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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의 책을 읽는다는 것달라이라마 반야심경 (텐진 갸초 지음 / 주민황 옮김 / 하루헌)
올해 1월 5일 인도 보드가야에서 열린 칼라차크라 법회에서 법문을 하는 달라이라마 존자. 사진=달라이라마 공식 홈페이지(www.dalailama.com)

"세상에는 두 부류의 저자가 있다"고 감히 말하겠습니다.

하나는, 자기가 아는 지식들을 다 쏟아 부어서 책 한 권에 너무 많은 정보를 담은 저자. 또 하나는, 자기가 몸과 마음으로 느낀 것을 차분히 담고 있어서 그걸 알아채지 못하는 독자들에게는 실망을 안겨주는 저자.

며칠 전에 심리학 관련 책을 읽었는데 그 속에 어찌나 많은 이론과 실험들이 담겨 있던지 책을 덮을 때는 숨이 막혔습니다. 이런 책은 전공하는 사람들이 공부할 때나 참고할 책이라는 생각을 했지요. 저자의 박식함에 감탄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나는 별로였습니다. 그건 저자의 자기 지식자랑 그것 말고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달라이라마의 책을 펼쳐 읽을 때면 두 가지 마음이 엇갈립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 쉬운 내용들이 쓰여 있어서 딱히 밑줄 그을 곳을 찾지 못해 “뭐, 다 아는 얘기…”라는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티베트 불교의 특징이랄 수 있는 수행과 관련한 내용이 전개되는데 그 부분을 읽을 때는 “이건 뭐 본격적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이나 이해할 내용인데 일반 독자들이 이걸 이해할까”하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시중에는 달라이라마의 책이 참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달라이라마의 책을 꼼꼼하게 읽었다거나 그 책을 읽고 뭔가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거나 불교수행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싶어졌다는 독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책을 읽고 난 느낌을 사이버 공간에 올리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게 있어 ‘달라이라마’라는 존재는 인도 다람살라에 머물고 계시는 살아 있는 성자로서, 친견해야 할 대상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그 분이 대체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어떤 맥락으로 당신의 사상을 펼치는지 까지 알고 싶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친견했을 때 눈물이 쏟아졌다.”
“감동스러웠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종교는 워낙 많은 갈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마음상태도 참 중요한 종교적 요소입니다. 하지만 감성적으로만 달라이라마를 대하기에는 아쉬움이 큽니다. 그 분이 세계를 다니며 하신 말씀들이 책으로 나와 있기 때문에 그 책을 꼼꼼하게 읽어간다면 친견했을 때 벅차오르는 가슴, 그 위에 어떤 묵직하고도 눈부신 일깨움까지 챙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다시 나온 <달라이라마 반야심경>은 꼼꼼하게 읽어볼 가치가 있습니다. 내가 알기로는 아주 오래 전 무우수 출판사에서 나온 것을 이번에 하루헌 출판사에서 다시 낸 것입니다. 그 전에도 나는 이 책을 사람들에게 아주 많이 권했습니다.
먼저 이 책은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서 개최된 달라이라마의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1998년 펜실바이아 피츠버그에서 있었던 반야심경 설법내용을 보태서 엮은 것입니다. 그러니 달라이라마의 강연녹취가 아니라 편집자들의 손길이 상당수 가해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이뤄져 있습니다.

제1부는 반야심경을 설명하기에 앞서 불교라는 하나의 종교에 대한 전반적인 큰 틀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초기불교의 교리는 물론이요, 대승불교 교리까지 부드럽게 이어지고 있지요. 이 1부를 차분하게 읽으면 아주 좋습니다. 달라이라마는 불자들에게만 법문을 하지 않습니다. 다른 문화권으로 날아가서 불교를 전혀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법문을 하는 분입니다. 그런 만큼 ‘불교’라는 틀을 걷어내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가 그 빗장을 열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입니다.

제2부는 본격적인 반야심경 해설입니다. 우리나라 스님들의 반야심경 해설서와는 조금 빛깔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냥 쉽게만 설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에 대한 설명이 전문적으로 베풀어집니다. 유식학파와 중관학파의 사상적 차이도 다루고 있고, 티베트에 전해진 공사상에 대한 설명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을 읽을 때면 이 책이 무척 까다로운 내용을 안고 있고, 또한 친절하지 않은 불교책이라는 걸 느껴서 덮고 싶은 마음이 일 수도 있습니다.

