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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코니의 시간

발코니의 시간

필리핀의 한 마을에선
암벽에 철심을 박아 관을 올려놓는 장례법이 있다
고인은
두 다리를 뻗고 허공의 난간에 몸을 맡긴다
이까짓 두려움쯤이야
살아있을 당시 이미 겪어낸 일이므로
무서워 떠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암벽을 오르던 바람이 관 뚜껑을 발로 차거나
철심을 휘어도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그저 웃는다
평온한 경직,
아버지는 정년퇴직 후 발코니에서 화초를 키웠다
생은 난간에 기대어 서는 일
허공과 공허 사이
무수한 추락 앞에 내성이 생기는 일이라고
당신은 통유리 너머에서 그저 웃는다
암벽 같은 등으로 봄이 아슬아슬 이울고 있을 때
붉은 시클라멘이 피었다
막다른 향기가
서녘의 난간을 오래 붙잡고 서있었다
발아래 아득한 소실점
더 이상 천적으로부터 훼손당하는 일은 없겠다
하얀 유골 한 구가 바람의 멍든 발을 매만져준다
해 저무는 발코니,
세상이 한눈에 보인다  

- 박은영 (2018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붙임성도 좋은데다 달변이신 시어머니는 활달한 성격만큼이나 생활력도 아주 강하시다. 그에 비해 시아버지는 말수도 적으시고 좀 차갑게 느껴질 만큼 꼬장꼬장한 분이다. 이웃에 사는 분이 반갑게 인사를 해도 고개만 까딱하실 뿐 눈도 잘 마주치질 않으신다.

그랬던 분이 한동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다. 평소 지병도 있으신 데다 노환이시란다. 그 무렵부터 꼿꼿하던 어른이 걸핏하면 눈물을 흘리신다. 당신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그냥 자꾸만 눈물이 흐른단다. 어쩌면 그 눈물은 죽음이 두렵지 않을 때까지, 추락하고 또 추락하는 게 生의 본질임을 너무나 절절히 아는 데서 솟는 건지도 모른다. 그 연세쯤 되어야만 똑똑히 실감할 수 있는 어떤 절실한 앎에서 오는 울음. 그렇다면 내 시아버지는 울고 시인의 아버지는 웃을 뿐 두 아버지의 울음과 웃음은 다른 게 아니지 싶다.

이번 시댁에 갈 때는 시아버지께서 제일 좋아하시는 빨간 베고니아가 가득 피어있는 화분을 선물해야겠다. 그러면 허공과 공허사이, 잠시나마 환하게 웃어주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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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비에도 차별 2018-01-28 15:07:25

    우리나라 청정승들은 일반 화장장가서 화장후 무연고 묘소에 봉안
    범계권승들은 초호화 연화대에서 수백상좌 수만신도 서가모니불 염불아래 다비하고 영롱한 사리 수십 수백과 만들어서 신도들에게 전시후 초호화 사리탑에 봉안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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