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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조계종은 벌거벗은 임금님
지난해 11월부터 인도에서 수행 중인 허정스님이 비판의식 없이 각자도생하기 바쁜 조계종의 오늘날 현실을 지적하는 기고문을 보내와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스님이 계시는 해운정사 홈페이지에는 아래와 같은 안내문이 오래전부터 걸려있다. 사십이장경을 인용하며 공양공덕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내용이다.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 보면 "사바세계의 모든 중생에게 공양(供養)을 베푸는 것보다 소승(小乘)의 진리를 깨달은 한 아라한(阿羅漢)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이 더 복(福)이 많고, 일체의 아라한에게 공양 올리는 것보다 대승(大乘)의 진리를 깨달은 한 보살(菩薩)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이 더 수승(殊勝)하며, 일체의 보살에게 공양 올리는 것보다 부처님의 경계를 깨달은 한 분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이 더 수승한 복을 짓는 일이다. 그러나 일체의 제불(諸佛)에게 공양 올리는 것보다 무심(無心)의 경계를 수용한 한 분의 무심도인(無心道人)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이 더없이 수승한 일이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진리법에는 이렇게 소승의 경지, 대승의 경지, 부처님의 경지, 그리고 부처님의 경지 위에 다시 무심도인의 경지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부처님도 대적삼매(大寂三昧)의 무심 경계를 일상의 살림살이로 삼아 수용하시지만, 무심도인의 경지는 그 이상의 것이 있습니다.

정말 일체의 제불(諸佛)보다 더 수승한 무심도인(無心道人)의 경계가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처님 가르침에는 그런 것이 없다. 경전을 잘못 번역하여 오해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사십이장경의 ‘반천억불(飯千億佛)이 불여무념무주무수무증지(不如無念無住無修無證也)’를 잘못 번역하여 마치 부처님보다 더 높은 소위 '무심도인'에게 보시하는 것이 공덕이 제일크다는 엉뚱한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사십이장경 11장의 내용에 대응하는 웰라마 경(A9:20)에서 부처님의 뜻이 어떠한 것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경의 처음에는 보시받는 대상에 따라 공덕의 차이가 있음을 설명하다가 나중에는 스스로의 수행 즉, 삼귀의 하고 5계를 지키고 자애관을 닦고 무상관을 닦는 것이 수행공덕이 보시공덕보다 수승함을 설명하고 있다. 남에게 보시를 할때는 과위가 높은 순서대로 보시하는 것이 공덕이 크지만 보시공덕보다 더 큰 공덕은 스스로 계를지키고 수행하는 것이다라는 것이 아래 웰라마 경의 취지인 것이다.

"장자여, 웰라마 바라문이 큰 보시를 했지만 견해를 구족한 한 사람을 공양한다면, 이것은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견해를 구족한 백 명의 사람들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일래자를 공양한다면, 백 명의 일래자를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불환자를 공양한다면, 백 명의 불환자를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아라한을 공양한다면, 백 명의 아라한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벽지불을 공양한다면, 백 명의 벽지불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여래ㆍ아라한ㆍ정등각을 공양한다면, 부처님을 상수로 하는 비구승가를 공양한다면, 사방 승가를 위하여 승원을 짓는다면, 청정한 마음으로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귀의한다면, 청정한 마음으로 학습계목을 받아 지녀서 생명을 죽이는 것을 멀리 여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멀리 여의고, 삿된 음행을 멀리 여의고, 거짓말을 멀리 여의고, 방일하는 근본이 되는 술과 중독성 물질을 멀리 여읜다면, 소젖을 한번 짜는 동안만큼이라도 자애의 마음을 닦는다면, 손가락을 튀기는 순간만큼이라도 무상이라는 인식을 닦는다면, 이것이 그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웰라마경 (A9:20)