제3부는 보살이 되는 법입니다. 이 부분이 달라이라마의 <반야심경관(觀)>이라 해도 좋습니다. 왜 반야를 얻어야 하는가. 왜 쉬지 않고 수행을 해야 하는가. 왜 우리는 불자로 살아야 하는가…. 다시 말해 불교란 한 마디로 어떤 종교이며, 어떤 종교여야 하는가가 바로 이 ‘보살도’에 다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향한 연민, 이타심이 우리를 수행하게 한다는 것. 이것이 대승불교의 전부라고 말합니다. “나는 깨닫겠다”에 멈추지 않고 “이 세상을 조금 더 행복하게 할 수는 없을까?”를 화두로 삼는 것이 불교라는 종교의 진면목이라고 달라이라마는 이 책 앞부분에서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법회 때마다 반야심경을 봉독하는 이유도 세상을 행복하게 가꾸기 위한 다짐이라는 것이지요.

이 책을 ‘붓다와 떠나는 책여행’ 모임에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벗님들에게 반야심경과 달라이라마는 말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왔지요. 첫 번째 책읽기 하는 날, 21쪽에서 26쪽까지 읽었습니다. ‘제1장 내면 계발을 위한 탐구’라는 제목이었지요.

책벗님들이 한 사람씩 소리 내어 읽어가는 방식인데, 나는 짜릿했습니다. 사실 장의 제목은 정신적으로 성숙해가라는, 다소 빤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지만, 그 여섯 페이지의 순박한 내용 속에 불교 수행 전반에 관한 달라이라마의 생각이 체계적으로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불’자도 쓰지 않으면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어떻게 점진적으로 향상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이웃과 세상을 대해야 하는가가 매우 진지하게 다뤄져 있었습니다.

그냥 읽어가면 5분도 걸리지 않을 내용들. 하지만 차분하게 곱씹으면서 한 문장 한 문장을 음미해보자면 행복을 찾아다니는 중생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이보다 더 간결하고도 정확하고 완벽하게 담겨 있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불교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책을 펼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감히 말합니다. 불교는 책에 쓰여 있지 않습니다. 그 책을 읽어가면서 저자의 단어 하나, 쉼표 하나, 마침표 하나, 그리고 접속사 하나에 마음을 차분하게 얹어둘 때,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립니다. 일찍이 걸어가보지 않은 길이 이끼에 덮인 채 펼쳐집니다. 저자는 그 길로 독자를 인도합니다. 손을 내밀지만 발걸음을 내딛는 이는 독자입니다. 저자의 말에 주의 깊게 기울이면서 자기의 발을 내딛습니다. 발등에 와 닿는 차가운 이슬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거미줄에 휘감기면서 자박자박 길 없는 길을 걸어갑니다.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독자 한 사람뿐입니다. 하지만 외롭지 않습니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쓸쓸하지 않습니다. 이 길을 오래 전 누군가가 걸어갔다는 걸 느끼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걸었던 이는 붓다일 것이요, 달라이라마도 그 길을 걸어갔고, 이제 독자인 당신 차례입니다.

빤한 반야심경 해설서, 장황한 교리 설명에 갇힌 반야심경 해설서, 너무 평이해서 도무지 내게 그 어떤 신호도 보내오지 못하는 반야심경 해설서들. 이런 책들에 실망하셨다면 <달라이라마 반야심경>을 권합니다.

단,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문장 하나가 끝나면 이어지는 다음 문장과의 관계를 가만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쉽다고 주루룩 지나치지 말고, 어렵다고 휘리릭 넘어가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분명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신은 보살로 살아가고픈 마음이 뭉게뭉게 일어날 것입니다. 보살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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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궁금 2018-01-30 22:02:00

    티베트 불교에는 범계권승이 없을까요?
    1) 한국불교와는 비교도 안될정도로 청정비구수행자 밖에 안계신다
    2) 무슨소리냐 거기도 한국불교와 마찬가지로 범계권승 천지다
    단 거기는 재가자가 깨어있지 못해서 범계권승이 청정비구로 포장됐을뿐   삭제

    • 하수 2018-01-30 08:33:31

      글을 보니 책이 꼭 읽고 싶네요. 이런 마음 일으켜주셔서 고맙습니다.   삭제

      • 이세상의 행복을 위해 2018-01-28 07:56:48

        붓다가 깨달은건데   삭제

        • 어흠! 2018-01-27 19:41:16

          왜 조계종에는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가 없을까?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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