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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국민과 불자들에게 대리참회하며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 6월 1일 참회법회

적폐청산시민연대 3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른바 ‘시즌 쓰리(3)’입니다. 작년 촛불법회가 시즌 원(1)이었다면 올 봄 촛불법회는 시즌 투(2)였습니다. 계절이 바뀜에 따라 초여름이 시작된 6월 1일 열린 참회법회는 시즌 쓰리의 개막을 알리는 법회입니다. 적폐청산시민연대 3기는 6월 5일 공식 출범합니다.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 3기 회장을 맡은 김영국 연경불교정책연구소 소장.

시작은 미미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시작은 미미합니다. 일부 뜻있는 사람들 몇 명이서 ‘이래서는 안된다’며 ‘우리라도 움직여 보자’해서 시작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2016년 광화문 촛불도 그랬고, 지난해 촛불법회도 그랬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촛불이 횃불이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이번 불교적폐청산 시민연대 3기 출범식 역시 시작은 미미했습니다.

6월 1일 저녁 7시 보신각 광장에 낯익은 얼굴이 하나 둘 보였습니다. 길거리 법회가 있는 날이면 볼 수 있는 익숙한 얼굴들입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법우님들입니다. 단체에 소속된 이도 있고, 개별적으로 참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부분 저녁이 있는 삶을 보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시간내서 참여하는 것은 변화에 대한 갈망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자발적으로 참가하는 법우님들의 경우 원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이 시대의 진정한 ‘참불자’라 볼 수 있습니다.

정의의 깃발을 세우고

깃발을 세웠습니다. 보신각 광장에는 깃발을 세울 수 있도록 깃발꽂이대가 설치가 있어서 매우 편리합니다. 아마 보신각 광장에서 각종 집회가 많이 열리기 때문에 배려해 놓은 것이라 봅니다. 적폐청산시민연대 깃발, 참여불교재가연대 깃발, 불력회 깃발, 정의평화불교연대 깃발, 이렇게 네 개의 깃발이 세워졌습니다.

보신각 광장에 선 네 개의 깃발.

깃발은 상징입니다. 일종의 군기와도 같습니다. 요즘은 깃발을 중심으로 뭉치기도 하기 때문에 단체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재작년 광화문 촛불에서 보인 수 많은 깃발이 이를 말해줍니다.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 법회가 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깃발이 세워집니다.

정의평화불교연대도 깃발을 들었습니다. 녹색바탕에 흰 글씨와 흰 코끼리가 그려진 문양입니다. 촛불법회등 각종 법회가 열리면 빠짐 없이 등장하고 5월 12일 연등축제 때 종로거리에서 행진할 때도 선 보인 바 있습니다.

전장에서 깃발은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합니다. 초기경전에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어떤 전사는 흙먼지가 이는 모습은 견디지만, 깃발의 모습만 보아도 용기를 잃고 전의를 상실하고 견디지 못하고 전쟁을 수행할 수 없다”(A5.75)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정의로운 깃발을 들었을 때 불의의 세력들은 위축되고 두려워할 것입니다.

'자발적 신도'와 '생계형 신도'의 차이

6월 1일 참회법회는 문자 그대로 ‘참회’가 주제였습니다. 잘못은 권승들이 했음에도 아무 잘못이 없는 스님들과 불자들이 참회하는 현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권승들을 대신해서 불자들과 시민들에게 참회한 것입니다.

어떤 이는 힘을 실어 주기 위해 왔다고 했습니다. 불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나 몰라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 한 몸 실어서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시간과 돈과 정력은 문제되지 않음을 말합니다. 피치 못해서 참석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홍보가 미흡해서 참석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종단과의 관계 때문에 참석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 아마 '생계형 신도'라 할 것입니다. 그럴경우 마스크를 착용하면 됩니다. 이날도 어김없이 총무원직원이 나와서 채증작업했습니다. 권승들의 녹을 받아 먹고 사는 생계형 직원은 이곳 저곳 사진을 찍어 갔는데 어쩌면 “뭐, 별거 아니네”라고 보고했을지 모릅니다. 이날 참회법회 참석인원은 4~50명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참회법회에서 삼귀의를 하는 사부대중.

