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여시아사 허정스님의 부처님을 따라 거닐며
마라와 무엇으로 싸우려는가

깨달음의 땅, 보드가야는 불교성지순례하면 이곳이 제일 먼저 떠오를 정도로 4대성지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이곳은 지구의 배꼽(pathavinabhi)이라 불리는 곳으로 보리수가 서있는 장소 말고는 붓다의 깨달음을 지탱해줄 땅이 없다고 한다. 이곳은 지구가 생길 때 가장 먼저 생겼고 지구가 사라질 때 가장 늦게 무너지며 이제까지 모든 부처님들은 이곳에서 깨달음을 얻었고 얻을 것이라고도 한다. 보드가야는 우루웰라라는 이름이었지만 부처님의 깨달음이후로 삼보디, 마하보디, 와즈라사나등의 이름으로 불리다가 최근에는 보드가야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중요한 장소이기에 세계 각국에서 밀려드는 순례객으로 마하보디대탑은 언제나 분주하다. 대탑주위를 떠나지 않고 하루 종일 좌선하거나 행선, 기도하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릭샤를 타고 보드가야에 처음 들어설 때 느꼈던 평안한 기운을 잊지 못한다. 저녁노을이 지는 보리수근처에 앉아 느꼈던 편안하고 충만한 느낌도 잊혀지지 않는다. 보드가야는 고향에 온 듯 한 그런 곳이다.
 
대탑안에 모셔진 불상의 오른손이 땅을 가리키고 있는 항마촉지인은 마라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극적인 순간을 보여준다. 깨달음을 얻는 그날, 마라는 싯타르타앞에 나타나 ‘여기는 그대가 있을 자리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훼방했다. 싯타르타는 수많은 생동안 내가 보시바라밀을 닦은 것은 차치하고라도 웨산따라 왕자 때에 내가 7백회에 걸쳐 보시한 공덕을 대지가 증명할 것이라고 말하며 대지를 향해 손을 내밀자 대지는 “그것이라면 제가 할 수 있습니다”라고 소리쳤다. 천둥 같은 소리에 마라의 군대는 혼비백산 달아났다. 붓다와 마라의 대결의 내용이 ‘공덕의 크기’였다는 것은 순례자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부처님은 고행을 포기한 타락자라고 비난하는 오비구에게도 “내가 예전에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가?”라고 물으며 그들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마라를 물리친 것은 진실 되게 쌓아온 ‘공덕의 힘’이었으며 오비구의 마음을 되돌린 그 한마디도 ‘진실의 힘’이었다. 한순간의 뛰어난 지혜나 재치로 장애를 극복하고 마라를 설득한 것이 아니라 싯타르타의 인생 전부를 걸었다. 싯타르타는 성도과정을 통해서 순간순간 진실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고, 자신을 속이면 도달할 수 없는 자리가 붓다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무찰린다 연못. (실제 무찰린다 연못은 남쪽으로 2km 떨어진 곳에 있다.)

마라를 물리친 그날 밤 싯타르타는 순차적으로 연기의 순관역관을 통해 완전한 깨달음에 이른다. 연기의 순관은 고의 발생을 설명하는 사성제의 고집성제와 같고 연기의 역관은 고의 소멸을 설명하는 멸도성제와 표현만 다를 뿐 같은 내용이다. 그런데 후대에 붓다가 깨달음의 내용인 연기를 순관 역관하는 모습을 조각으로 보여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연기의 순관 역관은 싯타르타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었기에. 그래서 깨닫기 전 오른손으로 땅을 가리키는 극적인 순간, 항마촉지인의 모습이 보드가야를 상징하고 깨달음을 상징하는 불상이 된 것이다. 사르나트에서 오비구에게 설법하는 설법인이 녹야원을 대표하는 불상이 된 것처럼. 한편 엄밀히 말하자면 항마촉지인의 순간에는 깨닫기 전이었으므로 싯타르타는 붓다가 아니었다. 항마촉지인의 불상 중에 보관을 쓰거나 목걸이를 한 불상이 발견되는 이유다.

조각이나 벽화를 보면 이렇게 부처님의 생애에서 극적인 순간을 잡아서 조각을 하여 가르침을 널리 알리려한 경우가 많다. 라자가하에서 붓다와 관련된 수많은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술에 취한 날라기리 코끼리를 마주보고 손을 들어 조복시키는 장면을 조각했고, 원숭이에게 꿀공양을 받는 모습은 웨샬리를 대표하게 되었다. 천불화현하는 조각상이 사왓띠를 대표하게 되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계단은 상카샤를 그리고 누워계신 열반상이 꾸시나가라를 대표하게 된 것이다. 조각으로 표현하기 좋은 극적인 사건을 선호하다보니 신통력과 관련된 부분이 조각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조각에 나타난 35세의 붓다에게는 자신감과 용맹함이 느껴진다. 마라와 대결하는 35세의 젊은 붓다의 당당함, 용맹함은 보드가야를 다른 성지와는 다르게 활발하고 생동감 있는 장소로 만들고 있다.