만약 부처님보다 더높은 '무심도인'이라는 경계가 있다면 그것은 심각한 훼불사상이다. 모든걸 마음으로 돌리는 선사들은 해석에 자유가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십이장경은 불멸후 500년뒤에 나온 대승경전이나 훨씬뒤에 나온 선사의 어록이 아니다. 아무리 선사라 할지라도 초기경전의 가르침인 사십이장경을 이렇게 해석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이러한 해석이 수행자들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주었는지를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시급히 바로잡아야 할 오류다. 동국역경원에서 나온 번역은 "백억 명의 벽지불을 공양하는 것이 3존의 가르침으로 그 한 생애의 두 어버이를 제도하는 것만 못하며, 천억 명을 가르치는 것이 부처가 되기를 바라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한 명의 불학(佛學:菩薩)에게 공양하는 것만 못하다. 착한 사람을 공양하는 복이 가장 깊고 소중하다. 범인들이 천지의 귀신을 섬기는 것은 그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것만 못하니, 두 어버이가 가장 높은 신이다"라며 다른 내용을 전하고 있다.

이러한 번역본은‘반천억불(飯千億佛)이 불여무념무주무수무증지(不如無念無住無修無證也)’와는 애초에 다른 버전일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서도 '착한 사람을 공양하는 복이 가장 깊고 소중하다'는 엉뚱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적어도 부처님위에 무심도인을 거론되지는 않는다.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스님이 위와 같이 ‘부처님의 진리법에는 이렇게 소승의 경지, 대승의 경지, 부처님의 경지, 그리고 부처님의 경지 위에 다시 무심도인의 경지가 있는 것입니다’라고 부처님의 가르침과 크게 어긋나는 교리를 소개하며 이러한 가르침을 이용하여 대중공양을 권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제불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무심도인에게 공양하는 것이 수승하다고 말하면서도 무심도인이 누구인지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보시공덕의 예로 벽지불이나 부처님께 공양하여 얻은 과보들을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언젠가부터 ‘종정스님은 본종의 신성을 상징하고, 종통을 승계하는 최고의 권위와 지위를 가지며...’라는 종헌의 구절로 인하여 종정스님이 비판의 대상이 되면 큰일 나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왜곡하는 하는 사람이 종정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우리가 부처님을 따르기 위해 삭발염의 하였지 종정스님을 따르기 위해 출가한 것은 아니다. 종정스님이라도 비판받아야 할 것이 있다면 당연히 비판 받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비불교적인 사상을 왜 종단의 수좌스님들과 강사스님과 율사스님들과 불교학자들은 지적하지 않고 있는가? ‘붓다로 살자’는 이상한 표어를 내세우는 포교원과 출가자 모집광고로 승려의 위상을 격하시킨 교육원은  정법을 바로잡을 의지도 능력도 없는 것인가?

자승 총무원장이 8년 집권하며 종단의 종헌종법을 마음대로 무너뜨렸는데도 교리와 종법을 잘 안다는 강사와 율사스님들은 조용히 침묵만 지켰다. 바른말하는 언론들이 탄압을 받고 불교신문 등 어용언론들이 선거개입을 하며 종법을 무너지게하는 총무원장을 미화하는 기사를 써대는 등 종단을 망하게 하는데도 침묵만 지켰다. 종법이 무너지고 정법이 망가져도 조계종은 적막강산이다. 자승원장의 도움으로 새롭게 총무원장이 된 설정스님은 학력위조와 은처자 의혹을 조속히 해명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고 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총무원장에게 종단의 최고 어른이신 종정스님은 아무런 말도 안하신다.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조계종. 작금 조계종의 현실은 우화에 나오는 벌거벗은 임금님이다. 다들 “종단이 부패한 것이 어제 오늘 일인가?”라고 탄식하며 각자도생하기에 바쁘다. 정말 사실을 말하자면 ‘대한불교조계종은 벌거벗은 임금님이다’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벌거벗고 있으면서 서로서로 모른체하는 우리들, 떠나간 300만명은 이런 곳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듯하다.

