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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개신교의 못난이 경쟁에 대하여
  • 류상태 목사,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대표
  • 승인 2018.05.10 09:55
  • 댓글 18

1. 누가 더 못났을까?

요즘 한국의 불교와 개신교를 보면 마치 못난이 경쟁을 하는 것 같다. 자승스님 때부터 불거진 조계종 총무원장의 비리문제는 마침내 우리 사회의 큰 주목을 받기에 이르렀다. 지난 5월 1일, MBC PD수첩이 다룬 설정스님의 은처자, 재산은닉, 학력위조 등의 문제는 당분간 불자님들의 가슴에 씻기 어려운 상처로 남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문제라면 개신교가 한 수 위가 아닐까. PD수첩이 방송된 지 이틀 후인 5월 3일 오전, 신도 수가 13만에 이른다는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담임목사가 여신도 십여 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여신도에 대한 성추행과 성폭행, 학력위조 등 이런 종류의 비행은 개신교 내에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불교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낼 때마다 불자님들로부터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불교도 개신교 못지않게 문제가 많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기독교에 비하면 불교는 귀여운 수준이다. 스님들이 아무리 일을 저질러도 자기 집을 태울 뿐 집 밖으로 번지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목사들은 자기 집을 태울 뿐 아니라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마을 전체에 불을 지르고 다닌다”

스님들이 아무리 문제를 일으켜도 불법 자체가 훼손되지는 않는다. 불교의 중심교리는 어떤 철학이나 과학적 사실과도 거스름이 없을 뿐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찬연히 빛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독교는 교리 자체가 어긋나 있다. 시대에 뒤떨어진 배타적 교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이라고 우기는 목사와 신도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사회 갈등을 부추기고 돌아다닌다.

이렇게 불교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나 비리는 주변의 문제고 깃털의 문제지만 기독교는 교리 자체가 문제의 중심에 있다. 주변이 아니라 중심이 흔들리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흔들림이 우리 사회에 불안을 조성하고 갈등을 양산해내기까지 한다. 도대체 왜,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오늘은 이 문제를 중심으로 생각을 나누고 싶다.

2. 늙은 제국 로마는 새 이념이 필요했다

지난달에 쓴 칼럼에서 “기독교의 진정한 가치는 교리의 기독교가 아니라 운동의 기독교에 있다”고 말한 걸 기억해주시기 바란다. 그러면 왜, 어떤 과정을 거쳐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오늘날의 교리기독교가 오랜 세월 동안 기독교의 ‘정통’으로 군림하게 되었을까?

교리기독교가 보수정통이 된 건 그것이 옳아서가 아니라 역사의 파워게임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서기 313년에 로마제국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밀라노칙령을 발표했다. 그때까지 사교로 배척되었던 기독교에 신앙의 자유를 준 것이다. 325년에는 니케아회의를 열어 기독교 교리를 하나로 통합하도록 유도했다.

기독교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해 훗날 기독교세계는 콘스탄티누스에게 ‘대제’라는 칭호를 주었다. 하지만 그가 순수한 마음으로 기독교를 인정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라고 보는 역사학자들이 많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그를 한 마디로 이렇게 평가한다. “콘스탄티누스는 전형적인 정치적 인간(Homo Politicus)이었다. 그에게 기독교는 종교문제가 아니라 정치문제였다”

로마는 서기전 753년 도시국가로 출발했다. 이후 천 년이 지나 콘스탄티누스가 황제가 된 4세기 초에는 내분으로 거의 고사 직전에 이르렀다. 그는 노쇠한 로마제국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새롭고 강력한 이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여러 문화와 종족이 융합된 제국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이념은 종교밖에 없다. 그런데 로마의 전통종교는 다신교다. 최고신 제우스가 있지만 전능자는 아니다. 당시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최고신으로 받들고 기도했지만, 전쟁터에 나갈 때는 전쟁의 신 마르스에게 기도했고, 바다에 나갈 때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기도했다. 이래가지고는 넓은 제국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신념체계로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콘스탄티누스는 무섭게 떠오르는 새로운 종교에 주목했다. 전임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조직적인 박해에도 살아남은 유일신종교였다. 오직 하나 뿐인 절대신, 우주만물을 창조하셨고, 모든 인간에게 생명을 부여하였으며, 불꽃같은 눈으로 인간세계를 살펴본다는 전지전능한 신이다.

그런데 그 신의 유일한 아들이 로마황제를 인정하는 듯한 말을 남겼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바쳐라.” (마가복음 12:17). 그의 제자이며 기독교세계의 강력한 지도자인 바울은 한 술 더 뜬다.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이미 있는 권세들도 하느님께서 세워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권세를 거역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요, 거역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13:1,2)

3. 콘스탄티누스, 기독교와 손을 잡다

마침내 그는 기독교와 손을 잡고 제국의 부흥을 도모하기로 했다. 기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가 사분오열되어 서로 싸우면 곤란하다. 하여 콘스탄티누스는 니케아에서 제국 전역의 주교들을 소집하여 회의를 열고 예수에 관한 교리의 일치를 강요하게 된다.

콘스탄티누스는 예수와 그의 제자 바울을 제국의 강력한 변호자로 만들고 싶었다. 특히 예수는 콘스탄티누스 자신을 비롯한 로마 황제들의 옥좌를 든든히 지켜주는 수호신이 되어야 했고, 유일신의 유일한 아들로서 절대권위를 가져야했다. 어느 누구도 그의 권위에 도전할 여지를 주지 말아야 했다.