하지만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만 먹으면 수천, 수만명이 모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꾸준히 법회를 이어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한번 수만명 모이는 것보다 수십명이라도 매주 끈질기에 모여서 메시지를 전달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자유발언이 있었는데

자유발언이 있었습니다. 정의평화불교연대 유병화 선생님은 “기복불교 하지 말자”고 주장 했습니다. 오늘날 한국불교가 타락한 요인 중 하나가 기복에 있음을 말했습니다. 불자들이 교리를 공부하고 수행을 하여 향상하는 삶을 나아가야 함에도, 그러지 않고 기도에만 의지할 때 신도들은 무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문제는 신도들이 무지할수록 성직자의 권위가 더욱 높아진다는 점입니다. 한국불교가 기복에서 수행의 불교로 전환 되었을 때, 한국불교는 몇 단계 업그레이드 될 것입니다.

정의평화불교연대 이희선 공동대표는 "부패한 종교인과 손잡는 것은 악마와 손잡는 것"이라는 취지로 발언 했습니다. 무엇보다 정치인과 종교인이 손을 잡을 때, 그 맞잡음이 곧 부정한 거래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언론인=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기자가 종교인과 손을 잡으면, 비난 받아야 할 자를 칭찬하고 칭찬해야 할 자를 비난하기 쉽습니다. 검찰과 종교도 마찬가지 입니다. 검찰이 진즉 종교계의 여러 부패에 대해 적극 나섰더라면, 오늘과 같은 피디수첩 보도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이밖에 여러 사람의 발언이 있었습니다. 도정스님은 "오늘날 스님들은 무능력자"라고 했습니다. 천안통 같은 스마트폰 시대에 선방에만 10년 앉아 있다보면,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고집불통의 스님이 되기 쉽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세상은 광속처럼 변하는데 이를 수수방관한다면, 그는 곧 무능력자이거나 바보와 다름 없다고 했습니다. 도정스님은 “깨어 있는 불자가 되자”는 말로 마무리했습니다.

국민들과 불자들에게 대리참회하며

불교에서는 참회를 중요시하게 여깁니다. 죄를 저질렀더라도 참회하면 용서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율장에서 말하는 참회는 어떤 것일까? 앙굿따라니까야 ‘죄악의 경’에는 “여러분, 나는 재가 든 자루로 맞아야 하는, 비난을 받을 만한 악한 업을 지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원한다면, 그 대가를 달게 받겠습니다.” (A4.242)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율장에서 말하는 참회죄는 재가 든 자루로 얻어 맞는 정도의, 그다지 무겁지 않은 죄에 해당합니다.
 
6월 1일 모인 스님들과 불자들은 국민과 불자님들에게 참회했습니다. 참회의 의미로 108배를 했습니다. 광장 맨 바닥에 방석을 깔아 놓고 박종린 불력회 법사의 우렁찬 나무아미타불 염불에 맞추어 차분하고 사뿐하게 절을 했습니다. 국민과 불자들에게 죄송함과 용서를 비는 참회의 절입니다. 모인 사람들은 권승들을 대신하여 국민들과 불자들에게 대리참회했습니다. 그렇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참회란 무엇일까?

국민들과 불자들을 향해 대리참회하는 참석자들.

네 가지 죄가 있는데

참회죄(pācittiya)는 한역으로 단타죄(單墮罪)라 하는데 비교적 경미한 죄로 4인 이상의 수행승에게 고백하여 참회하는 죄를 말합니다. 그러나 참회죄보다 무거운 죄가 있습니다. 그것은 승단추방죄와 승단잔류죄입니다.

승단추방죄(pārājika)는 한역으로 단두죄(斷頭罪)라 합니다. 문자 그대로 머리를 자르는 중죄로서 승단에서 추방되는 죄를 말합니다. 경에서는 “이 자는 머리가 잘릴 만한, 비난 받을 만한 악업을 지었구나.”(A4.242)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성적교섭이나 도둑질, 살인, 신통위력의 과시가 이에 해당됩니다. 이번에 피디수첩에 방영된 '큰스님들'은 모두 머리가 잘릴 정도로 큰 죄를 지었기 때문에 승단추방죄에 해당됩니다.

