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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그 남자를 만나다살타파륜 보살 ②
삽화=마옥경.

나는 삼매에 들었을 때 수없이 많은 부처님들이 대중들을 향해 법문을 하고 계신 모습을 보았습니다. 과연 이중에 어느 분이 내 스승일까요? 어느 분을 만나야 할까요? 나는 소리쳤습니다.

“누가 과연 내 선지식인지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자 삼매에서 나타난 부처님들이 한결같이 목소리를 합해서 일러주었습니다.

“담무갈 보살이 그대의 스승이다. 담무갈 보살은 세세생생 그대를 가르쳐서 위없는 올바른 깨달음을 얻도록 하였고, 지금도 역시 그와 같은 가르침을 펼치려 하니, 그대는 담무갈 보살이 그대의 스승인 줄 알아야한다. 그런 스승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

수많은 부처님들이 이렇게 대답하고 난 뒤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삼매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많은 부처님들이 한 분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들은 어디에서 오셔서 어디로 가셨을까요? 어디에 있다가 나타나셔서 내게 가르침을 주신 뒤 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그 부처님들이 늘 내 곁에 머무르셔서 차근차근 일러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이미 사라진 부처님-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은 그저 내 선지식이신 담무갈 보살님만을 떠올릴 뿐입니다.

아주 오래 전, 보살로 살겠다고 마음을 낸 뒤 나는 내 힘으로만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됐습니다. 조금 전 삼매에 들었을 때 나타난 부처님들께서 일러주신 바에 따르면 나는 담무갈 보살님의 가르침에 의지해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입니다. 중생을 구하며 지혜의 완성을 추구하는 보살로서 살아온 데에는 이렇게 불은(佛恩)과 법은(法恩)이 있었습니다. 이제 또 나는 내 선지식인 담무갈 보살님을 뵙게 됐습니다.

지난 생에는 어떻게 했을까요?
빈손으로 나아가서 법을 가르쳐 달라고 청했을까요?
아니면, 형편껏 고마움을 표시하며 법을 청했을까요?

아아, 지난 생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난 지금 저 담무갈 보살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토록 오랜 시간 보살로서 살아오는 그 윤회의 세월을 제게 법은을 베풀어주신 분을 이제 다시 만나게 됐습니다. 나는 빈손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그 분께 내 작은 성의를 표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빈털터리입니다. 숲에서 지내면서 참선수행을 하고, 거리로 나아가 탁발을 하며 사람들의 슬픈 사연을 들어주고, 그들이 슬픔을 벗어나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일러주며 지금껏 살아왔습니다. 내 주머니는 텅 비어 있습니다. 나는 숱한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눠줬지만, 정작 내 행복을 키워준 스승에게 나눠드릴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내 몸뚱이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몸을 원하는 이에게 팔면 됩니다.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기 몸을 파느냐고요? 괜찮습니다. 나는 붓다의 지혜를 얻기 위해 윤회를 자처한 몸입니다. 사람들에게는 한 번 뿐인 인생일지 몰라도 보리심을 일으킨 내게는 성불하기 전까지 숱하게 윤회를 반복하면서 공덕을 지어야 합니다. 어찌 보면 이번 생에 스승의 은혜를 갚으려다 목숨을 잃어도 좋겠습니다. 나는 그만큼 공덕을 지었고, 그 공덕으로 부처님의 경지에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되니까요.

그리하여 나는 거리로 나섰습니다.

“제 몸을 팝니다. 저를 사 가실 분 안계십니까?”

나는 목청껏 소리쳤습니다. 이제 내 스승을 향해 은혜를 갚을 길이 열리는 것만 같아 행복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거리는 조용했습니다. 그토록 오가는 사람들이 파도를 이루었는데 지금은 왜 이리 조용한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더 크게 소리 질렀습니다. 어딘가에 있는 사람들 귀에 들리게 하려고 소리 높여 다시 외쳤습니다.

“저를 사 가실 분 안계십니까? 제 몸을 팔겠습니다.”

