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여시아사 허정스님의 부처님을 따라 거닐며
나도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연재]허정스님의 부처님을 따라 거닐며_05

순례자들은 룸비니를 시작으로 순례를 하고 싶어한다. 성지순례라는 것이 부처님의 일생을 더듬어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싯타르타가 태어난 지점에 마하데위사원이라 불리는 철재 보호각이 세워져있다. 바닥에는 유난히 큰 크기의 벽돌과 기울어진 벽의 모양이 발굴당시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이 마하데위사원 옆에는 아소카석주가 있는데 빠알리어가 브라흐미글자로 “여기서 사카무니 붓다가 태어났다”라고 쓰여 있다. 아소카왕의 신심과 원력으로 세워진 이 석주 때문에 이곳이 부처님의 탄생지임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현장스님이 석주를 보았을 때는 석주 위에 빛나는 말 한 마리가 있었다고 한다.

룸비니에서 부처님의 탄생은 놀라운 일들로 가득하다. 수행본기경(修行本起經)등에서는 부처님은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로 태어나셨다고 전한다. 그래서 룸비니 마하데위사원에 있는 석조상에는 마하빠자빠띠고따미가 마야부인의 옆구리에서 아이를 받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있다. 옆구리로 태어나는 장면은 듣기에도 특별하지만 조각하기에도 수월했을 것이다. 반면 과거 칠불의 행적을 다룬 대전기경(D14)에는 마야부인의 자궁에서 태어났다고 전한다.

“다른 여인들은 앉아서 출산을 하거나 혹은 누워서 출산을 한다. 그러나 보살의 어머니는 그렇지 않다. 보살의 어머니는 오직 서서 출산한다. 이것이 여기서 정해진 법칙이다.”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었다는 이야기는 남전과 북전이 동일하다. 일곱 발자국 걸으며 읊었다는 게송은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불본행집경 등에 나타나는 ‘천상천하유아독존 삼계개고아당안지(天上天下唯我獨尊 三界皆苦我當安之). 대전기경에는 “나는 세상의 최고(最高)이다. 나는 세상의 제일(第一)이다. 나는 세상의 최상(最上)이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생이다.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고 나타난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탄생게는 부처님이 사르나트의 녹야원으로 전도하러가는 길에 만난 사명외도 우빠까에게 대답한 게송과도 매우 유사하다.

룸비니의 탄생조각상.

“나에게는 스승도 없고 그와 유사한 것도 없네. 하늘과 인간에서 나와 견줄만한 이 없어 나는 참으로 세상에서 거룩한 이, 위없는 스승이네.”

당신의 스승이 누구냐는 우빠까의 질문에 대한 붓다의 자신 만만한 대답이다. 육체의 탄생(生)게와 정신의 탄생(覺)게가 유사하다는 것은 육체의 탄생게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또한 ‘내가 마땅히 편안히 하리라’라는 선언은 그대로 오비구를 제도하기 위해서 뜨거운 태양 아래서 250km를 걸어가는 붓다의 맨발을 떠오르게 한다. 누가 초청하지 않아도 스스로 다가가 가르침을 설하고 괴로움의 끝을 보게 하였던 붓다의 일생은 그대로 탄생게를 실천하는 삶이었다. 나아가 ‘내가 마땅히 편안히 하리라’와 ‘다시 태어남은 없다’의 미묘한 차이는 역사 속에 꾸준히 갈등해왔던 대승과 소승의 발전과 경쟁을 떠올리게 한다.

