 불교도에게는 사실 비교적 익숙한 개념들이기도 하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세상의 질서를 속제(俗諦)라 하고, 붓다가 발견한 진리에 근거한 삶의 이치에 관한 담론을 진제(眞諦)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불교도는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두 세계를 걸림 없이 넘나드는 것이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하는 실천적 도리, 즉 중도(中道)이다. 두 세계를 걸림 없이 넘나들고자 노력하는 것을 승랑은 ‘이제합’이라고 표현했고, 그것은 곧 중도를 밝히는 일[明中道]이 된다는 것이 그의 가르침이다. 그 노력의 과정을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 일상 속 다르마[眞理]에 어긋나는 것에 맞서 올바름을 드러내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인 것이다.

파사현정의 일상적 실천과 불교 언론

문제는 일상 속 실천이다. 옳고 그름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데 익숙해진 서구 근대 문명의 세례를 받은 우리는 삿된 것과 바른 것 사이가 서로 온전히 나뉘어져 있다고 착각하는 경향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 사회의 적폐는 내 안의 삿된 것과 분리될 수 없고, 내가 적대감을 갖고 대하는 타자의 잘못과 못됨 또한 나의 그것들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 부처가 깨달은 진리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런 불이성(不二性)의 인식은 자칫 일상 속의 옳고 그름의 구분 필요성에 대한 거부로까지 연결될 수 있고, 바로 그 지점이 한국불교가 어두운 현대사 속에서 사회정의 실현에 소홀하게 한 요인 중 하나가 된 것은 아닌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중도(中道)란 당연히 중간이나 가거나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식의 적당한 타협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도는 우리 일상 속 속제의 차원 속에 숨겨져 있는 진리를 향하는 열망이자 실천의 과정으로 구체화될 수 있다. 속제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원리는 나 자신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것에 무조건적으로 집착하는 이기심(利己心)과, 그 이기심이 발휘되는 과정에서 눈감게 되는 ‘양심의 가책’이다. 양심은 우리에게 불성(佛性) 또는 선한 본성[性善]이라는 문화유전자로 새겨져 있는 개념이기도 하고, 칸트 등 서양윤리학자들의 인격(人格)으로 되새김할 수 있었던 개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인간은 이 양심을 씨앗 또는 단서로만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이후의 교육을 통해 제대로 길러질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평생에 걸쳐 계속 다듬어야 하는 수행(修行) 또는 수양(修養)의 대상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현대의 도덕심리학자들에 의해 재확인되고 있기도 하다.

조계종은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기사를 써 온 불교포커스와 불교닷컴에 800일 가까이 언론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불교포커스 자료사진.

자신의 이해관계를 옳고 그름과 동일시하고자 하는 도덕성 발달 단계를 현대를 대표하는 도덕심리학자 콜버그(L. Kohlberg)는 전체 6단계 중에서 2단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자신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서 이 2단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판단과 행동이 너무 쉽게 발견되곤 한다. 특히 일부 불교 언론을 비롯한 언론계 종사자들에게서 이런 모습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은데, 다행히도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문화방송(MBC)과 한국방송(KBS)의 정상화 과정을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정상화는 다름 아닌 언론윤리의 회복이자 종사자들 자신의 양심회복의 과정이다.

그런데 우리 불교계 일부 언론에서는 아직 이런 파사현정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파사현정이 당위적 요청이기도 하지만, 오래 견딜 수는 없는 그릇됨의 속성에서 비롯되는 자연스런 역사적 실현의 과정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비관적인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다만 새해를 맞는 이 기분과 기운으로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정론직필(正論直筆)의 지향성을 더 이상 외면하지는 말기를 바라는 마음만은 꼭 전하고 싶다. 그것이 우리 모두를 위한 방향성일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의 삶의 의미 물음과 직결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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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운 새해 2018-01-01 17:36:56

    파사현정(破邪顯正)   삭제

    • 두보 2018-01-01 10:14:04

      파사현정의 명쾌하고 깊은 의미를 잘 설명해주신 좋은 글을 정초에 보니 더욱 깊게 새기게됩니다.
      새해에도 복 많이 지으시고 행복하소서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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