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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을 긋고 말았습니다숫타니파타 독후감(김광하 지음, 운주사)을 읽고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이 책제목을 보는 순간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사버렸습니다. 숫타니파타는 쉬운 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걸 읽고 뭔가를 느꼈다며, 그 느낌을 글로 표현했으니, 이건 정말 귀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숫타니파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참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고 지금도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숫타니파타에 무슨 내용이 쓰여 있냐고 물으면 대답들을 잘 못합니다.

“아, 부처님 말씀이 담겨 있지, 뭐가 담겨 있겠소?”

그것도 질문이라고 하느냐는 핀잔 섞인 대답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어떤 말씀이 담겨 있느냐고 거듭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이렇습니다.

“훌륭한 말씀이지요. 아니, 그 말씀을 우리들 중생이 어찌 알겠소. 좋은 말씀이 담겨 있었소.”

경을 읽는 사람들에게 지금 읽고 있는 경의 내용을 당신의 언어로 한번 말해달라고 하면 대체로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맙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테지만, 그건 경전 읽기가 자기화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좋다니까 읽었는데, 그것뿐이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듣습니다.

“법화경 사경하면 그렇게 좋다면서요?”
“금강경 읽으면 좋다면서요?”

경전읽기를 권하는 쪽도, 그 권유를 받아들이는 쪽도 모두 반성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무엇이 좋아야 하는지, 왜 좋아야 하는지, 좋아서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그 경전의 어느 것이 좋았는지를 자기 생각으로 생각해서 자기 말로 말할 줄 모른다면 결국 남의 다리 긁는 일이요, 남의 소를 세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점에서 여운 김광하 선생님의 <숫타니파타 독후감>이란 제목의 책을 읽어갈 때는 딱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경전을 제대로 읽으셨구나.”

‘제대로’란 말에 언짢아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한 심정이 그랬습니다. 당신의 눈으로, 당신의 가슴으로, 당신의 입으로 읽은 뒤에, 당신의 글로 써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연필로도 금을 긋지 않았습니다. 군데군데 좋은 문장을 만났지만 밑줄 긋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습니다. 깨끗하게 읽고서 좋은 사람에게 선물하고픈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 116쪽에서 그만 밑줄을 긋고 말았습니다. <싸리뿟따의 네 가지 질문>이란 제목의 글입니다. 내가 참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리불 존자가, 출가자가 걸어가야 하는 길 즉 수행의 당위를 부처님에게 여쭙는 부분입니다. 질문을 하는 이나, 그 질문에 답을 하는 이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수행승은, 싫어하여 떠나서 아무 아래 혹은 묘지나 산골짜기의 동굴 속에 아무도 없는 곳에 자리를 잡습니다. 높고 낮은 거처가 있지만 수행승이 고요한 곳에서 지내더라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그곳에 얼마나 많은 두려운 일이 벌어집니까?”

첫 번째 질문입니다.

“아무도 가보지 않는 곳으로 가는, 수행승이 외딴 곳에 기거하면서 이겨내야 하는 얼마나 많은 위험들이 있습니까?”

두 번째 질문입니다.

“수행승이 정진한다면, 그의 언어 형태는 어떠해야 하고, 세상에서 그의 행동범주는 어떠해야 하고, 그의 규범과 금계는 어떠해야 합니까?”

세 번째 질문입니다.

“마음을 통일시키고, 현명하고, 새김을 확립하고, 어떤 공부를 해야 자기에게 묻은 때를 마치 대장장이가 은의 때를 벗기듯, 씻어 버릴 수 있습니까?”

네 번째 질문입니다.

그동안 숫타니파타를 읽을 때면 수행승이란 글자를 ‘스님’, ‘출가수행자’로 받아들이며 쭉 읽어왔지만, <숫타니파타독후감>을 읽으면서는 ‘불자’라는 글자로 대체하면서 읽었습니다. 즉 ‘불자는 구체적으로 어찌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나 대신 사리불 스님이 부처님께 여쭌 것이지요. 수행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진짜 질문입니다. 잠깐 수행해봤다거나, 수행 흉내만 내는 사람은 이런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뭔가 더 심오하고 거창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건 안 해본 사람이 상상 속에서 던지는 헛소리일 뿐이지요.

제자의 질문이 얼마나 간절한지 아는 그 스승은 대답합니다. 그 대답이 책에도 소개되어 있습니다만, 간절한 질문만큼이나 대답은 솔직합니다. 싱거울 정도입니다. 하지만 제자와 똑같이, 그보다는 조금 더 일찍, 조금 더 치열하게 수행해온 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진솔하고도 정곡을 제대로 찌르는 대답입니다.

질문의 내용은 간절하고 질문에 대한 답은 솔직합니다. 그리고 부처님 대답을 들려준 뒤 저자 김광하 선생님은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덧붙입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을 보더라도, 세상의 혼란은 탐욕, 분노, 폭력, 미움, 거짓, 위선에서 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10년, 20년 앉은 수행자에게서도 여전히 같은 번뇌가 있는 것을 볼 때는 과연 수행이 무엇을 위한 수행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는 욕망과 집착을 성찰하는 일은 거창하게 우주를 논하거나 형이상학적인 원리를 논하는 일보다 작고 사소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 작고 사소해 보이는 길을 우리의 스승 석가모니 부처님은 걸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분의 문답을 소개하며 덧붙인 저자의 글에 나는 밑줄을 그었습니다.

이렇게 이 책을 읽어갔습니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내게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그 시절 부처님 앞에서 부처님과 똑같은 허름한 가사를 입고서 이런 물음을 드렸을 때 부처님이 이렇게 대답하신다면 그 느낌이 어땠을까…. 아마 나는 “아, 정말 수행의 길에 들어서기를 잘 했구나”라고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부처님의 제자가 된 것에 다시 한 번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랬습니다.
 
<숫타니파타 독후감>을 읽으면서 묘하게 마음이 두근거리고 일렁거렸습니다. 훈훈한 기운이 심장에서 번져 나오고 얼굴까지 그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이게 ‘즐거움’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는 내내 내 몸과 마음을 점령하는 그 기분은 즐거움이 아니라 ‘기쁨’이었습니다. ‘기쁨’이라고 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즐거움이건 기쁨이건 그게 무슨 차이냐고, 뭐 그런 걸로 신경을 낭비하느냐고 하시겠습니까? 하지만 그게 묘하더군요. 마음이 즐거웠다기 보다 기쁨이 차올랐습니다. 경을 읽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에서 우리가 읽어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공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이에 이따금 눈에 띄는 오자가 거슬리기도 했고, 그리고 제2부에 해당하는 ‘늘 내 곁에 있는 스승’이란 항목에 담긴 글들을 읽을 때면 여운 선생님의 조급함이 느껴졌습니다. ‘아, 조금만 더 천천히 그리고 찬찬히 짚어주셨으면…’하는 생각에 아쉬웠습니다. 그것 말고 저자에게 뭐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잘 읽었습니다, 라며 이 책을 벗에게 권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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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원형 2018-04-01 18:18:22

    잘 읽었습니다.
    책을 읽어봐야겠군요.
    고맙게도 책으로 안내해주신 이미령선생님께도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삭제

    • 역시 2018-04-01 13:27:37

      역시 김광하 큰거사님이십니다.
      소위 큰스님이나 종립대 교수라는 분들보다
      더 공부 많이 하시고 더 수행 열심히 하셨다는 것이
      큰거사님이 지으신 책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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