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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기는 인연이 아닌 부처님 앞에 당당한 인연살타파륜 보살 ③

진리를 위해서라면 이 몸도 목숨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그런 제게 지혜의 완성(반야바라밀)이라는 경지를 들려주실 담무갈 보살님을 이제 만나게 됐습니다. 그냥 빈손으로 뵐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그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지만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세세생생 내게 지혜의 완성을 들려줄 스승 계신 곳, 바로 그 곳 문 앞까지 왔으면서도 차마 그 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망설이던 내게 한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그녀는 따뜻하게 힘을 보탰습니다. 떳떳하게 나아가 가르침을 청하라고 일러줬습니다. 그녀가 내게 바라는 것이 있었을까요? 딱 하나였습니다.

“선남자여, 그대가 담무갈 보살님께 나아가 가르침을 들을 때 나도 함께 나아가고 싶습니다.”

하여, 그녀의 집으로 함께 갔습니다. 그 부모님에게 허락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여인의 부모님이 과연 이것을 허락해주실까요? 딸을 둔 부모의 바람은 오직 하나입니다. 자신의 딸이 세상에서 가장 권세있고 부유한 남자와 짝을 맺는 것입니다. 아마 이 여인의 부모님도 딸의 그런 행복을 위해 열심히 돈을 벌었고, 그렇게 모은 재산으로 딸의 행복한 결혼을 꿈꾸고 계실 터입니다.

그녀는 집에 도착하자 나와 함께 부모님 계신 곳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나를 인사드리게 한 뒤 자신의 생각을 말씀드렸습니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두 분의 답을 기다렸습니다. 허락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세상의 부모님이라면 다 그러실 테니까요.

그런데 그분들은 말씀하셨습니다.

“장하구나. 내 딸아. 네가 찬탄하면서 말한 것은 이 세상에서 드문 일이다. 네가 우리 앞으로 데려온 이 사람은 오직 진리만을 생각하는 사람이구나. 이런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인물이다. 분명 세상 모든 생명들을 위해 자신의 목적을 이룰 것이다. 어떤 일도 이룰 것이다. 알았다. 네 뜻대로 하자꾸나. 네가 이 사람을 따라가는 것을 허락한다. 그 좋은 곳으로 나아가는데 어찌 말릴 수 있겠느냐. 그런데 우리도 데려가 다오. 우리도 함께 가서 담무갈 보살님을 뵙고 가르침을 듣고 싶구나.”

나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벌어진 일입니다. 두 분은 두 팔을 활짝 벌려 빈털터리인 나를 받아주셨습니다. 나를 당신의 귀한 따님의 동반자로 받아주셨습니다. 그리고 딸의 몫으로 모아둔 모든 재산을 내어주시면서 구법의 길에 함께 나서고 싶다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란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게 무엇이기에 평생을 모으고 쌓아둔 전재산마저도 아낌없이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일까요?
그게 무엇이기에 이 귀한 삶을 송두리째 내맡길 수 있는 것일까요?

세상에는 이렇게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인생의 최고 행복이라고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것과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애초 동쪽으로 나아가라는 목소리를 듣고 정처없이 길을 나섰을 때 나는 외로웠습니다. 외로웠지만 수행이란 원래 그런 것이겠거니 하면서 견뎠습니다. 견디면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지만 혼자 힘으로 풀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을 때 나는 예의 그 울음을 또 터뜨렸습니다. 나는 어째서 이렇게 힘든 삶을 선택한 것일까요? 그럼에도 이런 구도의 삶 말고는 내가 살아갈 삶이란 딱히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 내게 동반자가 생겼습니다. 젊디젊은 여인이 나섰습니다. 그녀는 용감하게 내 길동무가 되겠노라고 나섰습니다. 그녀는 나만큼이나 스승을 애타게 찾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간절한 구도심을 마라도 어쩌지 못했습니다. 마라의 장난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의 구도행에 눈을 감게 되었을 때도 그녀는 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자신을 늘 따라다니던 하녀들도 함께 담무갈 보살님께 나아가게 했으면 좋겠다며, 그것까지 부모님께 허락을 구했습니다. 수레 500대가 그 즉시 준비되었습니다. 수레에는 헤아릴 수 없는 보석이 담겨 있었고 500 명의 여인들이 각자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저기 멀리 담무갈 보살님이 계신 중향성을 향해 수레를 몰았습니다.