하지만 조용했습니다. 인적이 끊긴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순간, 서러움이 왈칵 솟았습니다. 진리를 위해 살아온 이 몸입니다. 이제 내 스승을 만나 진리를 다시 한 번 청하려는 자리입니다. 나를 세세생생 살게 해준 그 분에게 나아가는데 내가 그 분에게 드릴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 새삼 나의 가난이 서러워졌습니다.

하다못해 이 몸뚱이라도 팔겠다고 결심했지만 그조차 아무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진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서러움에 북받쳐 목이 메어왔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또 다시 눈물을 펑펑 흘리고 말았습니다. 존경하는 스승을 향해 고마움을 표시할 수조차 없는 내 박복함이 서러워졌습니다.

그런데 어떤 남자가 다가왔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왜 이리 서럽게 울고 있소?”

나는 사정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가 반갑다는 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마침 하늘에 제사를 올리려고 사람의 심장과 피와 골수가 필요했던 참이오. 당신을 사는 건 불필요한 일이니, 당신의 몸에서 그것만 떼어내 줄 수 있겠소?”

나는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이 얼마나 반가운 제안입니까?

“당신이 필요한 것은 뭐든 드리겠습니다.”
“얼마면 되겠습니까?”

남자가 값을 물었습니다.

“아, 주시는 대로 받겠습니다.”

흥정을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 남자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어서 이 몸을 팔아서 진리를 위해 보답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장 칼을 구해 와서 살을 갈랐습니다. 지독하게 아팠지만 이상하게 힘이 났습니다. 갈라진 살 틈으로 뼈가 드러났습니다. 그 뼈를 막 가르려는 찰나에 갑자기 누군가가 소리쳤습니다.

“멈추세요. 지금 뭘 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당장 그만 두십시오.”

여자였습니다. 젊은 여자가 다급하게 나를 향해 달려오면서 소리쳤습니다. 나는 오히려 그녀를 안심시켰습니다. 이 남자에게 내 몸의 필요한 부분을 팔면 돈을 벌 수 있으며, 그 돈으로 스승에게 나아갈 때 마음을 담은 공양물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녀는 내 말을 듣더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물었습니다.

“대체 당신이 그토록 공양 올리고 싶어 하는 그 사람, 그는 누구입니까? 이렇게까지 몸을 해치면서 가르침을 들으면 무슨 좋은 일이 생긴다는 말입니까?”

“여인이여, 그 분은 내게 지혜의 완성(반야바라밀)을 들려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그분에게서 위없는 올바른 깨달음을 배워 부처님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얻은 진리를 모든 중생들에게 베풀려고 합니다. 그러면 수많은 중생들은 저 어리석고 고통스러운 삶을 떠나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자 젊은 여인이 말했습니다.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알겠습니다. 지금 당신의 이 행동이 어리석음에서 저질러지는 것이 아님을 알겠습니다. 진리를 위해 당신을 바치려는 것이었군요. 진리 앞에 육신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당신은 말해주고 있군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구도자여, 지금 당신의 몸을 괴롭히는 이 일은 당장 그만두세요. 내게 재물이 있습니다. 내게는 아주 많은 보석이 있고, 당신이 담무갈 보살님께 올리고 싶어 할 만한 귀한 물건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걸 드리겠습니다. 그것으로 담무갈 보살님께 공양 올리십시오. 당신을 따라 나도 선근을 심고 싶습니다. 나도 선근을 심어 진리를 얻고 싶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말하며 칼을 쥔 내 손을 꼭 붙잡았습니다. 그 순간 내 몸의 일부를 사겠다던 남자가 홀연 사라지고 제석천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선남자여. 법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이토록 간절하고 굳건한 줄 이제 확연히 알겠습니다.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진리를 구하는 보살이셨을 때 당신처럼 간절하고 흔들림 없이 법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은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당신이 바로 그 과거 부처님과 다르지 않군요. 됐습니다. 당신이 몸을 해치려던 그 행동은 멈추셔도 좋습니다. 그 대신 당신이 원하는 것을 들어드리겠습니다.”