승단잔류죄(saṅghādisesa)는 한역으로 승잔죄(僧殘罪)라 합니다. 경에 따르면 “여러분, 나는 몽둥이로 맞아야 하는, 비난을 받을 만한 악한 업을 지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원한다면, 그 대가를 달게 받겠습니다.” (A4.242)라고 표현됩니다. 몽둥이로 얻어 맞을 정도로 무거운 죄로 대중에 참회하면 승단에 남을 수 있는 죄를 말합니다. 승단내에서 폭력 등을 저지른자가 이에 해당됩니다. 이번에 피디수첩에 등장하는 '큰스님들'은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고백죄(pāṭidesanīya) 가 있습니다. 참회죄보다 가벼운 죄로 한사람에게 고백는 것으로 죄가 참회되는 경미한 죄를 말합니다. 경에서는 “여러분, 나는 책망받아야 마땅한, 비난을 받을 만한 악한 업을 지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원한다면, 그 대가를 달게 받겠습니다.” (A4.242)라고 표현됩니다.

네 가지 죄를 보면 가장 무거운 것부터 승단추방죄, 승단잔류죄, 참회죄, 고백죄의 순입니다. 그런데 참회하여 용서되는 죄가 있고 참회해도 용서가 되지 않는 죄가 있습니다. 승단추방죄는 아무리 참회한다고 해도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승단추방죄는 외부에서 판단하여 처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세 가지 죄는 자신이 판단하여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바라기 때문에 승단에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참회를 받아 주어야 하지만

6월 1일 참회법회에서 스님들과 불자들이 참회의 108배를 올렸습니다. 초여름 도심의 한가운데서 “국민들과 불자님들께 참회합니다”라는 플레카드 앞에서 연신 무릎을 꿇었습니다. 과연 국민들과 불자들은 이런 참회를 받아 줄까?

참회를 하면 참회를 받아 주어야 합니다. 승단추방죄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 가지 죄에 대해서는 참회를 하면 용서가 될 수 있습니다. 경에 따르면 참회죄에 대하여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수행승이나 수행녀든지 참회죄에 대하여 이와 같이 날카롭게 두려움을 지각하는 자는 ‘참회죄를 범하지 않은 자는 범하지 않을 것이고 참회죄를 범한 자는 여법하게 그 처벌을 수용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명하다.”(A4.242)라 되어 있습니다.

어느 조직이나 사회이든지 자신이 판단하여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는 자에게는 용서를 베풀고 있습니다. 그러나 승단추방죄는 어떻게 하더라도 예외입니다. 피디수첩에 등장하는 큰스님들은 승단에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권승들의 심장부에 정의의 깃발을

잘못을 하면 참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잘못한 자는 참회를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실을 알리는 방송을 ‘법난’으로 규정하고 전국 사찰에 MBC 시청 거부운동을 펼칠 모양새입니다.

피디수첩에서 단두죄를 저지른 권승들은 참회대상이 아닙니다. 그들은 승단추방대상입니다. 아무리 용서하려고 해도 성적교섭이나 도둑질, 살인, 신통위력의 과시에 해당되는 네 가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승단추방죄에 해당되는 자에게 자비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의식 있는 스님들과 재가불자들이 참회했습니다. 죄를 저지른 자들은 뻣뻣한데 죄 없는 스님들과 불자들이 그들을 대신하여 국민들과 불자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대리참회 했습니다. 그리고 깃발을 들었습니다.

이 깃발은 불교가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알리는 정의의 깃발입니다. 정의의 깃발이 권승들의 심장부에 세워지길 고대합니다.

<이병욱은 누구?>

이병욱 정의평화불교연대 사무총장은 다음 블로거 '진흙속의연꽃'으로 더욱 유명하다. 해당 블로그는 총 방문 횟수 600만에 육박하는 등, 불교계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

이 총장은 주로 초기경전에 바탕을 둔 글을 쓰고 있으며, 불교계 언론에 칼럼도 기고하고 있다. 2005년 블로그를 개설한 이래 2006년부터 지금까지 매일 글을 올리고 있는 자칭 '보통불자'다. 과거 전자제품 개발업무에 종사한 바 있으며 지금은 인쇄회로기판 설계전문업체 예아트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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