세속 사람들이 평생을 바치며 모으고 쌓아온 재물이 수레에 실려 진리를 향해 나아갑니다. 행복하기 위해 그토록 고생하며 모든 재물들입니다. 이제 진짜 행복을 위해 그 재물을 쓰려고 합니다. 깨지지 않고 맑고 깨끗하며 영원한 행복이 저기, 담무갈 보살님이 계신 중향성에 있습니다. 외롭고 가난한 남자인 나, 살타파륜과, 진리를 얻기 위해 기꺼이 배필이 되어 준 젊은 여인은 그 행복으로 나아갑니다. 그녀의 부모님과, 500명의 젊은 여인들이 함께 나아갑니다.

나와 이 여인은 처음부터 부처님의 지혜를 구하려는 마음을 낸 사람들입니다. 우리 두 사람의 발심에 힘입어 이토록 많은 이들이 담무갈 보살님에게 나아갑니다. 나는 알고 있습니다. 이들도 이제 곧 부처님의 지혜를 우러르고 동경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도 부처님의 지혜를 얻고 장차 부처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내게 될 것입니다. 중생으로서의 길고도 오랜 윤회의 삶에서 모두가 발보리심이라는 커다란 전환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울보였습니다. 어찌나 울었던지 울보라는 말이 이름이 되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숱하게 뿌렸던 나의 눈물은 모든 이의 마음 밭에 감로수가 되어 뿌려졌습니다. 감로수를 듬뿍 빨아들인 마음 밭에서 지혜의 싹이 움텄습니다. 보리수가 쑥쑥 자라날 것입니다. 그 보리수가 이 세상에 평화로운 휴식처가 되어줄 것입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행복한 나와 나의 도반들을 위해 중향성의 문이 열렸습니다.

담무갈 보살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며 우리를 맞이합니다.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나아가서 정성을 다해 공양을 올렸습니다. 여인 오백 명이 탄성을 지릅니다. 그들이 담무갈 보살님을 뵙고 찬탄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들의 마음속에 보리를 향한 갈망이 움틉니다.

나는 저 발심한 보살들과 함께 담무갈 보살님께 큰 절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기쁨과 찬탄이 넘치는 그 반야의 누각에서 스승을 향해 반야의 이치를 여쭈었습니다. 담무갈 보살님께서 연꽃 같은 입을 엽니다. 아아, 반야의 가르침이 반짝이며 우리를 감쌉니다.

*****
살타파륜 보살 이야기는 <팔천송 반야경> 마지막을 장식하는 <살타파륜품>을 각색한 것입니다. 발심하고 원을 세우고 스승을 찾아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다른 이까지도 환희하고 발심하게 한다는 대승불교의 보살도를 살타파륜 이야기가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뜨거운 이슈로 온통 난리입니다. 그중에 최근 우리 사회를 경악케 한 이슈는 단연 MBC PD수첩의 조계종 관련 방송입니다.

그 방송을 보고 그날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마침 방송을 한다는 그날 저녁에 나는 ‘수행자란 어떤 사람인가’에 관한 경전을 가지고 강의를 했습니다. 재가불자 강사가 재가불자들을 상대로 ‘수행자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를 강의하려니 말할 수 없는 자괴감이 몰려들었습니다. 밤 9시를 넘어 10시 가까이 되도록 강의를 듣는 재가불자들을 볼 때면 ‘지금 이 시각까지 불교공부를 하는 사람들 중에 출가수행자가 더 많을까, 재가불자가 더 많을까’하는 엉뚱한 생각도 하게 됩니다.

2600여 년 전, 부처님은 수행자의 선배이셨습니다. 맨땅에 함께 주저앉아 도란도란 두런두런 “내가 이렇게 수행했다. 그대들도 이렇게 한 번 좀 해보아라”라며 후배 수행자들에게 간곡하게 법문을 하셨을 것입니다. 스님들은 정말 부처님의 제자답게 잘 살고 계시고 있나요? 오늘날 우리 한국불교를 뒤흔들고 있는 소문들을 부처님께서 들으신다면 과연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몇 년 전부터 불교계를 흔들고 있는 은처자 문제를 접할 때마다 내게는 범계다, 뭐다를 떠나서 ‘구도자와 결혼’이라는 주제가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조계종에서는 출가자는 독신이어야 한다고 못 박고 있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이성과 관계를 맺을 수도 있습니다. 이성에게 끌리는 것을 어쩌겠습니까? 혹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2세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합니다.