하여 니케아회의에서 예수는 유일신의 유일한 아들일 뿐 아니라 본질상 신의 성품을 가진 분으로 선포되었다. 오직 예수만이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분이며, 그를 인정하는(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인정하지 않는 자는 영벌을 받게 된다는 배타교리가 확정된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어떻게 이용했고, 기독교가 어떻게 해서 예수를 배반한 종교가 되었는지 더욱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내가 쓴 책 <소설 콘스탄티누스>를 참조해주시기 바란다. (이 책 내용은 DAUM CAFE <류상태글방>에 전문이 수록되어 있으므로 인터넷으로도 볼 수 있다.)

지난달 칼럼에서 자세히 말했던 바와 같이 콘스탄티누스 때까지 기독교는 세 기둥, 즉 교리의 기독교와 영성의 기독교, 운동의 기독교가 함께 존재했다. 서로 경쟁하며 발전해 온 것이다. 교리기독교에도 다양한 견해들이 공존했다. 마치 오늘날 개신교에 많은 교단과 해석이 공존하는 것처럼.

그런데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기독교 교리가 하나로 통합되었다. 이후 지난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오직 하나의 교리만 존재하게 되었다. 영성의 기독교도 명맥을 유지했지만 독선적인 교리의 틀 안에 있어야 했다. 그 틀을 벗어나면 이단으로 낙인찍혀 도태되었다. 운동의 기독교는 사라졌다. 제국의 안녕과 번영을 위협하는 반체제운동이었기 때문이다.

4. 한국 개신교는 살 수 있을까?

이렇게 해서 기독교는 콘스탄티누스 이후 중세를 거치기까지 천 년 이상 오직 교리기독교만이 존재하게 되었다. 하지만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자유로운 해석자들이 등장했다. 정통교리에 도전하는 그들을 교회(가톨릭 뿐 아니라 훗날의 개신교도 포함하여)는 가차 없이 화형이나 교수형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

16세기 개신교가 태동한 이후 17~18세기를 거치면서 유럽의 기독교세계는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우리 하느님이, 우리 주님이, 정말로 그렇게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분이란 말인가?”라는 의문은 치열한 신학적 논쟁을 거쳐 거대한 변혁을 이루었고 결국 교리기독교를 소멸시키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오늘날 유럽의 기독교 교회는 하나하나 그 문을 닫아가고 있다. 수십 년에 걸쳐 지어진 어마어마한 교회건축물들이 박물관으로, 공연장으로, 심지어 카페와 음식점으로 바뀌었다. 하여 한국의 대형교회 목사들은 “유럽 교회는 죽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럽의 교회는 죽은 것이 아니라 진화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교회 조직과 건물은 사라지고 있으나 예수의 가르침은 오히려 그들의 사회와 삶 속에 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서구 기독교세계에 뿌리내린 인권이나 정의, 복지의 가치는 예수의 가르침과 그 방향이 일치한다.

기독교 후진국인 미국의 근본주의 교회들과 그 아류인 한국의 주류 개신교는 아직도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교리기독교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외치는 기독교 선각자들의 경고는 더 이상 소수의 목소리가 아니다.

한국의 개신교는 21세기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면 역사의 박물관으로 들어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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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13 02:17:28

    종교인들 반성해야한다
    이제 다들 제대로좀 하시자구요
    제대로된 종교단체에 몸담아야할듯 합니다   삭제

    • 나귀 2018-05-13 02:16:11

      종교인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야한다
      허나,종교인들이 비리가 더 많고 나쁜짓을 더 많이 하는듯 하다 반성해야한다. 신을 모신다는 사람들이 해서는 안될행동이다 반성해야한다   삭제

      • 정리 2018-05-11 17:20:52

        우리나라는 기독교종류만해도 너무많다...개신교.장로교.감리교..등등 서로의 교리만 주장하지말고 교리비교해서 진짜 참진리하나로 정리좀 할필요가 있어보인다 생각한다   삭제

        • 소망이 2018-05-11 17:07:24

          남을 비판하기 전에 나 자신부터 비판 받지 않도록 바른 생각과 행동으로 이 사회를 정화시키면 참 좋겠네요.^^   삭제

          • 소나기 2018-05-11 17:00:25

            이 지구촌에 종교인들이 새롭게 변화되어서 평화의 세계를 이루어 갔으면 합니다.   삭제

            • 이슬 2018-05-11 16:57:17

              인간은 하늘의 혜택을 받고 살아가기에 항상 감사하고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삭제

              • 진주 2018-05-11 16:51:53

                종교인이 모범이 되어야하는데 너무 교만한것 같아요. 다 욕심 때문이고 그것을 버리면 진정한 종교인이 될수 있을것 같아요.   삭제

                • 보배 2018-05-11 16:48:36

                  내 눈에있는 들보는 보지못하고 남의 티는 본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듯이 각자 회개하고 낮아지고 섬기는자가 되었으면 참좋겠습니다.   삭제

                  • 미시맘 2018-05-11 16:39:31

                    불교든 개신교든 정신 차려야 할 때 ~~   삭제

                    • 나리 2018-05-11 14:47:51

                      개신교 교인으로서 참 부끄럽네요   삭제

                      18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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