싯타르타가 어머니의 오른쪽 옆구리로 태어난 것, 일곱걸음 걸은 것, 탄생게를 읊은 것, 용이 목욕을 시킨 것, 사당의 신들이 아기에게 절을 올린 것 등의 일련의 놀라운 사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머니의 오른쪽 옆구리로 태어난 것은, 니까야에 자궁으로 태어났다는 전승이 있으니까 상징으로 이해해도 좋을 듯하다. 일곱 걸음 걸으며 탄생게를 읊었다는 것은 니까야 전승에도 실려 있어 난감하다. 그런데 이러한 신통과 기적은 탄생 때에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 부처님의 일생을 관통하며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 순례자가 마주해야할 사실이다. 천불화현과 쌍신변의 기적, 어머니를 위한 도리천에서의 설법, 아름다운 아내를 그리워하는 난다비구를 천상에 데리고 가서 아내보다 몇 백배 아름다운 천녀를 얻을 수 있다고 꾀어 공부시킨 이야기, 올라가 열반에 들려고 꾸시나가라로 가는 부처님을 따라오는 릿차위들을 못 따라오게 하려고 강을 만들어 못 따라오게 한 일, 범천 사함빠티 삭까등 수없이 많은 천신들과의 방문과 대화, 자신의 미모에 자부심을 갖고 있던 케마왕비에게 더 아름다운 여인을 창조해 보여줌으로서 미모에 대한 집착을 놓게 하신 일, 겁탈하려는 남자에게 자신의 눈알을 손으로 뽑아준 비구니가 부처님을 뵙자 눈이 원상회복되고, 환자 비구스님에게 약속한 고기를 못 드리게 되자 자신의 허벅지를 베어내어 드린 청신녀가 부처님을 뵙자 피부가 원상회복된 이야기, 우루웰라가섭을 제도할 때 대홍수가 일어나 부처님의 처소가 떠내려갈 위기에 처했지만 사방으로 물을 물러나게 하고 흙먼지의 땅에서 옷에 물 한 방울도 안 묻히고 경행하신 일, 전생의 공덕으로 7세 때 출가하여 삭발하는 순간에 아라한이 된 답바 말라뿟따사미 등 경전에는 헤아릴 수 없는 신통력과 기적의 향연이 펼쳐진다.

쌍신변의 기적.

부처님이 일생동안 네번 보이셨다는 쌍신변(雙神變)은 벽지불과 아라한이 갖추지 못한 오직 삼막삼붓다만이 실현할 수 있는 위대한 6가지 능력(六不共智)중에 하나이다. 사왓티에서 나투신 쌍변신에 대해 자세한 설명은 이렇다. 부처님은 공중에 올라서 상반신에서 불을 뿜고 하반신에서는 물을 뿜는다. 반대로 하반신에서 불을 뿜고 상반신에서 물을 뿜고 계속해서 몸의 앞쪽과 등쪽, 오른쪽눈과 왼쪽눈, 귀, 코, 어깨, 손, 옆구리, 다리, 발가락, 손가락에서 불과물을 번갈아가며 뿜는다. 피부의 모든 털구멍에서는 여섯 색깔의 빛이 쏟아져 나오고 쌍신변을 나투는 사이사이에 군중들에게 설법하신다. 부처님은 쌍신변을 나투고 나서 천개의 분신을 창조하였는데 각각의 분신이 질문하면 부처님이 대답하시고 부처님이 경행을 하면 분신들은 다른 일을 한다. 쌍신변은 무려 16일 동안 400km(36요자나)에 걸쳐서 지속되었으며 설법과 신통으로 많은 군중들이 법에 대한 이해를 얻었다고 한다.

릿차위들에게 발우를 넘겨준 케사리아탑.

