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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우리 불교를 묻는다
  • 박병기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장
  • 승인 2018.05.0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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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일 MBC PD수첩의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스님의 학력위조 문제와 은처자ㆍ부동산 관련 의혹, 교육원장 현응스님의 성추문 의혹 보도 이후, 현재까지 관련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불교포커스>는 정의평화불교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박병기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장에게 이번 사태에 대한 진단 및 나아가야 할 방향 제시를 위한 기고를 요청했다. <편집자 주>

우리가 함께 발 딛고 살아가고 있는 이 땅에 평화의 기운이 조금씩 자리잡아가고 있다. 한국전쟁과 냉전기를 거치면서 세계에서 주목받는 분쟁지역이 되었던 이 땅에, 전쟁을 잠시 중지한다는 의미를 지닌 정전(停戰)이 평화(平和)로 바뀔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가능해지고 있다. 남북한 정상이 만났고, 이후 한국전쟁의 당사국들인 미국과 중국이 연속적으로 만나면서 그 평화의 기운은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올 것이다.

이런 좋은 분위기 속에서 한 공영방송국 심층보도 프로그램을 통해 다루어진 조계종 최고위층 승려들의 의혹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사실로 밝혀진 학력위조와 은처자 및 성추행 의혹에 이르기까지 불교 외부의 사람들에게는 큰 충격으로 느껴질 만한 것이었는지 내게도 주변 몇 사람이 사실이냐고 물어왔다. 공중파 방송의 영향력이 여전하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쉽게 답변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자신을 보며 ‘내게 불교가 과연 무엇일까’ 하는 근원적인 물음 앞에 서게 된다.

불교가 내게, 또 우리에게 무엇일까?

“인간 본성에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바로 종교 자체를 개선하는 일이다. 다행히 그런 진보는 일어나고 있고 아직도 진행 중이다. 우리는 그 진보가 끝까지 가리라고 가정하는 것이 공정할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 서병훈 옮김, 《종교에 대하여》, 책세상, 2018, 195-196쪽)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공리주의 윤리학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한 존 스튜어트 밀이 종교 개혁의 절실한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다. 프로테스탄트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개신교를 미국으로 쫒아버리고, 전통적인 그리스도교를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던 자신을 비롯한 영국인들에게 그 종교가 과연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은 다음에 내놓은 답이다. 인간 본성에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종교 자체가 개선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특정 종교가 없다고 답변할 뿐만 아니라, 그 중 상당수는 기성 제도종교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출하기도 하는 현재 우리 상황 속에서 밀의 생각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선 인간 본성에 좋은 영향을 주겠다고 전제하는 계몽주의적 요소를 받아들이기 어렵고, 탈종교화하는 현재 분위기 속에서 종교를 개선한다고 해서 그 영향력의 범위가 얼마나 될 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럼에도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최근 불교의 승려는 물론 가톨릭 신부, 개신교 목사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제도종교의 지도자들이 보여주고 있는 일탈이 우리들 마음을 어지럽히며 다가서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도 사람이어서 실수할 수 있고, 따라서 참회하고자 한다면 그 기회를 충분히 주면서 과정과 결과를 지켜보아야 한다. 우리 역사 속에서 지눌은 당시 지배층을 형성하고 있던 승려들의 행패를 보며 말법시대(末法時代)라는 비판과 함께, 뜻을 함께하는 도반들과 정혜결사를 감행하여 새로운 불교를 일으키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현재의 가톨릭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앞장서서 역사적인 과오를 고백하며 참회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제도종교는 이처럼 타락의 역사를 온몸으로 극복하고자 한 사람들의 치열한 몸짓으로 현재까지도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현재의 조계종단에 대한 희망을 온전히 버릴 수는 없다.

석굴암 전경. 사진=픽사베이.

무엇을 어떻게 해가야 할까?

불교는 붓다의 가르침 자체이면서 동시에 각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형성된 역사적 산물이기도 하다. 현재의 한국불교는 간화선을 중심으로 하는 북방불교의 전통 위에서 위빠사나 수행 전통을 기반으로 하는 초기불교의 지향을 동시에 껴안아가고 있는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 아직 그 역동성은 초기불교 근본주의나 배타적인 간화선 중심주의라는 두 뿔 사이에서 제대로 생명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지만, 빠알리 니까야가 대부분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고 간화선 수행 또한 상당 부분 대중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조만간 생명력을 갖추게 될 가능성은 열려 있다.

문제는 이 가능성을 현실로 옮길 수 있는 주체이다. 재가보살과 출가보살이라는 두 주체를 설정하고 각각에게 그 가능성을 모두 열어주는 보살불교인 한국불교 전통 속에서 우리는 우선 자신의 깨침 가능성에 대한 믿음과 실천지향을 확인하고자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런 후에는 재가와 출가라는 자신의 상황에 맞는 삼학(三學)의 실천에 힘써야 한다. 특히 삼학에서 가장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는 계율(戒律)의 토대를 확고히 해야만 한다. 계율은 선정(禪定)과 지혜(智慧)를 떠받치는 받침대이기 때문이다.

출가 비구승에게 음행(淫行)은 바리이죄, 즉 승단 추방죄로 다스려져야 하는 중죄이다. 이런 의혹이 제기되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참회의 자세를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욱이 방송을 통해 제기된 의혹들이 대부분 새로운 것이 아니라 작년 촛불법회를 통해 지속적으로 제기된 것임을 떠올려보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전개된 데는 의혹당사자들이 참회의 자세를 취하는 대신 변명과 소송 같은 부정적인 대응으로 일관한 탓이 크다.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서 가장 피해야 하는 회피와 역습의 방법을 승가 지도부와 그 주변 재가자들이 거리낌 없이 택함으로써 상황을 악화시켰음을 뼈저리게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잘못된 정보나 사실 인식에 기반한 의혹제기 부분이 있다면, 정당한 소명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그 기회와 절차를 보장해주는 것도 우리가 최소한으로 공유해야 하는 공존의 윤리이기 때문이다. 이번 위기는 어쩌면 우리 불교공동체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소한의 계율을 확인하고 지키고자 노력하면서, 참회를 기반으로 하는 수행의 자세를 지니고자 애쓸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런 가운데 의혹의 당사자가 된 종단 지도부 승려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엄중히 인식하고 수용해야 한다. 이러한 책임의 인식과 수용의 책임윤리는 시민의 최소윤리이다. 종교성과 도덕성이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도덕성의 기반 위에 서지 못하는 종교성은 사상누각일 뿐이어서 한 줄기 바람에도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부디 직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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