보드가야 대탑.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으시고 49일 동안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니며 깨달음을 즐기셨다. 마하왁가에는 1주째는 보리수 2주째는 아짜빨라니그로다 3주째는 무짤린다나무 4주째는 라자야따나나무 마지막 5주째는 아자빨라니그로다 나무로 옮겼을 때 범천의 권청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자타카의 서론인 니다나까타에서는 1주째는 보리수 2주째는 보리수의 고마움에 눈을 깜박이지 않고 일주일동안 보리수를 쳐다보았다는 아니미사로차나영지(靈地) 3주째는 보리수와 영지(靈地)사이의 경행처 4주째는 천인들이 만들었다는 보석집 라트나가라 5주째는 아자빨라니그로다 6주째는 무짤린다연못 마지막 7주째는 라자야따나 나무아래서 깨달음의 기쁨을 즐기셨다고 한다. 현재 보드가야 마하보디대탑의 안내판은 이것을 근거로 안내판을 만들어 놓았다.

주석서나 니다나까타(Nidanakatha)의 설명 중에서 특이한 것은 마라의 세 딸들이 나타난 곳이 5주째 깨달음의 기쁨을 즐기던 아자빨라나무라는 것이다. 칠년 동안 경(S4:24)에서 마라는 싯타르타가 출가한 이후로 7년간 따라다녔으나 허점을 발견할 수 없었고 자신의 노력이 실패로 끝나버린 것에 실망한 나머지 옆구리에 차고 있던 비파를 떨어뜨리고 떠난다. 곧이어 마라의 딸들경(S4:25)에서는 아버지를 대신해 마라의 딸들이 부처님을 유혹하는 모습이 설해진다. 마라의 딸들은 ‘아라한이며 세상의 선서인 부처는 애욕으로 꼬드겨서 잡아들이지 못한다. 그는 마라의 영역을 넘어섰구나.’라는 아버지의 한탄을 듣고 자신들이 아버지를 대신하여 부처님을 유혹하기 위해 갖가지 교태를 부리며 다가간다. 그러나 어떠한 유혹으로도 부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없자 ‘참으로 우리가 탐욕을 여의지 못한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면 그의 심장이 터지거나 입으로 뜨거운 피를 흘리거나 미치거나 할 텐데 저 사문은 그렇지 않구나’라고 탄식하며 물러갔다.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부처님의 깨달음은 마라왕과 마라의 세딸들의 유혹을 다 물리치고 나서라는 사실과 일치하지 않아 당황스럽다. 깨달음을 얻고 나서 5주가 지났는데 그때서 마라의 세 딸이 다시 붓다를 유혹했다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보드가야대탑에서 인도스님들의 한가한 시간.
반론ㆍ정정ㆍ추후 보도를 청구하실 분은 이메일(budgate@daum.net)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불교포커스'에서 생산한 저작물은 누구나 복사할 수 있으며, '정보공유라이센스 2.0: 영리금지 개작금지'에 따릅니다. 정보공유라이센스

허정스님의 다른기사 보기
불교포커스 기사를 후원해주세요
  •            
후원하기
  • 혜의 2018-03-31 20:24:41

    오늘은 북방력으로 이월 보름 열반재일!
    매주 토요일은 허정스님의 순례기가 등재되는 날.
    오늘 밤 보름달을 보며 아난의 눈물을 새겨야지.
    허정스님과 스님의 순례기를 보는 이들이 모두
    건승하길 기원합니다.   삭제

    • 허정팬 2018-03-31 16:42:40

      스님 보고 싶네요   삭제

      • 제 생각엔 2018-03-31 12:08:47

        천하의 부처님도 깨닫고 나서도 여전히 범계 (특히 성폭행 성추행
        은처 은자) 하려는 유혹이 남아있었으나 그걸 극복하셨고
        다른 출가 수행자들에게도
        깨달음 얻어 아라한과 얻어도 여전히 범계저지를수 있다는걸
        경계하려는 의도 아닐까요?
        오늘날 조계종비롯 전세계의 자칭 "깨닫고" 나서도
        범계를 저지르는 불교지도자들이 많다는 점을 보면 알수 있겠죠.   삭제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