순례자가 부처님의 일생을 따라가다 보면 이러한 신통과 기적을 만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신통과 기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순례의 의미와 감흥이 달라진다. 그러나 이러한 신통보다 더 중요한 최고의 신통은 생사윤회를 벗어나게 하는 신통이다. 부처님을 시봉하며 같이 수행했던 오비구와 야사와 야사의 친구 50인은 모두 아라한이 되었다. 우루웰라로 돌아가던중에 만난 30인의 부잣집 자제들은 붓다의 설법으로 모두 예류과를 얻었고 우루웰라로 찾아가서 만난 가섭삼형제와 천명의 제자들도 가야산에서 설해진 불의 설법으로 모두 아라한이 되었다. 천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마가다국으로 들어가던 붓다는 제티얀에서 마중나온 빔비사라왕과 12만 명의 일행을 만났는데 그중에 11만명이 예류과를 얻었다. 라자가하에 살던 사리뿟다와 목갈라는 그들과 함께 출가한 250명의 수행자들과 붓다의 설법을 듣고 아라한이 되었다. 사까족과 꼴리야족의 물싸움에대한 중재의 보답으로 출가한 500명의 청년들도 아라한이 되었으며, 최초의 마하빠자빠띠 비구니를 위시한 500명의 비구니가 다함께 아라한이 되었고 웨살리에서 다함께 열반에 들었다. 54년동안 사람을 사형시키는 직업을 갖었던 망나니 땀바다티까는 사리뿟다의 설법을 듣고 뚜시따 천신으로 태어났고 99명을 죽인 살인마 앙굴리말라가 부처님을 만나 아라한과를 얻었다.

이렇게 부처님을 만나자마자 혹은 며칠 만에 아라한이 되고 단체로 아라한이 되는 일들은 과거생의 공덕을 끌어와 설명하지 않으면 합리적인 설명이 안 되는 경우다. 수많은 삶을 거쳐 오는 동안 눈을 보시하고 손과 발을 보시하고 몸을 보시했던 자타카이야기들, 과거불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들, 법구경의 주석서와 장로게 장로니게 주석서등에서는 게송 하나하나가 전생의 공덕과 악업을 원인으로 이야기 펼친다. 경전과 주석서를 무조건 믿을 수도 그렇다고 무조건 안 믿을 수도 없어 막막하지만, 끝내 책을 내던지지 않고 경전읽기를 지속하게 되는 것은 경전 안에 재미있고 감동적인 부분이 더 많기 때문이다.

천불화현을 보이고 도리천에 오르신 탑.

불교는 믿음을 강요하는 종교가 아니기에 믿어지지 않는 사람들에게 믿으라고 할 수는 없다. 이런 것들을 믿어야 불교공부의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분들은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경전속의 수많은 기적, 신통력, 예지력, 전생담 등에 대해서 후대에 편집된 것이라고 치부하고 인정하지 않는다. 이성적인 판단, 합리적인 사고라는 이유로 신통력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나 또한 예전에는 이러한 태도를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판단을 미루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사건, 믿기 힘든 부분이 있다는 것이 불교를 공부하는데 있어서 그렇게 혼란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 당장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잠시 제쳐두고도 얼마든지 재미있는 경전공부를 할 수 있으며 훌륭한 불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은 이해할 수 없는 그대로 잠시 판단을 중지하고 “신기한 일이네”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라고 지나가면 어떨까? 모른다는 것은 우리를 더 깊은 상상과 지혜로 안내해 줄 수도 있으며 성지의 대부분은 이런 신통기적과 관련되어 있기에 섣부른 판단은 순례의 감흥을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열린 마음을 갖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태도는 불교공부와 성지순례를 하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태도이다. 혹시 아는가? 성지순례를 하다보면 신심이 깊어지고 이해가 높아져서 ‘헤아릴 수 없는 모든 티끌의 수를 헤아리고 바닷물은 다 마셔버리고 허공을 세어보고 바람을 묶는다 해도 부처님 공덕은 말로 다할 수 없다’ 고백하게 될는지.

허/정/스/님/의/부/처/님/을/따/라/거/닐/며
불교포커스 여시아사(如是我思)

벌써 4번째 인도성지순례다. 인도의 기후와 도로 사정 등은 순례자에게 만만치 않지만 성지순례를 시작하는 가슴은 늘 설렌다. 스승의 발걸음을 쫓는 일은 매번 새로운 발견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첫 순례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돌아다녔기에 고생한 기억밖에 없다.

두 번째는 그래도 책을 들고 꼼꼼히 찾아 다녔다. 정보가 많지 않아 크게 느낀 것은 없고 다만 부처님의 열반지에 가서 우울증 같은 걸 겪었다. 세 번째는 나를 포함한 스님들 여섯 명과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며 경전을 읽고 토론하는 성지순례를 했는데 그 때가 가장 의미 있었다. 그런데 그 순례도 중간에 순례자 한명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는 바람에 미완의 순례가 되고 말았다.