반론ㆍ정정ㆍ추후 보도를 청구하실 분은 이메일(budgate@daum.net)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불교포커스'에서 생산한 저작물은 누구나 복사할 수 있으며, '정보공유라이센스 2.0: 영리금지 개작금지'에 따릅니다. 정보공유라이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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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쇼쇼쇼 2018-01-16 08:08:36

    자기 수행도 안된자가 남을 비판하니 지나가던 개도 웃는다.죽을때까지 비판하고 살아라.   삭제

    • 유심도인 2018-01-13 09:58:35

      무심도인을 봉양하는 것이 최고의 복이라 한것은
      방편이다 참선해서 깨달은 사람들을 기냥 무심도인이라 한다 무심도인에게 공양하는 것은 공양 그 자체가 보시복전을 지어 그 공덕으로 같이 깨달은 다는 뜻이 담겨 있는것이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왜 달은 안보고 손가락을 보고 시비늘 일삼는가 무심도인이나 다른 불쌍한 이에게 보시하는 것도 다 같은 복전을 쌓는 것이다 누구나 보시하는 마음을 일으킨 사람들은 이미 보살이다 곧 성스런 마음을 품고 있는것이다   삭제

      • 자비없는 자비종단/ 2018-01-12 23:40:17

        잘아시네요 ㅎㅎ
        절간은 나랏돈 뜯어내고 입장료 걷으려는 명목
        실제로는 준공식과 1년에 몇번 행사할때만 사용
        평상시는 빈공간으로 방치 (한두명 관리하는 종무원만 상주)
        그외는 아파트/오피스텔/원룸에서 생활   삭제

        • 어이구다 2018-01-12 23:07:54

          진제나 설정이나 50보 백보가 아닐까요?
          끼리끼리 해처먹을려고 했을 것이고.
          유유상종이 영원한 진리인 조계종단의 권승들   삭제

          • 자비없는 자비종단 2018-01-12 21:02:11

            절깐을 크게짓고
            그안에 중이 안산다.
            누굴 위해 불사하니?   삭제

            • 불자 2018-01-11 11:30:15

              그래서 전아무개 아버지는 누구입니까?   삭제

              • 성문이 2018-01-11 09:31:32

                성문의 허물을 알기는 어렵지 않을까?   삭제

                • 조계종 스님들은 각자도생하지 2018-01-11 09:27:43

                  조계종은 이제 비젼없는 종단으로 빠져들고 있다.
                  사자신중충이라 했던가
                  내로남불인가.

                  같은 문중. 서로 눈감아 주는 연줄있는 중들은
                  대처 처자식. 사설사암, 서로 나눠먹기.등등
                  모든 일에 눈감아준다. 좋은게 좋은 것이란다.

                  조계종에 선방에서 수행하는 것이 조계종단의 종지 일까
                  아니면 주지자리 노리는 중일까.
                  아니면 아직 좋은 연줄이 없는 걸까.

                  선방도 오직 두 갈래의 중이 있다.
                  한 중들은 맥있어서 선방 이력쌓아 더 높은 자리 노리는 중.
                  또 다른 중은 연줄없으니 수행해서 복덕으로 요행수를 바라는 중.
                  어느 쪽이 많을까.   삭제

                  • 아랫글이어서 2 2018-01-11 09:17:40

                    이리 죽기 싫은 중은 문중없고 백없는 중은
                    부전부터 이리저리 목탁치고 신도비위맞추면서
                    포교명목하에 돈을 모아 조그만 토굴이나 포교당을 마련한다.
                    요새시대에 대출을 끼고 마련할때에는 조계종단 나몰라라 하다가
                    신도가 늘어나 정착되면 조계종단에서 사설사암 등록법으로 재산을 조계종단에 등록하도록 강요한다.
                    조계종단은 무소유정신에 입각한다면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사회주의보다 더 악랄한 조계종법
                    각자도생하지 않으면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묘한법
                    한쪽에서는 최고급외제차를 몰고 전통사찰로 들어가는 수승한 중도 있는 이때.   삭제

                    • 조계종 스님들은 각자도생하지 2018-01-11 09:14:03

                      조계종 스님들이
                      따뜻한 전통사찰에서 누비옷입고 한술밥이라도
                      한끼 해결하려는 스님들은
                      문중에 줄을 잘 서거나
                      종단에 연줄이 닿아야 한다.

                      그렇지 않는 중은 일평생 수행이라는 명목하에
                      고생하다 마지막에 병원비도 없어서
                      일명 토굴이라는 허름한 아파트에서
                      쓸쓸히 백골화로 발견된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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