이성과의 만남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세속의 범부들도 전부 그걸 지키고 있습니다. 설령 수행하다가 이성을 만나게 되더라도 당당히 인정하고 책임을 지면됩니다. 우리 불교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스님 중에도 2세를 낳은 분이 계십니다. 그분의 자식들은 출생의 비밀에 인생을 망치지 않고 당당하게 출가하여 수행자의 귀감이 되기도 합니다.

<팔천송 반야경>에 등장하는 살타파륜 이야기를 만날 때면, 나는 이상하게도 구도자와 결혼이라는, 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개의 단어가 묘하게도 참 잘 어우러진다는 생각을 합니다.

살타파륜 보살의 구도행을 아름답게 완성해주는 이는 바로 저 장자의 딸입니다.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가 짝을 이뤄 담무갈 보살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참으로 여법합니다. 여자의 부모는 물론이요, 여자를 섬기던 여인들까지 모두가 나아가 법을 듣습니다. 단 한 사람의 발심과 구도와 성불로 끝났을 수도 있었는데, 수백 명의 사람들이 발심하고 보살도의 길을 걸어가는 계기가 됩니다.

저는 언제나 이 이야기의 감동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특히 남성인 살타파륜 보살을 도와서 그로 하여금 반야바라밀을 듣게 해주는 사람으로서 젊은 여인이 등장한다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이것이 보살의 결혼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을 구도행의 완성으로 보는 것이지요. 청정한 독신의 삶이 구도자의 본분이라지만, 어쩌면 세상은 남자와 여자가 힘을 합해 함께 붓다의 경지로 나아가는 것이 더 호소력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승불교는 이런 종교입니다. ‘은처’라니요. 이게 대체 무슨 날벼락입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불교가, 부처님이, 삼보가, 불자의 믿음이 지금 어떤 조롱을 받고 있는지 잘 알고 계실 텐데요. 조계종의 율원과 율원장 스님들은 이 문제에 대해 불자들에게, 이 사회에 어떤 해명이라도 내놓아야 마땅합니다. 행여 이런 의혹제기가 무고한 음해라고 한다면, 대중들이 두 말을 하지 못하도록 명백하게 증거를 보여주시기라도 해야 할 것입니다.

살타파륜보살은 인연을 아름답게 불연으로 승화했습니다. 숨기는 인연이 아니라 부처님 앞에 떳떳한 인연으로 거듭나는 것, 대승의 불자가 지향해야 할 바가 아닐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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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야심경 2018-05-12 22:39:28

    스님들한테 꼬리치는 여자들이 문제다.
    정신 나간 음탕한 보살들!   삭제

    • 혜명화 2018-05-08 19:52:13

      승복을 벗고 직업을 바꿔야지요!!!!
      승복입고 그러한 행위를 하는것은 사기꾼입니다.!!!!
      수행자로써 자격이 없습니다.!!!!   삭제

      • 이제라도 이성을 찾으세요. 2018-05-06 03:51:41

        두원장처럼 샛빨간 거짓말로 일관하면,속인으로도 어느 지역에서나 집단에서나 도저히 못살아 갑니다.
        현 조계종의 승가집단 거의 정신병동 수준입니다.
        한국사회의 국격을 현저히 떨어트리는 대책없는 난감한
        행동들입니다.
        오랜세월을 조선땅에서 살아왔듯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러고도 종단의 미래를 아니 당장 내일을 기약할 수 있겠습니까?
        한국사회의 안녕과 국민정서를 크게 좀먹는 회복할 수 없는 큰 불행입니다.   삭제

        • 인생이 설정 2018-05-05 22:12:35

          인생이 전부 사기와 투도, 사음, 살생으로 얼룩진 인간이 지금의 원장이라는 넘이다. 어떻게 저런 인간을 안팍으로 감싸고 있는 인간들은 도대체 어떤 대가리를 가지고 있는지? 명리에 물든 승가단체인 총무원을 통채로 해산하고 새로운 조계종 행정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삭제

          • 청정월 2018-05-05 16:23:10

            말과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분들을 종단의 어른으로 바라보아야
            합니까?
            혹여 부끄러움마저 잊으셨는지....
            불자의 한 사람으로서 묻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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