그랬습니다. 이 남자는 나의 보리심을 시험해보려던 제석천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알아차렸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인파가 넘쳐났던 거리가 쥐죽은 듯 조용해지고 개미 한 마리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인적이 끊긴 이유는 나의 보리심을 방해하려던 파순의 행위였음을….

하지만 파순은 모든 사람을 감출 수는 있었어도 이 젊은 여인은 감추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이 여인 또한 나만큼이나 진리를 갈구하던 수행자였을 지도 모릅니다. 그 간절한 마음이 악마의 방해를 물리쳤던 것입니다.

나는 제석천에게 말했습니다.

“제게 위없는 깨달음을 주십시오.”

나는 이것 말고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 하나를 위해 태어났고 이것 하나를 위해 죽어왔습니다. 내 보리심이 얼마나 굳건한지 파악했으니 제석천은 내게 위없는 깨달음을 줄 것입니다. 그런데 제석천이 말했습니다.

“이보시오. 젊은 구도자여, 위없는 깨달음은 부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내게는 그럴 힘이 없습니다. 다른 것을 바란다면 어떤 것이라도 다 드릴 수 있습니다만….”

아! 이럴 수가. 진리를 위해 내 몸까지 해쳤는데 위없는 깨달음을 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실망스러울 데가 또 있을까요? 나는 힘이 빠져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내 몸이나 온전하게 회복시켜 주십시오.”

이 말을 하자마자 살이 갈라져서 시뻘건 피가 뿜어져 나오던 내 다리는 감쪽같이 나았습니다. 조그만 상처도 보이지 않았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다리는 멀쩡하게 옛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제석천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러자 곁에서 이 모든 일들을 지켜보던 젊은 여인이 제안했습니다.

“제 집으로 가시지요. 집에 가서 부모님에게 공양 올릴 보배를 달라고 청하십시다.”

나는 그녀의 뒤를 따랐습니다. 어느 사이 그녀는 내 도반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없다면 나는 스승에게 나아가지도 못할 것만 같습니다. 도를 구하는 마음이 누구보다 컸던 이 젊은 여인은 자신의 모든 재물을 다 내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가진 것이 없었던 내게는 몸뚱이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나는 진리를 위해 그 몸뚱이를 내놓을 작정이었습니다. 부유한 집안 출신의 이 젊은 여인은 수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재물을 진리를 위해 내놓겠다고 말합니다. 우리 두 사람은 기꺼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재물을 들고 담무갈 보살님에게 나아가게 되겠지요. 그리고 조금도 아까운 마음 없이 그 재물을 올리고서 법을 청하게 되겠지요.

내 보살행의 완성은 이 젊은 여인으로 인해 가능해질 참입니다. 나 혼자만의 완성이 아니라 내 옆 사람과 함께 완성될 것입니다.

*****
살타파륜 보살이야기는 <팔천송반야경>에 들어 있습니다. 반야바라밀을 향해 나아가는 보살이 여인과 함께 지혜를 완성한다는 이야기에는 발심에서 구도행, 그리고 시험과 보은, 수희, 청법, 그리고 완성이라는 보살도의 일련의 과정을 아주 극적으로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미/령/의/사/람/이/經/이/다
불교포커스 여시아사(如是我思)

경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한 사람씩 만나보려 합니다. 인물 하나가 경 하나입니다. 사람보다 더 귀하고, 사람보다 더 중한 것이 어디 있을까요? 그래서 연재 제목도 ‘사람이 경이다’로 정했습니다.

경전번역가, 불교 칼럼리스트, 책 칼럼리스트, 불교교양대학 강사. 불광불교대학, 동산불교대학, 대전보현불교대학, 등에서 불교강좌를 맡고 있고, 현재 BBS 라디오 <멋진 오후 이미령입니다>, , 불교포커스 팟캐스트 <이미령의 책잡히다> 를 진행중이다. 책읽기 모임 <붓다와 떠나는 책여행>과 대안연구공동체의 직장인 책읽기반 등을 열고 책읽는 즐거움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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