이 번에는 많은 시간을 가지고 홀로 떠났다. 성지순례후기까지 쓸 작정을 하고 와서 그런지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성지를 알게 되었고 잘 안다고 생각했던 성지에서도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번 성지순례에서 느꼈던 소감을 공유하고자 한다.

반론ㆍ정정ㆍ추후 보도를 청구하실 분은 이메일(budgate@daum.net)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불교포커스'에서 생산한 저작물은 누구나 복사할 수 있으며, '정보공유라이센스 2.0: 영리금지 개작금지'에 따릅니다. 정보공유라이센스

허정스님의 다른기사 보기
  • 혜의 2018-03-26 23:12:25

    아래글과 더불어 4월 2일 봄개편부터 BTN불교티비에서 드라마붓다 55편을
    일주일에 2편씩 다시 방영한다고 합니다. 님들도 보길 권합니다.
    이번에는 유명성우의 목소리가 아닌 한글 자막으로 방영을 한다고 하는데 기대가 됩니다.
    월화,수목,토일에 방송시간 대를 달리하여 방송을 한다고 하는데 저는 토일 밤방송을
    보고자 합니다. 일주일을 멋지게 산 나에게 보상으로 주말을 부처님의 생애와 함께
    보내고자 합니다.
    열심히 공부해야지.
    올들어 처음으로 노란 개나리 꽃을 본 날에.
    불제자 혜의가 발원함.
    님들도 모두 건강하게 지내시길 기원합니다.   삭제

    • 혜의 2018-03-24 21:07:38

      참 묘합니다. 여기 북방력으로 오늘은 출가재일.
      예전에 인도에서 제작한 부처님 일대기 55편을 BTN불교티비에서 우리나라의 유명한 성우가 더빙한 것
      전편을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드라마를 4 번 정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출가열반절을 맞이하여 BTN에서 인도배우의 목소리에 한글 자막으로 오늘 저녁은 8시부터
      부처님 탄생편을 보여 주었습니다. 일주일 뒤에는 열반편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부처님이 태어나기 까지 궁전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군상을 보는 것도 재미 있습니다.
      오늘날 인도인의 제작자의 시각에서 부처님 탄생도 보길.   삭제

      • 말도 안 되는 주장 2018-03-24 16:47:00

        그런 식으로 얘기하자면 힌두교 신들의 기적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세계를 창조한 브라흐마 신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우주를 창조한 기독교 신과 삼위일체에 대해서도 판단을 유보하고,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 인류의 죄를 사했다는 기독교 교리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징표라는 수많은 기적에 대해서도 유보하고, 백마를 타고 하늘나라로 올라간 마호메드에 대해서도 판단을 유보하고, 수미산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판단을 유보하라.
        달라이라마는 수미산을 안 믿는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현대 천문학을 믿는다고 했다.   삭제

        • 불자 2018-03-24 15:12:04

          기적과 신이한 일에 대하여 판단을 유보하고 그 원리를 밝혀 알아내는 것은 과학과 지혜의 힘입니다. 판단을 유보하되 굴복하지 마십시오. 굴복하는 순간 사문이 아니라 브라흐만이 될 것입니다. _()_   삭제

          • 현장 2018-03-24 15:07:01

            믿으라고 강요하지않는 종교!
            스님 ()()()   삭제

            • 순례자 2018-03-24 13:31:56

              "혹시 아는가? 성지순례를 하다보면 신심이 깊어지고 이해가 높아져서 ‘헤아릴 수 없는 모든 티끌의 수를 헤아리고 바닷물을 다 마셔버리고 허공을 세어보고 바람을 묶는다 해도 부처님 공덕은 말로 다할 수 없다’ 고백하게 될는지."

              이와같이 되어 지이다..발원합니다()
              그리고 순례기 고맙습니다   삭제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